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감
호랑이밥이 될 것인가? 곶감을 먹을 것인가?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여섯 살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겨울철에 사랑방에 온 손님이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옛날, 어느 고을에 3년 동안 심한 가뭄이 들었다. 온 산에 있는 풀들이 말라 죽어 풀벌레가 없어지고, 풀벌레를 먹고 사는 새도 죽어서 없어지고, 풀을 먹고 사는 노루 고라니 토끼 같은 초식동물들도 없어졌다.
산에 호랑이가 살았는데 온 산천을 다 뒤져도 먹잇감이 될 만한 쥐새끼 한 마리도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민가에 내려와서 먹잇감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닭이나 돼지 같은 가축들도 사람들이 다 잡아먹어서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사람들만이 남아 있는데 호랑이는 수십 일을 굶어서 힘이 빠져 있어서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덤볐다가는 오히려 사람들한테 맞아죽게 생겼다.
그래서 어린 아이라도 잡아 먹으려고 아이 우는 소리가 나는 집 문밖에 엎드려 틈을 엿보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면 아이를 물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려고 말했다.
“아가야 울지 마라. 자꾸 울면 호랑이가 물어간다.”
그래도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귀신이나 다른 여러 가지 무서운 것들이 와서 잡아간다고 해도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가야 곶감을 줄 테니 울지 마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울음을 뚝 그쳤다. 그 말을 문 밖에서 엿듣고 있던 호랑이는
“곶감이라는 놈이 나보다 열 배는 더 무서운 놈인 모양이다. 그 놈이 오면 나는 뼈도 못 추리겠구나.”
하고는 멀리 도망을 가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호랑이란 놈이 참으로 멍청하구나. 곶감이 무엇이 무섭다고 도망을 간단 말이냐?”
이 말은 질문이다. 맞장구를 쳐 달라고 함정을 파 놓고 걸려들기를 바라고 하는 질문인 것이다.
“너는 호랑이가 더 무서우냐? 곶감이 더 무서우냐?”
“그야 곶감이 더 무섭지요?”
그 말을 듣고 사랑방에 있는 손님이 물었다.
“곶감이 더 무섭다고? 별 희안한 대답을 다 듣겠네. 네가 호랑이를 아는가?”
“알지요. 고양이처럼 생겼는데 고양이보다 백 배는 더 큰 놈이라고 하던데요. 고양이도 무서운 데 호랑이는 백 배는 더 무섭겠지요.”
호랑이가 아니라 살쾡이만 해도 무서운 짐승이다. 개가 살쾡이한테 덤벼들면 앞발로 개의 얼굴을 때린다. 살쾡이의 앞발에 한 대 맞으면 개의 얼굴이 찢어져서 피가 줄줄 흐른다.
우리 집에 개가 세 마리 있었다. 어느 날 살쾡이 한 마리가 개한테 쫓기다가 나무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밑에서 개들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라고 있으니까 내려올 수가 없었다. 이틀 만에 내려왔는데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개를 앞발로 한 대 치니까 개는 얼굴이 찢어져서 도망을 가 버렸다. 한 마리가 도망가니까 다른 두 마리도 같이 도망을 쳤다.
“잘 아는구먼. 그래도 곶감이 더 무서운가?”
“네. 호랑이보다 곶감이 더 무섭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말해 보아라.”
“내가 곶감을 먹고 호랑이밥이 되지 않고 살아남으면 일생을 멍청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달콤한 곶감을 한 개만 먹어도 머리가 나빠져서 멍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장 호랑이밥이 되면 똑똑한 채로 죽는 것이므로 죽은 귀신도 똑똑할 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누구든지 귀신으로 364일을 살고 사람으로는 하루를 산다고 합니다. 하루가 더 중요하겠습니까? 364일이 더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사람이 하루에 1분만 깨어 있고 나머지 시간을 잠을 잔다고 하면 꿈속에서 사는 것이 진짜이지 깨어 있는 것은 별 것도 아닌 것입니다. 365일 중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사람이 하루 동안 잠을 안 자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틀 동안 잠을 안 자고 버티기는 어렵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죽으면 똑똑한 귀신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멍청한 사람이 죽으면 멍청한 귀신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호랑이밥이 되어 죽으면 죽어서 똑똑한 귀신이 되어 귀신들 중에서도 왕 노릇을 할 것이지만, 곶감을 먹고 살아남으면 멍청한 사람이 되어 살다가 죽어서도 멍청한 귀신이 되지 않겠습니까?”
호랑이보다 곶감이 더 무서운 참 뜻은?
도둑놈이 죽으면 도둑놈 귀신이 되고 성자가 죽으면 성자 귀신이 된다. 지금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면 귀신도 똑똑한 귀신이 될 것이다.
