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3월 요리)
고추장
고추장은 콩 발효식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양념으로 '종합예술식품'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밀보리로 엿기름을 내고, 그 엿기름에 찹쌀을 삭혀 조청을 끓여 단맛을 낸다. 가볍지 않으면서 깊고 은근한 단맛을. 여기에 콩으로 쑨 메주의 구수한 맛과 콩 발효식품의 영양가가 더해진다. 고춧가루는 톡 쏘는 매운 맛과 향, 그리고 붉은 빛을 준다.
이렇게 매력 있는 고추장이지만, 나는 아직도 고추장을 담글 때마다 긴장한다. 여러 가지 재료 하나하나가 잘되고 그게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하니까. 고추장에는 들어가는 재료가 많다. 그 재료를 손수 자급한다면 일이 만만치 않다. 첫해 보리와 밀을 길러 다음해 초여름 거두어 늦가을에 엿기름을 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고추장을 담그고 익혀서 먹어야 하니 맨 처음 보리씨를 뿌린 때로부터 고추장을 떠먹기까지 햇수로 3년 걸리는 셈이다. 대신 내 손으로 고추장거리를 자급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고추장은 입맛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법을 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료가 무엇이든 고추장은 전분의 단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메줏가루의 고소한 맛을 잘 섞은 후 소금으로 간을 해서 발효시킨 양념이다. 나는 찹쌀 조청을 끓여 고추장을 담근다. 한데 이 조청을 만드는 게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만일 질 좋은 찹쌀조청을 구할 수 있다면 여기에 같은 양의 청주나 소주를 부어 묽게 만들어 고추장을 담글 수도 있다. 이렇게 고추장 재료를 다 사서 모아놓고 꿀병 하나 채울만한 작은 양만 담근다면 10분 만에도 담글 수 있다.
▣ 엿기름 이해하기
우리 시댁은 경북 상주다. 시집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어머니께서 나더러 '질금'을 가져오라 하셨다. 나는 질금이 기름인줄 알고 "이거요?" 하며 참기름 병을 들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콩나물'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질금'은 그러니까 '싹'이라는 뜻이겠다. '엿질금'은 엿을 만드는 싹, 표준어로는 '엿기름'이다. 곡식을 익히면 전분이 된다. 이 곡식의 전분을 단맛이 나게 삭히는 성분이 디아스타제인데, 디아스타제 성분의 효소가 다름 아닌 '곡식의 싹'이다. 엿기름은 보통 밀이나 겉보리를 싹틔워 만든다.
엿기름으로 만든 식품에는 식혜와 조청(엿)이 있다. 식혜와 엿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식혜는 고두밥을 엿기름물에 삭힌 다음 팔팔 끓였다가 식혀서 먹는다. 조청은 밥을 엿기름에 삭힌다는 점은 비슷하나, 밥알이 다 삭은 뒤 그걸 고운 베보자기에 짜 쌀알 껍질은 걸러내고, 맑은 물을 달인다. 조청이 바로 물엿이고 이 물엿을 좀 더 달이면 엿(갱엿)이 된다. 고추장 조청은 찹쌀, 고구마, 밀가루, 그리고 보리를 재료로 만들 수 있고, 재료에 따라 보리고추장, 찹쌀고추장, 밀가루고추장이라 한다.
▣ 고추장 재료 살펴보기
• 엿기름
한 해 겉보리나 밀을 농사해 하지에 거두었다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싹을 내어 말린다. 싹이 얼면서 마르면 맛이 좋기 때문이다. 잘 말린 엿기름은 그 뿌리를 잘 비벼 턴 뒤, 다시 바싹 말려 방앗간에서 거칠게 빻아 온다. (엿기름 기르는 법은 7월 요리 참고)
• 메줏가루
고추장에 들어가는 메줏가루 역시 만드는 방법이 여러 가지다.
1) 메주를 빻아서 쓸 수가 있다.
