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草房/운림의 식품과 의학

초암 정만순 2018. 5. 5. 07:53






연꽃에 대하여 말하다

 

연꽃 씨앗 껍질 곧 잘 여문 연밥의 껍질은 모든 씨앗 껍질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두께의 강철보다도 더 강도가 강하다고 한다. 천하장사라고 해도 망치나 집게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연꽃 씨앗을 깨트려서 깔 수는 없다. 옛날 임꺽정이 호도를 맨손으로 쥐어서 껍질을 깨트릴 수 있었다고 하지만 임꺽정이라고 해도 잘 여문 연꽃 씨앗을 맨손으로 깔 수는 없다.


 

연꽃 씨가 수만 년 동안 썩지 않는 까닭은

연꽃 씨는 진흙탕 속에 묻혀 있어도 수천 년이나 수만 년 동안 잘 썩지 않는다. 일본의 어느 학자는 백만 년 전에 진흙탕 속에 묻혀 있던 연꽃 씨앗을 꺼내어 심어서 꽃을 다시 피우게 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연꽃 씨앗 자체가 생명력이 긴 것이 아니라 껍질이 튼튼하고 씨앗이 물 속에서 썩지 않기 때문에 씨앗의 생명력이 오래 보존되는 것이다.

연꽃 씨에는 수은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수은이 온갖 썩어가는 것들로 가득한 진흙 뻘 속에서도 썩지 않게 하는 훌륭한 방부제 역할을 한다. 진흙탕 속에 있는 박테리아나 세균들이 번식하지 못하게 해서 부패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꽃 씨를 약으로 쓰거나 연자죽 같은 것을 만들어 먹지 말아야 한다.

 

석가모니는 사람이 깨우침을 얻는 것과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을 연꽃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였다.그 때문에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사람도 연꽃처럼 물 속에서 태어난다. 태아가 자라는 자궁 안에는 양수가 가득 차 있다. 태반 속에는 양수로 가득 차 있고 공기가 전혀 없다. 그 속에서 자라는 태아는 물고기와 같다. 마치 잠자리의 유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잠자리의 유충은 물 속에서 살다가 물 밖으로 나와서 잠자리가 된다. 잠자리의 생태가 사람과 비슷한 것이다. 잠자리 유충은 물 속에서만 산다. 성충이 되면 풀잎이나 나뭇가지를 잡고 기어 올라와서 껍질을 벗고 잠자리가 된다. 사람은 원래 수서 곤충처럼 물속에서 자라나서 태어난 뒤로 공기 중에서 숨을 쉰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다. 석가모니는 사람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연꽃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연꽃을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것에 비유한 사람은 석가모니가 처음이 아니다. 연꽃을 생명이 태어나는 것에 대한 비유한 것은 복희 신농 시절에서부터 있었던 것이다. 정자는 올챙이같은 수서생물과 같다. 마치 미꾸라지와 같다. 정자를 보면 그 생김새도 미꾸라지처럼 생겼다.

정자는 정액 속에서만 산다. 정액은 진흙뻘과 같다. 인생은 물에서 나서 육지로 올라오는 것이다. 인생의 시작은 물고기다. 그래서 절에서 소리를 낼 때 쓰는 목탁이나 목어는 물고기를 나타낸다.


 

물고기는 먹이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낚시에 걸린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왜 낚시에 걸리는가? 먹이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 있는 것을 다 빼내어 속을 비운 것이 목탁(木鐸)이고 목어(木魚). 목어는 잉어의 형상을 본 따서 만들었다. 사람은 맛있는 것을 보면 먹고 싶고 좋은 옷을 보면 입고 싶어하며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고 이쁜 여자를 보면 안고 싶어한다. 그러나 욕망을 버리면 아무 것에도 안 걸린다. 욕심 때문에 귀신이나 악마와 타협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는 사람보다 귀신이 훨씬 더 많아서 귀신이 사람 하나한테 1000마리가 따라 다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외국 귀신까지 수입해서 섬긴다. 귀신도 외제가 더 좋다고 한다. 불교나 천주교, 기독교는 다 외국 귀신을 섬기는 종교다. 요새는 알라 신을 섬기는 성전도 우리나라에 있고 남묘호랑계교 같은 일본 종교도 우리나라에 번성한다.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거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무 신한테나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이다. 이런 것을 보고 내가 일찍부터 탄식하기를 ! 나는 어찌하면 좋으냐? 나한테는 무릎을 꿇고 빌 만한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구나!’ 하였다. 그 뒤로 나는 어떤 것한테도 빌어 본 적이 없다.

