賢者 殿閣/덕화만발

[스크랩] *덕화만발* 도피안

초암 정만순 2014. 4. 16. 17:21

 

 

*德華滿發*

 

도피안(到彼岸)

 

도반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피안(到彼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보셨지요?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즉,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죠. 산스크리트 어 ‘pāramitā’의 번역어로,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 또는 그런 경지를 이릅니다. 그러니까 열반(涅槃)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으로 태어나고 죽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번뇌와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지요.

 

도반 동지 여러분!

그럼 도피안 완성(完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라밀(波羅密)은 산스크리트어 paramita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보다 더 정확하게 음역(音譯)하면 바라밀다(波羅蜜多)가 되죠. 뜻은 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피안에 이른다(到彼岸)’, ‘구제한다(度)’로 해석하며, 성취, 최상, 완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완성’이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지요.

 

완성과 성취는 괴로움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피안에서의 피안은 바로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찬 세계이며, 바라밀은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 길에는 여섯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걸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 하죠. 그러니까「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지혜(智慧, 般若)바라밀」입니다.

 

첫째, 보시(布施)입니다.

남에게 베풀어준다는 말로 재시(財施), 법시(法施), 무외시(無畏施)가 있습니다, 보시에서 중요한 것은 한없이 베풀면서도 어떠한 조건을 내세우거나 보답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베풀었다는 생각마저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둘째, 지계(持戒)입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말로 오계(五戒)는 물론 각 종교의 계문, 국가나 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원불교에서는 단계별로 30계문을 받아 지킵니다.

 

셋째, 인욕(忍辱)입니다.

욕됨을 참고 남을 용서하며,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는 자세이죠.

 

넷째, 정진(精進)입니다.

끊임없는 노력을 말합니다.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으로 대 적공(大積功)하는 것이죠.

 

다섯째, 선정(禪定)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을 뜻합니다. 번뇌와 망상에 의한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켜 정신을 통일하는 수행법이죠.

 

여섯째, 지혜(智慧, 般若)입니다.

산스크리트어 prajna를 번역한 말로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반야(般若)입니다. 바로 지혜를 이름이지요.

 

도반 동지 여러분!

바라밀다는 범어로 ‘파라미타(Paramita)’라고 합니다. 그 뜻을 풀이하면 ‘저 언덕으로 건너 간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저 언덕’이란, 피안이며, 정토(淨土), 불 국토(佛國土),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 언덕’은 차안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 사바세계를 말하며 다른 말로 예토(穢土)라고도 부르죠. 조금 다른 의미로 살펴본다면 더러운 땅인 이 언덕과 낙원인 저 언덕이 모두 내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곳, 저 곳 하여 나누어 놓은 듯하지만 실은 이 언덕은 어리석어 무명(無明)에 휩싸인 ‘거짓 나’이고, 저 언덕은 깨달아 밝아진 ‘참나’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라밀다의 뜻은 ‘이 사바세계에서 저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거짓 나의 삶에서 참 나를 깨쳐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나’ 중심의 삶(我執, 我相)에서 ‘나 없음’의 삶(無我, 眞我)을 깨쳐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토(穢土)’라고 하면, 흔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말합니다. 모든 것이 혼탁하고 오염되어 있는 탁한 세계를 말하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우리는 육신으로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청정하지 못한 음행(淫行)을 하는 등의 온갖 악행을 저지릅니다. 입으로는 온갖 거짓말과 이간질을 일삼고, 삿된 분별 심에 빠져 진실치 못하여 꾸미는 말을 하며, 거친 욕설 등을 일삼고 살아갑니다.

 

또, 생각으로는 탐욕에 빠져 오욕 낙을 즐기기 위하여 과다한 욕심을 부리죠. 조그만 일에도 불끈 화를 내며, 어리석은 삿된 사량 심으로 온갖 악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짓고, 탐 진 치(貪瞋痴) 삼독 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염된 이 땅을 ‘사바세계’ 즉 예토라 하는 것입니다. 이걸《반야심경》에서는 ‘이 언덕(此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 언덕 피안, 즉, 정토(淨土)란 어떤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요? 정토란, 우리의 신구의 삼업이 청정하여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이상(理想) 세계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의 세계, 열반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저 언덕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마하반야의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큰 지혜의 배를 타야만 건너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배를 불가에서는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상징화하고 있으며 바로 위에 말씀드린 ‘육바라밀’인 것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허공 같이 비고 보면 윤회의 승강(昇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빈 마음에 근본하면 항상 진급(進級)이 되고, 이 빈 마음을 바탕 하여 상(相)을 떠나면 진리의 은혜를 입게 되지요. 차안과 피안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허공 같으면 그곳이 바로 피안이지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 빈 마음이 우리를 언제나 피안에 이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며, 거기가 바로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계가 아닌 가요!

 

원기 99년(2014) 4월 16일 덕 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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