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1]
‘풀방들길 입구∼송정~당정~덕곡마을’ 코스 (12.6㎞)
석불입상·석축·치성석…속살 영험한 동네가 잇따라 이어지다
당정마을 입구에는 비보(裨補)를 위해 세운 듯한 석축이 있다. |
자연공원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 길을 걷는다.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번에는 칠곡군 가산산성~기성로 주변 길을 돌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운데다 도로변이어서 무척 고생했다. 하지만 가이드인 서태숙 팔공산연구소 사무국장의 “지난 번보다는 훨씬 코스가 푸릇하다”는 말에 위안을 받으며 등산화 끈을 다시 꽉 죄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번에는 칠곡군 가산산성~기성로 주변 길을 돌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운데다 도로변이어서 무척 고생했다. 하지만 가이드인 서태숙 팔공산연구소 사무국장의 “지난 번보다는 훨씬 코스가 푸릇하다”는 말에 위안을 받으며 등산화 끈을 다시 꽉 죄었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2호인 송정동 석불입상. |
◆ 풀방들길 걷다보면 발목에 녹색바람 분다
오전 9시15분 출발.
파계로 화성그린빌 맞은편 심천랜드로 가는 길 삼거리 모퉁이. 거기에다 차를 세워놓은 뒤 트레킹을 시작했다.
송정교를 지나 상리마을로 가는 ‘풀방들길’로 접어들었다. 대륙붕에서 벗어나 더 깊은 바다 속으로 잠행하는 것 같다. 올해 생겨난 송정가마솥밥집 우측 좁다란 산길로 빠진다. 식당에서 곧바로 위로 직진하면 옛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풀방들길’을 놓치게 된다. 출발점에서 900여m 지난 지점에서 옆으로 빠지면 된다.
지천으로 깔려있는 한삼덩굴에 시선이 간다. ‘숲속의 배스’로 불리는 저 공격적이고 포악한 외래종 식물이 지금 전국 풀섶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한삼덩굴과 사촌쯤으로 보이는 칡은 그래도 예전에 사용처가 많았다. 칡의 잎은 소 여물로 사용됐고 그 줄기로는 노끈을 만들었으며, 줄기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거친 갈포를 해입기도 했다.
오전 9시15분 출발.
파계로 화성그린빌 맞은편 심천랜드로 가는 길 삼거리 모퉁이. 거기에다 차를 세워놓은 뒤 트레킹을 시작했다.
송정교를 지나 상리마을로 가는 ‘풀방들길’로 접어들었다. 대륙붕에서 벗어나 더 깊은 바다 속으로 잠행하는 것 같다. 올해 생겨난 송정가마솥밥집 우측 좁다란 산길로 빠진다. 식당에서 곧바로 위로 직진하면 옛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풀방들길’을 놓치게 된다. 출발점에서 900여m 지난 지점에서 옆으로 빠지면 된다.
지천으로 깔려있는 한삼덩굴에 시선이 간다. ‘숲속의 배스’로 불리는 저 공격적이고 포악한 외래종 식물이 지금 전국 풀섶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한삼덩굴과 사촌쯤으로 보이는 칡은 그래도 예전에 사용처가 많았다. 칡의 잎은 소 여물로 사용됐고 그 줄기로는 노끈을 만들었으며, 줄기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거친 갈포를 해입기도 했다.
대구시 동구 공산동 송정마을에서 당정마을 가는 길에 핀 호박꽃. |
‘풀방들길’. 참 예쁜 이름이다. 고개를 들어 사위를 둘러본다. 고압전선 등 시야를 망쳐놓는 훼방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길이 아주 복고풍이다. 길 중간에 쇠비름 등 온갖 잡초가 수북하게 올라와 있어 걷기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풀 한 포기 틈입하는 걸 거부하는 테니스장 바닥 같은 요즘의 삭막한 조깅·산책로와는 차원이 다르다. 길 곳곳에 온갖 풀들이 ‘녹음방초~ 녹음방초~’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지쳐있던 발목에 녹색 바람이 인다. 풀길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그 들길을 800m쯤 걸으니 팔공산순환도로가 나타난다.
◆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송정동 석불입상
송정마을은 최근에 각광을 받기 시작한 전원주택촌이다. 송정마을은 당정마을과 이웃해 있으며, 해발 300~350m 풍광수려한 산촌이다.