 

肉眼이 아닌 心眼으로 사물을 보라

 

정액 속에 들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자가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이를 상징해서 <장자(莊子)>는 천서편에서 비유로 물고기를 말한 것이고 석가모니는 연꽃씨로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다. 그 밖에 다른 연꽃에 대한 어떤 설명이나 상징도 미치광이가 하는 헛소리일 뿐이다.

연못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연못 바닥 진흙 뻘 속에 연꽃 씨가 들어 있는데 연못 속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씨는 보이지 않는다. 정액도 그렇다. 정액 속에 사람의 씨가 들어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눈으로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다. 정액을 현미경으로 보지 않으면 사람의 씨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장자는 북명(北溟)에 큰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장자는 정자를 상징으로 불로장생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곤은 물고기 알 곤()이다. 장자는 그 물고기의 등 길이가 몇 천리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지구에서 제일 큰 물고기인 고래라고 해 봐야 길이가 수십 미터 밖에 안 되는데 그 물고기의 등 길이가 수천 리인지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것은 정자가 가진 잠재력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정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그 가능성은 엄청나게 큰 것이다.

무게가 1000톤이나 되는 고래의 정자도 현미경으로 봐야 보인다. 이를 두고 옛 사람들은 미묘(微妙)하다고 표현하였다. 적을 미()에 묘할 묘(). 엣날, 현미경이 없을 때에 도인들은 정자를 눈으로는 못 보지만 마음으로는 볼 수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가래침이나 코와 같으므로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의 씨앗을 눈으로는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숨겨질 오() 또는 속 오()에 묘할 묘()로 오묘(五妙)하다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안 보이는 것을 안계불급(眼界不及)이라고 한다. 틀림 없이 있기는 있지만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보고 아는 것을 심계득지(心界得志)라고 한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정액 속에 정자가 있는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고 심안(心眼) 곧 마음의 눈으로는 볼 수 있다.

옛날, 아들이 정력이 약해서 아이를 못 낳으면 그 부모들이 아들은 성한데 며느리가 약해서 그렇다고 하여 집에 있는 종놈을 불러서 제 며느리와 잠을 자게 해서 대를 이은 경우가 많았다. 다른 집안의 씨앗을 들이는 것보다는 제 집안에 있는 씨앗으로 대를 잇는 것이 낫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없어 양자를 얻으면 그 집 재산이 나중에 양자를 보낸 집의 것이 다 되어 버린다. 형이나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삼으면 양아버지가 죽고 나면 그 집안의 재산을 들고 본디 집으로 다 가버린다. 그래서 딸이 왕비가 되면 외척들의 세력이 득세하여 국가의 재산을 다 말아먹는 법이다.

현미경이 없었던 수천 년 전의 옛날 사람들도 정액 속에 사람의 씨가 들어 있는 것을 다 알았다. 복희씨와 신농씨가 의학의 시조인데 사람이 어떻게 해서 태어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의학을 알 수 있고 질병을 고칠 수 있었겠는가.


 

세포는 죽어서 새가 된다

모든 세포는 죽어서 새가 된다. 영혼의 세계는 새이고 생명의 세계는 물고기다. 절간에서 목어나 목탁을 만들어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데에는 목탁이나 목어의 속이 비어 있는 것처럼 속을 텅 비워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모든 세포는 죽어서 새가 되고 모든 생명은 물에서 태어난다.

모든 학문의 근본은 천문학이고 천문학은 숫자가 아니면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날짜나 나이, 시간 공간 같은 것을 숫자가 아니면 나타낼 수 없다. 천문학은 비교학이 아니면 나타낼 방법이 없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상대성 물리학 이론은 모든 것에 앞과 뒤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앞과 뒤는 서로가 있어야 존재한다. 앞이 있으면 반드시 뒤가 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상대적이다. 손등이 있으면 손바닥이 반드시 존재한다.

