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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행의 맛 - 석모도 / 강화도 / 백령도

초암 정만순 2022. 5. 13. 11:08

봄 여행의 맛 -

석모도 / 강화도 / 백령도

 

 

 여행 : 

2022. 5. 18 -5.20 (2박 3일) (맑음)

 

 여행경로 :

 

1일차 :

강화도 외포리선착장 - 석모도 서포선착장 - 보문사 -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  - 전등사 - 인천 송도

 

2일차 :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 백령도 선착장 → 두무진(육상) - 사곶해변 천연비행장 - 백령호 - 중화동교회 - 두무진(해상) → 천안함46용사 위령탑  

 

3일차 :

콩돌해안 → 심청각 - 사자바위 - 백령도선착장 -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 대구시

 

 여 : 

초암 그리고 여사

 

 

■ 석모도 (보문사 / 눈썹바위) 

 

 

강화도 서남쪽에 자리한 석모도는 소원 성취 기도처로 유명한 보문사를 품고 있다.

신라 시대에 창건한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국내 3대 해상 관음 성지로 꼽힌다.

이곳에는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덕분에 사계절 사람이 끊이지 않으며, 연초에는 새해맞이 기도를 하려는 인파로 북적거린다.

몇 년 전만 해도 석모도에 가려면 배를 타야 했지만, 2017년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보문사에 찾아가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 보문사

 

 

극락보전

 

석모도 눈썹바위 마애불

 

산 중턱 절벽 바위에 모신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인천유형문화재)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기도처다.

이곳에 닿으려면 계단 400여 개를 올라야 하는데, 한 걸음 뗄 때마다 소원을 담은 마음에 정성을 더한다.

그래서인지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이 깊어진다.

 

 

눈썹바위라 불리는 기묘한 암석 아래 있는 마애석불좌상은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한다.

1928년 보문사와 금강산 표훈사의 주지가 함께 새겼다.

마애석불좌상의 시선을 따르면 보문사 아래 옹기종기 모인 집과 석모도 앞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관음 성지가 대부분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보문사도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낙가산 중턱에 자리한다.

 

 

낙가산은 관세음보살이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인도의 보타낙가산에서 따온 이름이며, 보문사에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의 힘이 끝없이 넓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을 자비로 살피는 관세음보살이 보문사 곳곳에 깃들었다.

 

열반에 든 석가모니불을 모신 와불전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면 왼쪽에 개축한 용왕전과 새하얗게 빛나는 오백나한상이 보인다.

오백나한 뒤로 열반에 든 석가모니불을 모신 와불전이 있는데, 이곳에도 참배하며 기도하는 이가 많다.

길이가 약 10m에 달하는 와불상은 전각을 꽉 채울 만큼 거대하고 웅장하다.

 

 

나한상을 모신 천연 석굴 

나한상을 모신 천연 석굴도 영험이 깃든 기도처다.

설화에 따르면, 고기잡이하던 어부가 꿈에 계시를 받고 그물에 걸려 올라온 석불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석굴 안을 흐르는 맑은 기운에 마음이 절로 경건해진다.

 

 

 강화평화전망대

 

분단의 세월이 흐르는 곳 강화평화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2008년 개관한 평화전망대는 남북한의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여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다져 나가는 문화관광공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에 자리한 강화평화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고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염원소와 기념품 판매점이 있고 2층에는 전쟁관련 자료 전시실, 3층에는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실과 옥외전망대가 있다.

 

 

건물 밖에는 망배단(望拜檀)을 마련해 북한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조상들에게 제를 올릴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 전등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소수림왕 1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정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가람 배치는 전형적인 산지가람()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절 입구의 대조루를 지나면 정면 남향한 대웅보전이 있고, 그 주위에는 약사전·명부전·삼성각·향로전·적묵당·강설당·종각·대조루() 등이 있다.

