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대구 자락 올래 둘레길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6] ‘남원2리회관 앞∼모과나무 과수원∼지장암∼여리재∼현방마을 입구∼원점’ 코스

초암 정만순 2018. 1. 21. 16:58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6]

‘남원2리회관 앞∼모과나무 과수원∼지장암∼여리재∼현방마을 입구∼원점’ 코스




오래전 ‘봉창의 추억’을 만나고, 덩실덩실 춤추는 수많은 봉을 만나다

지장암에서 여리재로 가는 길.

지장암에서 여리재 가는 길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동명저수지(가운데 흰색 부분)가 보인다.

사진전에 출품해도 좋을 풍광 같다.

‘팔공산이라.’

대구시 조사보고서는 팔공산 총면적을 122㎢(3천700만여평)로 적고 있다. 속리산 국립공원 전체면적의 2배.
그러니, 팔공산 주봉인 비로봉 몇번 올라갔다 온 ‘얄팍한 안목’ 갖고 ‘팔공산이 이러니 저러니 운운하는 건’ 실로 무례한 처사인지도….

지난 달 22일 오전 10시30분. 열여섯번째 걷기의 출발점은 칠곡군 동명면 남원2리 마을회관 앞이었다.

조명래 팔공산연구소 운영위원, 서태숙 팔공산연구소 사무국장 겸 대구걷기연맹 이사, 신태문 대구걷기연맹 사무국장이 함께 했다. 올해 들어 가장 찬 바람이 지난 밤 팔공산을 습격한 탓인지 산하는 더욱 앙상했다. 지난 여름 기자는 남원리 들녘을 한 차례 걸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여름날 들녘의 그 푸릇함은 온데간데 없다. 초겨울로 접어든 남원리는 이미 가을걷이가 다 끝났으며, 주민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 팔공산 개산 이래 최악의 수해 입은 남원2리

칠곡군 동명면 남원2리 마을회관 앞에서 한 떼의 노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그네에게 반세기 전에 있었던 뼈아픈 수해사(水害史)를 푸념처럼 토로했다. 그랬다.

1954년 7월26일 팔공산권 폭우와 산사태로 가산산성 남문 성벽과 수구문이 붕괴됐다. 외성 안에 있던 남창마을이 아수라장이 된다. 산사태 등으로 24명이 죽고 마을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다행히 국군과 미군부대의 지원으로 현재 남원2리에 신남창마을을 반듯하게 세우게 된다.

세월은 수해를 말끔히 지웠다.

10여년 전만 해도 조붓했던 농로가 마을안길조성 붐으로 인해 왕복 2차로 버전으로 확장돼 있다.

남원리는 가산산성을 병풍처럼 등지고 앉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생을 그런 풍광을 옆에 두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별장형 전원주택을 많이 짓고 있다. 공사용 포클레인 움직이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온다.

남원2리에는 현재 모두 110여가구가 산재해 있다. 농사 짓는 이는 전체 주민의 3분의 2 정도. 도시로 출퇴근하는 이는 10여가구 정도.

그냥 길밖에 즐길 게 없어 무채색인 이번 코스를 만들기 위해 서태숙 국장은 여섯번이나 답사를 했다. 새로운 길이 보이면 직접 끝까지 들어가서 길이 끊어졌는지 안 끊어졌는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그렇게 정글 속에 길을 내듯 도보길을 편집해나간 것이다. 마을회관을 500m 지나 서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자 곧 흙길이 나왔다. 거기서 700m 쯤 걸으면 갈림길이 나온다. 아직 햇살이 풍부하지 않아 날씨가 조금 을씨년스럽다.

갈비가 산길에 수북하다. 흡사 갈비로 만든 양탄자를 밟고 지나가는 것 같다. 여름에 달렸던 잎의 90%는 지고 없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식물이 보인다. 청미래덩굴과 산딸기나무, 그리고 쑥이 파랗게 웃는다.

이지용 사진기자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진다. 촬영거리를 발견한 모양이다. 산비탈을 타고 내리는 석간수가 간밤에 조금씩 폭빙(瀑氷)처럼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생경한 모과나무 과수원

앙상한 숲길이다. 30년 이상 되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아까시나무가 하나 둘 뿌리를 허공으로 향하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전쟁 직후, 산림녹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심었다. 이제는 대체 수종을 심어야 될 정도로 늙었다.

예전엔 팔공산에도 화전민이 있었다. 조금 걷다보니 돌무더기 구역이 보인다. 돌이 놓인 구도를 보니 사람이 살았던 데다. 조붓한 낙엽길이 계속 된다. 산소를 지나자 삼거리가 나와 오른쪽으로 갔다. 조금 더 가니 여리재와 가산산성 진남루로 가는 길 삼거리다. 좌회전 해서 여리재 방향으로 갔다. 갑자기 모과나무 과수원이 흡사 잃어버린 왕국의 폐사지(廢寺址)처럼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일행을 맞이 했다. 과수원 주인이 겨울이 오기 전에 모과도 수확하고, 전지작업도 말끔하게 해 뒀다. 모과차도 좋지만 모과를 얇게 저며낸 뒤 이를 양지바른 곳에서 무말랭이처럼 말려 먹으면 겨울 간식으로 그만이다.

