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대구 자락 올래 둘레길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4] ‘동화사 안내소(매표소)~부도암∼염불암~내원암∼양진암~원점’코스

초암 정만순 2018. 1. 21. 17:11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4]

‘동화사 안내소(매표소)~부도암∼염불암~내원암∼양진암~원점’코스

바람 불면 잎잎이 붉게 물들고…물든 이파리에선 다시 붉은 바람이…



동화사 염불암에서 양진암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팔공산 병풍바위와 조암. 단풍이 절정이다.


‘단풍(丹楓)은 단풍(丹風)이다.’

바람이 불면 잎잎이 붉게 물들고, 물든 이파리에선 다시 붉은 바람이 인다.

설악산에서 불기 시작한 예쁘고 붉은 바람이 어느새 팔공산까지 덮쳤다. 멀리서 바라다본 산은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 천지다.

산 속을 들여다보면 갈래갈래 흩어진 흙길에도 붉은 바람이 분다. 사뿐히 밞으면 진한 숲향기가 온 몸을 붉게 감싼다. 오감(五感)이 열리고 영감(靈感)을 울린다.

지상낙원이 어디 따로 있을까. 지나가는 여심(女心)은 어쩔 줄 몰라한다. 겨울, 봄, 여름이 그러했듯 팔공산은 가을도 사람을 사로잡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

◆동화사 안내소∼염불암(3.4㎞)

동화사 내원암으로 내려가는 걷기팀.
지난달 28일 찾은 팔공산은 단풍이 절정이었다. 산 곳곳 단풍은 가을바람에 출렁거렸다. 단풍이 뿜어내는 매력은 묘하다. 걷기 특별취재팀원들은 이날 단풍에 매료됐다. 이지용 걷기특별취재팀장(영남일보 사진기자)과 진선아, 박효진 대구녹색소비자연대 간사, 이중웅씨 등 모두 5명이 호흡을 맞췄다. 이번 걷기는 전체 길이가 7.9㎞정도여서 부담이 없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숲길 트레킹은 금상첨화다. 여기에 팔공산 주요 능선의 아름다운 자태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할까.

오전 9시50분에 출발했다. 동화사 안내소에서 발걸음을 뗀지 얼마 되지 않아 ‘부도암’이 모습을 나타낸다. ‘부도암’은 동화사 6대 암자 중 한곳이다. 양진암, 내원암과 함께 ‘선원’을 갖추고 있다. ‘선원’은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곳이다. 등산객들이 합장을 올리고 부도암으로 들어간다. 불신도가 아니면 이해 못할 광경이다. 그러나 이는 부처에 대한 예의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큰 바위 위로 담을 세울수가 있을까요?”

동화사 부도암과 염불암 사이의 단풍.
사회학을 전공한 진선아 간사가 ‘부도암’ 입구 담벽을 뚫고 자리한 자연석 바위를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짓는다. 정말 신비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곧이어 진 간사가 ‘부도암’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보탰다.

“본래 여기는 개울 건너 서편 기슭의 부도군 근처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1960년대 이곳으로 이전했어요. 스님 사리의 무덤이 바로 ‘부도암’이랍니다.”

진 간사의 말처럼 팔공산 동화사에는 부도암 뿐만 아니라 염불암, 양진암, 내원암, 비로암, 약수암 등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 불교 문화의 산물이다. 공통점은 좌·우로 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또 암자 뒤편 경치가 일품이다. 팔공산 각 봉우리가 암자들을 위에서 감싸고 있다.

세속의 찌든 때가 많아서일까. 이런 곳에서 ‘머리 깎고 수양하고 싶어’라는 충동이 갑자기 밀려온다.

이런 생각도 잠시, 취재팀은 다시 발걸음을 ‘염불암’으로 향했다. 포장된 도로 때문인지 차가 들락날락거렸다. ‘염불암’으로 가는 불자들을 실어나르는 차량이다. 길 오른편으로 수십여개의 돌탑이 인상적이다. 아래가 절벽이라 ‘염불암’측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이중웅씨가 귀띔했다.

50여분쯤 지났을까. 동화사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염불암’에 도착했다. 해발 820여m. ‘염불암’ 옆으로 서면과 남면에 부처의 형상을 새긴 바위가 있다. 서면은 아미타불, 남면은 관음보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관음보살의 외모는 온화했다. 생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돼 일반 문화재로 지정됐다. 염불암은 팔공산 동봉 정상에서도 볼 수 있다.

