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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의 놓치기 쉬운 볼거리

초암 정만순 2022. 2. 21. 11:15

경주 불국사의 놓치기 쉬운 볼거리

 

 

경주 불국사의 눈여겨 볼거리가 있는 곳

 

눈 온 날의 자하문

 

불국사에 들어서면 큰 규모로 인하여 대충 둘러보아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다보니 찬찬히 둘러보지 않고 청운 백운교, 다보탑,석가탑 등 널리 알려진 것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다른 곳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우수한 문화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으며 우리 선조들의 예술적 미각(美覺)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유물들이 많다.

 

 

1, 자하문의 휘어진 계량(繫樑-들보)

 

자하문(紫霞門)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중문으로 대석축에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 앞에는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가 놓여 있다. 평면이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가운데 판문을 달아 여닫도록 하였다.

이 자하문의 특징은 평주와 고주 사이에 앞뒤 방향으로 계량(繫樑-들보)을 걸어 구조적 안전을 꾀하고 있는 점이다.

계량(들보)은 이리저리 휘어진 목재를 그대로 활용하였는데 한쪽은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라가고 다른쪽은 위에서 아래로 휘어져 서로 대칭적인 형태를 하고 있어 색다른 멋을 보이고 있다.

들보(계량) 옆, 해와 달을 상징한다는 둥근 원형판

그냥 멋을 내기 위함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설에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상징화하여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한다.

 

계량(들보) 옆 삼문(三門)의 양쪽 문에는 가운데 둥근 원형판이 각각 달려 있는데, 이것이 곧 해와 달을 의미하며, 들보가 위로 올라가는 쪽의 원형판이 해(太陽)이고 아래로 내려오는 쪽의 원형판이 달(月)을 의미하여 음양(陰陽)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2. 자하문의 홍살(紅箭)과 귀면(鬼面)

홍살문의 원래 이름은 홍전문(紅箭門)이다.

붉을 홍(紅), 화살 전(箭), 문 문(門). 한마디로 붉은 화살로 된 문이란 뜻이다.

 

태양의 색깔은 음양(陰陽)에 있어 양(陽)의 색인 붉은 색으로 사악한 기운을 내쫓는 색이다. 그래서 동짓날 먹기도 하고 대문이나 그 근처에 뿌리기도 하는 팥죽의 색도 붉은 색이듯이 홍살문에 단청(丹靑)의 오방색(五方色) 중 붉은 색으로 칠을 한 것도 사악한 기운을 내어쫓기 하기 위함이다.

자하문 삼문(三門)의 홍살과 귀면, 해와 달을 상징한다는 원형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사이의 윗부분에 붉은 화살을 만들어 놓은 홍살문은 왕릉 능역이나 향교, 궁궐, 관아의 대문, 사찰의 금강문과 천왕문, 종각, 비각 그리고 정려각과 서원, 재실뿐아니라 민가의 솟을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악귀를 쫓는 풍수적(風水的) 기능을 하는 문이다

 

홍살문의 일반적인 구조를 보면 홍살 뿐만 아니라 가운데에는 삼지창(三枝槍)까지 만들어 놓았고 삼지창의 가운데에 음양을 뜻하는 태극(太極)이나 삼태극(三太極), 불교의 만(卍)자 문양을 그려넣기도 한다.

홍살문의 삼지창을 당파창(鏜鈀槍)이라고도 하는데 당파창은 전쟁을 치를 때 쓰는 군기(軍旗)의 일종이었다.