2) 고추장용 메주를 띄운다. 고추장용 메주는 콩의 1/3 정도의 밀이나 쌀을 한데 섞어 무르게 삶아서 주먹만 하게 뭉쳐 띄운다. 그걸 잘 말려 망치로 두들겨 부수어 방앗간에서 곱게 간다.
3) 청국장 가루를 쓸 수도 있는데 여러 가지 재료와 어울려 청국장 가루가 가진 퀴퀴한 향은 사라지고 감칠 맛이 뛰어난 고추장이 된다.
4) 된장을 갈아 넣을 수 있다.
• 고춧가루
고추장용 고추는 아주 곱게 간다. 그래야 고추장이 잘 버무려지기 때문인데, 고추를 곱게 갈기 위해서는 먼저 잘 말려야 한다. 비닐봉지 속에서 따글따글 소리가 날 정도로. 고추장용 고춧가루는 맑은 날 빻아야 좋다. 비가 오는 궂은 날에는 곱게 빻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 찹쌀
하루 전에 잘 씻어 물에 불린다.
▣ 고추장 담그기
고춧가루 3킬로그램을 담그면 4인 가족이 일 년쯤 먹을 만하니, 이걸 기준으로 잡는다.
준비물 : 고춧가루 3킬로그램, 메주(청국장)가루 1.5킬로그램, 찹쌀 8킬로그램, 엿기름 2킬로그램(엿기름이 좋아야 전분을 잘 삭히니 엿기름 질에 따라 양을 조절한다.), 굵은소금 1킬로그램(2~3컵), (고춧가루:메줏가루:소금=6:3:2), 물 36리터(1.8리터 페트병으로 20병)
1. 찹쌀로 조청 끓이기
• 원리 이해
가마솥에 찹쌀로 고두밥을 한다. 밥이 다 되면 아궁이에서 장작을 빼고 잉걸불만 살려 불을 약하게 하고, 찬물을 넣고 밥을 고루 저어 밥물이 60도 정도가 될 만큼 만다. 여기에 엿기름가루를 넣고 뚜껑을 닫고 삭힌다. 삭히는 온도는 60도 정도(전기밥솥 보온 온도)로 한다. 불을 꺼뜨리지 말고 잔불이 살아 있게 하면서 온도를 맞춘다. 60도에서 6~7시간이 지나면 밥알이 삭는다. 식혜 냄새가 나면서 위에 맑은 물이 올라오고, 밥알이 동동 뜬다. 여기까지가 삭히는 과정.
이제부터 조청 고으기. 밥이 삭은 걸 베보자기에 넣고 짜낸다. 보자기 안에 남은 껍질은 걸러 버리고, 맑은 물만 모은다. 이것이 엿물이다. 엿물을 밑이 두터운 그릇에 넣고 팔팔 끓이면서 오래 곤다. 6~9시간 고면 어느 순간 빛깔이 검붉게 바뀌고, 거품이 일며 공기방울이 터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래알만 하다가 점점 커져 조개만 한 거품이 되면 물엿. 이 물엿을 찬물에 한 방울 떨어뜨리면 엉기고 식으면서 걸쭉한 물엿이 된다. (*엿으로 고려면 거품이 대접만 하게 커지도록 고면 된다고 한다.)
• 응용(찹쌀가루로 고추장 조청 끓이기)
보통 가정에서는 찹쌀가루로 고추장용 조청을 끓인다. 이 방법으로 엿이 되지는 않지만, 고추장을 담그는 데는 훨씬 손쉬운 방법이다. 쌀을 짜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넣으므로 영양이 살아 있는 고추장용 조청이 된다. 찹쌀을 물에 하룻밤 불린 뒤 갈아온다. 솥에 물을 한 말 반 정도 넣고 불을 물을 팔팔 끓였다가 미지근하게(60도) 식힌다. 엿기름 가루를 넉넉하게 큰 베보자기에 넣고 꼭 여민 뒤 데워진 물 속에 넣어 주물러가며 엿기름물을 우린다. 1~2시간 정도.
이렇게 해서 솥에 기름물이 뽀얗게 우러나오면 엿기름가루가 들은 베보자기는 건져 내고, 솥 안에 찹쌀가루를 풀어 넣고 젓는다.
