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2월 요리)
장 담그기
장을 담그는 일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소금물에 메주를 띄우는 일이니까.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발효음식이 그렇듯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손맛을 가져야 한다. 나 역시 그동안 장을 담그며 여러 가지 실수를 했다. 어른이 계셔서 보고 배운 것도 아니고 책을 보거나 귀동냥한 지식으로 담갔으니 그 맛이 오죽할까?
그런 장을 타박하지 않고 잘 먹어 준 우리 식구들이 고맙기만 하다. 메주가 제대로 안 띄워졌다고, 장맛이 마땅치 않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자꾸 해보기를 권한다. 장맛을 보면 그 집안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맛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 실제 내 손으로 장을 담가보면서 그 말을 실감했다. 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내가 해왔던 시행착오를 정리해 처음 담가 보는 이한테 도움을 주고자 할 뿐이다.
장은 우리 민족이 살던 한반도와 만주 땅이 원산인 콩 발효식품이다. 콩은 우리 민족이 살던 한반도가 원산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민족이 콩 발효식품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장은 사람에게 필요한 소금을 꾸준히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콩을 발효시킨 식품으로서 풍부한 영양을 공급해 주며, 우리 음식에 맛을 더해 주는 나무랄 데 없는 식품이다. 콩 발효식품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채식문화에서 참으로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다. 우리나라의 장과 비슷한 것으로 중국에는 춘장, 일본에는 미소와 나토가 있다. 인도네시아에도 콩 발효식품이 있다고 한다.
▣ 장 담그는 준비
• 항아리
먼저 장 담그는 항아리를 정하자. 한번 장항아리로 정하면 거기엔 장만 담는 게 좋다. 그래야 맛이 변하지 않는다. 김치를 담았던 항아리는 쓰지 않는다. 항아리를 장 담그기 며칠 전에 깨끗이 씻은 다음 맹물을 가득 담아 하룻밤을 재우며 우려낸다. 장 담그기 하루 전날, 뒤집어 말리고 소독을 한다.
항아리를 옆으로 누이고 그 속에 볏짚을 태우며 굴려 준다. 항아리 밑바닥으로 연기가 들어가게 하려면 항아리 아래를 조금 든다. 항아리 옆을 소독하려면 항아리를 옆으로 누여 불기에 항아리가 따끈하게 데워지면 굴리면 된다. 볏짚에서 나오는 연기로 소독을 하는 것이다. 소독이 끝나면 항아리 속에 남아 있는 재와 그을음을 깨끗이 닦아낸다.
• 메주
메주는 겉은 마르고 속은 무른 게 좋다. 콩을 삶아 메주를 빚어 띄우면 곰팡이들이 모인다. 곰팡이 가운데는 사람에게 이로운 곰팡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잡균도 있다. 메주에 이로운 곰팡이가 얼마나 많이 모이고, 또 잡균이 섞였는가에 따라 장의 맛과 품질이 달라진다. 메주에 핀 곰팡이 가운데 하얀 곰팡이와 노란 곰팡이는 좋은 것이다. 파란곰팡이는 메주가 발효할 때 온도가 낮아서 생기는 것이다. 검은곰팡이는 좋지 않은 것이고, 빨간 곰팡이가 핀 것은 먹으면 안 된다. 메주는 먼저 마른 솔로 곰팡이를 털어내고, 맑은 물에 씻어 햇살에 말린다.
항아리 공부
독은 중 항아리 이상 큰 항아리
단지는 고추장을 담는 작은 항아리
오뉴월 독은 장마철 독이라 잘 마르지 않는 상태에서 구워낸 것이기 십상이다. 이것보다는 늦가을이나 겨울에 구은 독을 최고로 친다. 지금 시중에 나오는 항아리는 세 가지다.
1) 광명단을 바른 번쩍번쩍한 항아리. 이 광명단 항아리는 사람이 먹는 음식물을 담지 않는 게 좋다.
