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대구 자락 올래 둘레길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3] ‘구암교∼내동 느티나무∼명상의 길’ 코스

초암 정만순 2018. 1. 20. 13:37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3]

‘구암교∼내동 느티나무∼명상의 길’ 코스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3] ‘구암교∼내동 느티나무∼명상의 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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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순식간에 밀려왔다.

그리고 힘없이 사그라지기를 수차례. 스치는 풍경이지만 이미지는 실루엣으로 남았다. 그 ‘풍경의 실루엣’을 손에 꼭 쥐고 싶은 늦은 오후. 바람은 아늑했으며, 바스락거리는 길은 발끝을 깨웠다. 묵직해진 발가락 사이로 길의 촉감이 꼼지락거린다. 느긋하게 그것을 즐긴다. 그때쯤, 지친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운다. 팽팽해진 허파주머니를 따라 몸속의 세포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발걸음도 덩달아 춤을 춘다.

다시 풍경은 밀려오고, 힘없이 사그라지며, 실루엣으로 남는다. 그렇게 길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낯선이의 발길을 깊숙이 품어주고 있었다.


◆구암교~미타사(1.5㎞)

취재팀이 선택한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 길’의 세 번째 코스는 대구시 동구 미대동 구암교에서 시작됐다. 달성서씨 재실인 중심재 인근의 ‘명상의 길’을 돌아 다시 구암교로 이어지는 총 14.2㎞ 구간이다. 코스 자문과 안내는 서택숙 팔공산연구소 사무국장 겸 대구시걷기연맹 이사가 맡았다.

지난달 17일 오후 1시10분. 구암교를 출발한 취재팀은 곧장 구암팜스테이마을로 접어들었다. 늦은 출발을 의식해서인지 취재팀 모두가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채 몇걸음도 가지 못하고 낯선 인기척에 급한 발길을 멈춘다. 팜스테이마을 한켠,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불쑥 끼어들어도 아랑곳 없다. 모두가 짚풀 공예 체험에 열중이다. 어눌한 동작으로 새끼를 꼬는 모습이 정겹다. 구암팜스테이마을은 연중 상시로 전통음식만들기부터 나무공예, 짚풀 공예, 한지공예까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주말 가족 나들이 코스로 그만이다.

다시 마음이 급해진 탓에 발길을 재촉한다. 중간 지점인 미타사까지는 평탄한 아스팔트 길이다. 지루할 정도로 굴곡이 없다. 차량통행은 애초에 없다. 가끔 만나는 사람의 인기척에 놀랄 뿐이다. 주변풍경에 취할쯤 앙증맞은 ‘주말농장’ 푯말이 시선을 잡는다. 한발짝 내디뎠다. 푯말 사이로 푸른채소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익숙하던지…. 구암에도 그렇게 봄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완만한 아스팔트길이 길게 이어지지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오가피 나무 군락과, 탱자나무가 심겨진 담벼락. 시선이 닿는 곳마다 풍경은 밀려오고 사그라지고 잔상으로 남는다. 30여분을 걸어 중간 지점인 미타사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마을의 소박한 사찰이다. 험난한 세월을 버텨온 듯 마을 한켠에 전설처럼 무심하게 서있다.

◆미타사~옥정길~내동 느티나무(1.6㎞)

미타사 앞의 작은 다리를 건너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이곳도 완만한 아스팔트 길이다. 오후의 햇살이 산그늘에 걸렸다. 굳이 시선을 두지 않았는데도 팔공산의 쌍봉과 장군바위가 저멀리 보인다. 또렷하다. 길게 뻗은 산줄기가 오후의 빛줄기를 따라 반짝인다.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능선은 신기루처럼 일렁인다. “해질녘쯤에 오면 더 좋겠다.” 정적을 깨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 정적….

길 오른쪽으로는 작은 시냇물이 소담스럽게 흐른다. 허허롭게 노닐던 왜가리가 돌에 턱 걸린다.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겼을 뿐인데…. 아찔한 몸짓은 이내 문지방을 넘듯 유유자적이다. 아스팔트길이 끝날 때쯤 내동마을 버스정류장이다. 도로를 건너서 왼쪽으로 직진, 굴다리를 지나면 아담한 마을이 보인다. 내동마을이다. 마을 한켠에 있는 느티나무 정자에서 잠시 휴식. 물한잔을 머금고 느티나무 앞 안내판을 무심하게 들여다본다. ‘수령 500년, 높이 15m, 둘레 7.3m’ 안내판의 무뚝뚝한 설명아래 정자에 대한 짧은 소개도 덧붙여졌다. ‘고려시대 명현 안유 선생의 후손인 안황이 아끼던 정자라고 해서 안정자라고도 불린다.’