자하문에는 태극 대신 귀면을 그려넣었다. 이러한 귀면 문양은 불국사의 건축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하문 홍살의 귀면

 

자하문의 홍살 가운데에는 귀면(鬼面)이 있다. 이 귀면 역시 벽사(辟邪)의 의미로서 불국사 경내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기 위한 풍수적 무기로서의 그 의미가 있다

관음전 처마 밑의 귀면

 

 

3. 극락전 연화교의 계단식 분리대

가운데 분리대가 계단으로 되어있는 연화교

청운, 백운교와 연화, 칠보교의 분리대 (연화,칠보교를 합한 높이는 백운교의 높이와 같다)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는 불국의 세계와 연화장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이다. 다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다. 이 계단의 가운데에는 양쪽을 분리하는 분리대가 장대석(長臺石)으로 길게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연화교(蓮花橋)의 분리대는 다른 곳과 달리 계단형식으로 만들어 층칸이 있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연화교는 계단마다 연꽃이 새겨져 있어 부처님을 상징하는 연꽃을 밟지말고 분리대의 계단을 통하여 오르내리라는 뜻이라고 추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화분 등 장식구를 놓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다고 하지만 명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4. 대웅전의 반야용선 (般若龍船)

흰 코끼리상 입에 물려있는 목조 반야용선

반야용선(般若龍船)은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배를 말하는 것으로 반야(般若)는 진리를 깨달은 지혜를 의미하며 용선(龍船)은 극락으로 향해가는 배를 상징하는데 뱃머리를 용으로 나타낸다.

이 배는 중생들에게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주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함으로 누구든지 반야용선에 승선하면 지혜를 깨달아 고통 없는 부처님 나라로 갈 수 있게 된다고 하는 의미로 대웅전이나 극락전(極樂殿)과 같은 전각 안의 대들보 밑에 봉안되는 것이 대부분이나 일반 사찰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야용선은 굵은 막대기를 가로로 한 모양으로 용의 비늘이 새겨져 있고, 양쪽 끝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아래쪽에는 작은 쇠종(搖鈴-요령)이 매달려 있어 법회시(法會時)에 사용한 예불도구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불국사 대웅전 반야용선(般若龍船)은 양쪽의 용두(龍頭)는 사라지고 없으며, 반야용선의 아랫부분에 달려있는 요령(搖鈴)은 원래 13개가 달려 있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4개는 사라지고 현재 9개만 매달려 있다.

 

줄에 매달려 있을 악착동자는 보이지 않는 대신 반야용선 위에 새 한마리가 올라 앉아 있는데, 이것은 다른 반야용선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모습으로 왜 새를 올려놓았는지 그 의미는 알수 가 없다.

 

청도 운문사의 반야용선과 악착보살

 

청도 운문사의 반야용선 처럼, 용선의 아래에는 늘어진 줄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경전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사람을 흔히 악착보살이라고 부른다

 

구전되어오는 설화에 따르면 ‘청정하고 신앙심 깊은 이들을 서방의 극락 정토로 인도해 가는 반야용선이 도착 했을 때 이 용선을 타야 할 어떤 보살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작별인사로 그만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이미 용선이 떠나가고 있었기에 보살은 용선에서 던져둔 밧줄을 꽉 붙잡고 악착같이 매달려서 서방극락정토로 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악착보살이라 불려진다고 한다.

극락전의 반야용선도

 

대웅전에는 반야용선이 코끼리의 입에 매달려 있으나 불국사 극락전 벽에는 반야용선을 그린 '반야용선도' 벽화가 있다

 

 

5. 대웅전의 사자상과 코끼리상, 업경대

코끼리상과 사자상

대웅전의 문앞에 서서 보면 왼쪽 고주 위에 흰 코끼리상과 반야용선, 왼쪽에 사자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의 부처님 옆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는데 불국사 대웅전에는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을 모신다.

그 대신 법당 안 시렁(고주) 위에 보면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사자상과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코끼리상이 고주에 앞발을 걸치고 뒷발은 내공포를 딛고 서 있다

 

마치 해태를 닮은 사자는 흰색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의 점들이 칠해져 있고 코끼리는 전체에 흰색을 칠하였으며 입에는 반야용선을 물고 있다.

업경대를 지고 있는 원숭이형상의 동물

 

문 앞쪽의 기둥 위에는 원숭이 형상의 동물 등에 업경대(業鏡臺)가 꽂혀있다.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가면 업경대(業鏡臺)라는 거울 앞에 서게되는데, 그 때 전생에 쌓은 자신의 업이 거울 안에 비치게 되며 염라대왕은 거울에 나타난 그 업보에 따라 다음 생(生)의 등급을 결정한다고 한다

위쪽의 둘글고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업경대를 나타낸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 안은 작은 동물원이다.