먼저 사람이 있고 난 뒤에 귀신이 있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그 귀신의 이름도 꼭 같은 이름의 귀신이 된다. 유인(有人) 이후에 유신(有神)이다. 사람이 본(本)이고 귀신은 말(末)이다. 본은 근본(根本)이고 말은 실뿌리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으로 따지면 귀신이 본이고 사람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364일을 사는 동안 하루쯤 고생한들 어떻겠는가?
호랑이와 곶감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재미거리 이야기가 아니다. 달콤한 것을 먹지 말라고 경계하는 깊은 뜻이 담긴 우화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비유가 들어 있는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악은 어디서 오는가
이 세상에 불효하고 불충하며 도둑질을 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도둑과 불효자와 불충한 사람이 넘쳐난다. 바람을 피우라고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데 바람둥이가 이 세상에 가득하다.
곶감을 먹으면 저능아가 된다. 곶감에 들어 있는 당분은 혈액에서 산소를 빼앗아 간다. 뇌에 산소 농도가 낮으면 저능아가 된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달콤한 것을 먹이면 바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뇌의 혈액에 산소가 10퍼센트에서 11퍼센트쯤 들어 있다. 8-9퍼센트쯤이면 저능아이고 10퍼센트는 보통 사람이며 11퍼센트 이상이면 천재다. 원숭이는 7퍼센트이고 말이나 소는 8퍼센트쯤이다. 개는 7퍼센트이고 범이나 매, 뱀은 3퍼센트쯤 밖에 안 된다.
사람의 뇌에서는 우리 몸에서 쓰는 산소의 30퍼센트를 쓴다. 뇌의 무게는 우리 몸에서 2퍼센트 밖에 안 되지만 산소를 제일 많이 쓰는 것이다. 뇌가 생각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산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포악한 육식동물들은 뇌에 산소 농도가 낮다. 뇌에 산소가 부족하면 성질이 폭악해진다. 산소가 모자랄수록 산성체질이 된다. 호랑이는 산성이 9이고 소는 1이다. 그래서 소는 60살에서 70살을 살고 호랑이는 8-9년을 산다. 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소는 환갑 가까이 살았다.
암은 체질이 극산성이 되었을 때 걸린다. 잘 썩는 병은 다 산성이다. 여자들은 왜 질염이 많이 걸리는가? 여자의 신체 중에서 질이 산성이 제일 강하기 때문이다.
만 가지 악(惡)은 어디서 오는가? 아무도 악한 짓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거짓과 사기와 아첨이 어디서 나오는가? 사서삼경(四書三經)에는 도덕군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 뿐인데 도덕군자는 없고 왜 악한 사람이 세상에 가득한가? 예수, 석가, 공자, 맹자 같은 분들이 모두 착한 일을 하라고 하고 도덕을 가르쳤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만 가지 악이 나오는가? 땅에서 솟아나는가? 하늘에서 내려오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1초만에 해야 한다. 악(惡)도 물건이다.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그 근원이 있을 것이다. 악은 어디서 오는가? 과연 그 근원이 어디인가?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오는가?
산꼭대기에서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오는가? 물이 없는 곳을 아무리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이 있는 곳을 파야 물이 나오는 것이다. 내 몸은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는가? 부모님이 있어서 내 몸이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달콤한 것에서 모든 악이 나온다
나는 ‘만악(萬惡)은 자출어치암(自出於痴暗)’이라고 대답했다. 곧 온갖 나쁜 것들은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가 악한 짓을 하는 법이다. 이리석음이 가장 큰 죄다. 무지는 큰 죄악이다. 도둑이 전과자가 되는 것은 잡혀서 감옥에 갈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중에 탄로날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암(痴暗) 곧 어리석음과 무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어리석음과 무지는 달콤한 것에서 나온다. 달콤한 것을 먹으면 머리가 멍청해지니까 무지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달콤한 것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 세상에는 충신과 열녀와 효자가 없어졌다.
요즘 세상에는 존속 폭행이 많다.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돈을 안 준다고 해서 때리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팔십 팔년 서울 올림픽 이후로 세 가족 중에 한 가족이 폭력 가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국민들이 알게 하는 것이 창피하다고 하여 국가에서 언론에 내보내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가 살인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한다.
아이한테 달콤한 것을 먹이면 효도를 못 가르친다. 단 것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가르칠 수가 없다. 뇌가 마비되어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고 동물적인 본능만 남는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는 샛서방을 열 명을 두고도 성이 차지 않는다.
달콤한 것을 먹으면 인성(人性)이 깨어져 버린다. 우리나라의 욕 중에서 ‘벼락 맞아 죽어라’고 하는 것보다 ‘엿 먹어라’고 하는 것이 더 큰 욕이다. 그것도 팔뚝을 내밀어 보이면서 홍두깨 만한 엿을 먹어라고 한다. 이 말은 완전히 망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마다 엿을 먹인다. 이것을 많이 먹고 바보 멍청이가 되어 빨리 죽어라는 저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