송정마을로 들어서니 어김없이 당산나무가 일행을 기도하게 만든다. 인간보다 오래사는 당산나무니깐 머리 숙이는게 당연지사. 조금 걸으니 노부부가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수확하고 있다. 이지용 기자가 잘 익었는가 궁금해 하며 가까이 가자 나눠 먹으라며 수북이 담아준다. 그야말로 ‘송정동표(標) 인심’이 물씬 풍겨났다.
◆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송정동 석불입상
송정마을은 최근에 각광을 받기 시작한 전원주택촌이다. 송정마을은 당정마을과 이웃해 있으며, 해발 300~350m 풍광수려한 산촌이다.
송정마을로 들어서니 어김없이 당산나무가 일행을 기도하게 만든다. 인간보다 오래사는 당산나무니깐 머리 숙이는게 당연지사. 조금 걸으니 노부부가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수확하고 있다. 이지용 기자가 잘 익었는가 궁금해 하며 가까이 가자 나눠 먹으라며 수북이 담아준다. 그야말로 ‘송정동표(標) 인심’이 물씬 풍겨났다.
당정마을을 지나 가좌마을로 넘어가는 길. |
아는 사람만 알고 찾아오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 송정동 한 켠에 숨어 있다.
바로 대구시 문화재인 송정동 석불입상. 팔공산 순환도로의 파계사 삼거리에서 칠곡쪽으로 500m가량 가면 송정동 부락이 있으며, 여기서 북으로 골짜기를 따라 300m쯤 올라가면 석불입상이 있다. 이 불상은 화강암을 조각한 것으로, 비록 마멸이 심해 그 윤곽이 뚜렷하지 못하나 원만한 조각미를 지니고 있다. 광배 또한 원래 모습을 잃어 반파된 형태로 남아 있다.
풍만하면서도 균형잡힌 조각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단다. 불상의 총 높이는 245㎝. 이마에 박힌 큐빅이 석불과 안 어울릴 정도로 모던해 보이는 게 옥에 티. 한때는 쑥대밭처럼 방치됐는데 동구청이 야외법당처럼 조성해뒀다.
옹달샘으로 가서 다람쥐처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중구 제일중 교정에 있는 화기(火氣)를 막는 거북바위 같은 바위가 있었다. 승천하려던 신령한 거북이 하늘과의 약속을 어겨 돌로 변해버렸다는 식의 구전설화 한 토막을 얹어도 좋을 정경이다.
바로 대구시 문화재인 송정동 석불입상. 팔공산 순환도로의 파계사 삼거리에서 칠곡쪽으로 500m가량 가면 송정동 부락이 있으며, 여기서 북으로 골짜기를 따라 300m쯤 올라가면 석불입상이 있다. 이 불상은 화강암을 조각한 것으로, 비록 마멸이 심해 그 윤곽이 뚜렷하지 못하나 원만한 조각미를 지니고 있다. 광배 또한 원래 모습을 잃어 반파된 형태로 남아 있다.
풍만하면서도 균형잡힌 조각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단다. 불상의 총 높이는 245㎝. 이마에 박힌 큐빅이 석불과 안 어울릴 정도로 모던해 보이는 게 옥에 티. 한때는 쑥대밭처럼 방치됐는데 동구청이 야외법당처럼 조성해뒀다.
옹달샘으로 가서 다람쥐처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중구 제일중 교정에 있는 화기(火氣)를 막는 거북바위 같은 바위가 있었다. 승천하려던 신령한 거북이 하늘과의 약속을 어겨 돌로 변해버렸다는 식의 구전설화 한 토막을 얹어도 좋을 정경이다.
대구시 동구 덕곡 경로당 앞에 있는 서낭당. 아직도 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내고 있다. |
최근 지어진 듯한 전원주택들.
수백년 한 자리를 지켰던 이 마을 소나무들이 이 주택을 보면서 조금 자세를 낮췄으면 좋겠다면서 헛기침을 한다. 송정마을 뒷산에는 낙락장송 몇 그루가 모여있다. 거기 서면 멀리 경산·하양의 품새가 팔공산 연봉과 섞여 아련하게 전해진다.