◆내동 느티나무~솔분재연구원~용수천길~부남교~과거길~중심재(5.4㎞)

내동 느티나무에서 왔던길로 되돌아 1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좁은 샛길이 보인다. 시멘트 길을 잠시 걷다보면 야트막한 산과 마주친다. 이곳에서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이다. 숲의 기운이 아침이슬처럼 온몸을 감싼다. 이곳에서는 부드러운 솔잎의 촉감을 즐기면 그만이다. 힘줄을 따라 올라오는 그 느낌이 그윽하고 정갈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속도를 포기하는 게 좋다. 오감을 작동시키는 모든 신경계를 열어둔 채….

산을 내려오면 ‘추원재’라는 재실이 보인다. 인천채씨의 재실이다. 잠시 이곳에서 숨을 돌린 뒤 재실을 빠져나오면 큰 도로변이다. 오행철학원 간판을 끼고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솔분재 연구원’이다. 솔분재 연구원의 입간판을 끼고 왼쪽으로 들어선다. 야트막한 오르막길이다. 저멀리 문암산 능선이 출렁인다. 길 주변으로는 모심기를 준비하는 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누군가 다시 정적을 깬다. “가을에 오면 더 멋지겠다”. 고개만 끄덕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길을 걷다보면 용수마을의 무명교에 다다른다. ‘이름 없는 다리’라고 해서 무명교다. 무명교를 건너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곳에서부터 용수천길이다. 이쯤부터는 슬슬 몸이 묵직해짐을 느낀다. 움찔하면 곤두박질칠 것 같아 아무도 모르게 발가락을 오므린다. 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볼까 하는 심정에 허리가 휘청해도 기어이 몸을 곧추세운다. 오후의 한가로운 빛줄기가 시냇물 위로 툭툭 걸린다. 그 모습이, 그 소리가, 아늑하다.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쯤이면 부남교에 닿는다. 부남교 옆 오른쪽 샛길로 접어드면 과거길이다. 이 길로 옛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다녔다고 한다. 과거길 초입에서 논두렁길을 지나면 달성서씨 재실인 중심재가 나타난다. 여기서 잠시 휴식한다. 중심재에 살고 있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부터 차도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다.

◆중심재~명상의 길~무명교~구암교(5.7㎞)

중심재에서 나오면 바로 명상의 길이 시작된다. 이번 코스의 백미가 바로 이곳이다. 명상의 길은 야트막한 산줄기를 따라 조성됐다. 중심재에 살고 있는 박정석씨가 2년반 동안 직접 닦은 길이다. 아직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다.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다. 흰 바위에 ‘묵연(默然)’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이곳에서는 말을 줄여야 한다. 오직 자연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면 된다. 애써 초점을 맞출 필요도 없다.

초입을 지나면 거대한 소나무 숲과 마주한다.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인다. 감각기관의 모든 촉수가 벌써부터 솔숲을 향해 뻗어있다. 솔잎은 마치 지층을 이룬 듯 펼쳐졌다. 느릿느릿 그것의 감촉을 즐긴다. 태초부터 이곳은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2.7㎞ 구간 전체가 ‘솔잎 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묵연’을 생각한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말이 없다. 정적뿐이다. 나뭇가지 밟는 소리만 요란하다.

한 허리를 돌면 또 다른 길이다. 보기에는 밋밋하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매력이 더해진다. 이 길을 조성한 한 남자의 정성이 곳곳에 묻어난다. 길과 길을 이어주는 나무다리며, 쉬어갈 수 있도록 마련한 돌의자며, 볼 때마다 지나칠 때마다 감탄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길게 쉼호흡, 발아래서 꼼지락거리는 솔잎의 촉감이 여운으로 남는다.


☞ 걷기 구간

구암교-1.5㎞-미타사-1.6㎞-내동 느티나무-0.6㎞-인천채씨 재실-1.9㎞-무명교-2.1㎞-부남교-0.8㎞-중심재-2.7㎞-명상의 길-1.9㎞-무명교-1.1㎞-구암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