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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6] ‘진남문∼마당재∼묘향사∼기성동3층석탑∼진남문’ 코스

초암 정만순 2018. 1. 21. 17:18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6]

‘진남문∼마당재∼묘향사∼기성동3층석탑∼진남문’ 코스






山城·퓨전식 사찰·천년탑·숲…식당·러브호텔 길에 만난 산소같은 존재

칠곡기성동3층석탑.
◆ 가산산성 진남문 앞에서

지난 달 21일 오후 2시20분 칠곡군 가산면 가산산성 진남문 앞.

올들어 가장 뜨거운 퇴약볕이 기세등등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 진남문의 상단부에 눈썹처럼 걸린 ‘영남제일문’이란 편액이 나그네를 내려다 보고 있다. 진남문 안팎은 2009년 가을 가산산성 둘레길 조성 일환으로 넓은 잔디광장과 주차장을 마련하는 등 잘 단장돼 있었다. 출발!

아스팔트 길을 따라 동쪽 방향인 기성삼거리 쪽으로 내려갔다.

이 코스의 최고 명물은 단연 가산산성. 동참한 조명래 팔공산연구소 운영위원, 서택숙 팔공산연구소 사무국장 겸 대구걷기연맹 이사, 신태문 대구걷기연맹 사무국장이 가산산성에 얽힌 이런저런 도움말을 준다.

팔공산에는 온갖 산성이 많다. 가산산성, 공산산성, 팔거산성, 용암산성, 봉무산성….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 가산산성인데 1974년 사적 제216호로 지정된다. 특이하게 3중 구조다.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으로, 내성은 1640년(인조 18), 외성은 1700년(숙종 26), 중성은 1741년(영조 17) 각각 완성된다.

◆ 지루한 아스팔트길의 연속

진남문에서 1.6㎞쯤 내려왔다. 계속 아스팔트 길이다. 한티재로 넘어가는 79번 지방도로변 식당가가 좌우로 펼쳐진다. 팔공산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오리 전문 식당거리를 끼고 있다.

모텔 스카이 간판과 득명리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는 길 초입으로 접어들었다.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길이 나타난다. 아스팔트는 조금씩 멀어지고 피톤치드 묻은 숲바람이 푸릇하게 나그네들을 위로한다. 길 양편에 개망초꽃이 메밀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갑자기 공사현장이 나타났다. 득명교 공사가 한창이었다. 계곡물은 황토빛이다. 2016년 완공 예정인 한티재 터널 공사가 지나가는 구간이다. 팔공산은 이상하게 다른 산에 비해 계곡이 약하다. 물론 영천쪽 치산계곡도 있지만 그걸 제외하곤 모두 소규모다. 아직 흙길은 보이지 않는다. 나그네들이 조금씩 지쳐간다. 득명리 보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지나가는 트럭이 뿜어내는 흙먼지, 지열은 족히 50℃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왼쪽으로 멋스럽게 생긴 전원풍 주택 한 채가 맘씨 좋은 아낙네처럼 손짓한다. 낙락장송 그늘을 차고 앉은 원두막형 정자가 보여 잠시 쉬고 가기로 했다. 송편을 나눠먹었다.

폭염하 오후 3시.

풀벌레 소리만 들린다. 인기척이 없다. 동네가 텅빈 것 같다. 모두 그늘로 가서 오수를 청하고 있는 걸까. 아직 그린 코스가 나오지 않는다. 가이드가 곧 비경을 만날 수 있다며 처진 어깨에 용기를 준다. 연거푸 물을 들이켰다. 물 한 잔에도 몸이 금방 생기발랄해진다. 맞다. 내가 잘나서 이뤄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다른 것한테 빌붙어 산다는 기분이랄까.

3.9㎞를 걸어 3시25분 422고지 마당재 삼거리에 도착했다. 마당재 맞은편으로 평산아카데미가 숲속의 별궁처럼 보였다. 연수생들이 가창 유격장 훈련병처럼 큼지막한 복창소릴 팔공산 곳곳으로 홀씨처럼 퍼트리고 있다. 팔공산 곳곳에 이런 연수·노인요양시설 등이 즐비할 것 같다.

◆ 좋은 숲 좋은 글 한 편 읽기

마당재에서 묘향사로 내려가는 계곡은 명지골.