 

 

대웅전은 보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석가·아미타·약사 여래의 삼불과 1916년에 그린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한 『법화경 法華經』 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 네 귀퉁이 기둥 위에는 여인의 형상이라고 하는 나녀상(裸女像)이 추녀의 하중을 받치고 있는데, 이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한다.

 

 

광해군 때 대웅전의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랫마을에 사는 주모에게 돈과 집물을 맡겨 두었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주모는 그 돈과 집물을 가지고 행방을 감추었다.

이에 도편수는 울분을 참을 길이 없어 그 여자를 본뜬 형상을 나체로 만들어 추녀를 들고 있게 하였다.

그럼으로써 불경 소리를 듣고 개과천선하도록 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악녀를 경고하는 본보기로 삼게 했다고 전한다.

 

 

 

보물 제179호인 강화 전등사 약사전 내부에는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약사여래(藥師如來)가 봉안되어 있다.

 

 

중요 유물로는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철종

 

 

보물 제1785호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786호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5호인 전등사 법화경판이 있다.

철종은 우리 나라 종과는 그 형태가 판이한 중국 종으로, 민족항일기 말기의 군수물자 수집공출 때 빼앗겼으나, 1945년 광복과 함께 부평에서 발견되어 다시 이 절로 돌아오게 되었다.

또한, 법화경판은 귀중한 장경판으로서 본래 105매였으나, 1매는 6·25전쟁 때 파주의 모 부대에서 가져갔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거대한 청동수조(靑銅水槽)와 옥등이 있다.

 

 

청동수조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으나 산화된 상태로 보아 고려시대의 유물로 보이며, 옥등은 대웅전 안에서 불을 켜던 것이다.

또한,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된 대조루에는 선원보각(璿源譜閣)·장사각(藏史閣)·취향당 등의 편액이 남아 있다

 

 

사찰 경내에는 70여 년 이래로 은행이 한 톨도 열리지 않았다고 전하는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 백령도

 

인천항에서 북서쪽으로 약 178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섬의 위치는 동경 124도 53분, 북위 37도 52분에 위치한다.

북한의 장여군에서 약 10km, 장산곳에서 15km떨어져 있다.

 

섬의 최고봉은 해발 184m의 업죽산이며 동쪽에 145m의 남산이 있고 서쪽에는 해발 162m의 망골산이 있다.

섬의 남부에는 동쪽에 해발 130m의 이랑구미산, 중앙에 해발 114m의 매막골산, 서쪽에 해발 176m의 삼각산이 있다.

섬의 모양은 동쪽을 바라보는 ㄷ자이다.

본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원래의 이름은 곡도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날으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으며 1999년 10월에는 2층 규모의 심청각 전시관이 준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심청이의 효심을 배워가기도 한다.

까나리액젓·참다래(키위)·흑염소엑기스·전복·해삼·멸치·아주싸리약쑥·가리비·농어·우럭·놀래미 등의 특산물이 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과 세계에서 두 곳뿐인 사곶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관광지로도 유명하여 섬 북서쪽의 두무진은 고려시대의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묘한 절경을 자랑한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뱃길로 123마일을 달리면 4시간 만에 백령도에 도착한다.

 

쾌속선으로 육지와 이어지기 전에는 인천에서 약 11시간이 걸리는 멀고 먼 최북단 외딴 섬이었다.

1993년에 쾌속선이 취항했으니 여행 또는 관광으로 백령도가 이름을 높인지는 얼마 되지 않은 편이다.

항구에 내리자 스치는 바람이 오는 동안의 피로를 풀어주듯 선선하다.

 

 두무진

 

백령도 북서쪽 끝으로 가면 두무진이다.

머리카락처럼 뾰족한 바위가 많아 예전에는 '두모진(頭毛鎭)'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 바위의 형상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것 같다 하여 '두무진(頭武津)'이라 바뀌었단다. 해안가와 절벽 위 능선 사이로 형제바위, 부엉이바위,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등 그 형태에 빗대어 이름 붙인 만상의 기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절벽 틈에는 기댈 곳을 찾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다.

