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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5] ‘동화사 종점 버스정류장∼너럭바위∼부인사’ 코스

초암 정만순 2018. 1. 21. 12:38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5]

‘동화사 종점 버스정류장∼너럭바위∼부인사’ 코스




벚나무 가로수, 너럭바위 계곡, 정글같은 숲…아쉽다 싶으면 새로운 정취

팔공산 수태지. 수태지에 비친 팔공산과 노랑꽃창포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숲은 초록의 덩어리, 헤쳐 나아가는 오솔길마다 땀은 맑게 개운하고 벚꽃 진자리 마다 검붉은 버찌들, 입이 검도록 깨어 문다.

계류의 차고 맑은 소리, 마른 목을 적시고 물위에 내려앉은 때죽나무의 흰 꽃들, 초롱처럼 골짜기를 밝힌다.

‘여기서 잠시 쉬어야 겠다’는 물리적 필요가 아니라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는’ 정경으로 이어진 길. 그것은 다시 걷기위해 멈추는 길이 아니라 멈추기 위해 걷는 길이었다.

◆ 동화사 종점 버스정류장~수태지(1.6㎞)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 길’의 다섯 번째 코스는 동화사 종점 버스정류장에서 시작된다. 벚나무 가로수길, 정글 같은 숲길, 너럭바위가 있는 계곡 길, 그리고 천년고찰 부인사를 거쳐 다시 기점으로 돌아오는 순환코스로 총 6.5㎞ 정도의 길지 않은 길이다.

지난달 13일 아침 9시, 걷기 특별취재팀의 이지용 팀장, 안재홍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오병현 팔공산녹색여가문화센터장, 박효진 팔공산녹색여가문화센터 간사와 함께한 출발, 하늘은 약간 흐렸고 바람은 없었다.

“걷기 좋은 날이네.”

대기는 더웠지만 왠지 선선함이 느껴지는 묘한 날씨라고, 모두가 동감한다.

수태지까지의 팔공산순환도로 가로수 길은 벚나무가 장해서 봄마다 벚꽃축제가 열리는 길이다. 도로에는 사람도 차도 드물었다. 이 길의 절정은 역시 봄과 가을인가, 그러나! 붉고 붉어서 검은 버찌들이, 푸른 잎사귀 속속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송글하게 맺힌 버찌들이 빛나고 있다. 신 것, 단 것, 익고 익어서 길에 퍼질러 앉은 것들의 아우성이다. 한 아주머니가 버찌를 따고 계신다. “먹을라고 따지, 술 담그고.” 벚꽃길이 영화라면 버찌의 길은 잘 만들어진 한편의 TV문학관이다. 왠지 ‘잘 살고 싶다’는 심장 짠한 생각이 드는….

◆수태지 입구~너럭바위(0.8㎞)

숲을 담은 수태지 가에는 노란 나리꽃이 줄 지어 방긋하게 피어있다. 수태지의 왼쪽, 문을 열 듯 숲을 젖히면 길이 드러난다. 이런 곳에 길이 있다니.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좁게 숨은 길은 사방으로 뻗은 가지들을 걸음마다 헤치며 나아가야 하는 정글이다. 길을 따라 너비가 20㎝쯤 되는 시멘트 수로가 나뭇잎에 뒤덮여 문득문득 선을 드러낸다. “옛날에 나무하러 다니던 길이라 합니다.” 나무꾼들이 사라지면서 길은 자연스럽게 숨겨졌을 것이다. 때때로 젖혀진 수풀 뒤엔 그 나이를 가늠치 못할 장대한 나무들이 덥석 드러났고 그때마다 우리는 감탄으로 멈추곤 했다.

