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총림 범어사를 상징하는 일주문. 왼쪽에는 ‘금정산 범어사’ 오른쪽에는 ‘선찰대본산’ 편액이 걸려 있다.

 

의상대사 창건 1300년 역사

해동화엄십찰, 선찰대본산

총림 위상 갖추기 위해서

사부대중 최선 다해 정진

1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금정총림 범어사는 개산(開山) 이래 수많은 선지식이 주석하면서 수행과 전법의 기치 아래 정진해온 도량이다. 신라 문무왕(678년) 당시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는 ‘해동화엄십찰(海東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명찰(名刹)이다.

범어사의 또 다른 별칭은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간화선 수행의 중심도량이 곧 금정총림 범어사인 것이다. 참선 수행으로 망상을 떨쳐 버리고 본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찾아가는 근본도량이란 의미다. 구한말 성월(惺月)스님이 선원을 개원해 당대 최고의 고승인 경허(鏡虛) 선사를 조실로 모신 수행처가 범어사다. 또한 해방 후에는 동산(東山)스님이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불교정화의 깃발을 올린 산실이기도 하다. 

 

 

금정총림 범어사는 1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도량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13일 새로 세운 보제루의 현판식 제막 행사. 방장 지유스님, 원로의원 고산ㆍ정관ㆍ대원스님, 전 교육원장 무비스님, 주지 수불스님, 유나 인각스님, 강주 용학스님 등이 참석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산마루에 ‘금빛을 띤 우물’이 있었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 우물에는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온 ‘금빛 물고기’가 우물에서 노닐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금정(金井)’ ‘금정산(金井山)’이란 말이 유래 했고, 이 산에 자리한 범어사(梵魚寺)를 금정총림(金井叢林)이라 명명하게 됐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뒤로 범어사는 통일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중반까지 수행자와 민초들의 의지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의해 불타 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0여 년간 폐허나 다름없던 범어사는 관(觀) 선사에 의해 중건됐지만, 또 다시 화재로 도량이 소실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광해군 5년(1613년) 묘전(妙全)스님이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을 건립하면서 도량을 재건했다. 이후 1684년에 해민(海敏)스님이 비로전을, 1700년에는 명학스님이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을 세워 지금의 면모를 갖추었다.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던 범어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량의 규모를 점점 갖추어 갔다. 1900년에 경허스님이 선원 조실로 추대된 것을 계기로 범어사는 선찰(禪刹)의 위상을 제고해 나갔다. 금강암(1899년), 안양암(1900년), 계명암(1902년), 원효암(1906년), 안심료(1909년), 대성암(1910년)에 선원(禪院)과 선회(禪會)가 개설되어 한국불교 선수행의 중심도량으로 자리매김을 확실하게 했다. 이처럼 범어사의 선풍 진작은 이후 한국불교가 간화선 수행전통을 확립하는 중요한 전기가 됐다. 앞서 밝힌대로 ‘선찰대본산’의 명성에 걸맞는 수행도량이 된 것이다.

범어사가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고찰(古刹)의 면모를 유지해온 것은 다른 지역의 사찰과 달리 한국전쟁의 병화(兵禍)를 피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전쟁 당시 범어사는 전장(戰場)과 떨어져 있었으며,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 온 후에는 전몰장병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천도재를 거행하는 등 ‘호국불교 도량’의 소임을 담당했다. 국립 현충원의 시원(始原)이 바로 범어사 였던 것이다.

범어사는 해방 이후 동산스님을 비롯한 고승들이 주석하면서 불교정화운동의 깃발을 올리며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정진했다. 또한 납자(衲子)와 학인(學人)들이 참선수행과 경학 연찬에 매진했으며, 지난 2013년 총림 지정 후에는 율학승가대학원이 개설되고, 염불원 개원을 준비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총림 위상에 걸맞는 수행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부산 지역뿐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를 위해 기여하는 도량으로 장엄하기 위해 대중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생각 떨치고

본래심을 찾아라”

부질없는 생각 버리면

만고에 변함없는 부처님 

 

 

금정총림 방장 지유스님

“도(道)란 무엇인고 하면, 모든 생각을 쉬고 생각 이전에 있는 본래심을 말합니다.”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스님<사진>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망념을 일으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본래 있는 마음을 찾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라고 강조한다.

