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대구 자락 올래 둘레길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7] ‘공산댐~도성사~S곡선길~평광동~문암산~구암마을 버스정류장’ 코스

초암 정만순 2018. 1. 20. 13:42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7] 

 ‘공산댐~도성사~S곡선길~평광동~문암산~구암마을 버스정류장’ 코스



담요처럼 깔려있는 길…시몬 너도 좋으냐? 솔가리 밟는 소리가…

도성사에서 평광동으로 가는 걷기팀.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에는 쓸쓸함이 남아 있다.
문암산에서 구암마을로 내려오는 길에는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문암산 등산로 주변에 피어 있는 진달래.

물기 없는 낙엽이 짙게 내려앉았다. 그 위로 앙상한 가지가 소리없이 부서진다.
거친 숨은 찬바람을 따라 춤추고, 여민 옷깃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송곳날처럼 파고 든다.
날은 차고, 발걸음은 무겁다. 하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마주한 풍경 덕분이다. 하늘만큼 넓은 숲이며 오랜 세월을 품은 듯한 나무, 산허리를 감싸며 유연하게 뻗은 길. 굳이 눈의 초점을 둘 필요도 없이 풍경이 된다.
늦은 11월의 아침. 가을은 점점 멀어져 가고, 겨울은 어김없이 오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대구시 동구 지묘동 팔공보성아파트 건너편, 마지막 ‘팔공산 걷기’의출발점에 힘차게 섰다. 이지용 걷기 취재팀장을 비롯해 오병현 팔공산녹색여가문화센터장과 진선아 팔공산녹색여가문화센터 간사, 그리고 올해 대구올레 해설사 아카데미를 수료한 이외란씨가 이 함께 나섰다.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벌써 몸이 알아서 자동으로 움츠려든다. 제법 쌀쌀한 날씨다. 모자를 눌러 썼지만 소용이 없다. 장갑과 귀마개를 미리 챙기지 못한 후회도 잠시.“자! 출발이다.”

◆지묘동 팔공보성아파트~공산댐~도성사

산길을 따라 공산댐 방향으로 걷는다.

10여분간 산길을 따라 치고 올라가야하는 코스.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 짧은 기침이 허공을 몇번 가른다. 그리고 마른 숨결, 명치끝을 짓누르는 고통이 불쑥 밀려온다. 길 옆의 철조망에 잠시 몸을 기댄 채 발걸음을 멈춘다. 멀리 왕산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화처럼, 속살을 죄다 드러낸 풍경이다. 가쁜 숨을 잠시 진정시키고 익숙한 듯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찬바람에 움츠렸던 몸은 어느새 열기로 가득하다.

소담스러운 산책로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고개를 쭉 빼도 길게 난 오솔길뿐이다. 그러기를 20여분, 왼쪽 발아래로 공산댐이 보인다. 시선은 모두 공산댐의 수면위로 고정된다.

“공산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묘동에서 도성사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고 해요. 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되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대구시에서 주민들을 위해 새로 만든 겁니다.”

동행한 오 센터장이 설명을 곁들인다. 나지막히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무심하게 시선을 다시 댐으로 고정시킨다. 수면위로 햇살이 허허롭게 피어올랐다. 물은 말이 없고 햇살은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난 밤 거친 겨울바람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어디에서 흘러 왔는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태생이 어떠하든 그냥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옛날 옛적 그곳에 길이 있었다는 것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풍경은 고즈넉했다. 발아래 공산댐을 두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얼마나 갔을까. 문득, 몇해전 공산댐에 수달 2마리가 살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생각이 났다. ‘수달 2마리는 부부였을까?’ ‘부부였다면 새끼를 낳지는 않았을까’ 생뚱맞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돌린다. 공산댐은 여전히 ‘빛바랜 이야기’를 품고 살고 있는 듯하다.

도성사로 가는 길은 숲길이다. 낙엽이 담요처럼 깔렸다. 걸을 때마다 푹신한 기운이 올라온다. 흡사 탱글탱글한 모래사장을 걷는 듯, 발바닥이 편안하다. 겨울숲 사이로 얄밉게 햇살이 드리운다.

“와! 굴참나무다.”

누군가의 탄성이 들려온다. 줄지어 선 굴참나무 행렬이 취재팀 앞에 마주한다. 하얀 가슴을 드러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잠시 시선을 고정하고, 휴식을 취한다. 단단한 껍질속에 숨어 있을 속살을 상상한다. 봄이면 그것들은 다시 움트고, 싹을 틔울 것이다. 헐거워진 초겨울 바람소리가 굴참나무 사이로 비켜간다. 숲길을 빠져나오면 바로 도성사다.

◆도성사~S곡선길~평광동~문암산 초입

도성사 옆 민가 굴뚝위로 연기가 무심하게 피어올랐다.

작은 야외 수돗가에는 김장 담그기가 한창이다. 마른 입 안으로 침이 고인다. 넉살만 좋으면 한입 얻어먹고 싶지만, 갈길이 바쁘다. 도성사에서 잠시 휴식하고 곧바로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S곡선길’로 불리는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야트막한 오르막이지만, 숨소리는 이내 거칠어진다. 오르막 끝에서 왼쪽으로 돌아 조금만 가면 완만한 길이다. 숨소리도 잠시 잦아든다.

