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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 봉기동 삼층석탑

초암 정만순 2020. 9. 14. 09:42

역사기행 - 봉기동 삼층석탑

 

 

@ 탐방일 : 2020. 09. 13

 

 

청도 봉기동 삼층석탑

 

보물 제113호

 

 

 

우리나라 탑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석탑, 그중에서도 삼층석탑이다.

이러한 삼층석탑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세워진 경주 감은사터 동서 삼층석탑과 고선사터 삼층석탑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예로 꼽힌다.

각각 신문왕 2년(682)과 같은 왕 6년(686)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 두 탑은 이후 건립되는 우리나라 삼층석탑의 기본적인 형태를 두루 갖추고 있다.

위에 든 두 탑은 정사각형, 곧 방형을 기본으로 하여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탑의 기초를 이루는 기단부, 몸체가 되는 탑신부, 그리고 탑의 윗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가 그것이다.

기단은 상층과 하층의 이중기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올려진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번갈아 놓여 제가끔 3층을 이루고 있고, 감은사탑의 경우 탑신 위로 노반이 남아 있고 찰주가 솟아 있으며 고선사탑은 노반·복발·앙화가 잔존하고 있어 두 탑에 상륜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개의 돌로 짜맞춘 하대석·중대석·갑석으로 이루어진 하층기단은 중대석의 각 면마다 3개의 탱주와 두 개의 우주가 도드라지게 새겨졌으며, 가볍게 경사진 갑석의 윗면 가운데에는 상층기단을 받는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굄대가 2단으로 마련되었다.

중대석과 갑석으로 구성된 상층기단에는 중대석의 네 귀퉁이에 우주가 서고 면마다 2개의 탱주가 양각되었으며, 아래로는 부연(附椽)이 새겨지고 위로는 1층 몸돌을 받는 각형 2단의 굄대가 두드러진 갑석이 그 위를 덮고 있다.

탑신은 몸돌이나 지붕돌 모두 여러 개의 돌을 조립하듯 짜맞춘 점이 이 시기 삼층석탑의 특징이다.

몸돌에는 모퉁이마다 우주가 있는데 특히 1층의 그것은 별개의 돌로 세운 점이 두드러진다.

백제계 석탑에 비해 훨씬 두툼한 지붕돌은 4매의 돌로 이루어졌다.

지붕돌의 폭은 비교적 넓어 매우 안정감이 있는데, 처마선이 일직선을 이루고 그 아래로는 5단의 층급받침이 정연하다.

낙수면은 목조건축의 지붕처럼 밋밋하게 경사졌고 낙수면이 서로 만나는 귀마루는 아주 가벼운 곡선을 이루며 상단에는 위층 몸돌을 받는 각형 2단의 굄대가 있다.

상륜부는 남아 있는 형태가 불완전하여 그 특징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체로 이와 같은 모습으로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에서 기본적인 틀이 잡힌 삼층석탑의 형태는 그 규모가 적절히 줄어들고 구조가 단순해지며 정제되어 8세기 중반이면 전형적인 형태가 완성된다.

그러면 우리나라 삼층석탑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기단은 감은사탑이나 고선사탑에서 정착된 초기 양식의 이중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부에서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하층기단의 탱주수가 셋에서 둘로 줄어든 것이 그것으로 나머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탑신은 형태의 변화보다 구조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몸돌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던 초기 양식이 전형기에 오면 하나의 돌로 이루어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몸돌 네 귀퉁이의 우주는 도드라지게 새겨지는 것으로 바뀐다.

주목할 점은 각 층 몸돌의 크기인데, 높이는 1층이 나머지에 비해 훨씬 높고 2층과 3층이 같은 반면 폭은 아래부터 4:3:2의 일정한 비율로 줄어든다.

지붕돌도 각각 하나의 돌로 완결되고 초기 양식에 비해 폭이 얼마간 줄어들어 그 비율이 몸돌과 같이 4:3:2를 이루는 형태로 정리될 뿐 그밖의 특징들은 거의 동일하다.

요컨대 8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의 삼층석탑은 이중의 구조에 상·하층 면석의 탱주는 2개씩이며 각 층 갑석 위에는 2단의 굄대가 마련되고 상층기단 갑석 밑면에는 부연이 새겨지는 형태의 기단을 갖게 된다.

