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山寺 情報

서산 도비산<島飛山> 부석사

초암 정만순 2014. 7. 31. 14:53

 

서산 도비산<島飛山> 부석사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서산 부석사에 마애아미타부처님(마애아미타석불입상)이 조성됐다. 서산 부석사(주지 주경스님)는 오는 8월9일 오전10시 부석사 경내에서 ‘마애아미타부처님 점안법회’를 봉행한다. 이날 점안법회에는 덕숭총림 수덕사방장 설정스님을 비롯해 수덕사주지 지운스님 등 총림 사부대중이 대거 동참할 예정이다. 부석사가 마애부처님을 조성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초 일본에서 불법으로 반입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부터다. 이 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 봉안돼 있다가 왜구들이 약탈해 간 불상으로 대마도 관음사에 소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들어온 금동관세음보살좌상에 대해 부석사는 현재 ‘불상 반환금지 가처분 신청’ 제기해 놓은 상태다.

 

 

   
서산 부석사가 올해 조성한 ‘마애아미타부처님’의 자애로운 모습으로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기도처가 되고 있다.

 

왜구들이 약탈해 간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 보며 오래도록 모실 수 있는 마애부처님 조성 원력 세워

올해 높이 4.5m 규모로 완공, 8월 9일 점안법회 봉행

 

부석사주지 주경스님은 “과거 기록을 보면 부석사에 불·보살상이나 성보들이 많이 모셔져 있었는데 제가 주지로 왔을 때는 거의 도난당해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래도록 모실 수 있는 불보살님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서 신도님들과 논의해 마애부처님을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지난해 초부터였다. 일반인들은 오래된 불상을 그저 가치있는 문화재 정도로 생각했지만 부석사 신도를 비롯한 불자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인 성보(聖寶)였다. 주지 주경스님은 당시 심정을 불교신문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지난 1월말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모셔져 있던 우리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님이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급히 뉴스를 검색해보니 문화재 절도범들에 의해 몰래 반입이 되었고 불상은 문화재청에서 보관한다고 하였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1999년 처음 부석사 주지를 맡으면서부터 가슴에 품어왔던 불상이다. 전임 주지스님께서 주지 인수인계 당시에 96년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다녀오신 이야기와 불상을 돌려달라고 했던 경험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부석사로 모셔 오도록 하라는 간곡한 당부가 있었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스님은 부석사가 모시고 있던 성보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1932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하여 관보에 게재한 바에 따르면 당시 부석사에는 4점의 불상과 불화, 범종 등 10여점의 성보들이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두 도난 또는 분실되고 몇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부석사에 영원히 모실 수 있는 부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부석사에는 부처님을 조성할 좋은 자연석 바위가 있었고 서쪽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미타부처님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바위 모양으로 봐서 석불입상이 좋겠다는 의견도 모아졌다. 이렇게 해서 산신각 아래 우측 자연석 바위에 높이 4.5m, 폭 1.5m 규모의 마애아미타부처님을 조성하기로 결정됐다.
주지스님이 먼저 불사금을 내놓고, 사찰 신도들의 십시일반으로 불사금이 모연됐고, 여러 장인들의 작품을 비교해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88석재(구 연화석예)대표로 있는 김대연(55, 석공예 문화재기능 보유자) 조각가에게 부처님조성 불사를 맡겼다.

김대연 조각가는 “마애부처님의 상호는 고풍을 살려 투박하면서도 엄숙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며 “자연석에 그대로 조각하는 마애불이기 때문이 완전하게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불자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가기 위해 몸집을 조금 크게 조성했다”고 밝혔다.

도비산 자연석에 아로새겨진 마애아미타부처님은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겉은 부드러운 석질을 간직하고 있지만 바위 내부는 강한 석질을 가지고 있어 세세생생 영원히 불자들과 함께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부석사 마애아미타부처님은 이번 부처님오신날 즈음에 그 모습을 불자들에게 선보였다. 그러자 사찰 불자들은 물론 지역에서 기도객이 발길을 잇고 있어 부석사 최고의 명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아직 점안을 하지 않은 마애부처님이지만 그 자애로운 모습에 감동받은 불자들의 기도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부석사는 마애아미타부처님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 점안법회를 오는 8월9일로 정했다. 백중 회향일 바로 전날 토요일로 정해 덕숭총림방장 설정큰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셨다.
부석사주지 주경스님은 “소납이 부임한 지 15년째 되던 해에 의미 있는 불사를 회향하게 되어 기쁜 마음”이라며 “마애아미타부처님 조성을 계기로 부석사를 찾는 불자들의 발길이 많아지고 지역불교가 활성화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서산부석사는…

신라고승 의상스님 창건 - 영주 부석사와 ‘쌍둥이 사찰’

근대 한국불교 중흥시킨 경허·만공스님 주석처 

 

   
한국불교 중흥조인 경허선사와 그의 제자 만공스님이 주석했던 부석사 전경. 아래는 경허선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심검당(尋劍堂) 현판이며 맨 아래는 만공스님이 70세에 쓴 부석사(浮石寺) 현판.

원효스님과 함께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인 의상스님이 서기 677년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심검당 보수과정에서 나온 상량기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중국에 갔다 온 인연으로 부석사를 창건한 이래로”라고 기록돼 있다.

사찰 창건설화는 영주 부석사와 똑같아 ‘쌍둥이 사찰’로 불린다.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의상스님은 종남산 지장사에서 지엄스님으로부터 화엄학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 신세를 진 신도의 집에 들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때 신도집의 딸인 선묘는 의상스님에게 청혼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의상스님이 떠나자 의상스님을 연모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이 몸 용이 되어 의상스님을 무사히 귀국하게 할 것이다’라고 발원했다.

무사히 신라에 귀국한 의상스님은 선묘의 넋을 천도하기 위해 절을 지을 명당을 찾아 나섰다가 근처 바닷가 의상스님의 발길이 멈춘 곳이 도비산(島飛山 - 마치 섬이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산)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백제가 멸망한 뒤 유민들의 민심이 흉흉하던 지역이라 반대가 많았다.

항상 의상스님을 따라 다녔던 선묘는 곧 의상스님의 뜻을 알아채고 허공중에 커다란 바위를 띄워 사람들을 물리친 뒤 바다에 그 돌을 띄워 놓으니 사람들이 스님과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의상스님은 도비산 중턱에 부석사를 세웠고 사찰 앞 바다에 떠 있는 돌을 부석(浮石) 혹은 ‘검은여’라고 불렀다. 이후 부석사는 무학대사가 중창을 했으며 한국불교의 중흥조였던 경허선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휘날렸고, 그의 제자 만공스님이 머문 호서지방의 명찰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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