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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5] ‘은해사 매표소~상용암 터 추정지~운부암~원점’ 코스

초암 정만순 2018. 1. 20. 13:27



[팔공산 자락 걷기 좋은길 .15]

 ‘은해사 매표소~상용암 터 추정지~운부암~원점’ 코스




초현실주의자가 그려놓은 낙엽길·낙엽계곡…

운부암 보화루 바라지창 속의 은행이 짠하다



상용암터(추정)로 가다보면 낙엽이 길을 덮고 계곡을 덮는다. 작은 사진은 은해사 운부암 보화루에서 바라본 가을 풍경.


없는 듯 하면서도 있고, 있는 듯한데 없는 길,

등짐 진 산사람처럼 오르는 길, 하강하는 새처럼 내려가는 길.

옛 사람들의 흔적을 좇아 감춰진 길 찾아가는 비밀 같은 걸음,

최초의 인간처럼 길 열며 나아가는 장중한 걸음.

팔공산 자락의 걷기 좋은 길, 오늘의 길이다.



◆은해사 매표소∼신일지∼갈림길2 (3.4㎞)

코에, 목구멍에, 폐에, 쏴아 하고 공기가 들이닥친다. 은해사 금포정에 들어서면 속이 시원하다. 한여름 얼음물 벌컥 들이켠 듯, 손끝 바늘로 콕 찔러 체한 속 터트리듯, 금포정 솔숲에선 깊이 숨쉬기가 무겁지 않다. 그렇게 시작하는 걸음,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 이번 걷기는 서태숙 팔공산연구소 사무국장과 박영훈 팔공산연구소 회장, 그리고 영남일보 특별 취재팀 이지용 팀장과의 동행이다.

옛 사람 잠시 떠올리듯 우거진 수림장을 눈길로 스쳐 지나고, 손잡고 선 참나무와 느티나무의 사랑에 잠깐 질투도 했다가, 부도 밭 지나 은해사 보화루 앞에 선다. 추사 선생의 현판 아래 액자처럼 열린 보화루, 그 속 멀리에 극락보전이 앉아있다. 휘황한 금빛으로 칠한 극락보전 현판에 시선이 닿자 속이 차가워진다. 고풍스럽고 엄하게 따스했던 옛 현판은 박물관에 있다. 불꽃같은 향나무만이 변함없다.


은해사 위쪽, 지난봄에 보았던 나대지는 큰 변화 없다. 지금은 흙을 쌓아 돋우어 놓았는데 꽤 규모 있는 공사를 하려는 듯하다. 조금 오르면 신일지다. 작은 산 덩어리 하나가 물에 잠겨있다. 물속의 숲은 하늘빛과 섞여 더욱 짙은 가을이다. 이곳에서 백흥암 가는 길과 운부암 가는 길이 갈린다. 신일지를 오른쪽으로 팔짱끼고 운부암 방향으로 걷는다. 여기서부터 전화기는 먹통이 된다. 잠시 꺼두어도 좋은 길, 전화기는 저절로 묵언한다.

“왼쪽이 태실봉이에요. 인종의 태를 묻었다는.” 태실봉에서 흘러내려온 산 사면이 계곡으로 잠긴다. 길은, 지구의 갈라진 틈 같은 그 계곡을 따라 쫓아가듯 닦여져 있다. 차의 통행을 허락하는 반듯한 임도는 운부암까지 이어진다. 느슨하지만 호젓하고 지루한 듯 하면서도 혼을 흔드는 숲길이다. 나무들은 뛰어 오르거나 내려오는 듯하고 우리의 걸음은 덩달아 뛰어 오르는 듯 가볍다.

◆갈림길2~갈림길3~갈림길 4~상용암 터 추정지~토굴 (2.4㎞)

상용암터(추정) 주변의 참나무류 연리목.

은해사 3㎞, 운부암 0.5㎞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숲으로 향하는 소로로 들어선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짧은 콘크리트 다리가 옴팍하니 울렁해 차의 드나듦은 어림없을 듯 하고 가는 쇠줄이 낮게 드리워 출입 잦은 곳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주 잠깐, 길은 선명하게 제 모습을 보여주다 곧 사라진다. 지난여름 왕성하게 자란 수풀과 가을바람이 길을 지워버렸다. “여기가 산수유 밭이에요. 지금은 아무도 관리를 안 하고 방치되어 있지요.” 묵정밭이 되어버린 밭에는 붉고 반드르한 작은 열매들, 보석 같은 그것들이 가지가 휘어지게 매달려 있다. 이쁘다 하고 덥석 베어 물었다가 혼쭐이 난다. 떫다.

사라진 길을 서 사무국장과 박 회장은 기막히게 찾아낸다. 여러 번 걸음한 사람들의 익숙한 몸 기억이다. 두고 가기 아까운 산수유 밭을 지나 안개처럼 뽀얀 빛깔의 두충나무 숲을 가로지른다. “여기가 옛날 은해사 자리인 해안평이에요. 산수유 밭 저 아래까지 아주 넓었지요.” 은해사의 원래 이름은 해안사, 원래 자리는 해안평이었다. 809년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되어 1545년 조선 인종 원년에 전소할 때까지, 산수유 밭과 두충나무 숲 일대에는 해안사가 있었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여럿 살았다. 지금은 살던 이들 모두 떠나고 논밭도 가늠이 쉽지 않다.

