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풍수지리

부산 정문도 묘

초암 정만순 2021. 1. 25. 08:57

부산 정문도 묘

 

 

 

보릿짚으로 도깨비 속이고 안장…야자형·연화도수형으로 알려져

 

 

◆정문도 묘=

경북 예천에 있는 정사(鄭賜)의 묘와 함께 양대 정묘(鄭墓)로 일컬어지며,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산(華池山)에 있다.

속칭 조선 8대 명당 중 한곳이다.

음택 주요 답산(踏山) 코스로, 국내 출판 풍수관련 서적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명묘(名墓)다.

묘역은 현재 공원으로 조성돼 일반인에 공개되고 있으며, 묘 앞 양쪽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수령 800여년의 배롱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돼 있다.

고려시대 호장(戶長)이었던 정문도(鄭文道)는 동래 정씨 2세조이며, 동래 정씨는 조선시대에만 정승 17명, 대제학 2명 등을 배출한 명문이다.

 

정문도 묘 전경.

겹겹으로 환포한 백호자락들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집들로 채워진 안산 쪽은 옛 사진 속에선 작은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다.

묘 앞서 본 정묘.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멋스럽다.

뿌리가 길게 뻗지 않는 배롱나무는 묘역 조성나무로 제격이다.

 

조선시대 명문거족 東萊 鄭氏 基地

 

명당엔 으레 뒤따르는 얘기가 있다.

금기시되던 땅을 천신만고 끝에 길지(吉地)로 바꾸고, '명당엔 임자가 따로 있다'는 풍수 격언이 동원되며, 이인(異人)이나 도승이 기이하게 도움을 주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것 등이 그것이다.

부산에 있는 정문도의 묘(鄭墓)에 전해지는 설화도 예외가 아니다.

 

정문도는 고려시대 부산지역의 관리였다.

그런데 공무(公務)가 끝난 정문도의 상관이 자주 들르는 곳이 있었다.

집무처에서 멀지 않은 화지산 자락,

그곳에서 그는 한참씩 앉아 한숨을 쉬곤 했다.

동행했던 정문도는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중엔 그곳이 명당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 뒤 상관이 개경으로 돌아가자 정문도는 아들에게 그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게 되고, 아들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안장 후 기이한 일이 생긴다.

밤사이 봉분이 파헤쳐지고 관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

봉분을 다시 쌓고 이튿날 보니 또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이에 아들이 이상히 여겨 감시를 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묘 주위로 도깨비들이 나타나 '이 자리는 목관(木棺)을 묻을 자리가 아니고, 금관(金棺)을 써야할 자리다'라며 봉분을 파헤치고 가버렸다.

금관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던 아들 앞에 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방책을 일러준다.

보릿짚으로 관을 둘러싸고 안장을 하란 얘기였다.

 

그렇게 안장을 한 그날 밤, 도깨비들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똑같이 봉분을 파헤치자 이번엔 금빛이 새어 나왔다.

보릿짚이 달빛에 반사돼 황금빛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를 본 도깨비들이 '금관이로구먼. 이젠 됐다'라며 봉분을 다시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 이듬해에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뇌성벽력이 떨어져 이웃 산에 있던 험상궂은 바위를 깨트려버렸던 것이다.

그 상관이 명당의 흠을 아쉬워하며 한숨을 쉬던 원인이 사라진 것이다.

동남쪽 황령산의 괴시암이 그 바위라는 얘기도 함께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정문도의 묘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태어나게 된다.

 

 

정묘를 흔히들 연화도수형(蓮花倒水形, 물위에 핀 연꽃이 고개를 숙인 모양)이나 야자형(也字形) 명당으로 분류한다.

야자형이란 한자(漢字)의 야자를 닮았단 얘기다.

이런 지세에선 가운데 획의 끝머리에 혈(穴)이 맺힌다.

첫 획이 좌청룡이 되고, 마지막 획이 백호가 된다.

굳이 야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좌우의 산들이 혈을 감싸는 지세, 즉 풍수이론 그 자체인 것이다.

 

겹겹으로 환포한 정묘의 백호는 청룡을 감싼다.

게다가 좌우의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은 부(富)와 귀(貴)를 상징하는 귀한 사격(砂格)들이 즐비하다.

백호가 길게 뻗어 형성한 안산(案山)은 예전엔 금산형(金山形)의 봉우리였다는데 지금은 가득 찬 집들로 높낮이만 확인할 수 있다.

멀리 영도 봉래산이 조산(朝山)이 되는데, 정상은 3명의 걸출한 인물이 난다고 전해지는 삼태봉(三台峰)형태를 띤다.

이렇듯 힘 있게 내려오는 내맥(來脈)과 짜임새 있는 보국, 주위 산들과 혈처와의 절묘한 조화 등 정묘는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묘역은 공원으로 조성돼 개방돼 있다.

이는 명당과 적선(積善)이란 불가분의 관계를 생각게 한다.

더욱이 명당을 구한 이후의 조치이니 더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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