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정자 누각 원림

정자 찿아 가는 길 - 밀양 월연정

초암 정만순 2021. 5. 1. 09:46

정자 찿아 가는 길 - 밀양 월연정

 

 

 

 

밀양 8경 중 제 4경이다

밀양강과 단장천의 합류점에 있는 월연정은 강변 풍경과 보름달이 떴을 때 월주경이 일품이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건물을 축조해서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가 된 월연정은 용평터널과 강 건너 450년 된 은행나무 단풍 명소인 금시당, 백곡재까지 한번에 둘러볼 수 있는 고택 여행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월연정 일원은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뒤로는 추화산이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이 동천과 합류해 남하한 단장천과 만나 흐르고 있다.

 

 

멀리로는 용두산, 꾀꼬리봉, 금오산이 보인다. 풍광이 뛰어나 ‘월연대 12경’이라 불리는 경관들이 있지만 강 상류에 댐이 생긴 후 퇴적물이 급증하고 강물이 줄어 월주경을 볼 수 없고, 월연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산과 하천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우며, 오랜 역사를 지닌 별서로서 관련 문헌과 그림도 남아 있는 등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있다.

2012년 2월 8일 명승 제87호로 지정되었다.

 

 

월연정은, 전라도 담양의 소쇄원과 비교되는 정자로, 월연대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이 모여서 집합체를 이루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정자 건축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조경 양식을 보이고 있다.

경관이 뛰어난 곳에 모여 있는 이 모든 건물들은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가지며 각기 다른 형태로 지어져 있어 흥미롭다.

이 건물들 외에 탄금암, 쌍천교 등의 유적과 백송, 오죽 등의 희귀한 나무들이 있다.

 

월연정()은 조선 중종 때 이태 선생이 본래 월영사()의 옛터인 월영연에 지은 별장이다.

월연 이태 선생은 중종 5년(1510)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중종 14년(1519) 함경도 도사로 재직 중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 은퇴하였다.

선생은 중종 15년(1520)에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정당을 쌍경당()이라 이름지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757년(영조 33) 6대손인 월암(月菴) 이지복(李之復)이 복원하였다.

1866년(고종 3) 11대손 이종상(李鐘庠)과 이종증(李鐘增)이 월연대를 중건하였고,

1956년 제헌을 세웠다.

제헌은 이태의 맏아들인 이원량(李元亮, 1504~1567)을 추모하는 건물이다.

 

 

 지금 경내에는 쌍경당, 월연대, 제헌 등의 건물과 한림이공대 탄금암, 쌍천교 등의 유적 및 백송, 오죽 등 희귀수목이 있다.

 

 

 

 

 

이곳에 별서를 창건한 것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이태(李迨)가 기묘사화를 피해 귀향한 다음해인 1520년(중종 15)경으로 추정된다.

그는 쌍경당과 월연대 등 주건물을 세우고, 직접 이름을 붙인 쌍청교(雙淸橋)·영월간(迎月澗)·수조대(垂釣臺)·탁족암(濯足巖)·행단(杏壇)·죽오(竹塢) 등으로 주위를 아름답게 조경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것을 1757년(영조 33)부터 후손들이 계속 중건, 보수하였다.

월연정은 별서 일곽의 가장 왼편에서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평면을 보면 남측으로 대청 2칸을 통간으로 두고 그 우측에 온돌방 2칸을 배설하였다.

특히 온돌방과 대청 사이에는 사분합문을 두어 주위 경관을 조망하기 좋게 평면을 구성했으며, 대청의 우측 1칸은 둘로 나누어 앞쪽에는 방, 뒤쪽에는 아궁이를 두었다.

 

구조는 충량이 있는 5량가로, 긴 대들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보를 받게 하였으며, 도리 방향으로는 첨차와 소로를 짜올려 종도리와 장여를 받도록 했다.

제헌(霽軒)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왼쪽부터 대청·방·방·2칸대청이 배설되었다.

일반적인 3칸 규모의 정자를 평면적으로 확대한 건물형태이다.

월연대(月淵臺)는 가장 북측의 높은 언덕에 남동향으로 앉아 있다.

건물은 정방형에 가까운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주위를 돌아가며 마루를 시설하였다.

평면의 가운데 칸에 방을 두고, 네 면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정자의 기능을 충실하게 하였다.

 

월연정은 쌍청당·제헌·월연대 등의 건물군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별서로 평가된다.

특히 지형에 맞추어 각기 다른 평면을 지닌 건물과 주위에 희귀한 나무와 꽃, 수석(水石) 등이 아름답게 배치된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조영한 별서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월연(月淵)', '쌍경(雙鏡)'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달의 경관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 특히 월주경(月柱景;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강에 비친 보름달이 달빛기둥을 이루는 풍경)이 아름다워 월주가 서는 날인 기망일(旣望日; 음력으로 매달 열나흗날)에는 월연대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고 한다.

 

 

 

월연대 일원의 건물은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가지지만 여느 정자와 달리 각기 다른 지대에서 다른 방향으로 지은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어 독특하다.

즉, 월연대는 가장 높은 언덕에 남향으로, 쌍경당은 중간 높이 지대에 동향으로, 제헌은 가장 낮은 곳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외에 쌍청교(쌍경당과 월연대 사이를 잇는 다리), 탁조암(강기슭의 반석), 죽오(쌍경당 서편 언덕의 대숲)를 비롯하여 영월간, 수조대, 행단, 한공이공대, 백송 등이 경관을 구성한다.

 

 

 

 

 

 

◆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