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 漫步/식객유랑

향토 별미 - 경산 소고기국밥

초암 정만순 2022. 2. 24. 05:12

향토 별미

경산 소고기국밥

 

 

옛 경상도 토종국밥 그대로…가마솥에 푹 끓여낸 얼큰한 소울푸드
 
 
김가루를 국물에 넣으면 더욱 당겨지는맛.

 

전통 5일장을 찾아다니는 장꾼들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추위와 허기를 동시에 달랠 수 있는 장터음식이 바로 국밥이다.

소구레와 선지 등 소고기 부산물을 주재료로 하여 우거지를 넣고 가마솥으로 설설 끓여 낸 국밥은 국밥집 주인의 걸쭉한 입담과 손맛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정겹기 그지없는 우리네 음식이다.

마을 길흉사 때도 가장 먼저 국밥솥에 불이 지펴지면서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고….

특히 운동회날이면 운동장 바람을 타고 퍼져 나오던 구수한 국밥 냄새와 그 맛은 세월이 지나도 향수처럼 그리워지는 고향 맛이고 어머니의 냄새다.

지역마다 국밥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어 재미나는 국밥 지도가 그려진다.

서울 경기지역은 소머리 국밥과 양평해장국이 대표적이다.
 

깍두기 맛도 엄지척

 

조선시대 한양도성은 사대부들의 소고기 수요가 많았기에 도축장도 성시를 이뤘다.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소고기 부산물을 주재료로 삼아 국밥을 파는 탕반가도 즐비했다.

특히 서울 탕반가에서는 소머리와 뼈, 껍질, 우족을 가마솥에 넣고 푹 고아낸 소머리국밥이 유명하다.

양평은 소내장과 선지를 주재료로 콩나물과 우거지를 넣고 고추씨기름으로 얼큰한 맛을 낸 해장국이 인기다.

호남지역 국밥은 맑은 나주곰탕과 시원한 전주콩나물국밥으로 대변된다.

나주곰탕은 소뼈와 파뿌리, 양파, 마늘을 넣고 고아 낸 육수에다 사태살과 양지머리를 넣고 끓여 내 국물이 맑고 감칠맛이 특징이다.

대구의 따로국밥과 부산의 돼지국밥도 질세라 그 유명세는 전국에 이른다.

그렇다면 경북의 국밥은 어디서 어떻게 맛을 내고 있을까?
 

경상도 옛국밥 형태 그대로 모습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온천골가마솥국밥

 

△소고기 대파 무가 연출하는 맛의 향연.

경상도 국밥 유전인자를 그대로 이어 복원하고 있는 곳.

바로 경산시 계양동에 위치한 ‘온천골 가마솥국밥’집이다.

경북도내 남부권인 경산, 청도, 영천 지역의 국밥의 맛과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 오고 있다.

 



어떻게 옛날 경상도 토종국밥을 그대로 이어 왔을까.

이 집의 특징은 조리방법에서 식재료까지 옛 방식 그대로를 고집한다.

먼저 수돗물을 쓰지 않는다.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 가야산 줄기 지하 암반수를 길어다 쓴다.

이틀에 4리터 들이 생수통 80통이나 된다.

“옛날에는 상수도가 없었잖아요. 운동회 때 먹던 국밥의 국물맛은 너무 맛있었는데,

우물물을 썼지요. 요즘 수돗물을 쓰는 국밥에선 그 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온천골 가마솥국밥집 박수근 사장은 장사 초기 국밥 맛의 차이가 상수도와 지하수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물부터 전통 그대로 써보자고 다짐했고 그 초심은 20년째 지켜지고 있다.

두 번째 비결은 푸짐한 고기다.

구수하고 진한 국물 맛은 소고기에서 비롯되니까 국밥 재료로 넉넉하게 사용한다.

특히 국물맛에 큰 영향을 주는 양지머리와 사태살을 아낌없이 국솥에 투하한다.

“양지, 사태, 앞다리살, 목살 네 가지 부위를 쓰는데 고기 배율을 잘해야 됩니다.

그래야 진국을 뺄 수가 있지요”

소고기 부위 선택만으로 끝이 아니다.

고기를 어떻게 써느냐도 중요하다고 한다.

정육과 힘줄, 지방 부위가 고루 섞여야 하고 고깃결의 반대 방향으로 두툼하게 썰어 넣어야 식감도 좋다는 설명이다.

매일 300인분을 끓이려면 소고기는 모두 24㎏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국밥 한 그릇에 고기양이 80g이나 된다.

그다음으로 재료가 대파와 무다. 대파와 무. 그리고 소고기가 한 솥에 어우러져서 국밥을 끓이는 게 경상도 특징이다.

지금은 전국 국밥 스타일이 다 뒤섞여 어디든 비슷하게 재료를 쓰지만 옛날 경북지방 국밥은 선지와 소구레를 쓰지 않았다.

길쭉하게 막썬 대파는 단맛을 내고, 납작납작 네모하게 썬 무는 시원한 국맛을 담당한다.

무와 대파는 6대 4 비율이다.

또 하나 비법이 추가된다.

제대로 맛이 나려면 고추기름이다.

이 특제소스가 더 들어가야 국밥이 제맛을 연출한다.

“국을 끓일 때 고춧가루를 집어넣으면 국이 지저분해지고 텁텁해지기 때문에 저희는 반드시 고추기름을 내서 걸러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매울 것 같지만 온천골의 국밥은 강한 매운맛이 아니라 개운한 느낌이다.

고추기름의 효과다.

국물에는 잘 익은 대파의 미끈한 식감과 무의 시원한 맛은 소고기 맛에 버금간다.
 

