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ㅣ동서의학연구가 학창 시절에 한두 번 코피를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도 툭하면 코피를 쏟아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다. 코피는 좌우 비강(鼻腔;콧구멍)을 나누고 있는 콧속의 물렁뼈인 비중격(鼻中隔) 앞쪽의 혈관들이 충격 등의 이유로 터져서 발생한다. 콧속 혈관의 분포 특징은 비중격 앞쪽에 핏줄이 집중적으로 그물 같은 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의 경우에는 손이 쉽게 닿는 이곳을 반복하여 자극하기 때문에 코피가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성인인 경우에는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와 같은 순환기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또 신장질환이나 만성간질환, 유전성 혈관질환인 경우에도 출혈이 생긴다. 전통의학에서는 코피를 육혈(血)이라고 한다. 코피가 나는 것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우선 기(氣)가 허(虛)한 경우에 인체가 혈액을 제대로 거두어들이지 못해서 코피가 터진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마르고 식사 양도 적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소화력도 달려서 항상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영양분이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못해 기력이 달려서 늘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인체에 열(熱)이 많아도 코피가 잘 터진다. 양기(陽氣)가 위로 올라와서 주체할 수 없어 코를 통해 열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손자의 코피를 보고 ‘코 열이 터진다.’라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요즘은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육식이나 화학 첨가제로 가공된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섭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체내에 불순한 음식의 용해 물질이 쌓여 피가 탁혈과 독혈이 되면서 뜨거워진다. 그러면 냄비의 끓는 물이 넘치듯이 뜨거워진 피가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된다. 코피, 뇌출혈, 자궁출혈 등이 바로 그 예이다. 할머니들 말씀처럼 고혈압이나 뇌열(腦熱) 환자는 코피로 인해 득을 보는 경우가 많다. 성인들이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코피에 영향을 끼친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肝)의 기운이 뭉친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할 땐 뭉쳐진 간의 기운이 얼굴 등 인체 상부로 치솟아 코를 자극해서 피를 쏟게 한다. 평소 눈이 충혈되어 뻑뻑하다며 자주 문지르고, 뒷목도 뻣뻣해서 시간만 나면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서 잘 일어난다. 특히 고혈압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리 조심해야 한다. 옛 의서를 보면 『황제내경(黃帝內經)』의 <백병시생편(百病始生篇)>에서는 “양경락(陽經絡)이 상하면 혈액이 밖으로 흐르고 혈액이 밖으로 흐르면 육혈이 된다.” 했다. 『금궤요략(金櫃要略)』에서는 병자가 안면에 혈색과 한열이 없고 맥이 심현(沈弦)하면 육혈증이라고 했다. 또 『소씨병원(巢氏病源)』에서는 “폐의 기운이 코로 통하는데, 장부에 열이 있으면 열이 피를 뜨겁게 하여 넘쳐흐르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코피를 예방하려면 허약한 몸의 기운을 올려주고, 열이 많을 때는 열을 식혀 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몸에 진액을 공급하면 도움이 된다. 코피를 쏟는 순간에는 일단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붉은 피가 터지면 누구나 당황하기 쉬워 고개를 들고 콧등을 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가 목 뒤로 넘어가면 어린이의 경우 자칫 기도를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코피가 날 때에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고 코의 양쪽을 10분 정도 압박하면 대부분 지혈이 된다. 코피를 예방하는 전통의학 처방으로는 기(氣)를 보하는 ‘보중익기탕’이나 ‘귀비탕’이 있다. 또 열(熱)을 풀어주는 ‘생지황탕’, ‘가미지육탕’, ‘삼화탕’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필자는 ‘생지황탕’을 원인에 따라 약재를 가감해 많이 활용한다. 그 결과 치료가 잘 되고 재발률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에 대한 처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생지황탕]
▶ 처방 내용 : 생지황 30그램, 아교 9그램, 황금·측백엽·치자 각 6그램, 감초 3 그램 ▶ 가감법 : 실열증(實熱證)에는 대황·생(生)백모근·석고를 4그램씩 가미한다. 허열증(虛熱證)일 때는 생지황의 양을 9그램으로 줄이는 대신 황기와 백출을 6그램씩 가미한다. ▶ 복용법 : 아침저녁으로 한 첩씩 달여 식후 30분에 복용한다. ▶ 처방 풀이 : 상기 처방은 청영양혈(淸營凉血) 작용으로 사열(邪熱)을 없애 주는 생지황을 주된 약으로 사용하고 있다. 생지황은 온열이 영혈(營血)에 들어가든가 음액을 손상시키는 병증에 효능이 뛰어나다. 여기에 과로(過怒)로 상한 간(肝)의 기운을 풀어주는 아교와 감초를 가미하고, 지혈에 효과를 발휘하는 측백엽과 치자를 가미했다. 또 폐를 비롯한 장기의 열(熱)을 내려 주는 작용이 뛰어난 황금을 가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