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분순/동서국제의료봉사단원(UN/DPI NGO)
지금부터 30여 년 전에 서울 종로에 약을 잘 짓는 '할배'가 계셨다. 노인은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환자를 보실 때는 처방의 효험이 커 항상 환자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처방의 효험이 크다 보니 환자들은 노인의 처방을 '할배방'이라고 특별히 부르기도 하였다. 노인의 처방이 효험이 큰 이유는 4대째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방서 때문인데, 노인은 환자가 오면 약을 짓다가 반드시 한쪽 방에 들어가 서랍을 열고 비방서를 보고 나오곤 하였다. 이 비방서의 처방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개선에 개선을 더하여 임상 효과가 큰 비법으로 발전된 것들이었다. 다음은 ‘할배’가 일러준 빈혈 치료법이다. ‘할배’는 평소에 빈혈에 시달리는 사람이 오면 “팔물탕에 소의 지라를 넣는 게 비방이여”라고 지나가는 소리로 일러주었다. 그렇다고 팔물탕 기본방만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집안에 대대로 임상 경험을 거치면서 빈혈에 효과 큰 약재가 가미된 팔물탕이었다. 할배가 일러준 처방은 다음과 같다. ▶처방 내용 숙지황 ․ 당귀 ․ 백작약 ․ 천궁 ․ 백복령 ․ 백출 ․ 인삼 ․ 황기 각 1백 그램, 용안육 ․ 하수오 ․ 단삼 ․ 홍화 ․ 감초 각 50그램, 천마 30그램, 생강 ․ 대추 각 20그램, 소 지라 1개 ▶복용법 위의 약재를 함께 넣고 달여 하루에 3번 식간에 복용한다. 10일에 걸쳐 분복한다. ▶처방 풀이 위의 처방은 보혈(補血) 보기(補氣)의 대표적인 처방인 팔물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보혈 효능을 지닌 용안육 ․ 하수오 ․ 홍화를 가미하고, 보기 효능을 지닌 황기를 가미함으로써 그 기능을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단삼을 가미하여 혈행을 촉진하고, 천마를 가미하여 머리를 맑게 하고 있다. 그리고 소 지라는 소의 비장으로서 동종요법(同種療法)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하겠다. 즉 소의 비장으로 중초(中焦)와 소화기관을 대보(大補)하여 영양 흡수를 높임으로써 빈혈이 근원적으로 해소되도록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