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예담촌 四梅
(하씨고가 원정매, 최씨매, 이씨매, 정씨매)
소재지 :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281-1
원정매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은 500여년전에 형성된 마을로 조선조의 전통적인 고택이 많으며 이 마을에는 매화의 고목이 많기로 유명하다. 하씨(河氏)의 원정매(元正梅:汾陽梅라고도 함), 최씨매, 이씨매, 정씨매가 있으며 고택 마다 고매 한 두 그루가 매향을 풍기고 있다. 이 마을의 고택 중 하나로 진앙 하씨가 32대 살아온 '분양고가(汾陽古家)'가 있다. 이 집은 원정공 하집(1303~1380) 선생이 살았던 집이다. 그는 21세 때인 1324년에 급제하여 경주부윤, 문화찬성을 거쳐 진천부원군에 이르렀다. 이 집은 동학란 때 소실되어 그의 31대손인 하철이 새로 집을 짓고 '汾陽古家'라는 액자를 걸어 엤 명문가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집 사랑방 앞에 하집이 심은 고매 한 그루가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윽한 매향을 이어오고 있다. 이 매화 앞에는 매화시비가 있어 원정공의 매화 사랑을 였볼 수 있다. '원정공 매화시' 집 양지바른 곳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이 집 뒤 뜰에는 조선조 세종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손수 심었다는 580년된 감나무도 있다. 진양 하씨 대동보에 의하면 1377년 이후에 원정공은 몇간의 집을 짓고 '송헌'이라 이름하엿으며, "일찍이 매화 한 그루를 심었다"라고 적혀 있으며 그의 손자가 심은 감나무가 580년이 되었음을 볼 때에 매화는 수령이 61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고매의 옛등걸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여 고사하고 옆에 새로운 싹이 나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출처 : 경남일보(http://www.gnnews.co.kr)
사진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3호 산청 남사리 사양정사,
'사양정사(泗陽精舍)'란 '泗水(사수)'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란 뜻이다.
'사수'란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곡부에 있는 강 이름인데, 공자를 흠모하여 남사마을 뒤를 흐르는 개울을 '사수'로 불렀다.
1920년대에 건립된 정사이다.
한말의 유학자인 정제용(1865~1907)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정덕영(鄭德永)과 장손 정정화(鄭鍾和)가 만들었다.
건립 후 정덕영이 자식들을 교육하거나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면적은 약 1,400㎡이다.
본채와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앞면 7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며 왼쪽부터 누마루, 방 2개, 대청 2칸, 누마루가 배치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천장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다.
다락이나 벽장 등의 수납공간이 풍부하며 유리를 사용한 부분이 있어 근대한옥의 변화상을 볼 수 있다.
대문채는 7칸 규모이며 그 중 4칸이 광으로 이용되고 솟을대문이 달려 있다.
근대에 들어 한옥의 변화양식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2009년 1월 15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3호로 지정되었다.
△ 계재 정제용 초상화, <사진; http://blog.naver.com/il0202/220918908868>
정제용(鄭濟鎔, 1865~1907)의 본관은 영일, 호는 계재(溪齋).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후산(后山) 허유에게 학문을 익혔고, 허유의 사후에는 면우(俛宇) 곽종석에게 배웠다. 정제용은 일생을 선비로 살았으며, 옛 선현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성정이 올곧은 인물이었다.
경상 대학교 소장 계재 정제용 초상화(慶尙大學校 所藏 溪齋 鄭濟鎔 肖像畵)는 화가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50대
초반에 그린 초상으로 2013년 1월 3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32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건물의 중앙에 걸려 있는 커다란 '泗陽精舍(사양정사)' 편액은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 1871~1937)의 글씨다.
사양정사의 대청에 걸려 있는 편액들
韋堂書室(위당서실),
계재 정제용의 아들인 위당(韋堂) 정덕영(鄭德永, 1885~1956)을 기리는 당호이다.
尊道齋(존도재), 사양정사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尊道'란 '尊德性而道問學(존덕성이도문학,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하는 것),
중용 제27장'에서 따온 두 글자로 소전(素筌) 손재형의 아우인 긍전(肯筌) 손재복이 썼다
花山書寶(화산서보)
선명당 단풍나무
오천고가 현판
정씨고가 선명당
선명당
정씨매
정씨매는 남사예담촌 사매 중 가장 늧게 피는 매화로 알려져 있다
백목련
분홍동백
최씨 고가' 입구 골목과 대문,
최씨고가 월광고택
「산청 남사리 최씨 고가」는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가장 큰 집으로 안채와 외양간채,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1930년대 지은 집으로 남녀 사용공간에 독립성을 부여한 배치로 사대부가의 유교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현재는 살림을 하고 있는 안채는 관람할 수 없고 사랑채 영역만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안채는 앞면 6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뒤쪽 툇마루의 폭이 커서 각 방 뒤편으로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벽장을 두었다. 부엌과 건넌방 뒤에는 따로 방을 만들었다.
동향한 아래채는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앞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으로 꾸몄다.
남쪽에 개방된 대청이 있고 이어 온돌방을 두었다.
광채는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서쪽을 향하여 서 있다.
사랑채는 앞면 5칸·옆면 2칸 반 규모인데 앞뒤로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랑채 좌우에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문을 2곳에 만들었는데 동쪽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한 눈에 보이고, 서쪽 중문은 외양간채와 안채가 직접 눈에 띄지 않도록 안으로 담을 둘러 놓았다.
남녀 사용공간을 나누어 공간의 독립성을 부여한 뛰어난 배치로 사대부가의 유교적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집이다.
<출처; 문화재청>
남호정사
이씨 고가' 진입로
좁은 고샅에 'X'자형으로 서있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는 이 마을 최고의 사진촬영 포인트 중 한곳이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118호 '산청 남사리 이씨 고가' 안채 <사진; 문화재청>
【산청 남사리 이씨 고가】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1700년대 건축. 남북으로 긴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채와 곳간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집터의 서남방에 자리잡은 대문간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이고, 이 마당 북쪽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반의 크기를 가진 사랑채가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사랑채 남쪽에 자리잡은 외양간채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외양간과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사랑채 동쪽에는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의 중문간채가 자리잡고 있는데, 중문과 광이 있고 출입문은 안마당 쪽으로 터 놓았다.
중문을 들어서서 보이는 안채는 앞면 7칸·옆면 2칸 반 크기로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넌방 1칸·대청 2칸·안방 2칸을 두고 방과 대청 앞면에 1칸 폭의 툇마루를 두었는데 뒷면에는 작은 벽장을 달았다.
대청 뒷벽으로 개방된 툇마루를 단 것이 특색있다.
아래채는 앞면 4칸·옆면 1칸 반 크기로 동향하였는데, 남측단에 부엌과 방·대청 등을 배치하고 앞면에는 개방된 툇마루를 만들었다.
서향한 광채는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안쪽은 칸을 나누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막혀있는 특이한 배치를 보이고 있고, 일반 사대부 주택 안채에 있는 부엌 위치가 사당 방향과 반대인 점과 달리 이 집은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는 점이 특이하다.
<출처; 문화재청>
이씨고가 회화나무
부부나무가 보인다
남사예담촌 전망대
여기서 남사예담촌 전경을 조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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