하늘과 바다 사이, 깎아지른 절벽에 녹색 물감을 흩뿌린 듯한 두무진 풍경이 그림처럼 눈에 담긴다.

해안가에는 까만 가마우지가 날개를 펼치고 일광욕을 즐기는가 하면, 해수면에는 천연기념물 제331호인 점박이물범이 가끔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이런 기기묘묘함에 휩싸이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코끼리바위 

 

절벽의 단면을 살펴보면 층층이 여러 겹을 이루고 있다.

오랜 시간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후 굳어진 것이다.

이것이 지각 변동으로 땅 위에 솟았고, 빙하기가 끝나면서 침식과 풍화를 거쳐 지금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맑은 날에는 두무진에서 북쪽으로 장산곶과 몽금포가 보여 실향민들이 향수를 달래러 오기도 한다.

 

 

 

두무진 유람선은 하루 2회, 오후 3시와 4시에 운항한다.

날씨와 파고에 따라 운항이 취소되는 일이 잦다고 하니 관광이 가능한지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 사곶해변 천연비행장

천연기념물 제 391호로 지정된 사곶 해변은 전 세계에 2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으로 나폴리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때 군부대 비행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이곳은 고운 모래알맹이들이 넓이 300m 길이3Km의 넓은 백사장을 이루고 있어 피서지로서 세계최고를 자랑한다.

 

 

밀가루보다 곱고 단단한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모래밭을 형성하고 있는 곳

이런 독특한 환경 때문에 활주로로까지 활용됐다.

 

 

 

규조토가 깔린 사곶해변은 바닷물이 빠지면 비행기 활주로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곧게 뻗은 해변이 드러난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비행기가 이곳에서 뜨고 내렸다.

 

백령호

 

백령도 동부의 양 해안에 방조제를 쌓아 담수한 호수이다

덕분에 많은 간척지가 만들어져 백령도 농산물 생산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 용틀임바위

 

 용이 몸을 비틀어 솟아오르는듯 하다하여 용틀임바위라고 한다

 

중화동교회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이며, 백령도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이다.

가장 빠른 개혁의 길을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믿은 개화파 정치인 허득(許得)이 황해도 소래교회의 도움을 받아 1898년 10월 9일 설립하였다.

 

 

 

■ 천안함 46용사위령탑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요약하자면,

2010년 3월 26일 21시 22초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폭침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기준으로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천안함 폭침 지점이 바라다 보이는 지역인 백령면 연화리에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8억 2천만 원의 사업비를 투자, 2010년 1월 4일 공사 착공하여 76일간에 거쳐 3월 20일 준공하였고, 3월 26일에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 콩돌해안

 

 

백령도를 구성하는 암석의 절반 이상은 규암이다.

규암은 석영이라는 단단한 광물로 대부분 구성되는데, 이 단단함 덕에 형성된 독특한 해안을 만날 수 있다. 백령도 동남쪽에 자리한 콩돌해안이 그것이다.

 

폭 30m, 길이 800m의 이 해안에는 남해안에서 볼 수 있는 몽돌보다 작은 콩만 한 자갈이 깔려 있다.

어느 하나 모난 것 없이 반들반들하다.

 

파도가 수천 년을 쓰다듬어 그 아기자기한 모습을 완성했다니 새삼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콩돌은 백령도의 지질과 지형을 알 수 있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 심청각

 

 

백령도는 《심청전》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심청이 거동 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맛자락 무릅쓰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우루루루루루, 만경창파 갈매기 격으로 떴다 물에 가 풍, 빠져노니···."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드는 대목이다.

 

 

백령도 북동쪽, 심청이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전해지는 인당수가 보이는 곳에 심청각이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바다는 북쪽으로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사자바위

포효하는 사자처름 생겼다고 하여 사자바위라 한다

 

 

■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