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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총림 쌍계사

초암 정만순 2014. 7. 31. 19:39

쌍계총림 쌍계사

 

고산스님 원력으로 사격 ‘일신’

참선 계율 범패 차의 근본사찰

종합수행도량 전통 계승 ‘최선’

 

   
1300년의 역사를 지난 쌍계총림 쌍계사는 율찰대본산이다. 또한 선과 차, 그리고 범패의 근본도량으로 총림의 위상을 더욱 갖춰 가고 있다. 사진은 쌍계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도량.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스님과 삽범(三法)스님이 육조 혜능(慧能)스님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귀국해 창건한 도량이 쌍계사이다. 두 스님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꿈에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에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쌍계사이다. ‘설리갈화처’는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 있는 장소”라는 의미다. 엄동설한에 꽃이 필 정도로 상서로운 명당에 도량이 자리 잡은 것이다. 옥천사로 창건한 쌍계사는 13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선지식이 머물며 선과 차, 그리고 범패의 근본도량으로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대비스님과 삼법스님이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돌아와 오직 수행에 몰두한 뒤로 세상 사람들에게 한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쌍계사가 다시 주목 받은 것은 신라 문성왕 2년(840년)이다. 중국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한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쇠락한 절터에 옥천사를 크게 중창하면서 참선 수행과 범패를 널리 알렸다. 신라 정강왕이 ‘쌍계사(雙磎寺)’라는 사명을 직접 지어 보낼 만큼 국가 차원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이뤄진 도량이다.

   
진감국사탑비. 최치원이 비문을 썼다.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다. 쌍계사 입구 차 시배지에는 차시배추원비(追遠碑)와 ‘해동다성(海東茶聖) 진감선사 추앙비’ 등의 기념비가 서 있을 정도이다. 이는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후 진감선사가 쌍계사 인근과 하동 화개에 차밭을 조성한데서 비롯됐다. 진감선사는 앞서 밝힌 대로 남종선(南宗禪)을 신라에 처음 전하고, 해동범패의 시원을 이룬 선지식이다.

혜능 선사의 정상을 모신 금당(金堂)이 자리한 쌍계사는 오래 전부터 수좌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간화선 수행의 전통을 간직한 근본 도량이다. 지난해 총림으로 승격한 이후 쌍계사는 ‘종합수행도량’의 면모를 구비해 가고 있다.

쌍계사는 벽암ㆍ백암ㆍ법훈ㆍ용담스님 등이 중창을 거듭하며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었지만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 초반까지 수행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총림이 될 만큼 면모를 구비한 것은 고산스님이 쌍계사 주지로 부임한 1970년대 중반 부터이다.

이같은 상황은 법정스님의 수필집 <산방한담> 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1980년 쓴 수필에서 법정스님은 “5년 전 이곳을 찾아왔을 때, 금당만 덩그러니 남은 채, 동ㆍ서방장이 허물어진 걸 보고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정든 옛집이 허물어져 없어진 걸 보니 맑게 간직한 추억의 뜰이 산산이 흩어졌다. … 그 무렵 퇴락할 대로 퇴락하여 음산하기까지 하던 절간을 보고 섭섭하기 그지 없었다.”

법정스님은 이 글에서 “오늘 와 다시 보니 쌍계사는 새 면목으로 일신되었다. 4년 전 고산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래 큰 원을 세우고 쌍계사 중창 불사에 전념한 결과”라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다 허물어져 가던 불전과 요사들이 산뜻하게 보수되었다. 적묵당 설선당이 번듯하게 고쳐지고 기울어가던 팔영루도 이제는 튼튼하게 세워졌다. 일주문 천왕문 금강문들도 말끔히 손질되어 산문에 들어서면 온 도량에 서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경내에 우람하게 서 있는 몇 그루의 은행나무를 대하니 지금은 고인이 돼버린 고승당과 국사암의 노스님들 모습이 떠오른다. 역시 인걸은 간 데 없구나.”

법정스님은 고산스님의 중창불사 원력의 공을 높이 사며 다음과 같이 기대했다. “주지 (고산)스님의 중창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는 날 동ㆍ서방장에서는 다시 입방선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울릴 것이고, 강당에서는 이 시대가 바라는 든든한 학승들이 배출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다시 눈 속에서 칡꽃이 향기롭게 피어나리라.”