탑신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몸돌과 지붕돌이 번갈아 중첩되어 3층을 이룬다.

몸돌은 네 귀에 우주가 양각되었을 뿐 다른 장식이 없고 특히 그 폭의 비율이 4:3:2가 된다.

지붕돌은 5단의 층급받침, 일직선의 처마선, 긴장감 있게 곡선을 그리는 낙수면과 귀마루, 2단의 굄대를 갖추게 되고, 그 폭은 역시 4:3:2의 비율로 정리되어 상층기단 갑석의 모서리와 지붕돌의 귀를 차례로 연결하면 상륜부 끝에서 만나는 일직선이 그어지게 된다.

아울러 상층기단 축부의 폭과 탑신부의 높이가 황금비례를 이룬다든지 상륜부를 제외한 탑의 높이가 대략 5~7m 정도로 초기 양식처럼 장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왜소하지도 않은 적정한 크기를 유지하는 점도 전형기 석탑의 특징이다.

봉기동 삼층석탑은 위에 든 우리나라 삼층석탑의 완성기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석탑이다.

불국사 삼층석탑, 갈항사터 동서 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석탑들이니 봉기동 삼층석탑의 수준을 가늠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1층 몸돌이 전형기의 그것에 비해 다소 높아 내부에서 팽창하는 힘이 앞에 말한 탑들에 비해 조금 약화된 느낌이 들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없어진 상륜부를 제외한 높이가 5.47m이고,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삼층석탑 완성기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석탑으로 경주 외 지방에서 만들어진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우수한 석탑으로 꼽힌다.

청도군에서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탑이 있는 자리에는 진흥왕대에 정전을 기념하여 세운 정전사(停戰寺)가 있었는데, 그 음이 와전되어 천정사로 불렸으며 지금의 풍각초등학교 자리에 대웅전이 있었다고 하나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 애초에는 지금처럼 하나의 탑이 아니라 동서로 같은 모양의 쌍탑이 있었으나 광복 후 관리 소홀로 동탑이 도괴되어 흩어지고 서탑만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고도 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석탑들이 대부분 쌍탑인 점을 감안하면 수긍이 가는 얘기다.
멀리 비슬산을 배경으로 덤덤히 서 있는 봉기동 삼층석탑은 준수한 젊은이를 떠올리게 한다.

 

 

 

 

부처의 몸이 영원히 머무는 곳

 

탑은 ‘탑파’(塔婆)를 줄인 말이며, 탑파는 스투파(Stũpa)라는 범어를 한자어로 음역한 것이다.

스투파를 도파(兜婆), 솔도파(窣都婆, 率堵婆), 또는 수두파(數斗婆)로 음역하기도 한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탑은 반구형의 분묘와 같은 모양이었다. 이것이 차차 후대에 이르러 그 밑에 높은 기단을 만들어 탑신(塔身)을 받치고 상륜(相輪)도 그 수효를 늘리는 한편, 주위에 돌난간을 둘러 아름다운 조각을 새겼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인도식 반구형 봉분이 사라지고 목조 누각의 형태를 갖춘 중국식 목탑으로 변하였다.

그 목탑 양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삼국시대에는 목탑이 유행했으나 차츰 한국식의 석탑 형식이 주류를 이루면서 정착하였다.

탑의 구조를 보면 우선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기단부는 탑신을 올려놓는 기초이며, 기단 위에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된 부분이 탑신부이다.

상륜부는 노반을 기초로 해서 구륜(九輪) 등 여러 가지 장식이 수직으로 꿰여 있는 부분을 말한다.

탑도 불전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요소들로 장식되는데, 주로 불·보살과 신장 등이 주류를 이룬다.

 

화엄사 서오층석탑

 

불탑의 원조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인도의 반구형 봉분이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탑은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기본적으로 목조 누각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기단부

 

일반적으로 탑의 기단부에는 십이신장상, 팔부중상, 사천왕상 등이 장식된다. 먼저 십이신장상의 예를 들면 예천 개심사터 오층석탑, 영양 화천동 삼층석탑과 현일동 삼층석탑, 구례 화엄사 서오층석탑 등이 있다.