2) 천연유약으로 구은 항아리. 이 단지는 실용성이 높은 단지로 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새로 마련하여 잘 길들여 쓰면 내 손맛을 살릴 수 있다.
3) 장작불에 잿물을 유약 삼아 구은 장작 가마 항아리가 있다. 장작 가마 항아리는 질은 아주 좋지만 값이 비싸다. 대를 물려 쓴다는 마음으로 마련해 소중하게 다루면 좋다. 독은 볏짚불로 소독하고, 단지는 유리병을 삶듯 찬물에 넣고 삶아내서 소독한다.
• 소금준비
소금은 최소한 한 해 이상 묵은 것이 좋다. 미리 간수를 빼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금이 좋아야 장맛이 좋으므로 맑은 바다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구한다. 급하게 구한 소금이라면 맹물에 한 번 씻은 뒤 써도 좋지만 쓴 맛이 빠지는 대신 줄어드는 양이 너무 많다.
• 소금물 풀기
장 담기 하루 이틀 전에 소금물을 먼저 풀어둔다. 이렇게 미리 풀어놔야 알뜰하게 다 풀리고, 찌꺼기가 가라앉기 때문이다. 웃물을 쓰고 아래 가라앉은 찌꺼기는 다 버린다. 요리책에는 메주콩 1말에 물 1동이(18리터)를 쓰라고 되어 있다. 실제는 메주 위로 소금물이 넉넉히 차고, 장항아리 아구리에 찰랑찰랑 할 정도.
소금은 음력 정월에는 작은 3되, 2월에는 작은 4되, 3월에는 작은 5되로 한다. 이렇게 날이 더워짐에 따라 소금양도 늘어난다. 되도록 정월에 담는 게 좋다. 정월장은 소금물을 푼 뒤 달걀을 넣어 달걀이 동전만큼 물 위로 뜨면 알맞다. 그림에서처럼 정월장은 달걀이 선 채 백 원짜리 동전 만하게 얼굴을 내밀고, 삼사월장은 달걀이 누워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옆구리를 내밀면 알맞은 농도라고 본다.
나는 소금물을 넉넉히 그러니까 장 담글 소금물의 1.5배쯤 푼다. 장을 담그고 남는 소금물은 다른 항아리에 담아 장항아리 곁에 놓고 장물이 졸아들면 아구리까지 붓고, 묵은 된장에 부어 된장을 촉촉하게 해 준다.
▣ 장 담그기
준비물 : 메주 한 말, 20리터들이 항아리, 소금물 18리터, 마른고추 몇 개, 대추 몇 알, 참숯 두어 개, 대나무 가지(소나무 가지) 서너 개.
장 담그기는 맑은 날에 한다. 미리 소금물을 풀고 다른 준비도 해 놓고 기다리다가 맑은 날에 담근다. 예로부터 장은 말(午)날이나 우수 날 담그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니 정월에는 장 담그기 좋은 날이 말날 두 번과 우수 하루, 이렇게 세 번 돌아오는 셈이다.
항아리에 먼저 메주를 넣고, 메주가 뜨지 않도록 대나무나 솔가지를 위에 걸쳐 준다. 그리고 소금물을 붓는다. 장항아리 아구리까지 물이 찰랑찰랑 차는 게 좋다. 마른 고추 몇 개와 대추를 한 움큼 넣고, 참숯도 넣어 준다. 장맛이 좋은 묵은 장이 있으면 그걸 모(母)장으로 삼아 장항아리에 한 공기 정도 부어 준다. 그러면 좋은 균이 옮겨가 장맛이 좋아진다.
뚜껑을 사흘쯤 덮어 푹 잠을 재운 뒤, 무명천이나 한지를 고무줄로 여며 덮고 해가 나면 열어 주고 저녁에는 닫는 정성이 또 40일. 장은 정성으로 준비하고 정성으로 익는다. 유리로 만든 항아리 뚜껑이 있으면 편리하다. 집안에 따라 장에 여러 가지를 넣는다. 꿀을 한 종지 끓여 넣기도 하고, 북어를 넣기도 한다.