산길을 조금 걷는데 갑자기 비명섞인 풍광이 나타났다. 일행은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나름 폼을 잡은 한 전원주택 담장에 예전 70년대식 깨진 병 조각이 방범용으로 섬뜩하게 박혀있었다. 기자는 이렇게 좋은 산길에 유리조각을 박아놓은 집주인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주인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더불어 숲길’이라면 저 비수 같은 담장을 개나리 울타리 같은 것으로 교체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당정마을의 당(棠)자는 ‘팥배나무’란 뜻을 갖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집 당(堂)자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마을 이름만큼이나 초입의 석축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석축은 마을 중심부를 흐르는 계곡을 가로질러 자그마한 성처럼 조성됐으며, 하단에 수구를 암문처럼 뚫어놨다. 여태껏 다녀봤지만 마을 입구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이런 구조물은 처음 본다.
이유가 있었다. 예전 여인들은 이 마을에서 진득하게 오래 붙어 살지 못했다. 그래서 자손이 귀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안온하게 잘 살 수 있게 음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풍수지리학적 비보(裨補) 수단으로 축대를 쌓은 것이다. 석축을 지나자 당정마을 마을회관 앞에 ‘당정학계’란 비석이 서 있다. 이 마을은 17세기 중엽 경주이씨, 여산송씨, 달성서씨, 진주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일궜는데, 이 비는 마을의 백년대계를 위한 장학금을 조성한 걸 기념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수백년 한 자리를 지켰던 이 마을 소나무들이 이 주택을 보면서 조금 자세를 낮췄으면 좋겠다면서 헛기침을 한다. 송정마을 뒷산에는 낙락장송 몇 그루가 모여있다. 거기 서면 멀리 경산·하양의 품새가 팔공산 연봉과 섞여 아련하게 전해진다.
산길을 조금 걷는데 갑자기 비명섞인 풍광이 나타났다. 일행은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나름 폼을 잡은 한 전원주택 담장에 예전 70년대식 깨진 병 조각이 방범용으로 섬뜩하게 박혀있었다. 기자는 이렇게 좋은 산길에 유리조각을 박아놓은 집주인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주인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더불어 숲길’이라면 저 비수 같은 담장을 개나리 울타리 같은 것으로 교체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당정마을의 당(棠)자는 ‘팥배나무’란 뜻을 갖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집 당(堂)자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마을 이름만큼이나 초입의 석축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석축은 마을 중심부를 흐르는 계곡을 가로질러 자그마한 성처럼 조성됐으며, 하단에 수구를 암문처럼 뚫어놨다. 여태껏 다녀봤지만 마을 입구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이런 구조물은 처음 본다.
이유가 있었다. 예전 여인들은 이 마을에서 진득하게 오래 붙어 살지 못했다. 그래서 자손이 귀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안온하게 잘 살 수 있게 음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풍수지리학적 비보(裨補) 수단으로 축대를 쌓은 것이다. 석축을 지나자 당정마을 마을회관 앞에 ‘당정학계’란 비석이 서 있다. 이 마을은 17세기 중엽 경주이씨, 여산송씨, 달성서씨, 진주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일궜는데, 이 비는 마을의 백년대계를 위한 장학금을 조성한 걸 기념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당정마을 입구에 있는 당정마을 학계 유적비. |
◆ 옛길은 개발 때문에 사라지고 허리 잘려
서 국장은 이번 루트를 개척하면서 여러번 낭패를 봤다고 했다. 더 좋은 풍광이 나올 것 같아 가보면 전원주택촌 등으로 인해 옛길이 끊겨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되돌아왔단다. 서 국장은 “차라리 초행 등산은 지도만 있으면 ‘식은 죽 먹기’겠지만 트레킹을 겸한 답사길 뚫기는 지도만 갖고도 안되고 일일이 모든 길을 가보면서 새롭게 엮어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면서 고충을 토로한다.
당정마을을 벗어나 가좌마을로 접어드는 접경지역에서 팔공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 마을 옛길이 십자로처럼 만난다. ‘졸졸졸’ 흘러가는 1.2㎞의 더없이 호젓한 오솔길, 해묵은 갈비 등이 수북히 쌓여 여간 푹신한 게 아니다. 견성사를 지난 직후 땅에 떨어진 밤을 주웠는데 밤이 아니라 말로만 듣던 마로니에 열매였다. 가족에게 보여주기 위해 배낭안에 넣었다. 새롭게 조성된 팔공 블루힐즈 전원마을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걷는다. 조금 더 걸어 오른쪽으로 빠져 기성로로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철책이 가로막았다. 사유지라서 돌아서야만 했다.
