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의 보사 및 시침 요령
내경 보법, 침 돌리는 단계 없다
6번 또는 9번의 횟수로 보사 말하는 건 ‘넌센스’
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 왼손잡이의 보사
“보사법이 혈위보다 중요하다.
보사와 좌우의 중요도는 판가름하기 어려우니 편의상 공동 2위로 두자.
그럼 1위는? 바로 시간이다”
침을 놓아서 치료하는 전(全) 과정에서 치료효과를 발휘하게 하는 여러 조건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혈위(穴位)가 효과에 미치는 순위는 어떨까?
독자들께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리라 짐작된다. 아무래도 침을 놓는 자리니 혈위가 1위?
그러나 이런저런 정황을 살펴보면 1위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잘 해야 3위나 4위 정도가 아닐까 싶다.
< 정해침구학>(최용태 저)을 보자.
침구 관련 역대 의서의 내용을 비교해 볼 수 있게 만든 좋은 책이다.
228쪽에 보면 합곡혈(合谷穴)의 주치가 정리돼 있다.
[주치]: 고혈압, 편마비, 낙태 및 안태, 사지마비, 소화불량, 치신경통, 편도선염, 급만성위염, 안면신경마비, 체침마취에 있어서 상지부 상용혈. 아니, 낙태(落胎)면 낙태, 안태(安胎)면 안태지 정 반대되는 낙태와 안태가 합곡혈의 작용으로 버젓이 올라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낙태와 안태처럼 정 반대되는 주치가 1개의 혈에 공존하는 것은 우리에게 침의 효과에서 혈의 선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합곡에 행침한 다음 어떨 때는 안태가 되고 어떨 때는 낙태가 된다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침을 놓을 엄두를 내기도 어려울 것이며 침술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치료법으로 등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침의 치료효과에서 혈보다 우선한 게 뭘까 궁금해진다.
<황제내경>에서는 어디에 침을 놓을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보사(補瀉)라고 한다.
<영추․구침십이원>에서 “돌파리 의원은 어떤 병에 어떤 혈을 선택할가를 생각하지만 실력 있는 의사는 보사법을 고민한다(粗守形, 上守神)”고 명시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안태와 낙태 모두를 합곡혈의 주치(主治)로 기재한 점이다.
합곡의 부작용이나 금기에 낙태가 해당한다면 오치(誤治)에 해당하겠지만 주치란 것은 의도적으로 그런 효과를 낸다는 것으로 시술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시술자의 의도가 반영된 보사법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결국 치료에 있어서 보사법이 혈위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혈위보다 더 중요한 것에 또 무엇이 있을까.
인체의 정중선에 있는 임맥과 독맥을 제외하면 똑같은 혈자리가 인체의 좌우에 각각 있다. 합곡혈도 2개고, 태충혈도 2개다.
그러면 좌측의 합곡혈과 우측의 합곡혈의 효과가 똑같을까?
만약 같다면 양 쪽의 합곡혈에 모두 침을 놓으면 효과가 2배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같은 효과라면 한 쪽만 놓으면 되지 굳이 두 군데를 다 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원전에서는 사람마다 좌우의 영위성쇠가 선천적으로 다르며 침을 놓기 전에는 상하좌우의 혈기 소재를 잘 살펴서 약한 쪽에 침을 놓아야 한다고 천명한다.
즉 사람에 따라서 왼 쪽이나 오른 쪽의 합곡에만 침을 놓아야 효과가 난다는 말이다. “
보사법이 혈위보다 중요하다. 보사와 좌우의 중요도는 판가름하기 어려우니 편의상 공동 2위로 두자.
그럼 1위는? 바로 시간이다”
때문에 편도선이 부어서 온 환자에게 합곡혈에 행침하려고 할 때 왼쪽 합곡을 놓을지, 오른쪽 합곡을 놓을지의 좌우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혈위보다 보사가 중요한 것처럼 좌우가 더 중요한 사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보사와 좌우 중에서는 어떤 것이 더 중요할 지에 대해선 당장 판가름하기 어려우니 나중으로 넘기고 편의상 공동 2위 정도로 두자.
침의 효과를 결정 짓는 여러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것이 황제내경의 취지다.
아무리 혈위를 잘 선택하고 보사를 정확하게 한다고 해도 시간이 어긋나면 백병불치라고 하는 것이 <영추․위기행>편의 지침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침의 효과를 좌우하는 첫째 조건은 시간이 되겠다.
시간에 맞춰서 침을 놓아야 한다는 <내경>의 취지와 임상례는 여러 번 언급했으니, 이번에는 보사법 중 침을 돌리는 회수와 방향으로 보사를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외 여러 보사법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대지진(大指進), 대지퇴(大指退)의 침을 돌리는 방향으로 보사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오른손으로 침을 놓는다고 가정했을 때 엄지를 앞으로 미는 방향으로 침을 돌리면 보법이 되고 엄지를 뒤로 당기는 방향으로 돌리면 사법이 된다는 말이다.
원보방사라고 하는 이 방법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침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방향이 보법이 된다면 의사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방향일지 몰라도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왼쪽 합곡을 맞을 때와 오른쪽 합곡을 맞을 때 침이 돌아가는 방향이 반대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환자에게 똑같이 보법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반대로 왼손으로 침을 놓는 의사라면 오른손으로 침을 놓는 의사에게 맞춰야 할까 아니면 왼손의 자주성을 지켜서 오른손과는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할까?
오른손과 반대로 침을 놓더라도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왼쪽 합곡과 오른쪽 합곡을 맞을 때 반대로 돌기는 마찬가지다.
사법은 또 반대가 되니 혼란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보사법을 처음 언급한 <황제내경>을 보면 혼란이 단번에 해결된다.
<내경>에서는 침을 돌리는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다고 가르친다.
침을 놓으면 침의 특성상 침 주위로 기가 모이게 된다. 침 주위로 모인 기가 사기(邪氣)라면 침을 따라 빼내기 위해서 사기를 침에 착 달라붙게 할 목적으로 침을 돌린다.
그렇게 해서 사기를 침을 따라 빼내는 방법이 사법이다. 사법의 과정에는 침을 돌리는 단계가 있다.
반대로 정기(正氣)가 침 주위에 모이게 된 상황이라면?
침을 돌리다가 빼면 침에 정기가 달라붙어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보법을 쓰는데 정기를 빠져나오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경>에서는 보법의 수기법에 아예 침을 돌리는 단계가 없다.
그냥 가만히 놓아둘 뿐이다.
사정이 이러니 6번이나 9번의 횟수로 보사를 말하는 것은 더욱 넌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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