쌍계총림 쌍계사 주지 성조스님은 “어려운 여건에도 오직 불법을 구하기 위해 정진했던 역대 선지식들의 수행가풍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 더욱 정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지난해 총림 지정을 계기로, 방장 스님을 중심으로 종합수행도량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기 위해 대중 모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쌍계총림 방장 고산스님

   
 


“근수 정진하여 구경성불케 함이요”

“자기 주관 잃지 말고 맡은바 책임 잘해야”

“불식촌음(不息寸陰)의 가풍으로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근본으로 삼아 근수정진(勤修精進)하여 구경성불(究竟成佛)케 함이요”

쌍계총림의 수행가풍과 대중을 어떻게 지도할지 묻는 질문에 방장 고산스님은 이같이 밝혔다. 촌각을 다투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계정혜를 근간으로 정진해 깨달음을 성취하는 도량으로 장엄하겠다는 원력이다. 고산스님은 “향후 세계 제일의 수도장(修道場)다운 총림이 되도록 위상을 세울 계획”이라면서 더욱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신문명보다는 물질과 자본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사회를 사는 국민과 불자들에게 고산스님은 “물질문명만 최고도로 발전된 이 시대에 각자 정신문명을 개발해서 자기 주관을 잃지 말아야 한다”면서 “각자 맡은바 책임을 잘해 나갈 때 만사(萬事)를 성취할 것”이라고 가르침을 전했다.

고산스님은 193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나 13세 되던 해에 동산스님 회상에서 불문(佛門)에 들었다. 사미계와 비구계를 수지한 후 기도와 정진에 몰두하면서 경율론(經律論) 삼장을 두루 익혔다. 1961년 당대 제일 고봉(高峯)강백에게 전강을 받고, 청암사와 범어사 강원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1972년 석암(昔巖)율사에게 전계를 받고 쌍계사 전계사(傳戒師)가 됐다. 이후 전국 사암을 순회하며 보살계를 설하는 등 전법교화에 힘썼다. 동래포교당, 조계사, 은해사 주지를 역임하고, 폐사 직전의 쌍계사 주지 소임을 맡아 중창불사의 원력을 실천했다. 고산스님의 40여 년간 노력으로 사격을 일신한 쌍계사는 지난해 총림(叢林)으로 지정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호계원장, 동국대 이사, 법계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조계종 전계대화상과 원로의원으로 대중의 지남(指南)이 되고 있다.

 

   
 


육조혜능 대사 정상〈頂相〉 모신 도량

 쌍계사의 고승

1300년 역사 … 역대 선지식 ‘법향’ 가득

쌍계사는 1300년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고승이 주석하며 후학을 지도하고, 대중을 제접했다. 육조혜능 대사의 정상을 모시고 온 삼법화상과 대비화상을 비롯하여 진감혜소, 벽송지엄, 추월조능, 서산휴정, 소요태능, 벽암각성, 백암성총, 대은율사 등 선지식의 법향을 간직한 유서 깊은 도량이다.

삼법화상 = 쌍계사 창건주이다. 신라 문무왕 1년(661년)경에 출생했다. 15세 무렵인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義湘大師)의 제자가 됐으며, 경장과 율장을 통달했다. 중국 당나라 혜능대사에게 가르침을 배우길 원했지만, 성덕왕 13년(714년) 혜능스님 입적 소식을 듣고 애통해 했다. 6년 뒤 금마국(金馬國) 미륵사의 주정(主晶)스님이 갖고 온 혜능대사의 <법보단경(法寶壇經)>에서 “내가 입적하고 5~6년이 지나면 내 정상(頂相)을 취하러 올 것”이란 대목을 읽고 “내가 마땅히 힘껏 도모해 우리나라에 만대의 복전을 지으리라”고 결심했다. 당나라로 건너간 삼법스님은 홍주 개원사에 머물던 대비(大悲) 선사와 의논해 정상을 모셔 왔다. 혜능대사의 정상을 모셔와 조그만 암자를 짓고 18년간 수행하다 739년 7월12일 <법보단경>을 염송한 후 입적했다.

진감국사 = 쌍계사 중창주인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 스님은 혜공왕 10년(774년) 익산에서 태어났다. 애장왕 5년(804년) 중국으로 건너가 혜능대사 법손인 신감(神鑑)대사를 만났으며, 810년 숭산 소림사 유리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종남산에서 수행정진하다 57세 되던 해에 귀국해 상주 남장사에 주석했다. 이후 지리산(국사암 터)에 머물며 선문을 열었다. 국왕이 여러 차례 찾았지만 “부지런히 선정에 힘쓰는 것이 본분”이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문성왕 12년(850년) 1월9일 좌탈입망했다.

벽송지엄(碧松智嚴, 1464~1534) = 계룡산 상초암에서 조징(祖澄)스님에게 출가했고, 이후 연희스님에게 ‘원돈교의’를 배우고, 벽계정심스님 문하에서 정진했다. 지리산 초암에서 수행하다, 1534년 화개 수국암에 제자를 모아 놓고 <법화경>을 강설한 후 열반에 들었다. 이때 “노승은 여러분을 위해 적멸상(寂滅相)을 보이고 가리니, 여러분은 밖으로 향해 찾지 말고 더욱 힘쓰라”고 당부했다.

