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 漫步/잡초 밥상

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3월 요리)

초암 정만순 2017. 5. 4. 19:39



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3월 요리)



고추장


고추장은 콩 발효식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양념으로 '종합예술식품'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밀보리로 엿기름을 내고, 그 엿기름에 찹쌀을 삭혀 조청을 끓여 단맛을 낸다. 가볍지 않으면서 깊고 은근한 단맛을. 여기에 콩으로 쑨 메주의 구수한 맛과 콩 발효식품의 영양가가 더해진다. 고춧가루는 톡 쏘는 매운 맛과 향, 그리고 붉은 빛을 준다.

이렇게 매력 있는 고추장이지만, 나는 아직도 고추장을 담글 때마다 긴장한다. 여러 가지 재료 하나하나가 잘되고 그게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하니까. 고추장에는 들어가는 재료가 많다. 그 재료를 손수 자급한다면 일이 만만치 않다. 첫해 보리와 밀을 길러 다음해 초여름 거두어 늦가을에 엿기름을 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고추장을 담그고 익혀서 먹어야 하니 맨 처음 보리씨를 뿌린 때로부터 고추장을 떠먹기까지 햇수로 3년 걸리는 셈이다. 대신 내 손으로 고추장거리를 자급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고추장은 입맛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법을 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료가 무엇이든 고추장은 전분의 단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메줏가루의 고소한 맛을 잘 섞은 후 소금으로 간을 해서 발효시킨 양념이다. 나는 찹쌀 조청을 끓여 고추장을 담근다. 한데 이 조청을 만드는 게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만일 질 좋은 찹쌀조청을 구할 수 있다면 여기에 같은 양의 청주나 소주를 부어 묽게 만들어 고추장을 담글 수도 있다. 이렇게 고추장 재료를 다 사서 모아놓고 꿀병 하나 채울만한 작은 양만 담근다면 10분 만에도 담글 수 있다.

▣ 엿기름 이해하기

우리 시댁은 경북 상주다. 시집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어머니께서 나더러 '질금'을 가져오라 하셨다. 나는 질금이 기름인줄 알고 "이거요?" 하며 참기름 병을 들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콩나물'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질금'은 그러니까 '싹'이라는 뜻이겠다. '엿질금'은 엿을 만드는 싹, 표준어로는 '엿기름'이다. 곡식을 익히면 전분이 된다. 이 곡식의 전분을 단맛이 나게 삭히는 성분이 디아스타제인데, 디아스타제 성분의 효소가 다름 아닌 '곡식의 싹'이다. 엿기름은 보통 밀이나 겉보리를 싹틔워 만든다.

이 보리싹을 말리면 엿기름

이 보리싹을 말리면 엿기름

엿기름으로 만든 식품에는 식혜와 조청(엿)이 있다. 식혜와 엿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식혜는 고두밥을 엿기름물에 삭힌 다음 팔팔 끓였다가 식혀서 먹는다. 조청은 밥을 엿기름에 삭힌다는 점은 비슷하나, 밥알이 다 삭은 뒤 그걸 고운 베보자기에 짜 쌀알 껍질은 걸러내고, 맑은 물을 달인다. 조청이 바로 물엿이고 이 물엿을 좀 더 달이면 엿(갱엿)이 된다. 고추장 조청은 찹쌀, 고구마, 밀가루, 그리고 보리를 재료로 만들 수 있고, 재료에 따라 보리고추장, 찹쌀고추장, 밀가루고추장이라 한다.

▣ 고추장 재료 살펴보기

• 엿기름
한 해 겉보리나 밀을 농사해 하지에 거두었다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싹을 내어 말린다. 싹이 얼면서 마르면 맛이 좋기 때문이다. 잘 말린 엿기름은 그 뿌리를 잘 비벼 턴 뒤, 다시 바싹 말려 방앗간에서 거칠게 빻아 온다. (엿기름 기르는 법은 7월 요리 참고)

고추장과 들어가는 재료

고추장과 들어가는 재료

• 메줏가루
고추장에 들어가는 메줏가루 역시 만드는 방법이 여러 가지다.