올해 부처님오신날 즈음해 발표한 봉축법어에서도 지유스님은 “마음은 물들지 않고 본래 스스로 원만하다”면서 “다만 부질없는 생각을 버리면 만고(萬古)에 변함없는 부처님”이라고 설했다. “이 말의 뜻을 깊이 살펴서 알게 되면 지혜의 등불을 찾으실 것입니다.”

금정총림 방장 지유스님은 “중생들이 무명(無明)의 어둠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부처님은 지혜의 등불을 밝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오셨다”면서 “무명의 어둠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명에 대해 스님은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 즉 욕심과 감정 등에 사로 잡혀, 일어나기 이전의 본연의 마음인 본래심(本來心)을 잃는다”면서 “생각이란 수레바퀴에 말려들어 허둥지둥 생각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방장 지유스님은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고 조용히 생각을 가라앉히고 살펴보면 모든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게 된다”며 “그 생각을 쉬지 않는 한 고통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설했다.

지유스님은 193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해 1945년 귀국한 후 1948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불문(佛門)에 들었다. 평생 참선 수행에 전념해 온 지유스님은 1975년부터 1977년까지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1991년 범어사 조실로, 2013년 금정총림 범어사 초대 방장으로 추대됐다.

 

 범어사의 고승 

 

 

 

 

수많은 수행자 머물며

후학제접하고 대중 지도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범어사는 오랜 세월만큼 수많은 수행자들이 머물며 후학을 제접하고 대중을 지도한 도량이다.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는 해동화엄의 초조(初祖)로 불리는 선지식이다. 통일신라시대를 전후해 오랜 전화(戰禍)에 시달린 중생들을 위로하고 수행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국가의 발전을 인도했던 고승이다. 29세에 출가한 의상대사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종남산 지엄스님 회상에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스님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화엄일승법계도>, <법계품초기>, <대화엄십문간법관>, <괄진일승추요>, <천세구경>, <백화도량발원문> 등이 전한다.

범어사에 주석한 선지식으로는 표훈스님도 꼽힌다. 의상대사의 10대 제자에 손꼽히는 표훈스님은 화엄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어 ‘신라 십성(十聖)’으로 불렸다. 스승인 의상대사를 도와 범어사를 창건하고 화엄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불사(석굴암)를 창건할 당시 표훈스님을 청해 머물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당대의 고승으로 존경받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삼국유사>에도 “(표훈)스님은 불국사에 있으면서 천국으로 왕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표훈스님의 저서로는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訣問答)> 등이 있다.

지금의 범어사를 반석에 올려놓은 근대 고승으로는 동산대종사가 있다. 서울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2년 용성대종사를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동산스님은 1929년 범어사 조실로 추대된 후 한국불교의 수행가풍을 진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1931년 선학원에서 열린 조선불교선종 제1회 수좌대회에 참석했으며, 1933년에는 해인사 퇴실선원 조실로 추대되는 등 수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1936년에는 용성스님에게 대은화상이 서상수계(瑞祥受戒)한 계맥과 중국 법원사 창도율사의 계맥을 각각 이어 받아 범어사 금강계단의 전통 계맥을 전승했다. 1943년 범어사 금강계단 전계화상으로 추대되어 원적에 들 때까지 출재가 불자들에게 계를 전했다.

동산스님은 1954년 7월 효봉ㆍ적음스님과 공동명의로 전국비구승대회를 소집해 정화불사의 기치를 올렸다. 같은 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고, 1958년 종정으로 재추대 되는 등 스님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한국불교의 등대였다. 동산스님은 1965년 3월23일(음력) 세수 76세, 법랍 52세로 열반에 들었다.

 

 

 

선원·강원·율원 등 총림 위상에 걸맞은 수행교육기관을 구비한 금정총림 범어사. 사진은 강원 스님들의 발우공양 모습.사진제공=석공스님

“우리 종문〈宗門〉의 혈맥〈血脈〉이며 골수〈骨髓〉이다”

범어사 수행교육기관

선원, 율원, 강원 구비

염불원도 개원 ‘준비’

수행 표상 만드는 도량

금정총림 범어사는 선원, 율원(율학승가대학원), 강원(승가대학)을 갖추고 염불원 개원을 준비하는 등 총림(叢林)의 위상을 구비하고 있다.

