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분순 | 동서국제의료봉사단원(UN/DPI NGO)
업무나 대인관계, 가정이나 건강 등의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고민이 심하면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불면(不眠)의 아침을 맞는 괴로움을 겪는다. 그러다가 문제의 상황이 개선되면 대개는 불면증이 사라진다. 이처럼 일시적인 불면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이지만, 만성적인 불면증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 사람에 따라 악성 불면증에 취약할 수 있는 성격적, 신체적인 특성을 가진 경우가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해 걱정이 심하거나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면 늘 불안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주었던 상황이 사라져도 불면증이 가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밤에도 자율신경계의 긴장이 풀리지 않아 정상적인 수면을 취할 수 없는 것이다. 이때는 불면증을 초래했던 스트레스가 문제가 아니라, 불면증 자체를 떨치지 못하는 본인의 기질이 문제가 된다. 즉, 초기 불면증으로 인해 유발된 나쁜 수면 습관은 물론, 잠을 또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불면증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불면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등 신경과민이 악순환을 초래한다. 불면증을 유발하는 신체적 문제로는 노화에 따른 내분비 이상과 이로 인한 호르몬 변화나 자율신경 장애를 들 수 있다. 또 심장질환 등 순환기장애, 뇌동맥경화증 같은 뇌의 기질적 장애, 천식이나 질식 등 호흡기 장애 등 구체적인 신체적 질환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전통의학에서는 그 원인이 어떤 것이든 불면증은 화열(火熱)이 성해져 심장박동이 늘어나고, 중추신경계가 흥분되면서 머리로 피가 몰리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뇌 속에 혈액이 충만하게 되고 뇌신경이 쉴 수 없는 각성 상태가 된다. 혹시 잠이 들었다 하더라도 꿈이 많아져 숙면이 되지 않고, 심하면 두통도 오게 된다. 잠이 부족하면 낮에도 항상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리고, 조그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늘 피곤하면서도 식사를 하지 않아도 별로 배고픈 줄을 모르게 된다. 불면의 괴로움에 시달리다 보면 ‘당장 오늘밤만이라도 푹 자고 싶다.’는 심정으로 화학 수면제나 술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화학 수면제를 복용하면 곯아떨어지는 느낌으로 잠에 빠져들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불면증이 재발된다. 그래서 다시 화학 수면제를 복용하게 되는데,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자율적인 능력이 상실되어 화학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리고 술을 마셔도 일단 쉽게 잠이 드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자주 깨게 되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역시 알코올 의존에 빠지게 되는 문제가 있다. 결국 화학 수면제나 술로서 불면증을 고치려는 것은 홍수가 나서 물이 넘치는 둑을 한 삽의 흙으로 메우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통의학에서는 몸이 뜨겁거나 차갑지 않게 냉온(冷溫)의 균형을 바로 잡고, 흐트러진 오장육부의 허실(虛實)을 다스려 불면증을 치료한다. 즉, 서양의학 처방처럼 홍수가 난 둑의 물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내 주어 물을 빼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음은 지금부터 30여 년 전 서울 종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였던 할배가 일러준 불면증과 신경과민에 대한 처방인 ‘조원탕(棗遠湯)’이다. 이 ‘조원탕’을 일러준 할배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환자를 보실 때는 처방의 효험이 커 항상 환자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렇게 할배의 처방이 효험이 큰 이유는 4대째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방서 때문이다. 이 비방서의 처방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개선에 개선을 더하여 임상에 효과가 큰 비법으로 발전된 것들이다.
[조원탕(棗遠湯)]
▶ 처방 내용 : 산조인 10그램, 원지·석창포·백출·백작약·백복신 각 6그램, 서장경·감초 각 4그램, 시호·승마 각 2그램 ▶ 법제법 : 산조인을 새까맣게 볶아서 쓴다. 덜 볶으면 효과가 없고 생으로 쓰면 오히려 잠이 오지 않게 된다. ▶ 복용법 : 상기 처방을 1첩씩 달여 하루 3번 식후 30분에 복용한다. ▶ 처방 풀이 : 이 처방은 심(心)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땀을 수렴하는 효능이 있다. 산조인은 옛날부터 신경과민과 불면증을 치료하는 천연 수면제로 사용되었다. 원지는 뜻을 멀리한다는 뜻을 지닌 약초로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소나무뿌리에 자생하는 복령균의 핵인 백복신은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서장경 역시 천연 신경안정제이다. 따라서 이 처방은 영심안신(寧心安神)하여 치허번불면(治虛煩不眠) 함으로써 화학 수면제의 장복으로 인한 중독성과 중추신경 무력증까지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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