염불암 아래에 있는 청석탑도 볼거리다. 벼루용돌로 만든 탑 곳곳에는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있다. 염불암 오른편으로 수백년된 소나무가 자리한 것. 갑자기 ‘똑똑박사’ 진 간사가 한마디 거든다.

“소나무 위쪽 모양이 마치 문어 같아요. 비바람을 피할 수 있어 바위가 이 소나무를 곁에 두고 있나 봅니다.”

◆염불암∼양진암(3.1㎞)

바위를 옮기지 않고 담장으로 살린 부도암 담장.
염불암을 등지고 왼편 등산로에 진입했다. 평평한 흙길이다. 이번에는 이중웅씨가 앞서 가면서 길을 안내했다. 그는 팔공산을 10년 가까이 다녔다. 그래서 웬만한 코스는 다 알 수 있다. 취재팀은 그를 따라 팔공산길이 선사하는 기쁨을 공유했다. 내리막길이 잠시 이어졌다. 단풍잎이 바람에 살랑살랑거리며 가벼운 떨림을 하고 있다. 적막감 속에 흔들리는 단풍잎 소리는 생명체가 무언의 숨소리를 내는 모습이나 진배없다.

잎은 땅에 떨어져 시간이 지나 거름으로 바뀐다. 우리의 삶도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겪는다. 모든 생명의 이치다. 그러나 단풍길을 걷는 지금 이 순간은 취재팀 모두에게 유한하지만 소중한 공유의 기억을 안겨주고 있다.

모두들 단풍 감상에 젖다보니 어디쯤 와있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다. 이지용 팀장이 속력을 내 걷자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침묵의 순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풍이 바람에 떨리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중간에 쉼터가 보인다.

평평한 공간에 듬성듬성 바위가 있지만 오른편 봉우리의 모습이 장관이다. 이른바 ‘병풍바위’다. 바위 오른쪽으로 새 부리 모양의 ‘조암’도 보인다. 바위 아래로 단풍이 한창이다. 산을 오르는 등산객도 잠시 병풍바위 아래 단풍을 보기 위해 자리를 깔았다. 11월의 문턱에 팔공산 곳곳은 단풍으로 오가는 이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다.

동화사 양진암 입구 다리에 새겨진 '이뭣고' 라는 화두가 눈에 띈다.

 

◆양진암∼원점(1.4㎞)

양진암에 도착하자 허기가 졌다. 시간은 오후 1시10분. 이제 모든 구간을 거의 다 소화한 셈이다. 양진암(養眞庵)의 속뜻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라고 한다. 양진암 옆으로 선원이 인상적이다. 선원에는 스님들이 불공을 드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양진암을 둘러본 후 콘크리트길이 아닌 능선을 따라 원점으로 돌아왔다.

도착시간은 오후 1시30분. 모두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식당에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밥 먹으러 가요.”

이날 걷기 내내 GPS로 시간과 이동 거리를 측정하느라 허기를 느낄 여유가 없었던 박효선 간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일행은 ‘붉은 낙원’에서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 걷기 동참 이중웅씨의 팔공예찬

“설악보다 팔공이 더 좋아요”

“팔공산은 대구 사람들에게 큰 축복입니다.”
이번 특별취재팀 걷기에 동참한 이중웅씨<사진>는 올해로 67세다. 고령이지만 그의 등산 실력은 남다르다. 팔공산만 10년 가까이 오르내린 그는 팔공산 예찬론자다.
“팔공산의 매력을 아는 분이 대구에 아직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설악산보다 여기가 훨씬 좋습니다.”
이날 걷기를 통해 그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번 입증하려 한다.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이 조화를 이룬 팔공산의 울창한 숲은 그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평평한 산길이 많아 등산과 걷기를 조절하면서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팔공산 산행을 하면서 몇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한번은 흐린 날씨였는데 방심한 탓인지 벼락이 바로 5m앞에서 치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정말 일촉즉발의 위기였는데 벼락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이런 사선을 넘나드는 아찔한 경험도 했건만 그의 팔공산 등산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그는 “동봉을 통해 정상으로 오르면 산 능선이 정말 아름답다”며 “대구 팔공산은 어느 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명산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