1899년 11월 성월스님이 금강암에서 선회(禪會)를 열고 같은 해 12월 금강선사(金剛禪寺)를 개원한 것이 범어사 근대 선원의 효시이다. 성월스님 외에도 수옹혜윤(睡翁惠允)ㆍ월송금홍(月松錦洪)ㆍ유운주연(乳雲周演)ㆍ휴진(休眞)ㆍ법능(法能)ㆍ봉성(奉性) 스님 등 7명의 수좌가 선원 개원에 동참했다. 이듬해 선풍을 드날린 경허스님이 조실로 추대되어 계명암에 머물며 후학을 지도하는 등 범어사의 참선수행 전통은 근세에만 110년을 이어오고 있다. 1910년대에 선찰대본산으로 확정되는 등 한국불교 선수행의 수사찰(首寺刹)의 위상을 갖추었다. 당시 범어사 수좌들은 “선학(禪學)은 우리 종문(宗門)의 혈맥(血脈)이며 골수(骨髓)이며 성명(性命)”이라면서 “선을 통해 달관하며, 선을 통해서 견성하고, 선을 통해서 성불에 이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정진했다.

1930년대 무렵 범어사 선원에는 동산스님의 지도아래 78명의 납자들이 안거하며 수행 가풍을 진작시켰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스님도 이때 금어선원에서 하안거를 원효암 선원에서 동안거를 지냈다. 1950년대 이후에는 100여 명이 넘는 수좌들이 전국에서 운집해 정진하는 등 범어사는 간화선 수행의 근본도량이었다. 당시 너무 많은 수좌들이 모여들어 공양을 마련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동래군청에서 배급 받은 국수와 옥수수죽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하며 정진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범어사 금어선원은 비로전과 미륵전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선원 큰방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으로 25명이 정진이 가능하다. 수불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취임한 후 선원 건물을 보수하고 정비해 수좌들이 불편함이 없이 정진에 전념하도록 했다.

금어선원은 경허스님을 필두로, 성월(惺月)·혜일(慧日)·도봉(道峰)·침운(枕雲)·구산(九山)·혜명(慧明)·용성(白龍城)·동산(東山)·전강(田岡)·고암(古庵)·지효(智曉)·성수(性壽)·능가(能嘉)·화엄(華嚴)·지유(知有)·광덕(光德) 스님 등이 정진한 명안종사(明眼宗師)의 산실이다.

1910년에 제정된 ‘범어사 내원선원 청규(淸規)’는 서릿발 같은 수행가풍을 잘 보여 준다. 14항목에 달하는 규범과 선원의 소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청규의 첫 번째 항에는 “총림의 진정한 목적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하여 장양성태(長養聖胎)하고 속불혜명(續佛慧命)하며 국가에 보은하고 광세제민(廣世濟民)에 주력할 것”이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

현재 금어선원은 선찰대본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방장 지유스님과 수좌 인각스님이 납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수행의 기본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은 기본교육을 이수한 비구 스님들이 계율 관련 과목을 배우고, 율학과 종법 등 종단이 필요로 하는 율사 및 율학전문가를 양성하는 종단 전문교육기관이다. 초대 율학승가대학원장 수진스님은 “부처님의 율장을 근간으로 해서 부처님 계율정신에 따라 스님들과 수행의 표상을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라면서 “범어사에서 계율을 기반으로 한 수행자의 모습이 살아나 종단에 율장정신의 회복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교학을 연찬하는 범어사 강원(승가대학)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구한말 인재양성의 원력으로 강당(講堂)을 설립했는데, 청룡초등학교와 금정중학교의 전신이 범어사 강원(명정학교)이다. 1919년 3ㆍ1만세운동에 학인들이 참여해 강당이 폐강되는 아픔을 겪었다. 몇 년 뒤 명정지방학교로, 해방 후에는 일반학교와 전문 강당을 분리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범어사 강원은 1966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지금까지 300여명에 이르는 스님들이 경학을 연마해 왔다. 강주 용학스님은 강원 전통을 계승하면서 태블릿 PC 등으로 강의한다.

 

총림 주지에게 듣는다  

 

 

범어사 수불스님

  

“종단과 발맞춰 도움되는

수행도량의 면모 갖출 것”

“종단과 발을 맞춰 도움이 되는 수행도량의 면모를 갖춰 나가는데 진력할 것입니다.”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사진>은 종단과 보조를 맞춰 총림의 위상을 갖춰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총림 지정후 어떤 변화가 있나.