추월조능(秋月祖能, 1506~1544) = 벽송지엄스님의 심인(心印)을 이었다. 추월스님은 평생 눕지 않고 정진했다. 칠불암에 주석할 무렵 밤에 돌을 짊어지고 경행(經行)하다, 쌍계사까지 가서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을 참배하고 돌아왔다. 수마를 조복시키고, 조사관을 타파했다. 스님의 부도는 쌍계사 칠불암 옥보대 서북쪽 언덕 아래에 있다.

대은낭오(大隱朗旿, 1780~1841) = 15세에 영암 월출산으로 출가해 선교(禪敎)의 거장인 연담(蓮潭)스님 제자 금담(金潭)선사 문하로 출가했다. 금담스님과 계학의 멸실을 우려해 칠불암 아자방에서 서상수계(瑞祥受戒)를 위해 기도하던 중 한줄기 선명한 빛이 대은스님의 정상(頂相)을 비추었다. 이때 은사 금담스님이 대은스님에게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자장율사 이후 끊어졌던 해동계맥(海東戒脈)이 다시 이어져, 금담스님을 거쳐 초의스님에게 전수됐고, 범해ㆍ선곡ㆍ용성ㆍ동산ㆍ석암ㆍ고산스님에게 승계됐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쌍계사 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세속의 번뇌는 사라지고 없다. 왼쪽 작은 사진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하동 남도대교 근처에 세워져 있는 ‘율찰대본산 쌍계사’ 표지석. “다시 눈 속에서 칡꽃이 향기롭게 피어나리라”

   
 


쌍계사의 신행활동과 전법

음력3월 보살계대법회

올해로 39회째 봉행

다양한 법회와 기도로

신도 포교에 쉼 없어…

   
 


경남 하동에 자리한 쌍계총림 쌍계사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화개장터와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이 연결되는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 화합을 상징하는 곳에 자리한 쌍계사는 1300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수행을 중심에 두고, 대중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방장 고산스님의 발원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사격을 일신한 쌍계사는 수행, 전법, 포교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쌍계사는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돕기 위해 다양한 기도와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 3일부터 9일까지 ‘정초 7일 산림’기도를 거행해 사부대중 모두 한해의 평안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정진할 것을 발원한다. 쌍계사는 “한해를 시작하는 정초에 기도를 하는 의미는 한해를 바르게 살고, 한 해 동안 선근 공덕을 쌓으며 열심히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봄이 시작되는 입춘에는 입춘기도를 봉행한다. 입춘기도를 거행하는 본래 뜻은 가내 평안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것은 물론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겠다는 대중의 발원이다.

‘율찰대본산(律刹大本山)’ 쌍계사가 매년 큰 의미를 갖고 중요하게 봉행하는 법회가 있다. 매년 음력 3월5일부터 7일까지 거행하는 보살계대법회로, 금년에 39회를 맞이했다.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연중 가장 큰 행사는 부처님오신날이다. 연등을 밝혀 무명 중생이 부처님의 지혜를 얻는 의미를 지닌 봉축행사는 신도들은 물론 지역주민이 함께 하는 가장 큰 행사이다. 올해는 세월호 침몰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상황을 고려해, 축제 분위기 보다는 엄숙한 가운데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할 예정이다.

쌍계사는 매년 음력 7월15일 우란분절(백중)을 맞아 선망 부모와 조상을 위한 법회를 봉행한다.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문화가 퇴색되는 요즘, 세인들에게 효의 중요성을 전하는 중요한 법석이다. 이어 음력 7월17일에는 쌍계총림 본말사가 함께 참여하는 연합방생법회로 생명의 소중함을 널리 전하고 있다. 또한 설과 추석에는 합동차례를 지내는 등 다양한 법회와 기도로 대중과 함께하고 있다.

이밖에도 쌍계총림 쌍계사는 일반 대중과 한층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템플스테이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13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도량에서 진행되는 쌍계사 템플스테이는 지리산과 섬진강 등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오는 5월16일부터 2박3일간 열릴 예정인 ‘하동녹차 축제와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는 물론 각 시기마다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쌍계사 주지 성조스님은 “하동은 한국 녹차의 시배지로 하동군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만큼 마음 놓고 드셔도 좋다”고 권했다.

   
 


쌍계사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어린이를 위한 한문학당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 1월에도 4박5일 일정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겨울 한문학당’을 열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한문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다도예절, 명상, 가족 간의 인사예절도 가르쳐 어린이들의 심성 교육에 만전을 기했다.