십이신장상은 보통 탑 기단 중석의 각 면을 삼등분하고 한 구획에 하나씩 양각하는데, 인신수두(人身獸頭)의 모습에 법의를 걸치고 있는 형태가 많다.

십이신장상은 약사여래의 12대원(大願)을 수행하는 신장으로서 불법을 수호하는 기능을 한다.

 

 

화엄사 서오층석탑 기단부의 팔부중상

 

기단 면석의 한 면을 이등분하여 형성된 8면의 부분에 돌아가며 팔부중상을 조각하였다.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것이 아수라이고, 두 귓가에 새의 날개를 가진 것이 가루라이다.

팔부중상을 새겨놓은 예는 개심사터 오층석탑, 양양 선림원터 삼층석탑, 영천 신월동 삼층석탑, 영양 화천동 삼층석탑, 청도 운문사 삼층석탑, 서산 보원사터 오층석탑,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 등이 있다.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에 해당하는 팔부중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장이다. 탑에서 볼 수 있는 신장 가운데서 그 이름이 무엇인지 확인이 가능한 것은 도상적 특징이 뚜렷한 가루라, 아수라, 야차뿐이다.

원원사터 동삼층석탑의 기단부

 

탑의 기단부에는 십이신장상, 팔부중상, 사천왕상 등을 장식한다. 이 탑은 기단 면석에는 십이신장상을 조각하였다.

두 귓가에 새의 날개 모양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가루라이다.

이런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인도신화에서 가루라가 용을 잡아먹는 조류의 왕이라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또한 세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수라이다. 때로 배에 귀면이 나타나기도 하며 악귀의 정복을 상징한다.

그리고 머리 위에 사자를 이고 가슴 밑에 밧줄을 감고 있는 것은 야차이다. 야차는 추악하고 잔인한 귀신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힌다.

나머지 신장들은 일정한 도상이 없어 그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내기가 곤란하다.

탑의 것은 아니지만 경주 석굴암 내에 있는 팔부중상에는 가루라, 아수라, 야차 외에도 팔부중의 이름과 도상이 밝혀져 있다.

석굴암의 팔부중상을 하나씩 살펴보면, 먼저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손에 작은 병을 들고 있는 것이 건달바이다.

작은 병은 향수병으로 건달바가 향만 먹고산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손은 가볍게 구부러진 손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 마후라가이다.

이 손 모양은 사람의 몸, 뱀의 머리를 가진 뱀신이 배를 땅에 대고 기어가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머리를 기르고 단정하게 서 있으며, 왼손에 삼차극(三叉戟)을 쥐고 있는 것이 긴나라이다.

긴나라는 사람 머리에 새의 몸, 또는 말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데, 두 손으로 북을 치며 입으로 젓대를 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머리 위에 용을 이고, 왼손에 구슬을 쥐고 있는 것이 용이다.

팔부중은 각 방위를 수호하는 신장임과 동시에 모든 부처의 위덕(威德)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군중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탑의 기단부에는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에서 볼 수 있는 비천상이나,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의 용·구름문양, 함양 승안사터 삼층석탑의 불·보살 등이 장식되기도 한다.

 

탑신부

 

탑의 한 층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며 몸돌에는 인왕상과 사천왕상, 화불, 보살상 등이 새겨진다.

인왕상은 개심사터 오층석탑,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과 조탑동 오층전탑, 경주 분황사탑 등에서 작례를 찾아볼 수 있다. 금강역사라고도 불리는 인왕은 불법의 수호신으로 보통 양쪽에 위치한다.

이때 왼쪽의 것을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쪽의 것을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라 한다.

사천왕과 달리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쥔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천왕상은 화엄사 서오층석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승안사터 삼층석탑, 영양 화천동 삼층석탑과 현일동 삼층석탑 등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천왕이다.

동방에는 지국천, 서방에는 광목천, 남방에는 증장천, 북방에는 다문천이라 불리는 천왕이 있다.

 

 

 

화엄사 서오층석탑 탑신부의 사천왕상(좌·중)과 분황사탑 인왕상(우)

 

탑신은 바로 부처님이 임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탑신에는 부처님을 가장 가까이서 호위하는 사천왕상과 인왕상을 새긴다.

화불은 김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보살상은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 여래상은 김천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 불·보살이 함께 있는 것은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등에서 각각 찾아볼 수 있다.