이때 밑불을 잘 조절해 솥의 온도를 50~60도로 유지하면 찹쌀이 더 잘 삭는다. 잘 삭을수록 고추장 조청이 잘 고아진다.
찹쌀가루가 삭아 위에 맑은 물이 생기고 식혜냄새가 나면 잘 저어가며 불을 세게 때 팔팔 끓이다가, 불을 줄여 은근히 곤다. 중간중간 눌지 않도록 저어 준다. 4~5시간 고아 엿물이 발그스레해지고 끈적끈적 찰기가 생기면 다 된 것이다.
2. 고추장 버무리기
조청이 다 되었으면 60도 아래로 식힌 뒤, 고추장을 버무린다. 큰 그릇에 조청을 담고, 그 다음 메줏가루를 넣고,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으며 농도를 맞춘다. 이때 고운체에 받치면 고루 섞기 좋다. 잘 저을수록 좋다.
어느 정도 섞어지면 하룻밤 놔두어 가루들이 물기를 제대로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농도를 맞추며 잘 저어 준다. 가루가 불어 젓는 데 약간 힘이 들어갈 정도가 적당하다. 농도가 맞으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루 섞어 준 다음 잘 식힌다.
다 식으면 준비한 항아리에 넣고 베보자기를 위에 씌운다. 항아리는 큰 항아리 하나에 담는 것보다 작은 항아리 여러 개에 나누어 담고, 담을 때는 항아리 아구리까지 채운다.
고추장은 종합예술작품이라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들 수 있다. 매실살을 성기게 갈아 넣어 매실이 씹히는 매실고추장, 홍시나 복숭아 토마토를 달여 넣은 과일고추장도 있다. 생강즙이나 마늘을 갈아 넣어 양념고추장으로 응용할 수 있다.
ㆍ 농도를 맞출 때 마지막에 매실효소를 넣어 주면 고추장이 향긋하다.
ㆍ 소주를 넣어 주면 고추장이 나중에 끓어 넘치지 않는다.
3. 고추장 관리
항아리 아구리에 베보자기를 씌운 뒤, 햇살과 바람이 통하게 해 주며 익힌다. 한 달에서 두 달 지나 고추장이 익으면 고추장 위에 투명 랩을 씌워 마르지 않게 하거나,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좋다. 고추장은 장과 달리 일 년 어느 때고 담글 수 있다. 또 묵히면 맛이 떨어진다. 그러니 한번에 많이 하기보다 해마다 만들어 먹는 게 좋다. 말라버린 고추장이 있으면 매실효소를 거른 매실살을 위에 얹어주거나 조청을 부으면 며칠 뒤 물러진다. 이때 고루 섞어 주면 촉촉해진다.
고추장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경우
고추장을 담가 발효시킨다고 바깥에 두면 더운 날 부글부글 끓어 넘칠 수가 있다. 그 까닭은
① 간이 싱거울 경우
② 조청이 충분히 달여지지 않았을 경우
③ 그 밖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물이 중간에 들어갔을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두말할 필요없이 고추장을 제대로 담가야 한다. 그리고 몇 가지 요령이 있다.
첫째 추운 겨울에 담가 익히면 좋다.
둘째 고추장을 담글 때 청주나 소주를 넣어 주는 방법이 있다.
셋째 고추장이 한 달 숙성 되고 날이 더워지면 냉장고에 넣고 먹는다.
만일 끓어 넘치기 시작하면 냉장고에 넣어 식히면 가라앉는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거나 양이 많아 냉장고에 다 넣을 수 없다면 고추장을 쏟아서 달인 뒤 식혀서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 고추장은 항아리에서 퍼내 다른 용기에 담으면 끓어 넘치기 쉽다. 여행가서 먹으려고 고추장을 싸갔다가 고추장이 폭발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는 고추장을 볶아서 가져가곤 한다. 옮겨 담은 고추장은 냉장고에 넣고 하루 이틀 숨을 죽인 뒤 먹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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