이것저것 해 보니, 기본에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장항아리를 들여다보아 장물이 졸아들거나, 곰팡이가 생겼으면 따로 남겨둔 소금물을 항아리 아구리까지 더 부어 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물 위에 골마지가 필 수 있다. 왜 그럴까 오랫동안 궁금했다. 화천 '시골집'의 이애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메주에 있는 잡균이 올라와 그렇다는 걸 알았다. 흰곰팡이는 건져내면 된다. 검은곰팡이가 생기면 장맛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장을 가르고 장물을 달인다.
▣ 장 가르기
준비물 : 된장 항아리, 베보자기와 고무줄
장항아리에서 메주(건대기)와 장물(메주가 우러난 소금물)을 따로 가른다. 메주는 된장이 되고, 장물은 조선장이 된다. 소금물에 메주를 담근 채로 오래 두면 둘수록 장물 맛은 좋아지고 된장 맛은 줄어든다. 우리 마을은 정월장을 담근 지 40일이 지나면 장을 가른다. 화천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25일이면 장 가르기를 한단다. 80일 지나 장을 가른다는 자료도 있다. 장을 담근 지 얼마 만에 장을 가를까는 자기 형편에 따라 정한다.
• 장물
장을 가르며 나온 메주가 우러난 소금물이 장물이다. 이 장물은 달이는 방법과 달이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법이 있다. 장물이 발효식품이기에 장을 달이지 않고 그대로 두면 더욱 좋겠지만, 장을 가르기 전에 골마지(잡균곰팡이)가 끼면 달일 수밖에 없다.
장을 달일 때는, 장물을 고운체에 받쳐 맑은 물만 솥에 붓고 달인다. 팔팔 끓이지 말고 80도의 은근한 불에 오래 달이는 게 좋다.
오래 달이면 달일수록 상하지 않으므로 서너 시간 은근하게 달인다. 장물을 식혀 항아리에 담는다. 장물은 바로 먹을 수 있고, 묵히면 묵힐수록 좋다. 해가 좋을 때면 뚜껑을 열어 해를 보인다.
장의 맛 공부
장물에는 네 가지 맛이 있다고 한다.
· 단맛-메주 안에 있는 전분질에서 우러나온 맛
· 구수한 감칠맛-콩단백이 효소의 분해 작용으로 아미노산으로 바뀌면서 나는 맛
· 신맛-당질과 단백질이 유기산을 만들어 생긴 맛
· 향기-당질이 알코올로 바뀌면서 나오는 향
• 된장 담그기
걸러낸 메주는 손으로 으깨서 항아리에 담고 꼭꼭 눌러 준다. 맨 윗부분은 좀 더 곱게 으깨 편편하게 해 준다. 집안에 따라 콩이나 보리를 삶아 넣기도 하는데 장을 가르는 초여름보다는 초겨울인 11월에 섞는 게 상할 염려가 없어서 좋다.
항아리에 된장을 꼭꼭 눌러 담고 된장 위로 장물이 손등에 찰랑찰랑하게 올라올 정도가 좋다. 보통은 장을 가르며 나온 장물을 여기 부어 주는데, 이때만큼은 맹물을 부어도 좋다고 한다. 해가 나면 해를 보이고, 저녁에는 뚜껑을 닫는다. 이때 불순물이 위로 올라올 수 있는데, 이것 역시 메주에 있던 잡균이다. 마른 수저로 이 부분만 걷어내 준다. 메주가 잘 띄워져야 장물에 이어 된장까지 제대로 담가진다.