코끼리, 사자, 용, 주작, 원숭이. 새가 구석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하나하나 찾아보자.

대웅전의 바깥 처마밑 공포에는 무려 16마리의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 이것 또한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6. 관음전의 당(幢)

관음보살의 양쪽에 길게 드리워진 것이 당간에 매어달던 당(幢)이다

 

 

사찰의 입구에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당간지주(幢竿支柱)란 당간(幢竿)을 고정시키기 위한 받침석이고 당간은 당(幢)이나 번(幢)을 걸기위해 높이 세워둔 기둥을 말한다.

당간 위에 당이나 번을 걸게 되는데, 당(幢)과 번(幢)은 여러 불교행사에 사용되었던 장엄물이었고,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에 매달아 가람의 위치를 표시하고 절의 경계를 나타내며, 성스러운 장소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의미로 세운 것이다

 

당(幢)과 번(幡)의 형태는 깃대에 매어단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나 모양에 조금의 차이가 있다.

당은 원통(圓桶), 육면체(六面體), 팔면체(八面체) 등의 형태를 띠는 입체적인 구조물에 좁은 천을 길게 수실처럼 늘어뜨려 장식을 한 것이며, 번(幡)은 평면체(平面體)로서 길게 늘어뜨린 깃발형태이다.

요즘 농악대나 풍물놀이패가 앞에 들고 나오는 세로형의 깃발이 번(幡)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번처럼 평면체이나, 수실같은 좁은 천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을 한 형태를 당(幢)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당의 형태(입체적) 번의 형태(평면적)

관음전 내에 걸려있는 당의 모습

대부분 석재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당간지주나 석재, 철을 사용한 당간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나 천으로 만들어진 당은 남아있는 경우가 없어 쉽게 볼수가 없다

 

불국사 관음전에는 2개의 당(幢)이 걸려 있다. 위에는 4각형의 형태이나 아래로 퍼지면서 8각형을 이루며 수실이 드리워진 각각의 면에 불상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각면의 모서리에는 보주가 달려있다. 8각의 면체 아래로는 길게 장식을 한 색색의 천이 드리워져 있다

 

비록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당의 형태를 알아보는데 도움이 되며 다른 사찰에서는 이를 본 경우가 없으므로 놓치지 말고 보아야할 것이다.

 

 

7.신라시대의 변기돌

극락전의 왼쪽에 종각이 있고 종각 뒤편에 전통찻집과 기념품 판매장이 있다. 찻집 뒤로 화장실로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 좌우와 넓은 공터 여기저기에 많은 석재들이 놓여 있다. 불국사 복원 공사를 하면서 나온 석재들을 재사용하고 남은 석재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그 석재더미에 1,000년전 우리 신라인들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동시에 세상의 근심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해우소(절간에서는 뒷간을 해우소라 부름)의 흔적이 있다.

 

판석의 크기를 보면 한사람이 들어가기에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크기이며 파낸 홈의 크기도 적당하고 쪼그리고 앉았을 때 두 발이 놓여지는 위치도 알맞다. 2개의 돌을 대칭이 되게 파낸 뒤 맞붙혀 놓았다

발이 놓이는 옆으로 돌을 'ㄴ'자로 파내어 각을 지어 놓았는데 칸막이용 나무를 세워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아랫쪽 사진은 좀 더 고급스러운데, 바닥을 물로 씻을때 물이 쉽게 흘러내리도록 약간 경사를 주었다.