생명은 뭉뚱거려 놓고 보면 하나이고 펴 놓고 보면 일곱이다. 만물은 무엇이든지 상하전후좌우의 여섯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생명인 알맹이까지 합쳐서 7이 되는데 그 7을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1은 존재 않는다. 6은 생명이 없는 물질이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666은 악마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6은 죽음을 나타내는 글자이고 666은 죽음 속의 죽음이다. 666은 껍질 중의 껍질이다. 아무리 속을 들여다 보아도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비유를 들면 양파가 그렇다. 양파는 아무리 까도 껍질만 있고 알맹이가 나오지 않는다.

흔히 여자의 마음 속을 알 수 없으므로 여자의 마음은 양파와 같다고 한다. 자작나무도 껍질이 겹겹이 싸여 있으므로 벗기고 벗겨도 그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으므로 버선목인가 내 마음을 뒤집어 보일 수 있지거나 열 길 물 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식의 속담이 생겨났다.

 

남의 말로 지식을 얻지 말고 格物致知로 지식을 얻어라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그렇게 하여 얻은 지식을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심안으로 얻은 것은 비유가 아니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것보다 크다고 하거나 작다고 하여 서로 비교하여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태양의 에너지가 줄어들수록 그에 비례하여 사람의 키도 줄어들고 나무의 크기도 줄어들고 빌딩의 크기도 줄어들고 그것을 재는 자도 길이가 줄어들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꼭 같은 비례로 줄어든다. 그러나 사람이 개미만한 크기로 줄어들어도 줄어든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태양빛이 10퍼센트가 줄어들면 지구와 지구에 있는 모든 만물이 꼭 같이 10퍼센트가 줄어든다. 지구도 크기도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크기도 꼭 같은 비율로 줄어든다. 줄어들기 전에 160센티미터였다면 줄어든 뒤에도 160센티미터가 된다. 길이를 측정하는 자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 부피를 측정하는 되까지도 꼭 같은 비례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보면 대소의 구별도 없고 좌우의 구별도 없으며 위아래의 구별도 없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다. 육안(肉眼)이 아나라 심안(心眼)으로 보면 그렇다.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발 밑을 위라고 한다. 무엇이든지 크게 보고 육신의 눈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

물에서 나는 것은 쌀 말고는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쌀에도 수은이 많이 들어 있다. 옛말에 고량진(高粱珍)은 다질병(多疾病)이라고 했다. 곡식 중에서 수은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쌀이고 다른 하나는 율무다. <금양잡록(衿陽雜錄)>이라는 옛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1,200가지가 넘는 벼 종류가 있는데 벼 종류 중에서 수은이 적게 들어 있는 것이 밭벼 곧 산도(山稻)이다. 산도에 수은이 제일 적게 들어 있다. 산도가 논에서 나는 벼보다 맛은 월등하게 좋지만 수확량은 절반 밖에 되지 않으므로 많이 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수은이 들어 있는 것을 너무 적게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문둥병 같은 병에 잘 걸린다.

과학과 문학은 보는 눈이 서로 다르다. 문학은 과학이 아니다. 문학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더 가깝고 과학은 이성에 더 가깝다. 문학으로 보면 도도한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면 태평양의 바닷물이 불어나서 넘칠 것 같지만 중국의 장강(長江)이나 브라질의 아마존강 같은 큰 강물이 흘러들어가더라도 태평양은 조금도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옛날 문학자들은 강무리 바다로 가서 바닷물이 넘치면 지구 밖으로 넘쳐 나간다고 생각했다. 문학의 눈 곧 육안(肉眼)으로 보면 바닷물이 넘칠 것 같으나 법안(法眼)으로 보면 넘치지 않는 것이다.


 

연잎으로 밥을 싸는 이유

연꽃 잎에도 수은이 많이 들어 있다. 여름철에 산에 소풍을 가거나 멀리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연잎에 밥을 싸서 먹었다. 연잎으로 밥을 싸 두면 날씨가 더울 때에도 잘 변하지 않는다. 쌀을 연잎에 싸서 빕을 짓는 것이 아니라 미리 밥을 해 놓은 밥을 연잎으로 싸서 한 번 더 찌면 쌀 속으로 수은이 못 들어가고 표면에 코팅이 되어 훌륭한 방부제 역할을 한다.