오솔길은 계곡으로 이어진다. 평평하고 큼직큼직한 바위들이어서 걸음이 탄탄하다. 물은 초록빛이고 청동의 빛이고 흰빛으로 고여 있거나 천천히 혹은 빠르게 흐른다. 물가는 고개 숙인 때죽나무 짙은 그늘에 잠겨있다. 유정하다, 그 흰 꽃들. 수많은 초롱처럼 아래로 향한 빛이 물에 잠겨 있다. 물은 꽃을 바라보고, 꽃은 물을 바라보고, 물은 꽃을 담고, 꽃은 물에 내려앉는다. “꽃이 지면, 별이 되는 거야.” 40대의 남자가 이런 말을 해도 조금도 닭살스럽지 않은 정취란 흔한 것이 아니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넉넉한 너럭바위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수박 깨먹고 놀던 곳”이란다. “목욕하기 좋은 곳”이라는 부연에 의의가 없는 신선적인 골짜기다. 나무꾼은 이곳에서 선녀의 옷을 훔쳤을 것이 분명하다.

◆너럭바위~부인사 등산로 교차점~벼락나무(1.2㎞)

너럭바위가 있는 계곡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산길에서 계곡으로, 계곡에서 산길로 스며드는 길은 확연하지 않다. 이정표가 되는 리본을 잘 찾아야 한다. 약간 비탈지고 우거진 숲길을 잠시 걸으면 하늘이 듬성듬성 열리는 작은 솔숲을 만난다. 소나기 같은 청음 속을 가로지르면서 자연스럽게 정글의 끝을 직감하게 된다. 그리고 길은 부인사 등산로와 만난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서봉으로 향하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부인사다.

부인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등산로 방향을 표시한 이말재 말뚝이 서있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열린다. 그 한가운데에 고목 한 그루가 도드라지게 서 있다. 벼락을 맞았다는 나무다. 날카롭고 불규칙하게 깨어진 상부에는 검게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전체는 속을 긁어낸 호박처럼 속이 텅 빈 커다란 각질이다. 그리고, 살아 있다. 굵고 둥글게 가지를 뻗어 파릇한 이파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벼락나무~부인사(0.9㎞)

부인사로 내려가는 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네 댓 명이 나란히 서서 폼 잡은 사진 한 장 남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너비의 흙길이다. 흙길이 시멘트길이 되면서 부인사의 옆구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부인사의 연혁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선덕여왕 숭모제를 지내는 것에서 그 내력을 짐작할 만하고 특히 팔만대장경보다 200년 앞섰다는 초조대장경을 보관했던 호국 사찰로 유명하다. 길은 부인사의 가장자리를 휘돌아 입구와 만난다.

취재팀은 부인사 석축위에서 내려다보는 산딸기를 따 먹으며 멈추고, 주변으로 지천인 야생화들을 논하며 멈추고, 비현실적으로 장한 부인사 왕벚나무 아래에서 오래 멈춘다. 키 큰 석등과 치장 없이 단아한 석탑을 근경에 둔 거대한 왕벚나무 아래에서 오래오래 멈춘다. 이곳은 태어나 지금까지 가장 많은 버찌를 먹은 행복한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부인사~동화사 종점 버스정류장(2㎞)

빛이 강해졌다. 부인사에서 순환도로로 내려서는 길가는 온통 포도밭이다. 그리고 이내 가로수길이다. 선명한 적단풍이 스타카토로 서 있고 길은 완만한 내리막을 이루면서 느리게 이어진다. 간혹 차들이 지나갔고, 집들이 보였다. 길은 음률을 가지면서 휘어지고 잦아들다 가도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종점, 빛이 강한 정오였다.

☞ 걷기구간= 동화사 종점 버스정류장(급행 1번 종점) -1.6km- 수태지 입구 -0.8km- 너럭바위 -0.8km- 부인사 등산로 교차점 -0.4km- 벼락나무 -0.9km- 부인사 -2km- 동화사 종점 버스정류장(순환코스). 10월~5월은 입산금지 구역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팔공산 수태지에서 너럭바위로 올라가다가 보면 계곡물에 떨어진 때죽나무 꽃을 만날 수 있고(위쪽), 부인사로 가다보면 줄기가 텅 빈 벼락 맞은 나무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