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ㅣ동서의학연구가
습진(濕疹)은 피부가 짓무르고 갈라지는 증상이다. 표피가 몹시 가렵고, 벌겋게 붓거나 우툴두툴하게 부르튼다. 주로 머리, 얼굴, 목, 외음부, 팔다리 접히는 곳에 잘 생긴다. 처음에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염증성 홍반(紅斑)이 생기고, 이것이 점차 커지면서 좁쌀알이나 흰 쌀알 같은 삼출성(渗出性) 구진(丘疹)이 하나둘 돋기 시작한다. 긁으면 약간의 진물이 나오다가 물집이 생긴다. 그릇된 처치와 화학물질에 오염된 생활로 병증이 심해지면 수포가 터져서 진물이 흐르고, 피가 흐른다. 물집의 내용물은 처음엔 장액성(漿液性)이다가 점차 흐려지면서 고름으로 변한다. 가려움이 심하여 굵으면 고름이 터져 미란(靡爛)이 생기고 딱지가 앉는다. 모든 피부병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서양의학의 개념으로 보면 아토피피부염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실정에서 습진의 가장 큰 원인은 화학 독소다. 이런 사실은 화학 세제를 사용하는 주부에게서 손이 짓무르고 갈라지는 ‘주부 습진’이 빈발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화학 페인트와 화학 건축자재로 지어진 집에 입주한 사람에게서 아토피피부염이 빈발하는 ‘새집증후군’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다 비일비재하게 화학 첨가제로 가공한 식품을 섭취하고, 화학 약을 복용함으로써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10년 전으로 기억한다. 서울 근교에서 하우스 농사를 하는 40살의 건장한 남성이 습진이 있다며 내원했다. 육안으로 봤을 때 그 남성은 약간 말라 보였지만 건강한 편이었다. 문진(問診)을 한 결과, 그 환자는 10년 전 한 쪽 다리 부분에 습진이 발생해 가렵기 시작하다가 반대쪽 다리에도 생겼다고 했다. 지금까지 양약과 한약 모두 써 봤지만 낫지 않았다고 한다. 또 좋다는 민간요법도 해 봤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술을 마시거나 따뜻한 곳에 있으면 더 화끈거리고 가렵다고 한다. 밤에는 가려움증과 통증이 더욱 심해 견딜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필자는 일단 습진의 염증이 심하므로 이를 완화하기 위하여 ‘제혈해염탕(濟血解炎湯)’ 1제를 복용하도록 하고, 소염 고약 1개를 주어 바르게 했다. 환자는 내복약 10첩을 먹은 뒤 진물과 가려운 증세가 모두 없어졌고, 추가로 1제를 더 복용하고 완치됐다. ‘제혈해염탕(濟血解炎湯)’의 처방 내용을 공개하면 당귀·천궁·백작약·건지황 각 7.5그램, 형개·방풍·황련·독활 각 3.75그램, 우슬 5.62그램, 선퇴·금은화 각 11.25그램, 감초 2.5그램이다. 습진이 상초두면부(上焦頭面部)에 발생한 경우에는 만형자, 백지, 승마, 길경을 가감해서 쓴다. 복용법은 하루 2번 1첩씩 달여 식전에 마신다. 외용약인 소염고(消炎膏)의 처방 약재는 대황 3.75그램, 백반분(白礬粉) 18.75그램, 아연화분(亞鉛華粉) 3.75그램이다. 이것을 돼지기름에 혼합한 다음 습진 부위에 하나씩 붙이면 특효가 있다. 소염고는 화상을 입은 피부에 붙여도 백발백중 낫는 신효한 약이다. 또 한 번은 같은 해 가을에 15살의 남학생이 습진으로 내원했다. 조금 마른 편인 그 학생은 병증에 대해 남에게 말하는 것을 꺼려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몹시 수줍어했다. 문진을 한 결과, 처음에 음낭과 사타구니 쪽에 백색 습진이 생겼다고 한다. 그 이후 점점 더 심해져 음낭 주위와 허벅지, 엉덩이 부분까지 퍼졌다고 한다. 사타구니 쪽은 짓무르고 수포가 터지기를 반복하면서 피부가 많이 딱딱해져 있었다. 뜨거운 음식을 먹거나 따뜻한 장소에 있으면 가려움증이 더욱 심해져 겨울에도 수시로 밖으로 나와 있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가려움증이 심한 경우에는 복통과 통증이 동반되고, 설사도 한다고 한다. 필자는 상기 내복약인 ‘제혈해염탕’에서 건지황을 빼고, 대신 백출(白朮)과 현지초(玄芝草)를 각 3.75그램 가미하여 1제를 복용하도록 했다. 그런데 환자는 1제를 다 먹고 나서도 별로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추가로 1제를 더 복용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완치가 되어 지금은 학업에 충실하고 있다. 상기 환자는 3년여 동안 고약한 습진병으로 고생해 왔는데, 완치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필자는 같은 증세가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똑같은 처방을 해서 모두 완치시키는 결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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