이처럼 다양하게 전법 활동을 하고 있는 쌍계사는 앞으로 차와 범패의 보급에도 더욱 신경 쓰면서, 방장 스님 지도에 따라 승려노후복지사업과 대사회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일 방침이다. 쌍계사 주지 성조스님은 “안타깝게도 하동군에 쌍계사 포교당이 없다”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 불사로 미뤄왔지만, 이제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림 주지에게 듣는다 / 쌍계사 성조스님

 

   
 


“방장 스님의 지도 아래

명실상부한 총림 되도록 최선”

“총림 주지는 사실 굉장히 부담스럽고 생각이 깊어지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전국 8대 총림 가운데 쌍계사가 결코 뒤처지는 총림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쌍계총림 쌍계사 주지 성조스님<사진>은 총림 지정후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총림 위상에 맞는 도량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성조스님은 “종단에서 요구하는 총림 위상에 걸맞도록 각종 수행교육기관을 구비하는 한편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중생과 함께하는 자비도량이 되도록 하겠다”면서 “방장 스님 지도아래 모든 소임자들이 촌각을 다퉈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방장스님께서 조실로 계실 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는 선원과 강원뿐 아니라 율원, 그리고 개원을 준비하고 있는 염불원 등 4대 수행교육기관을 여법하게 갖춰 명실상부한 총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성조스님은 “다른 총림이나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전제한 후 “스님들이 수행자의 모습을 반드시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수행자가 세속인의 뒤를 따라가거나 닮아가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조스님은 “부처님 율장대로 100% 수행은 못해도 100%에 가깝게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로서, 그리고 출가자로서 도리이고 의무”라며 평소의 생각을 말했다. 이어 스님은 “율찰대본산의 면모를 계승하고 청정한 승풍 구현을 위해 쌍계사 대중 모두 최선을 다해 수행정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성조스님은 “최근 세월호 침몰사고로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 무고한 인명 피해가 발생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성조스님은 “다시는 이 같은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국민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면서 “억울하게 숨져간 영가들이 극락왕생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고 전했다.

1962년 출가한 성조스님은 이듬해 건봉사(당시 본사)에서 사미계를 수지하고, 해인강원에서 수학했으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1년 도미(渡美)해 조지아주 애틀랜타, LA,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1989년까지 포교 활동을 했다. 석남사, 백련암, 운흥사 주지, 총무원 사회부장, 사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 12월부터 쌍계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이성수 기자

 

 쌍계사의 수행교육기관

 선원, 강원, 율원 구비

염불원 개원 준비 노력

 

쌍계사 금당선원

 

   
쌍계사 금당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 불교신문 자료사진


금당선원<사진>은 신라 성덕왕 21년 삼법스님과 대비스님이 중국에서 육조 혜능 선사의 정상을 모셔와 절을 세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오른편 계곡의 옥천교 건너 계단을 올라가면 돈오문(頓悟門)이란 편액이 보인다.

안거 기간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곳으로 수좌들이 수행하는 공간이다. 선원 마당 중앙에는 혜능조사의 정상을 모신 금당(金堂)이 있으며, 금당 편액 중심으로 ‘세계일화(世界一花) 조종육엽(祖宗六葉)’과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란 추사 김정희 글씨가 걸려 있다. 추사 김정희가 쌍계사 금당에 주석하고 있던 만허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쓴 글씨이다.

근세에 경허스님이 금당선원을 개설한 이래 용성ㆍ운봉ㆍ금오ㆍ동산ㆍ청담 스님 등이 주석하며 정진한 유서 깊은 참선 수행처이다.

 

쌍계사 강원

 

쌍계사 강원(승가대학)은 1987년 현 방장 고산스님이 후학 양성의 원력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됐다. 초대 강주 덕민스님에 이어 1998년 통광스님이 2대 강주로, 2013년 월호스님이 3대 강주 소임을 맡아 학인을 지도하고 있다.

쌍계사는 “전통강원의 특성을 첨단 현대사회에 맞게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강사 스님들의 원력과 자비, 그리고 학인들의 어른 공경 정신이 쌍계사 강원 발전의 기반”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쌍계사 강원은 포살을 통한 계율 수지와 화합, 토론과 문답식 토론 강의, 간경의 생활화, 해제 전 강사 스님과의 법문답 등을 통해 한국불교 미래를 짊어질 동량을 양성하고 있다.

 

쌍계사 율학승가대학원

 

쌍계사는 2013년 3월 승가전문교육기관인 율학승가대학원 설립을 공식 인가 받았다. 산내 암자인 ‘국사암’을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율학 연찬 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다. 쌍계사 율학승가대학원은 종단 기본교육을 이수한 스님들의 율학 수행 전문교육기관이다. 율학승가대학원은 율찰대본산의 위상에 걸맞도록 계율을 호지하고 전승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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