1) 메주를 빻아서 쓸 수가 있다.
2) 고추장용 메주를 띄운다. 고추장용 메주는 콩의 1/3 정도의 밀이나 쌀을 한데 섞어 무르게 삶아서 주먹만 하게 뭉쳐 띄운다. 그걸 잘 말려 망치로 두들겨 부수어 방앗간에서 곱게 간다.
3) 청국장 가루를 쓸 수도 있는데 여러 가지 재료와 어울려 청국장 가루가 가진 퀴퀴한 향은 사라지고 감칠 맛이 뛰어난 고추장이 된다.
4) 된장을 갈아 넣을 수 있다.

• 고춧가루
고추장용 고추는 아주 곱게 간다. 그래야 고추장이 잘 버무려지기 때문인데, 고추를 곱게 갈기 위해서는 먼저 잘 말려야 한다. 비닐봉지 속에서 따글따글 소리가 날 정도로. 고추장용 고춧가루는 맑은 날 빻아야 좋다. 비가 오는 궂은 날에는 곱게 빻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 찹쌀
하루 전에 잘 씻어 물에 불린다.

▣ 고추장 담그기

고춧가루 3킬로그램을 담그면 4인 가족이 일 년쯤 먹을 만하니, 이걸 기준으로 잡는다.

준비물 : 고춧가루 3킬로그램, 메주(청국장)가루 1.5킬로그램, 찹쌀 8킬로그램, 엿기름 2킬로그램(엿기름이 좋아야 전분을 잘 삭히니 엿기름 질에 따라 양을 조절한다.), 굵은소금 1킬로그램(2~3컵), (고춧가루:메줏가루:소금=6:3:2), 물 36리터(1.8리터 페트병으로 20병)

1. 찹쌀로 조청 끓이기

• 원리 이해
가마솥에 찹쌀로 고두밥을 한다. 밥이 다 되면 아궁이에서 장작을 빼고 잉걸불만 살려 불을 약하게 하고, 찬물을 넣고 밥을 고루 저어 밥물이 60도 정도가 될 만큼 만다. 여기에 엿기름가루를 넣고 뚜껑을 닫고 삭힌다. 삭히는 온도는 60도 정도(전기밥솥 보온 온도)로 한다. 불을 꺼뜨리지 말고 잔불이 살아 있게 하면서 온도를 맞춘다. 60도에서 6~7시간이 지나면 밥알이 삭는다. 식혜 냄새가 나면서 위에 맑은 물이 올라오고, 밥알이 동동 뜬다. 여기까지가 삭히는 과정.

이제부터 조청 고으기. 밥이 삭은 걸 베보자기에 넣고 짜낸다. 보자기 안에 남은 껍질은 걸러 버리고, 맑은 물만 모은다. 이것이 엿물이다. 엿물을 밑이 두터운 그릇에 넣고 팔팔 끓이면서 오래 곤다. 6~9시간 고면 어느 순간 빛깔이 검붉게 바뀌고, 거품이 일며 공기방울이 터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래알만 하다가 점점 커져 조개만 한 거품이 되면 물엿. 이 물엿을 찬물에 한 방울 떨어뜨리면 엉기고 식으면서 걸쭉한 물엿이 된다. (*엿으로 고려면 거품이 대접만 하게 커지도록 고면 된다고 한다.)

조청

조청

조청의 아름다움

조청의 아름다움

• 응용(찹쌀가루로 고추장 조청 끓이기)
보통 가정에서는 찹쌀가루로 고추장용 조청을 끓인다. 이 방법으로 엿이 되지는 않지만, 고추장을 담그는 데는 훨씬 손쉬운 방법이다. 쌀을 짜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넣으므로 영양이 살아 있는 고추장용 조청이 된다. 찹쌀을 물에 하룻밤 불린 뒤 갈아온다. 솥에 물을 한 말 반 정도 넣고 불을 물을 팔팔 끓였다가 미지근하게(60도) 식힌다. 엿기름 가루를 넉넉하게 큰 베보자기에 넣고 꼭 여민 뒤 데워진 물 속에 넣어 주물러가며 엿기름물을 우린다. 1~2시간 정도.

엿기름 우리기

엿기름 우리기

이렇게 해서 솥에 기름물이 뽀얗게 우러나오면 엿기름가루가 들은 베보자기는 건져 내고, 솥 안에 찹쌀가루를 풀어 넣고 젓는다.