= 무엇보다 수행도량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우선시하고 있다. 선원과 강원은 유나와 강주 스님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잘 해왔고, 율원까지 생겨 사중(寺中)이 총림의 위상을 갖추며 안정 되었다. 범어사 살림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총림으로 지정되고 난후 발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염불원 개원은.

= 염불원도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상노전 원공스님이 염불을 체계적으로 잘 배웠고 후학을 양성할 실력도 갖추고 있다.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이다.

= 범어사는 한국불교 종가(宗家)와 같은 도량인데.

= 종단과 발을 맞춰 수행도량의 면모를 갖추고, 지역 사회에서도 역할을 하려고 한다. 수행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이면,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훌륭한 스님들을 많이 배출하고, 신도들도 불법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겠다.

- 세월호 침몰 사고의 근본원인은.

= 일어나지 않아야 될 일이 일어나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아파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사회가 빠른 변화를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물질보다 정신을 등한시한 것도 원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선 사태를 바로잡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국민 모두 올바른 정신자세를 가져야 한다. 종교계의 역할이 요구된다.

- 간화선 수행이 지금 상황에서 대안이 되는가.

= 수행은 이런 상황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다. 과거에 가슴 아픈 일을 당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지만 수행을 통해 본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특히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빠른 방법 가운데 하나가 간화선 수행이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 절망하고 고통스러운 입장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이 간화선 수행에 있다. 본인의 의지가 있을 때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금은 (세월호 침몰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고, 종교적으로는 함께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함께 기도하면서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 최종적으로는 수행을 권하고 싶다.

- 총림 대중에게 하고 싶은 당부.

= 대중에게 당부하기 보다는 나 스스로 채찍질해서 수행자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말만 할 뿐이다. 그것이 내 몫이다.

  

 범어사의 신행과 전법 

 

 

외국인들에게도 인기있는 범어사 템플스테이.

 

재가불자와 일반인에게

불법 전하는데 ‘각별’

범어사는 총림 위상에 걸맞게 스님들의 수행은 물론 재가불자들과 일반인을 위한 신행(信行)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음력 초하루는 물론 지장재일, 관음재일, 일요법회 등 정기법회를 꾸준히 거행하고 있다. 정기법회는 주지 수불스님, 교수사 흥선스님, 강주 용학스님 등이 직접 법문을 설하면서 재가불자들의 신행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각 신행단체별 법회도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법회는 물론 중고등부법회, 청년회 법회를 운영하며 한국불교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토요참선회와 금정불교대학을 통해 수준 높은 강의와 실참으로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불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범어사의 템플스테이와 템플라이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찰의 일상과 수행을 경험하는 사찰문화체험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와 템플라이프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참여가 줄을 이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범어사는 사회복지를 통한 자비행도 꾸준히 하고 있다. 범어사가 출연한 사회복지법인 범어와 재단법인 범어청소년동네를 중심으로 금정구종합사회복지관, 마야어린이집, 화명종합사회복지관, 금정청소년수련관 등 각종 사회복지시설 및 기관을 운영한다. 사회복지법인 범어 대표이사인 수불스님은 “지역사회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신뢰받는 법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3월26일 개관한 범어사성보박물관(관장 경선스님)은 국가지정문화재 5점을 포함한 54점의 지정문화재와 각종 성보문화재를 소장 관리하고 있다. 한편 범어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는 물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사중의 소식을 전하는 등 참여 유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총림 외호하는 소임에 ‘충실’

 

 

이윤희 범어사 신도회장

“범어사는 호국불교의 성지이며 선찰대본산으로 세계적인 간화선 수행도량입니다. 수불스님 주지 부임한 후 짧은 기간에 총림 승격과 도량이 정비 되어 많은 신도들이 찾아오는 범어사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스님과 신도들이 수행과 신행에 전념하도록 외호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윤희 범어사 신도회장<사진>은 “승가를 중심으로 신행단체 및 불자들과 범어사와 부산불교 발전을 위해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윤희 회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유가족은 물론 국민 모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불교연합신도회장을 겸하고 있는 이윤희 회장은 “지역불교 발전을 위해 재가불자들이 한뜻으로 정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부처님 가르침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주지 수불스님을 중심으로 신도회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면서 “가람수호, 신행단체와의 교류, 재가 불자 양성, 불교문화 발전 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