四柱命理 風水地理/풍수지리

의성 김용비 묘

초암 정만순 2021. 1. 25. 08:36

의성 김용비 묘

 

 

 

김용비 묘=

경북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에 있다.

김용비(金龍庇)는 의성김씨의 9세조로 중시조가 된다.

그의 생몰연대나 행적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고려말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냈으며, 그가 의성 지방을 다스릴 때 선정을 베풀어 이를 감사하게 여긴 지방민들이 사후 300여년간 추모하는 사당을 세우고 제향을 올렸다 한다.

이 묘는 실전(失傳)되어 오다가 김성일(金誠一)의 부친인 김진(金瑨)대에 이르러 되찾았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 학자인 학봉 김성일과 동강 김우옹 등이 후손들이다.

예전에 묘터나 집터를 찾는 하나의 방법으로 매나 연을 띄웠다.

매를 날려 보내 내려앉는 자리나, 연이 떨어진 곳에 터를 잡았다는 것이다.

 

 

사진1 의성김씨 중시조인 김용비 묘 전경.

가운데 묘가 김용비 묘다.

겹겹이 많은 산들이 둘러싸 있고, 곳곳에 부봉과 필봉이 줄지어 섰다.

 

사진2 김용비 묘 원경.

가운데 산줄기의 솟은 부분이다.

주산서 내려오는 용맥이 기세가 좋다.

전형적인 괘등혈이다.

 

 

 

김용비의 묘자리 선정엔 연을 동원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의 사후 노승이 나타나 '연을 띄워 떨어지는 곳이 명당일 것이니 그곳에 장사지내라'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과연 그 연이 떨어진 곳을 파보니 오색혈토가 나왔다는 것이다.

비석비토(非石非土)인 이 혈토(穴土)는 명당을 이루는 하나의 중요한 요건이 된다.

또한 이 얘기는 주산인 오토산(五土山)의 지명 유래가 된다는 주장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김용비 묘의 주산은 오토산이다.

오토산은 한 지역의 명산답게 풍수에 얽힌 얘기도 많이 품고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다섯 개의 명혈(名穴)에 관한 얘기다.

즉 오토산 정상엔 제비집 모양의 연소혈(燕巢穴)이 있고,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엔 등잔을 걸어 놓은 듯한 괘등혈(掛燈穴),

서쪽 가지엔 ㄱ자 모양의 곡척혈(曲尺穴),

남쪽 산줄기엔 벌의 허리처럼 잘록한 봉요혈(蜂腰穴),

북쪽 지맥엔 개구리 발자국 모양의 와적혈(蛙跡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다섯의 명당 중에서 동쪽 산줄기에 자리 잡은 것이 김용비의 묘다.

 

김용비의 묘는 괘등혈로 알려져 있다.

괘등혈은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한다.

높은 곳에 있는 등불이 널리 비춘다는 뜻도 가진다.

풍수를 형국으로 조명할 때 안산이 중요하다.

범형에 개나 사슴 등을 뜻하는 안산이 있어야 하듯, 괘등혈엔 기름을 대신할 사격이 있어야 한다.

기름이 있어야 불을 밝힐 수 있다는 얘기다.

이름을 붙이자면 유병안(油甁案)이다.

하지만 이 묘의 주위엔 이런 형태의 사격이 없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평범한 논일뿐이지만 예전에 앞들은 참깨 밭이었다 한다.

등잔에 소용이 닿는 기름의 대신이다.

이는 곧 비보풍수의 도입이 된다.

 

이 묘를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으로 보기도 한다.

동북쪽 마을의 베틀바위가 옥녀의 베틀이 되고, 묘가 있는 곳이 등잔이 되어 옥녀가 밤낮으로 베를 짜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비단옷은 높은 벼슬아치들이 입는 옷이 된다.

따라서 이 형국에선 높은 관직의 인물이 난다고 본다.

 

경사지엔 혈이 없다.

용맥이 급하게 떨어지는 곳이라 기(氣)가 모일 새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세엔 반드시 평평한 곳이 있어야 한다.

이 묘가 그러하다.

주산서 급격히 떨어진 용맥이 이곳에 와서 잠시 숨을 돌리다 다시 급격히 떨어진다.

그 평평한 곳에 3기의 묘가 있는데 가운데 묘가 김용비 묘다.

 

김용비 묘는 앞이 아름답다.

뚜렷한 안산은 없지만 펼쳐진 전경은 가히 압권이다.

겹겹이 늘어선 조산엔 부봉(富峰), 문필봉(文筆峰) 등이 줄지어 섰다.

이런 전경은 각 문중의 시조묘(始祖墓)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중출맥(中出脈)한 내룡(來龍)의 기세, 주위 산줄기나 물의 환포도 일품이다.

 

등불의 쓰임은 밝힘이다.

암울했던 구한말, 일제강점기 시절 의성김씨 문중(義城金氏 門中)이 보여준 항일과 독립에 대한 의지는 곧 우리 민족에 드리웠던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이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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