 

 

8.석조(石槽)의 연화무늬(蓮花紋)

보물 제 1523호 불국사 석조

석조외부의 안상무늬

석조 내부 밑바닥과 옆면에 연화무늬가 선명하다

 

불국사 경내에는 3곳에 5개의 석조가 있다. 그 중에서 청운교 백운교의 동쪽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옆의 석조는 보물 1523호로 지정되어 있다.이 석조의 원래 위치가 어디이며 어떤 용도에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토함산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모아 식수(食水)을 제공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으나 보물로 지정된 이후부터 물을 담지 않고 그냥 전시하고 있다.

 

불국사석조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일반적인 만들어진 직사각형 형태의 석조이나 화려한 문양이 돋보인다.

네모서리와 길이가 긴 변의 중앙부에서는 안쪽으로 둥글게 모접기해 유려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에는 화려한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깥쪽의 아랫부분에는 안상문양이 새겨져 있다.

석조의 문양

 

 

9. 극락전의 돼지상과 대웅전의 동물상

극락전 편액 뒤의 돼지상

 

극락전의 편액 뒷쪽 공포 위에는 황금돼지의 해로 떠들썩했던 2007년 2월 한 관람객에 의하여 발견된 한마리의 목조 돼지상이 있다.

길이 80㎝ 가량에 나무로 다듬어져 있으며 황금빛을 띠고 있으며 뾰족한 입, 날카로운 눈매가 금방이라도 뛰어 나갈 듯 역동적인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입가에는 송곳처럼 생긴 흰색 이삘이 있어 야생 멧돼지에 가까운 형상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국사가 전소되었을 때 이 극락전도 함께 불탔고 그후 중건된 것은 조선 영조 때인 1750년이니 아마 이 돼지상도 중건 당시인 영조때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돼지를 복을 가져다주는 '황금돼지' 또는 '복돼지'라 부른다. 돼지는 재물의 풍족함을 주는 길상의 동물이며 돼지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어 복덕(福德)과 다산(多産)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의 동물상

 

한편, 불국사 대웅전의 처마 밑에도 이와 비슷한 동물상이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서서 왼쪽 3번째의 공포 아래에 만들어져 있다.

돼지 같기도 하고 노루같기도 한데 색깔은 황금돼지와 달리 화려하지 않으며 적갈색의 단색에 주둥이에만 희게 칠해져 있고 몸통에는 검은 색으로 털을 표현하였다.

주둥이 옆의 털 자욱으로 보아서 돼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조각된 형체가 애매하여 무슨 동물로 보아야할 지 모르겠으나 이 동물상 역시 일반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형상이다

 

10.코끼리 석대좌와 사자 석대좌

비로자나 삼존불대좌

보현보살의 코끼리대좌

문수보살의 사자대좌

직사각형의 받침에는 36잎의 연화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사자는 무릎을 꿇은 형상이다

비로자나불 대좌

 

1970년 6월, 불국사 복원공사를 하던 중 무설전지(無說殿址) 동북쪽의 석축아래에서 문수보살의 대좌로 보이는 사자대좌와 보현보살의 대좌로 보이는 코끼리대좌, 비로자나불의 대좌로 보이는 팔각연화대좌가 발견되었다.

비로자나불과 협시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금창기에 기록되어 있는 비로자나삼존불의 대좌가 틀림이 없어 보인다.

 

돌로 다듬어져 있는 석조대좌인데 비록 파손이 되어 원래의 모양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남아있는 부분을 살펴보면 사자와 코끼리의 형태가 완연하고,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9세기말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 사자(獅子) 위에 앉아 있는 문수보살과 코끼리(象)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을 협시로 한 석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극히 보기가 드물다.

특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코끼리와 사자형태의 석조대좌는 3기밖에 없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조각솜씨를 보이고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1. 청운, 백운교의 이중 홍예

청운교 백운교의 2중 홍예석

청운․백운교의 층층다리 받침대와 벽석과의 사이에 통로가 열려 있고 통로의 위쪽은 홍예(虹霓․아치)를 틀어 마감하였다. 이 홍예 구조법은 골격이 되는 홍예의 틀을 먼저 만들고 그 사이를 장대석처럼 다듬는 판석을 치밀하게 축조해 천장을 완성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곳에 있는 홍예와는 달리 불국사 백운교의 홍예는 아주 독특한 모습이다.