S곡선길을 시작으로 20여분을 걸으면 ‘다리골 식당’이다. ‘옻닭’ ‘백숙찜닭’이라는 간판이 유난히 커보인다. 닭요리가 주메뉴인 식당인가 보다. 인기척에 놀란 덩치 큰 개 한마리가 요란을 떤다. 식당을 빠져나오면 다리골 버스 정류장이다. ‘팔공1’번 버스가 1시간 혹은 1시간 20분 간격으로 다닌다고 한다. 정류장에서 왼쪽으로 돌아 작은 다리를 건넌다.

이지용 팀장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작은 열매 하나를 불쑥 내민다. 고욤나무 열매다. 길 주위로 고욤나무가 몇그루 보인다. 망설임 없이 열매를 받아 먹었다. 달콤한 맛이 혀끝을 맴돈다. 모두가 고염나무 시식에 걸음을 옮길 생각을 않는다.

“바로 이런 게 걷기의 매력이죠.”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한바탕 웃음이다.

아스팔트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팔공1’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갓길로 몸을 피하고, 다시 걷기를 몇분. 예술원 간판을 내건 작은 집이 보인다. 대문 앞에는 ‘작품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플래카드다. 언제 붙였는지도 모를, 구문이 되버린 플래카드에 잠시 시선이 고정된다. ‘우리 예술원에서 이런 작품전을 했어’. 주인은 여전히 ‘그날’을 크게 뽐내고 싶은 모양이다.

아스팔트길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일품이다. 산을 안고 도는 물길과 그 위로 짙게 내려 앉은 산 그림자. 걸음을 옮길 수록 풍경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쪽 길은 자전거 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해요.”

함께 걷던 오 센터장이 말을 잇는다.

“그래도 자전거 보다는 이렇게 걷는 것이 더 운치가 있죠.”

정오를 지날 무렵 평광동 입구다. ‘효자 강순항 나무’가 ‘이곳이 평광동’임을 알리기라도 하듯 길 한복판에 우뚝 섰다. 잠시 쉴겸 ‘효자 강순항 나무’를 소개하는 입간판을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입간판은 ‘가은 강순항은 어릴때부터 효행이 지극했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엄동설한에도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위해 참외와 잉어를 구했다는 강순항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독수리조차도 그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해 쇠고기를 떨어뜨리고 갔다는 스토리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3년동안 무덤옆에서 초막을 짓고 보살폈다는 사연이 푸른 글씨로 빼곡하다. 그러면서 말미에는 이 왕버들나무가 강순항의 효행을 상징한다며,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로 글을 맺고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에 입간판을 담은 뒤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평광동엔 사과나무가 지천이다. 이미 수확이 끝난 뒤라 붉은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마음씨 좋은 과수원 주인이 남겨놓은 ‘까지밥’이 아슬아슬하게 가지에 달렸다. 하지만 평광동 사과의 역사는 굳이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소리없이 드러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랬다.
문암산 송전탑 부근에 있는 거북모양 바위.

◆미대동 문암산 초입~송전탑 부근 거북모양 바위~문암산 여덟고개 지나 샛길~구암마을 버스정류장

평광동 주택가를 빠져 나와 왼쪽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문암산 초입이다.

야트막한 산인줄 알았는데, 오를수록 만만치가 않다.

“정상까지 426m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고개가 열개는 넘는 것 같아요.”

사전답사를 갔다온 진 간사가 초입부터 엄포를 놓는다. 시작부터 발걸음이 무겁다.

“주위가 바위로 된 절벽인데 대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문암산(門巖山)으로 불린다고 해요.”

진 간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 하나를 넘었다. 산짐승 발자국이 군데군데 선명하다.

“멧돼지 발자국도 있고, 고라니 발자국도 있네요. 어쩌면 그 놈들을 볼 수도 있겠는데요.”

진 간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뭔가가 휙~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다. 호기심에 고라니가 지나간 방향으로 모두 고개를 돌린다. 얼마나 빠른 놈인지, 금세 사라지고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고개 하나를 넘는다. 송전탑 부근에 거북모양의 바위가 길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잠시 휴식, 오솔길 사이로 철모르는 꽃들이 고개를 살며시 내민다. 벌개미취 꽃이며 참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최근들어 따뜻한 날씨에 ‘봄인줄 착각’을 한 모양이다. 초겨울에 만나는 봄꽃, 그냥 갈 수 없어서 살포시 카메라에 담았다.

여덟번째 고개를 넘은후 샛길로 빠진다. 구암마을로 이어진 내리막 산길이다. 급경사지만 솔잎이 담요처럼 깔렸다. 미끄러지듯 10분만에 구암마을에 도착한다. 마을길을 따라 이날 걷기의 종점인 버스종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30분. 날은 차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글=백승운기자 · 사진=이지용기자

▨영남일보-대구시걷기연맹-대구녹색소비자연대-대경권광역경제발전위원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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