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최새미의 식물이야기

강아지풀

초암 정만순 2018. 11. 8. 19:02



강아지풀



하늘이 높고 날씨는 선선한 가을날, 길을 걷다 보면 발목을 살살 간지럽히는 풀이 있지요. 바로 강아지풀〈사진〉이에요.

길가, 공원, 운동장같이 햇빛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가시털을 한껏 세운 강아지풀이 피어난답니다.

강아지풀은 한 해만 사는 풀로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만날 수 있어요.

그 때문에 얇은 줄기와 그 끝에 달린 이삭을 보면 누구나 강아지풀을 쉽게 알아볼 수 있지요.

강아지풀

바람이 불면 무리 지어 핀 강아지풀 이삭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살랑여요.
강아지풀은 한 개체씩 외롭게 자라지 않아요.
가는 줄기가 굽어 땅에 닿고, 또 마디에서 뿌리를 내려 옆에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며 점점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요즘엔 연둣빛에서 황톳빛으로 익어가는 강아지풀을 볼 수 있어요.
털북숭이 이삭이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면 시골 할머니 댁에 있는 순한 백구 새끼들이 꼬리 치며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강아지풀을 '개꼬리풀'이라는 귀여운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나 봐요.

강아지풀 이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너무 흔해서 쉽게 놓쳤던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어요.
7월부터 피기 시작한 강아지풀 이삭은 가을이 되면 서서히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데요,
이삭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시털 사이사이 동그란 씨앗이 빼곡히 차 있답니다.
노랗거나 까맣게 익은 부분을 손톱으로 쓰윽 문지르면 씨앗이 투두둑 떨어져 나와요.
깨보다 조금 크거나 비슷한 크기인데 먹을 수 있는 곡식이에요.
옛날 사람들은 흉년이 들었을 때 쌀이나 조와 강아지풀 씨앗을 섞어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답니다.

강아지풀 이삭을 만지면 까슬까슬한 느낌을 주는 가시털에는 과학이 숨어 있답니다.
 비 내린 후에 유난히 강아지풀 이삭에 물이 많이 맺혀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가느다란 가시털 표면에는 더 미세한 돌기가 있고, 이 돌기는 이삭 속에 물방울을 크게 맺히게 하지요.
때로는 가시털을 움직여 물방울을 흘려보내기도 한답니다.
이런 원리로 강아지풀 이삭은 물방울을 몇 주씩이나 보관할 수 있대요.

또 가시털은 강아지풀 이삭을 움직이게 해요.
강아지풀을 꺾어 평평한 바닥에 놓은 뒤 살살 누르면 이삭이 앞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강아지풀 이삭이 처진 정도, 가시털의 길이와 탄성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해 일어나는 현상이랍니다.

이런 강아지풀 이삭의 특징을 따라 하는 연구도 잇따르고 있어요.
물이 부족한 나라를 위해 물을 모으는 장치를 만들거나, 소화기나 혈관을 치료하는 아주 작은 로봇이 움직이게 하는 연구 등이 대표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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