 

마곡사 오층석탑 탑신부의 여래상

 

탑신이 부처님이 거처하고 있는 공간임을 여래상을 조각하여 상징하였다.

몸돌의 각 면에는 때로 자물쇠 모양을 새겨놓았는데, 이는 탑신부가 일종의 집을 상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보령 성주사터 중앙삼층석탑과 서삼층석탑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처럼 탑신마다 꽃문양을 새겨넣은 것도 있다.

 

불영사 삼층석탑 탑신부의 자물쇠

 

탑신부가 일종의 집을 상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탑신부의 인왕상과 자물쇠

 

자물쇠가 있는 부분은 목조 건축물의 문에 해당한다. 그 문 안에 부처님이 임하고 있으니, 인왕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상륜부

 

탑신부 위쪽부터 상륜부가 전개되는데, 상륜이라는 말은 수연(水烟) 밑에 있는 구중원륜(九重圓輪) 또는 보륜(寶輪)의 딴 이름이다. 현존하는 탑 가운데 상륜부가 조성 당시의 형태대로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동탑)과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 그리고 1970년대에 복원된 불국사 석가탑 등에서 완전한 상륜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월정사나 마곡사의 탑은 상륜부가 금속재로 만들어져 있어 이채롭다.

 

석가탑의 상륜부

다보탑의 상륜부

 

보개, 수연, 용차, 보주가 없는 상륜부이다.

현재 구조로 보아 원래부터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상륜부

 

보륜의 일반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으나 보개가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마곡사 오층석탑의 상륜부

 

원나라 라마풍의 상륜부 형식을 보이며, 보륜은 없으나 사실적으로 만든 보개를 올려놓았다.

 

상륜부의 명칭도

 

상륜부는 아래로부터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 보개(寶蓋), 수연, 용차(龍車), 보주(寶珠)의 순서로 철심에 꿰여 올려져 있다.

수연 아래에 있는 테 모양의 장식을 특별히 상륜이라 하는 것은 표상(表相)이 높이 솟았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기 때문이다.

상륜부의 세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반 ;

상륜부의 기초가 되는 방형의 부재를 말하며 승로반(承露盤)을 줄여서 이르는 말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단 이슬을 받기 위해 건장궁(建章宮)에 만들어두었던 동반(銅盤)을 노반이라 한다.

복발 ;

노반 위에 발우[鉢]를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을 말한다.

인도 반구형 탑신의 흔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복발은 노반과 더불어 상륜부의 기초가 된다.

앙화 ;

복발 위에 꽃잎을 위로 향하여 벌려놓은 듯한 부분이다.

보륜 ;

상륜의 중심 부분이다. 노반 위로 앙화와 보개의 중간에 있는 바퀴 모양의 테 장식이다.

보개 ;

보륜과 수연 사이에 있는 닫집 모양의 부분이다.

보개는 모든 개념과 형식을 초월한 열반의 경지를 나타낸다.

수연 ;

보개 위에 올려져 있는 불꽃 모양의 장식품을 말한다.

예로부터 장인들이 화재를 꺼리는 관습 때문에 특히 불에 인연이 있는 이름을 피하여 수연이라 하였다.

보주·용차 ;

상륜부 꼭대기에 있는 것이 보주이다.

보주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마니주(摩尼珠)로서 일명 여의주라 한다.

여의주는 일정한 형상이 없으며, 맑고 사무치고 가볍고 묘하여 모든 천하의 물건들이 환히 나타나며, 능히 어떠한 병(病)이라도 제거한다.

용차는 보주와 수연 사이에 있는 구슬 모양의 장식이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을 모시고 있는 탑이 처음부터 불교신앙의 중심체였던 만큼, 불교도들은 부처님을 옹위하고 그의 세계를 장엄하기 위하여 탑의 조성에 정성을 쏟았다.

기단과 탑신부에 사천왕상과 팔부중상, 십이신장상을 비롯한 불국의 수호신들을 새겨놓고, 그들로 하여금 탑 속의 부처님과 그의 세계를 외호케 하였으며, 오묘하고 신비한 장식물들을 상륜부에 베풀어 모든 개념과 형식을 초월한 부처님의 경지를 표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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