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목본(가)

금강소나무

초암 정만순 2017. 8. 9. 06:54



금강소나무


동의어 춘양목(春陽木), 강송 다른 표기 언어 Geumgang Pine Tree , 金剛松 , コンゴウアカマツ



요약 테이블
분류 소나무과
학명Pinus densiflora for. erecta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부터 경북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며,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다.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학자들이 금강소나무(金剛松), 혹은 줄여서 ‘강송’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흔히 ‘춘양목(春陽木)’이라고 더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나무다.

금강소나무는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썩지도 않아 예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로 쳤다.



소나무는 자라면서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 쌓여서 나무속이 진한 황갈색을 띤다.

이 부분을 옛사람들은 ‘황장(黃腸)’이라 하였으며, 가장자리의 백변(白邊)에 비해 잘 썩지 않고 단단하기까지 하다.

황장이 넓고 백변이 좁은 금강소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로서 왕실에서 널리 쓰였다.

세종 2년(1420)에 예조(禮曹)에서는 “천자의 곽(槨)은 반드시 황장으로 만드는데, 견고하고 오래되어도 썩지 않으나, 백변은 내습성이 없어 속히 썩는데 있습니다. 대행 왕대비의 재궁(梓宮)은 백변을 버리고 황장을 서로 이어서 만들게 하소서”라고 임금에게 아뢴다.

조선왕조 내내 좋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세우고, 《경국대전》에는 좋은 소나무의 벌채를 법으로 금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곳의 금강소나무는 차츰 고갈되어 멀리 태백산맥의 오지까지 가서 벌채를 하여 한강을 타고 운반해왔다.

한강 수계(水系)로의 운반이 불가능한 울진, 봉화 지역의 금강소나무는 그래도 생명을 부지하여 가장 최근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영주-봉화-태백을 잇는 산업철도가 놓이면서 이들도 무차별로 벌채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권세 있는 양반이 아니면 지을 수도 없었던 소나무 집을 너도 나도 짓기 시작하자 급격한 수요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잘려진 금강소나무는 영동선 춘양역에 모아두기만 하면 철마(鐵馬)라는 괴물이 하룻밤 사이 서울까지 옮겨다 주었다.

사람들이 춘양역에서 온 소나무란 뜻으로 ‘춘양목’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진 수탈에도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은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다.

이곳은 1981년에 유전자 보호림, 1985년에는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소나무와 금강소나무는 별개의 나무일까?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소나무라는 성씨를 가진 종갓집의 자손에는 반송, 금강소나무, 황금소나무 등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모양새가 꼭 같지 않은 몇 종류가 있다.

그렇다고 다른 나무 족보에 넣어야 할 만큼 전혀 닮지 않는 것도 아니다.

조상의 모양새와 조금 다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같은 자손으로 인정될 때 우리는 품종(品種)이라고 한다.

금강소나무는 한마디로 조상인 일반 소나무보다 더 잘생긴 소나무의 한 품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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