해안평 정글을 빠져나오면 제법 평탄한 땅이다. 낙엽이 지운 길은 보이지 않지만 확연하다. 아래로 보이는 계곡물은 시리게 맑다. “여기에 피리도 살아요.” 청동빛의 소와, 미니 폭포들, 굽고 멈칫하다가도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류를 테라스 같은 길에서 내려다본다. 길은 낙엽이다. 흙은 보이지 않는다. 낙엽으로 만들어진 바위, 낙엽으로 만들어진 하늘, 낙엽으로 만들어진 산, 초현실주의자가 만들어 놓은 낙엽의 방, 낙엽의 길이다. “이 길이 운부암에서 백흥암으로 넘어가는 옛길이에요. 산꾼이 아니면 못 찾는 길이죠.” 아무리 떨어져도 저만치 하늘을 가리는 이파리들, 하늘과 땅이 자신이 키운 것들을 거둬들이는 길이다. “하늘도 갈색 땅도 갈색이네.” 저만치 앞서가던 이지용 팀장, 내 마음이 들렸나, 혼잣말로 대답한다.

바위에 운부암 화살표가 붉은 페인트로 쓰여 있다. 화살표를 외면하고 산길로, 계곡을 가로질러 약간 기울어진 산으로 들어선다. 이제 계곡과는 안녕이다.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가 이정표처럼 서있다. 삿갓 같은 가지 아래 빈 새집을 품고서. 그리고 곧, 낙엽에 묻힌, 그러나 분명 사람이 쌓은 돌계단의 흔적이 유적처럼 남아 있는 비옥한 숲이 펼쳐진다. “옛날 고지도에 상용암이 있었어요. 지도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는데 우연히 정시한의 산중일기에서 상용암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했지요. 일기에 적힌 거리와 방향을 바탕으로 찾아보니 바로 이곳이었어요. 상용암 터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봐요.”

상용암. 지금은 사라진 이름뿐인 암자.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일대를 대표하던 사찰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기에는 여기에 마애불이 있었다고 해요. 이 일대를 수십 번 찾아 헤맸는데 아직 찾지 못했어요.” 서 사무국장의 말 속에는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 증명되지 못한 유적의 위쪽은 바위군락이다. 거대한 암벽과 바위덩어리들을 보면 마애불 한분 거하고 계실법도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쪽에는 토굴이 하나 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역력하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오래 기다렸다는 듯 맞이하는 너른 바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하늘이 뻥 열린 이곳에서 내내 묵언하던 전화기가 잠깐 소리를 낸다.

◆토굴~운부암~은해사 매표소 (6㎞)

은해사의 보호수로 지정된 향나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같은 길인데도 풍경은 다르게 열린다. 몇 걸음 만에 연리목을 만난다. 산골에 스며 사는 연인처럼, 깊고 인적 없는 이곳에서 참 오래 사랑하는 나무다. 백년 묵은 구렁이 같은 다래 덩굴이 풍경을 휘젓는 모양도 새삼스럽다. 운부암 화살표가 그려진 바위 갈림길에서 운부암으로 향하는 미지로 들어선다. 실로폰처럼 통통통 걷는 길이다. 숲이 거짓말처럼 멈추면 길은 절집의 옆구리를 감아 들어선다. 운부암이다.

순한 개 한 마리 어찌 알았는지 마중 나온다. “운부암은 기도가 영험한 곳으로 이름난 곳이에요. 경허 스님, 성철 스님도 이곳에서 수행했다지요.”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오래된 절집은 ‘북마하 남운부’라 칭해질 만큼 명당자리 수행처라고 한다. 보화루를 지나 마당으로 오르면 주불전인 원통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선방과 요사가 있고 왼쪽 뒤편에 산신각이 있다. 선원이라 그런지 정숙과 침묵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많다. 원통전에는 보물인 청동 보살 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통전 보살님을 뵙고 나오다 심장에 통증을 느낀다. 아, 보화루 바라지창 앞에 의자가 앉아 있다. 창속에는 노란 은행나무가 가득하다. 너무 곱고 멋있는 애인처럼 심장이 짠하다.

은해사 운부암 보화루.

보화루 아래 계단을 내려와 달마선사가 서 계신 연못가에서 절집을 바라본다. 보화루 바라지 창 인방의 리듬에, 곱게 늙은 기둥에, 비탈진 땅을 그대로 살려 지은 공양간의 옆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꽉 껴안고 놓고 싶지 않은 절집이다. 절집 앞에 대단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절정으로 타고 있다. 둥치 아래엔 노란 그림자가 소복이 쌓여 있다. 키 작은 주목의 머리위에도 푸른 소나무 가지 위에도 온통 노란 꽃 만발이다.

시작점인 은해사 입구로 향하는 4㎞ 남짓한 임도를 내려간다. 태양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고 우리의 걸음은 급해진다. 하강하는 새처럼, 뛰어 내려가는 나무들처럼, 힘 있고 경쾌하게 걸어간다. 멀리서부터 컴컴해지는 숲을 마치 마지막처럼 아쉬워하며, 긴 길을 축지한 듯 원점에 닿는다. 사위가 어둑하다.



글=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사진=이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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