책에는 한 달이 지나면 먹을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해 담근 햇된장을 먹어보면 맛이 쓰겁다. 한 해 묵혀 이듬해부터 맛이 좋아진다. 우리는 3년 묵혀 먹는데, 그냥 묵히는 게 아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메주 끓일 때 나오는 콩 진물, 촉촉한 생청국장을 띄워 넣고 고루 뒤섞어 주며 재발효시킨다. 된장을 촉촉하게 유지하기 위해 봄이면 장 담그고 남은 소금물을 부어 고루 뒤섞는다. 이렇게 장을 3년 재발효시키면 날로 먹어도 입에 착 붙을 만큼 단 된장으로 발효된다.
된장의 영양 공부
된장은 콩 발효식품이다. 콩을 원료로 하지만 다른 콩 음식과 달리 발효식품에만 있는 영양분이 많다. 그 가운데 현대과학이 찾아낸 된장의 영양을 공부해 보자.
된장 속에 들어 있는 지방산인 리놀레산은 항돌연변이 효과가 높아 돌연변이세포인 암을 예방할 수 있다. 또 된장에는 면역증강물질인 B림프구를 늘리는 힘도 있다고 한다. 콩에 들어 있는 이소플라본(기름형성과 흐름을 줄이는 배당체)은 된장으로 발효되면서 아글리콘으로 변한다. 이것은 우리 몸에 잘 흡수되어 항암 작용을 하고 골다공증도 예방하는 유용생리활성물질로 변한다.
▣ 장 관리하기
장을 담그고 나서 1~3년은 먹으니 장을 정성으로 돌보아야 한다. 정성을 기울이려면 자주 들여다본다. 된장 거죽이 마르면서 공기에 노출되면 된장 위에 골마지가 낀다. 골마지가 끼면 그 부분을 물기 없는 수저로 걷어내고 위아래를 고루 치댄 뒤 먹는다. 이때 위에다 굵은 소금을 뿌려 주지 않는 게 좋다. 된장이 짜지기만 할 뿐, 골마지가 생기는 원인은 해결되지 않으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골마지를 없애려면 된장 윗부분을 늘 촉촉하게 유지하고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 준다.
내가 해 본 방법을 소개한다. 햇된장은 중간에 떠먹지 않고 발효를 시키는 된장이다. 된장을 가르고 한달쯤 지나 위로 올라왔던 물기가 어느 정도 잦아드는 초여름, 그 위에 고추씨가루를 2센티미터쯤 살살 펴서 얹는다. 그러면 고추씨가루가 막을 형성해 된장이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 준다. 이 고추씨가루는 나중에 된장에 넣고 고루 뒤섞으면 된장에 칼칼한 맛을 준다. 고추씨가루 대신 표고버섯가루를 얹어도 좋다고 한다.
묵은 된장 그러니까 중간 중간 떠서 먹는 된장에는 매실효소를 담그고 나온 매실 건더기를 얹어 준다. 매실은 방부작용이 강한데다 설탕에 절여진 매실은 된장과 공기 사이에 막을 형성하므로 된장을 상하지 않게 한다. 이 매실은 나중에 걷어내고 먹는다. 그러려면 매실을 고운 베 주머니에 담아 된장 위에 얹어 놓는 게 좋다.
된장에 구더기가 생겼다면?
구더기는 파리의 애벌레다. 그러니 파리가 알을 슬지 못하게 잘 관리해야 한다. 파리는 작은 틈으로도 잘 들어간다. 망사망은 소용없다. 아이들 내복처럼 올이 촘촘한 천을 아구리에 덮고 고무줄로 묶어 주어야 한다. 유리뚜껑을 씌우려면 뚜껑 아래 달린 고무 밴드가 항아리 아구리에 딱 맞도록 씌운다. 고무 밴드가 낡았거나 뚜껑이 헐거우면 소용없다. 만일 구더기가 생겼다면 콩잎을 덮어 주자. 그러면 구더기가 위로 올라오는데, 그걸 걷어내고 장관리를 다시 잘하면 된다. 하지만 맛은 아무래도 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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