연잎에는 수은을 비롯한 중금속이 많이 들어 있어서 차로 끓여 먹으면 중금속 중독이 된다. 수은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은 잘 썩지 않는다. 망개나무 잎 같은 것을 거름으로 만들려면 3년 동안 썩어야 거름이 된다. 청미래덩굴의 잎으로 떡을 싸서 먹는데 흔히 망개떡이라고 한다. 망개떡은 경상남도 함안 지방의 특산물이다. 망개나무 잎을 퇴비장에 넣으면 3년이 지나야 썩어서 거름이 된다. 망개나무 잎에도 수은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연잎에 들어 있는 수은이 밥알 속으로 스며들지 말고 표면에 코팅만 되게 해야 한다. 생쌀을 연잎으로 싸서 밥을 지으면 수은이 속에 침투하기 때문에 미리 밥을 지어서 연잎으로 싸기만 해야 한다. 밥을 지어 연잎으로 싼 다음 들통 같은 것에 넣어 시루에 얹어 증기로 가볍게 한 번 찌기만 해야 수은이 밥알에 스며들지 않는다.

요즘에는 절간에서 연잎이나 연뿌리, 연밥으로 음식이나 차 같은 것을 만들어 몸에 좋다고 선전하면서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짓은 악업을 쌓는 짓이다. 얼마 전에 어느 승려가 연잎차를 선물로 준 것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줄 곳이 없어서 그대로 갖고 있다. 백련은 잎이나 꽃, 씨앗이 홍련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백련차에 수은 성분이 더 많이 들어 있다.

 

五感을 다스려야 心眼이 열린다

 

코로 맡아 보아서 향기가 좋고 입으로 맛보아서 맛이 좋다고 해서 것을 취하지 말라. 감각으로 느껴기에 좋은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오감(五感)을 잘 다스려서 감각적인 즐거움에 빠지지 말아야 심안(心眼)이 열릴 수 있다. 아편에 독이 들어 있는 것을 모르고 그 향기만 보고 좋다고 해서 아편을 먹으면 아편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겉으로 보기에 제일 예쁜 여자는 술집 여자들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고급 술집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여자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한다. 남자가 술집 여자한테 빠지면 제 마누라한테는 짚신 한 짝도 안 주면서 기생한테는 꽃신을 사 준다. 사물을 심안으로 보지 못하고 육안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안계불급(眼界不及)이면 곧 눈으로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도달하지 않는다. 육안으로만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자를 소인(小人)이라고 한다. 그 반대로 마음의 눈을 퉁해서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대인(大人)이라고 한다.

연꽃씨가 더럽고 썩어가는 진흙탕에 떨어지면 1년도 안 가서 썩어서 없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썩어야 할 것을 썩지 않고 오래 가게 할 수 있는 물질은 수은 밖에 없다.

연꽃씨는 신장 기능을 좋게 하는 효능이 있다. 연밥으로 죽을 쑤어 먹거나 약을 지어 먹는다. 옛 기록에는 연자죽을 먹고 정력이 좋아졌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흔히 나온다. 연꽃은 씨앗이 튼튼하고 씨를 많이 맺는 식물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은 날마다 연꽃 씨를 먹고 수백 명이 넘는 첩을 거느렸다.


 

연꽃을 약이나 음식으로 쓰지 말라

 

연꽃과 관련된 이미지를 절에 장식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을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불상의 받침이 연화대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는 연화세계이며 불화나 절간의 문살의 조각, 처마나 천정의 단청 조각에도 연꽃 문양이 많이 있다.

그런데 절간에서 연을 음식이나 약으로 몸에 좋다고 하여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요즘에는 절간의 승려들이 모두 장사꾼이 되어 연잎, 연꽃, 연밥, 연뿌리 등로 아이스크림, 막국수, 식초, 과자, , , , 음료 등 별별 것들을 다 만들어서 좋은 음식이 되고 좋은 차가 되며 좋은 약이 된다고 선전하면서 팔고 있다.