폭 1m 남짓한 좁다란 산길, 이길은 한티성지로 연결되는 옛길이며, 동구 지역 사람들이 군위 등지로 갈 때도 이용했단다. 아스팔트의 악몽이 흙길에서 많이 위안을 받는다. 300여m 내려가자 갑자기 산중처사처럼 살아가는 분과 만나게 됐다. 전직 교장 출신인 김강식씨(75). 나그네들을 정말 살갑게 맞이했다. 대구 지역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산중 오두막집을 구입해 황토방으로 개조했다. 김씨는 식물사랑도 남달라 직접 벚나무, 우산나물, 맥문동 등 여러 초목을 심어 팔공산 나그네들에게 파릇한 기쁨을 선사한다. 집 앞을 지나는 이들을 위해 샘물을 떠주기도 한다. 그는 시심도 남달라, ‘좋은 숲 좋은 글 한 편 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근처 길 주변 나무에 직접 적은 명시를 팻말로 만들어 걸어뒀다. 초의선사가 적은 시 한 수를 중얼거려본다.

‘눈을 가리는 꽃가지 잘라내니 석양 하늘에 아름다운 산이 저리도 많았던가’

◆‘러브호텔 속 연꽃’이라 불리는 3층석탑

명지골 구간은 분명 이번 걷기 코스에선 단연 최고의 풍광을 선사한다.

숲은 확실히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 아스팔트 길에선 다들 낙오된 캐러밴 같았는데 이젠 다들 자연예찬, 인생무상 타령하는‘산신령’ 같다. 길 왼쪽은 20m 높이의 낭떠러지. 저 아래 계곡물이 은하수처럼 흘러간다. 걸어가면서 팻말에 적힌 시를 낭독해본다.

갑자기 오른편에 특이한 모양의 사찰이 눈에 들어온다. 서택숙 사무국장이 출발 직후 ‘희한한 절’이라고 자랑한 바로 그곳이다.

묘향사다. 대웅전이 특이하다. 후불탱화 대신 신세대 감각의 온갖 직종의 현대인들을 부처처럼 그려 판화 같이 수북하게 붙여놨다. 대웅전 앞 마당은 족구장이었다. 뭔가 행간이 있는 묘향사. 나그네들이 모두 염화미소를 향불처럼 피워대며 기성리쪽으로 내려온다.

묘향사를 내려오니 기성전원마을이 보인다.

전원마을 주변은 온통 러브호텔·식당촌. 이제 ‘연꽃’을 찾아갈 타이밍이다.

연꽃은 바로 칠곡기성동3층석탑. 러브호텔에 둘러싸여 있으니 다들 그렇게 부른다. 일견 무명초 같은 탑으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보통 탑이 아니다.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법성마을 삼거리, 송림사에서 팔공산 서봉의 가산산성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있다.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으로 높이 5.2m의 화강암재 석탑이다. 69년 6월 보물 제510호로 지정.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형식으로 상륜부는 현재 훼손되면서 없어졌다. 신라 때 이 언저리에 법성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일명 ‘법성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샘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한때 크게 번창했다고 추정된다. 탑은 1971년 1월 도굴범에 의해 도괴되면서 2층 옥개 상면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 비극의 마을 이주史…논엔 벼 대신 코스모스

기성삼거리에서 다시 한티재 방향으로 하염없이 걷는다.

또 아스팔트 길이다. 남원리 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 남원2리 마을회관 앞에서 한 떼의 노인들을 만났다. 이번 코스의 마지막 구간에 있는 진남문 아랫동네인 남원2리의 경우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가슴아픈 이주사를 간직하고 있다. 54년 7월 26일 폭우와 산사태로 남문 성벽과 수구문이 붕괴되었으며 외성 안에 있던 남창마을이 산사태 등으로 24명이 죽고 마을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다행히 국군과 미군부대의 지원으로 현재 남원2리에 신남창마을을 반듯하게 세우게 된다. 산성 오르내리는 옛길이 조금 넓게 포장되고 있다. 다랑논이 좌우로 펼쳐져 있다.

그런데 묘향사처럼 희한한 풍광이 다가선다. 다른 논과 달리 곡식 대신 코스모스 등 관상수를 심어놨다. 땅 주인의 마인드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나그네들이 꽃밭으로 들어가 추억의 수학여행표 포즈를 취한다. 그 웃음이 조생종 코스모스보다 더 멀리 일렁거린다.

◆ 걷고나서 한 마디

이번 걷기코스는 그다지 푸릇하지 않았다.

무채색이었다. 일부 구간은 지루하고 그냥 도심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제법 긴 아스팔트 도로에선 올해 가장 뜨거운 지열까지 만났다. 팔공산 난개발 현장과 우후죽순식으로 들어선 식당가와 러브호텔군을 끼고 돌았다. 중간에 오아시스 같은 신라시대 탑도 만났으며, 강원도 심산유곡표 숲길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린벨트 개발과 보존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아스팔트 구간이 ‘옥에 티’였지만 코스를 끊어지지 않고 모두 이으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관계자들은 이 코스 개척을 위해 많게는 다섯번 이상 같은 길을 걸은 모양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가산산성 진남문.
칠곡군 가산면 득명리 묘향사 부근에는 좋은 글귀가 적힌 팻말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