서 국장은 이번 루트를 개척하면서 여러번 낭패를 봤다고 했다. 더 좋은 풍광이 나올 것 같아 가보면 전원주택촌 등으로 인해 옛길이 끊겨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되돌아왔단다. 서 국장은 “차라리 초행 등산은 지도만 있으면 ‘식은 죽 먹기’겠지만 트레킹을 겸한 답사길 뚫기는 지도만 갖고도 안되고 일일이 모든 길을 가보면서 새롭게 엮어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면서 고충을 토로한다.
당정마을을 벗어나 가좌마을로 접어드는 접경지역에서 팔공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 마을 옛길이 십자로처럼 만난다. ‘졸졸졸’ 흘러가는 1.2㎞의 더없이 호젓한 오솔길, 해묵은 갈비 등이 수북히 쌓여 여간 푹신한 게 아니다. 견성사를 지난 직후 땅에 떨어진 밤을 주웠는데 밤이 아니라 말로만 듣던 마로니에 열매였다. 가족에게 보여주기 위해 배낭안에 넣었다. 새롭게 조성된 팔공 블루힐즈 전원마을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걷는다. 조금 더 걸어 오른쪽으로 빠져 기성로로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철책이 가로막았다. 사유지라서 돌아서야만 했다.
이번 루트 중에서 가장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덕곡마을로 향한다. 점심을 먹은 뒤 대구와 칠곡를 가르는 대왕재 옆 연꽃마을과 달구벌고교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조금전 송정~당정 산길에서 봤던 맞은편 산세보다 길 건너 덕곡마을 가는 길에서 바라보이는 팔공산 산세는 지금껏 본 팔공산 산세 중 최고로 압권이었다.
덕곡마을 서낭당에 도착했다. 팔공산 연봉이 180도 시야로 들어온다. 대왕재를 지날 때 한 농장에서 풍겨나온 가축 분뇨 냄새로 인한 후유증을 말끔히 씻어준다. 이렇게 속살이 영험한 동네가 팔공산 언저리에 숨어있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덕곡마을 서낭당은 기운생동했다. 사찰 대웅전 협시불 같은 세 덩어리의 ‘치성석(致誠石)’이 정령처럼 서 있다. 그 목에 한지가 목걸이처럼 걸려있다. 60년대 어느 오지마을에 온 것 같았다.
덕곡마을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 시절 추억의 우물터 앞에서 기자의 얼굴도 비춰봤다. 마을 뒷산은 무척 험준하지만 덕곡마을로 내려와선 흡사 개마고원처럼 평평해졌다. 오래된 족보 같은 마을을 벗어났다. 군데군데 식당간판이 조금은 ‘흉물스럽게’ 일행에게 손을 흔든다. 부디 저 간판들이 손거울만해지길…. 출발점에 도착하니 오후 2시24분.
덕곡마을 서낭당에 도착했다. 팔공산 연봉이 180도 시야로 들어온다. 대왕재를 지날 때 한 농장에서 풍겨나온 가축 분뇨 냄새로 인한 후유증을 말끔히 씻어준다. 이렇게 속살이 영험한 동네가 팔공산 언저리에 숨어있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덕곡마을 서낭당은 기운생동했다. 사찰 대웅전 협시불 같은 세 덩어리의 ‘치성석(致誠石)’이 정령처럼 서 있다. 그 목에 한지가 목걸이처럼 걸려있다. 60년대 어느 오지마을에 온 것 같았다.
덕곡마을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 시절 추억의 우물터 앞에서 기자의 얼굴도 비춰봤다. 마을 뒷산은 무척 험준하지만 덕곡마을로 내려와선 흡사 개마고원처럼 평평해졌다. 오래된 족보 같은 마을을 벗어났다. 군데군데 식당간판이 조금은 ‘흉물스럽게’ 일행에게 손을 흔든다. 부디 저 간판들이 손거울만해지길…. 출발점에 도착하니 오후 2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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