두툳한 고깃살이 푸짐한 온천골가마솥국밥.

 

△IMF때 창업, 서민들에 맞춰 저렴한 음식으로 승부.

박 사장이 국밥의 옛 맛을 강조하는 이유는 본인이 바로 국밥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상도를 ‘국밥의 고장’이라고 강조한다.

국밥의 원조는 경상도라는 말이다.

소고기 정육을 쓰는 게 소고기국밥이지 서울 등지에서 소구레나 선지 따위 부산물로 국밥을 만드는 건 사실 흉내만 내는 것이지 제대로 된 국밥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20여 년 전 1999년 11월 개업 당시 아내와 친척 등을 동원한 ‘가족가게’로 시작을 했지만 20년이 넘는 지금은 직원이 10명이 넘는 알찬 외식 사업체로 성장했다.

“개업 당시 하루 200그릇 정도 팔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업 첫날 800명이 넘는 손님이 찾아 주셨어요”

창업에선 아이템 선정이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아이템을 때맞춰 선정하고 때맞춰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그는 창업 당시가 IMF 경제난국으로 모두가 어려울 때 서민의 음식 소고기 국밥이 뜰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서민 기초식품 안동간고등어가 전국에 날개 돋친 듯 팔릴 때와 창업 시기가 동일하다.

“엄청나게 어려웠던 당시 불경기에는 저렴한 음식이 필요하다는 점과 패스트푸드 홍수와 국가 초유의 경제난국에 지친 현대인들은 어릴 적 추억이 실린 ‘옛 것’을 그리워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반드시 가마솥 장작불로 국을 끓이고 국밥은 놋그릇에 담아낸다.

뭐든 옛 그대로다. 손님들이 이런 조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주방도 개방식이다.

“어릴 때 운동회나 동네잔치 때 불려 다니면서 국밥 끓이던 할머니가 생각났지요.

수소문 끝에 소재지를 찾아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도 옛 방식을 고스란히 다 배울 수가 있었지요”

솜씨 좋은 국밥 할머니는 박 사장과 함께 8년을 함께 하며 국밥을 끓여 냈다.

주먹구구식의 할머니 국밥을 눈여겨봐 오면서 표준 레시피를 만들었다.

그 할머니가 하던 대로 정직한 식재료를 듬뿍 쓰고 제대로 만들어 그 가치를 고객에게 돌려주고 인정받자는 것이 박 사장의 경영철학으로 굳혀졌다.
 

옛 방식 그대로 끓여지는 온천골 가마솥 국밥.

△잘 끓여서 잘 담아줘야. 국밥의 진수를 보여주다.

다시 온천골 가마솥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좌편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오픈형의 주방엔 큰 가마솥 6개가 걸려 있다.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고 무쇠 가마솥 앞에는 박 사장이 큰 국자를 들고 국솥 뚜껑을 열고 연신 들여다보면서 국을 퍼 담는다.

뭔가를 계산이라도 하는 듯하다.

수백 그릇의 국밥을 담아도 똑같은 국밥을 담기 위해서란다.

“국밥 한 그릇이 만원입니다.

한우 고깃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국밥 가격이 만원이란 건 결코 헐한 게 아니지요.

그렇기에 60% 정도는 고객에게 돌려 드려야 됩니다”

고기는 딱 8점, 정말 큼지막하다.

잘 익은 대파와 무, 그리고 국물의 양, 마지막에 편구름처럼 둥실 떠오르는 벌 건 고추기름 양까지도 비율을 잘 지켜서 퍼 담아낸다.
 

장작 알불에 노릇하게 구워지는 석쇠구이.
첫맛은 달짝지근 뒷맛은 부드러운 석쇠구이.

 

그렇다. 끓이는 예술 못지않게 담는 것도 예술이어야 한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만족할 수 있도록. 홀 옆에 국을 떠주는 별도 공간이 있다.

그는 많이 익은 국을 초탕해 놓은 국과 잘 혼합해 담는다.

다양한 식감을 맛볼 수 있다.

너무 풋내가 나도 너무 짓물러도 제맛이 아니다.

퍼내는 동안 남은 국은 무르고 그걸 아직 재탕하지 않아 힘찬 초탕 국과 섞여야만 그 옛날 그 맛이 된다.

“어느 것 하나가 부족해도 과해도 맛이 감해지지요”

그래서 이곳 가마솥의 국그릇은 아무나 못 만진다.

박 사장과 오랜 세월 같이 일해 온 담당 여직원 딱 1명 한 테만 맡긴다.

 

“틈만 나면 홀 직원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절대 국그릇을 흔들지 말고 떠 준 대로 조심조심 손님께 내려놓으라고 당부합니다.

왜냐면 위로 올린 고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은 모습의 첫 대면은 국밥이 황량하게 보일 수 있고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없거든요”

제대로 끓여 낸 걸 제대로 보여 주자는 취지다.

박 사장은 돈 받는 것도 카드 긁는 것도 아직 서투르다.

처음 개업 때부터 현재까지 종일 주방에 있지만 카운터 자리엔 앉아 본 적이 없다.

처음처럼 직접 국을 끓이고 국을 제대로 퍼담는 일만 하고 있다.

 



소고기국밥 외에도 장작불에 구워 주는 석쇠불고기도 별미다.

양념에 재워 낸 소고기를 석쇠로 숯불에다 구워 손님상에 올린다.

마치 떡갈비 같은 맛이다.

이 집 제 2효자메뉴다.

잘 삭은 깍두기도 일품이다.

뜨끈한 국밥과는 최상의 궁합이다.

기본이 빵빵한 온천골 가마솥국밥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앞으로 100년을 더 이어 가고도 남음직 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