떨어진 갈참나무 잎이 바윗길 곳곳에 크레바스처럼 도사리고 있다. 특히 겨울 산행 때 갈참나무 잎을 조심해야 한다. 한 자 이상 쌓여 있을 경우 잘못 발을 디뎌 발목을 다칠 수 있다. 또한 잎 표면이 매끄러워 미끄러져 낙상(落傷)을 당할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된다.

숲을 내려와 여리재로 향하는 중 한 돌담 아래서 해묵은 봉창을 만난다. 돌담 아랫도리는 시멘트로 깁스를 했다. 옥에 티였다. 하지만 봉창은 전원주택촌으로 변하고 있는 남원리에서 옛추억을 상기시키는 등불 구실을 할 것 같다.

갑자기 멋진 광경이 일행의 발길을 묶는다. 십여개의 연봉이 눈앞에서 덩실덩실 탈춤을 추는 것 같다. 맨 좌측부터 응해산, 도덕산, 서산, 삼봉, 서산과 삼봉 사이에 동명의 송림지가 손수건 만하게 누워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뒤로 앞산과 비슬산, 가야산 연봉이 무려 12겹으로, 장수의 갑옷 비늘처럼 첩첩이 걸려있다. 색다른 구도였다. 사진전에 출품할 사진 몇 컷을 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모과나무숲에서 500m 정도 가면 지장암이 나온다. 지장암 입구에 꼭 고인돌 같은 정원석이 보인다. 두 기둥석 위로 가로지르는 평돌 위에 잔디를 심어뒀다.

◆ 여리재에서 맛보는 라면

지장암에서 1.4㎞를 걸으면 여리재가 나온다.

중간 쉼터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입산금지(11월1일~ 다음 해 5월15일) 구역이고 자칫 산불위험이 있어 여리재 임시 노변 주차장에서 먹기로 했다. 여리재에서 가산산성의 명물 가산바위까지는 2.9㎞. 가산바위는 가산산성의 성벽 사이에 솟아 있는 높이 약 10m의 매머드 너럭바위다. 팔공산 신8경 중 제5경으로 알려져 있다. 바위의 윗부분은 매우 평탄하며, 면적은 약 270㎡. 사방이 툭 틔어 주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바위에는 구멍이 있는데, 신라의 고승 도선이 지기를 다스리기 위해 쇠로 만든 소와 말을 넣고 묻었는데 조선시대 관찰사 이명웅이 성을 쌓으면서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겨울철 해는 노루 꼬리보다 짧았다.

정오를 조금 넘겼는데 벌써 해질녘 같았다. 해발 360고지에 누워있는 여리재 고갯마루는 조금전 산길보다 냉기가 더욱 흘렀다.

시장기가 몰려들었다. 일행은 노변 주차장에 비닐돗자리를 깔고 퍼질러 앉았다. 조 위원이 기름버너에 불을 붙여 코펠에 생수를 붓고 물을 끓였다. 물이 끓자 서 국장이 집에서 미리 장만해둔 어묵을 코펠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묵라면이다. 찬밥과 라면 국물은 환상적 궁합. 쌀쌀했지만 분위기는 더 따스했다. 고갯길을 오가는 운전자들이 부러운 듯 나그네를 훔쳐본다. 집에서 끓이면 과연 여리재 라면 맛을 이길 수 있을까.

여리재에서 팔공산순환로를 따라 1.3㎞ 걸으면 현방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여기는 남원1리. 남원2리처럼 곳곳이 전원주택이다. 난개발이다 싶다. 총 85가구란다.

가산바위 쪽으로 올라가니 길 왼쪽에 가족묘원이 보인다. 그런데 말라 죽은 고목 두 그루가 쿨하게 서 있다. 까마귀가 백로처럼 날아간다. 참새들이 바다 속 물고기처럼 먹이를 찾아다닌다.

서 국장이 다락논 동네에 외롭게 서 있는 느티나무를 보러가자고 권했다. 둘레가 782㎝였다. 전지가 잘 돼 있었다. 사방을 둘러봤다. 산뿐이다. 멀리 남원리 다랑논이 파노라마처럼 굴러가고 군불 뗀 연기가 연처럼 상공으로 부상하고 있다. 느티나무에서 1.1㎞ 떨어진 남원2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은 눈을 즐겁게 한다. 대구 인근에서 이렇게 푸짐한 다랑논 지대는 쉬 보기 힘들다. 농로를 구름처럼 헤집고 간다.

어슬렁 어슬렁~. 그래, 봄에는 아이들 몰고 남원1리 느티나무 옆 정자에서 도시락 까 먹고, 오수 조금 즐긴 뒤, 따뜻한 봄햇살 이고 달래·냉이·씀바귀나 캐봐야겠다.



◇ 사진촬영지 TIP

고목나무∼남원2리마을회관 가는 길에 벽돌 세 장 만한 도사견 석상을 발견해보시라. 두꺼비 석상처럼 보이는데 아직 주인한테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자꾸 웃음이 난다.

그리고 남해안에서 주로 자라지만 팔공산에서도 드물게 발견되는 호랑가시나무도 찾아 기념 촬영해보시라.

팔공산을 걷는 동안은 지각할 수 없었던 길이 사진으로 보니 참 여러 모양이다. 칠곡군 동명면 남원1리에서 남원2리로 향하는 길 위에서.

위로 휘어진 길…

지그재그 길…

‘ㄱ’자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