다 빨리 죽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무지한 것에서 비롯된다. 중생들이 어리석고 무지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불교의 천수경에 십악참회(十惡懺悔)가 있는데 아홉 가지의 죄를 하니씩 열거한 다음 제일 마지막에 제일 큰 죄가 치암중죄(痴暗重罪)라고 했다. 모든 죄 중에서 어리석음이 가장 큰 죄다. 모든 죄가 어리석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연꽃의 향기가 좋은 것을 보고 그 향기를 사랑하여 콩이나 팥 같은 같이 넣고 밥을 지어 먹으면 살인약이 된다. 연잎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은 여름철에 소풍을 가거나 멀리 외출을 할 때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연잎에 밥을 싸서 먹는 것은 미친 짓이다.

연꽃 씨에는 수은 독이 있어서 음식으로나 약으로 오래 쓸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으나 연근은 지혈 작용이 있으므로 자궁출혈 같은 것에 쓴다. 연근은 태워서 재를 만들어야 지혈 작용이 있다. 연뿌리를 가능하면 반찬으로 먹지 말라. 옛사람들은 연못에 연꽃을 심어서 보기에 좋으라고 심는 것이 아니라 연뿌리를 얻기 위해 심었다. 연뿌리를 까맣게 태워서 종기나 종창을 치료하는 연고를 만들 때 재료로 썼다.

연꽃 씨에 들어 있는 수은 성분이 진흙탕에 있는 독과 나쁜 세균 같은 것을 다 빨아들인다. 연꽃을 비롯한 모든 수생식물은 모두 수은으로 독을 해독하고 병원균을 죽인다. 민물에는 세균이 바닷물보다 3백 배가 더 많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에서 잘 자라므로 수은이 제일 많이 들어 있다. 수은은 매우 센 항균 작용이 있다. 병원균을 막기 위해 수생식물들은 수은을 만든다. 진흙뻘이나 썩은 물 속에서 사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에 미혹되지 말라

많은 종교의 지도자들이 눈 먼 소경과 같다. 제가 소경이면 저 혼자 구렁텅이에 빠지면 그만일 텐데 종교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즘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짓은 소경이 눈뜬 사람을 인도하여 절벽으로 끌고 가서 모두 같이 죽는 것과 같다. 그들은 모두 악마의 후예들이다. 모든 사람을 끌고 가서 구렁텅이로 몰아 넣어야 악마의 세상이 번성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많은 종교가 사람을 미혹하여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갈취하여 거대한 성전을 짓는다. 정말로 가난한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성전을 허물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을 보고 무조건 좋다고 하여 이리저리 따라가지 말라.

사람은 기쁜 일이 있을 때 웃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그런데 흥겨운 노래나 음악 소리에 끌려서 웃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 짓은 마귀에 홀린 것이며 마도(魔道)에 빠진 것이다. 제 어미가 죽었어도 안 우는 년이 슬픈 노래를 듣고 우는 것을 두고 미친 짓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좋다고 웃는 것도 미친 짓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으라고 비싸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은 미친 짓이다. 비싼 옷을 입었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돈이 많이 들었으므로 오히려 돈이 아깝다고 울어야 마땅할 것이 아닌가.

나는 깊이 생각을 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일생 동안 노래 한 구절도 단 한 번도 따라서 불러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는 노래가 전혀 없다.

음식에 연뿌리를 넣으면 비린내가 없어진다. 비린내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연못에는 비린내 나는 물고기가 살아서 물에서 비린내가 많이 나는데 연을 심으면 비린내가 줄어든다. 연뿌리를 조금만 먹어서는 별로 피해가 없다.

연은 뱃속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연뿌리를 맷돌에 갈아서 먹고 나서 똥을 누어 씻어 보면 연뿌리가 조금도 소화되어 줄어들지도 않고 그대로 나온다.

연뿌리에 들어 있는 끈적거리는 성분이 통증을 완화한다. 위궤양이 있는 환자가 연뿌리를 먹으면 통증과 부종이 없어진다. 연뿌리에는 끈적거리는 성분이 조금 들어 있지만 변비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연뿌리는 석 달 열흘 동안을 삶아도 끈적거리는 성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뿌리는 뱃속에서 절대로 소화가 안 된다. 다만 끈적거리는 성분이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 연근에서 나오는 코 같이 끈적거리는 것을 상처에 바르면 것을 바르면 염증이나 상처가 잘 낫고 피가 나는 것이 멎는다.