찹쌀가루 풀기

찹쌀가루 풀기

이때 밑불을 잘 조절해 솥의 온도를 50~60도로 유지하면 찹쌀이 더 잘 삭는다. 잘 삭을수록 고추장 조청이 잘 고아진다.
찹쌀가루가 삭아 위에 맑은 물이 생기고 식혜냄새가 나면 잘 저어가며 불을 세게 때 팔팔 끓이다가, 불을 줄여 은근히 곤다. 중간중간 눌지 않도록 저어 준다. 4~5시간 고아 엿물이 발그스레해지고 끈적끈적 찰기가 생기면 다 된 것이다.

고추장 조청 달이기

고추장 조청 달이기

2. 고추장 버무리기

조청이 다 되었으면 60도 아래로 식힌 뒤, 고추장을 버무린다. 큰 그릇에 조청을 담고, 그 다음 메줏가루를 넣고,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으며 농도를 맞춘다. 이때 고운체에 받치면 고루 섞기 좋다. 잘 저을수록 좋다.

고춧가루를 체에 밭쳐서 골고루 뿌리는 모습

고춧가루를 체에 밭쳐서 골고루 뿌리는 모습

어느 정도 섞어지면 하룻밤 놔두어 가루들이 물기를 제대로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농도를 맞추며 잘 저어 준다. 가루가 불어 젓는 데 약간 힘이 들어갈 정도가 적당하다. 농도가 맞으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루 섞어 준 다음 잘 식힌다.

소금 간

소금 간

다 식으면 준비한 항아리에 넣고 베보자기를 위에 씌운다. 항아리는 큰 항아리 하나에 담는 것보다 작은 항아리 여러 개에 나누어 담고, 담을 때는 항아리 아구리까지 채운다.

고추장 항아리에 베보자기 씌운 모습

고추장 항아리에 베보자기 씌운 모습

고추장은 종합예술작품이라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들 수 있다. 매실살을 성기게 갈아 넣어 매실이 씹히는 매실고추장, 홍시나 복숭아 토마토를 달여 넣은 과일고추장도 있다. 생강즙이나 마늘을 갈아 넣어 양념고추장으로 응용할 수 있다.

ㆍ 농도를 맞출 때 마지막에 매실효소를 넣어 주면 고추장이 향긋하다.
ㆍ 소주를 넣어 주면 고추장이 나중에 끓어 넘치지 않는다.

3. 고추장 관리

항아리 아구리에 베보자기를 씌운 뒤, 햇살과 바람이 통하게 해 주며 익힌다. 한 달에서 두 달 지나 고추장이 익으면 고추장 위에 투명 랩을 씌워 마르지 않게 하거나,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좋다. 고추장은 장과 달리 일 년 어느 때고 담글 수 있다. 또 묵히면 맛이 떨어진다. 그러니 한번에 많이 하기보다 해마다 만들어 먹는 게 좋다. 말라버린 고추장이 있으면 매실효소를 거른 매실살을 위에 얹어주거나 조청을 부으면 며칠 뒤 물러진다. 이때 고루 섞어 주면 촉촉해진다.

고추장

고추장

매실 얹은 고추장

매실 얹은 고추장

고추장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경우

고추장을 담가 발효시킨다고 바깥에 두면 더운 날 부글부글 끓어 넘칠 수가 있다. 그 까닭은

① 간이 싱거울 경우
② 조청이 충분히 달여지지 않았을 경우
③ 그 밖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물이 중간에 들어갔을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두말할 필요없이 고추장을 제대로 담가야 한다. 그리고 몇 가지 요령이 있다.

첫째 추운 겨울에 담가 익히면 좋다.
둘째 고추장을 담글 때 청주나 소주를 넣어 주는 방법이 있다.
셋째 고추장이 한 달 숙성 되고 날이 더워지면 냉장고에 넣고 먹는다.

만일 끓어 넘치기 시작하면 냉장고에 넣어 식히면 가라앉는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거나 양이 많아 냉장고에 다 넣을 수 없다면 고추장을 쏟아서 달인 뒤 식혀서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 고추장은 항아리에서 퍼내 다른 용기에 담으면 끓어 넘치기 쉽다. 여행가서 먹으려고 고추장을 싸갔다가 고추장이 폭발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는 고추장을 볶아서 가져가곤 한다. 옮겨 담은 고추장은 냉장고에 넣고 하루 이틀 숨을 죽인 뒤 먹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