불국사 홍예는 전 세계에 둘도 없는 2중구조로 된 홍예이다. 자세하게 보면 작은 돌을 다듬어 “속틀홍예종석”을 만들고 그 위에 3개의 돌로 구성된 “겉틀홍예종석”을 만들어 덮어 2중으로 홍예를 축조하였다.

 

여수 흥국사의 홍예다리 불국사 청운,백운교의 2중홍예

 

이렇게 이중의 홍예를 만들므로 해서 상부의 무게를 분산시켜 견고성을 높이고 지진 등으로 인한 흔들림에 더욱 신축성을 발휘하여 내구성을 높이며 미적 장식성을 가미한 독특한 구조물인 것이다

홍예다리 중앙에 걸리는 힘은 “겉틀홍예종석”“마름모꼴모양의 종석”을 통해 속틀홍예종석으로 분산되고, 다리 양쪽에 걸리는 힘은 겉틀홍예종석의 “좌우종석”으로 분산됨으로서 홍예다리 전체로는 항상 일정한 힘을 받게 된다.

이처럼 2중구조로서 홍예다리에 걸리는 힘을 분산시킨 것이 천년 세월을 견뎌 온 비결(秘訣)이기도 한 것이다

 

12. 눈썹지붕과 낙숫물받이돌

동그라미 속의 지붕처럼 생긴 돌이 눈썹지붕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연결하는 홍예의 좌우 모서리는 곡선(曲線)과 직선(直線)이 만나는 곳이어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곳이다.

홍예틀 위로 처마곡선까지 날씬하게 생긴 눈썹지붕이 올라앉았다. 눈썹지붕은 홍예석(虹霓石) 위에 설치한 첨차석(檐遮石)으로 선반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로 지붕을 선반널처럼 올려놓은 것이다.

지붕의 유연한 곡선까지를 함축시켜서 멋이 잔뜩한 지붕형의 받침대인데, 그렇게 얇고 날씬하게 만들어진 눈썹지붕 위로 돌난간의 앉은뱅이 난간 동자를 올려 세우고 둥근 돌난대를 건너질렀다.

이런 눈썹지붕은 이곳 말고도 청운교와 자하문 석대의 벽석과 연결되는 부분의 좌우에도 만들어져 있다

자하문에서 내려다보면, 맞배지붕의 빗물 흐르는 지붕 골의 물매곡선을 보는 듯이 위로부터 흘러내리던 선이 앞에서 약간 들리면서 곡선을 형성하였는데, 탑의 지붕이나 기단 갑석에서와 같은 석조물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눈썹지붕(눈썹돌)의 역할은 무엇일까? 자하문 지붕에서 빗물이 떨어져 내리면 기왓골에 모여 떨어지는 물줄기는 무겁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 낙숫물이 떨어지다보면 땅이 패이게 된다.

또한 집중되는 낙숫물이 벽석 발 밑을 파헤치거나 물이 스며들면 침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눈썹지붕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하문 추녀에서 눈썹지붕 위로 떨어진 낙숫물은 사방으로 튀어 흩어지므로 땅바닥이 패어지는 것을 방지하게 되는 것이다

눈썹지붕 외에도 빗물에 땅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는 돌구조물은 다른 곳에도 있다

 

서쪽 회랑의 석단 옆 낙숫물받이 장대석

복원시 회랑의 크기를 줄이는 바람에 처마길이가 짧아져 낙수가 물받이돌 안쪽에 떨어진다

 

극락전 서쪽 석단 옆 지면에는 길다란 장대석이 줄지어 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에 땅에 바로 떨어지면 땅이 패이므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낙숫물이 떨어지는 지점에 길다란 돌을 놓아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낙숫물이 떨어지는 지점보다 약간 바깥쪽에 있다. 이것은 불국사 복원시에 회랑을 세우면서 원래보다 작은 규모로 회랑을 복원하였기 때문에 처마가 창건 당시보다 안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