仙道 丹功 佛敎/기공 명상

호흡명상의 기준점 설정

초암 정만순 2017. 5. 21. 12:49



호흡명상의 기준점 설정


아랫배 인중 단전…
 
호흡명상은 대표적인 집중명상에 속한다.

변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모양을 사진처럼 찍어, 그 장면에 머물러서 집중하는 것, 이것이 집중명상이다.
 

일단 집중명상은 움직이지 않는 대상에 집중하는 명상을 말한다. 이때 집중하는 대상은 실제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마음에 의해서 구성된 표상(nimitta), 일종의 영상이다.
 

예를 들면, 눈앞에 동전을 본 다음에 눈을 감으면, 그 동전의 표상이 눈앞에 잠시 나타난다. 이것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그 동전의 표상은 상당한 수준의 선명성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동안 유지가 된다. 이것을 집중명상이라고 부른다. 동전의 표상이 선명하게 마음에 나타난 그 동안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호흡도 마찬가지다. 호흡에 집중하면 처음에는 호흡의 표상이 흐릿하고 다른 생각에 자꾸 놓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호흡의 표상이 아주 선명하게 눈앞에 그것도 매우 견고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을 삼매 곧 선정(禪定)이라 부른다.
 

이때는 열정과 같은 장애가 사라진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가 된다. 여기서 마음에 나타난 표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표상이 다른 장애들이 끼어들지 않도록 보호를 해주는 역할을 한다.


호흡의 표상은 들숨, 날숨, 멈춤의 3단계이다. 이들을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이 있다. 이들을 정해진 하나의 장소에서 관찰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집중명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집중명상이란 바로 움직임 없는 고정된 하나의 지점에 대한 집중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움직이는 호흡에서 관찰할 때에 그 기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이 부분은 호흡명상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된 관점이다.
 

어디든 시선을 고정시켜야
마음 안정, 집중력 개발돼

 

이것을 <청정도론>에서는 톱날의 비유로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나무를 자를 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앞뒤로 움직이는 톱날에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잘라야하는 나무에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움직이는 톱날에 시선을 두면 잘라내려는 나무가 보이지 않아서 직선으로 잘라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선은 톱날보다는 자르려는 나무의 특정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은 호흡을 관찰하는 기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의 흐름에 따라서 관찰하는 것은 톱날을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 신체의 어떤 특정한 부분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쉽게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 집중력이 개발된다. 이에 대해 <염처경>에서는 “면전에 알아차림을 확립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점은 논서에서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다. 현대 명상을 지도하는 이들도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가장 널리 알려진 바로는 아랫배이다.

숨이 들어오면 아랫배가 팽창을 하고 숨이 나가면 수축을 한다.

아랫배에 기준점을 두고 호흡의 팽창과 수축을 관찰한다.

아랫배에 기준점을 두는 이유는 관찰의 범위가 넓기도 하지만, 우선적으로 몸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란 점에서 안정적이다.
 

두 번째로 널리 알려진 부위가 인중이다.

코와 입술의 사이로서 숨이 들어오고 나감을 이 인중을 기준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주로 고엔카 센터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그 이유로는 눈에서 가깝기에 집중력이 좋고 숨결의 흐름이 신체에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다.
 

세 번째로 동북아 전통에서는 관찰의 기준점으로 아랫배를 보다 상세하게 표상해 단전을 지목한다.

배꼽에서 7~8㎝아래에 위치한다고 말한다.

물론 단전이란 부분이 물리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그곳에 마음을 집중하여 만들어낸 미밋타 곧 표상이다.
 

어느 쪽을 하든지 기준점을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게 확립이 되지 않으면 집중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기에 지도자들은 이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단 기준점이 확립이 되면 호흡명상은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