연뿌리를 고기를 요리할 때 넣으면 고기가 물러지는데 고기를 연해지게 하는 것은 세포를 녹여 파괴되게 하는 성질이 있는 것이다. 고기를 연하게 하는 성질이 있는 것은 절대로 먹지 말라. 사람의 몸통이 모두 고기와 꼭 같은 단백질로 되어 있지 않은가.

김치를 담아서 김치가 허물어지면 김치가 제대로 삭은 것이 아니고 곪은 것이다. 김치가 잘 익으면 연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질겨져야 한다. 파는 뚝뚝 잘 부러지고 잘라지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파김치를 담가서 잘 익히면 오징어 다리만큼 질겨진다. 섬유질 성분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것이다. 김치는 아삭거려야 제대로 잘 익은 것이고 흐물거리면 잘못 발효되어 부패한 것이다.

 

연꽃은 깨달음의 상징일 뿐이다

고기를 연해지게 하는 것을 먹으면 온 몸의 근육이 약해져서 허물어지게 된다. 임신한 여자는유산을 하고 발목 관절이 약해지고 허리 통증이나 디스크 같은 것이 생긴다. 심장병 환자가 근육을 물러지게 하는 성질이 있는 것을 먹으면 심장 근육이 허물어져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근육이 더 약해지게 된다.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쉬지 않고 천 번을 해 보라고 하면 아무도 못 한다. 그러나 심장은 쉬지 않고 하루에 10만 번을 움직인다. 심장은 모든 근육 중에서 가장 질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장 근육은 1분에 72번을 움직이는데 이를 계산하면 하루에 10만 번쯤을 뛴다.

그런데 연육제를 먹으면 그토록 질긴 심장 근육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치즈나 마아가린 같은 것을 먹으면 심장 근육이 허물어져서 협심증이나 관상동맥 경화 같은 심장병이 오는 것이다. 여자는 자궁 근육이 심장근육보다 더 튼튼하다. 임신을 해서 열 달 동안 아기를 받치고 있으려면 가장 튼튼하고 질긴 근육이 필요하다.

연잎은 냄새를 없애는 작용이 있다. 그러나 냄새는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냄새를 분해하여 쪼개면 코로 밑아도 냄새를 못 느낀다. 공기 중에 있는 냄새 성분을 둘로 나누어 쪼개면 다른 것이 되는 것이지 냄새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질 더러운 놈 고칠 수 있는 것은 뗏장 밖에 없다는 옛말이 있다. 죽기 전에는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 속담이다.

탈취제 같은 것을 뿌려서 냄새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어디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남비에 물을 끓이면 물이 수증기로 변해서 공기 중으로 버리는 것과 같다. 물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분자화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을 뿐이다. 이처럼 냄새 자체의 성분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코로 냄새를 못 느끼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냄새의 분자를 쪼갤 수 있을 뿐이다.

석가모니가 연꽃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말한 것을 두고 뒷사람들이 연꽃을 좋아하여 여러 가지 풍습과 전설 음식, 차 같은 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것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따라 가거나 끄달리지 말라.

연뿌리는 염증을 삭이는 작용과 피를 멎게 하는 작용이 있어서 금창약(金瘡藥)으로는 효과가 좋다. 칼이나 창에 다쳐서 상처가 곪았을 때 연뿌리를 짓찧어 붙이면 염증도 잘 낫고 출혈도 멎는다.

연꽃 씨는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씨앗을 커피 빛깔이 날 때까지 볶아서 찻숟갈로 두 숟갈씩 하루 두세 번 먹는다. 연꽃 씨로 암을 고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수은 독 때문이다. 수은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독약인 동시에 가장 훌륭한 염증이나 종창 치료약이다. 연꽃 씨를 쪼개면 그 속에 화살촉 같이 생긴 녹색 심이 있는데 그 부분에 수은이 제일 많이 들어 있다. 그것을 반드시 빼고 나서 약으로 쓴다. 연꽃 종자에 수은이 많이 들어 있어서 어떤 병원균도 연꽃 씨를 썩게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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