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각 찿아 가는 길 - 밀양 영남루
■ 영남루(嶺南樓)
조선후기 대표적 목조건물로 꼽히는 보물 제147호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이다.
밀양강 물에 비친 야경이 멋지고 아름다우며, 주변 밀양읍성, 무봉사, 아랑각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 중 하나로 칭송받는 영남루는 강물 위 높은 절벽으로 자리하여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좌우로 길게 능파당과 침류각을 이어가는 누각의 모습은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멋지게 보여준다.
신라시대 영남사라는 사찰이 있던 자리에 누각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세기 중반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고려시대 이후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글과 글씨가 누각 내부에 가득하다
영남루는 남아 있는 건물의 보존 상태로도 우리나라의 으뜸이다.
현재 영남루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누각 마루에 앉아 밀양강의 시원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영남루와 부속건물인 침류각은 월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층을 구분하여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월랑은 그 위에 지붕을 얹은 화려한 모습이다.
마주 보며 자리하는 천진궁은 과거 객사건물의 일부로 지금은 단군의 영정과 역대 여덟 왕조의 시조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영남루 앞 마당에 마치 새겨놓은 것처럼 바위를 장식하는 꽃무늬는 자연이 남긴 석화다.
영남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시대이다.
영남루가 있는 이 터에는 원래 신라시대에 창건된 영남사(嶺南寺)가 들어서 있었다.
고려에 들어와 영남사는 종각인 금벽루만 남은 채 스러진 절이 되었는데,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김주(金湊)라는 군수가 이 절터에 영남루라는 이름의 새 누각을 지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영남루가 이때 지어진 건물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넓혀 짓고 화재를 만나 훼손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헌종 10년(1844)에 다시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영남루는 밀양도호부 객사의 부속건물로, 관원들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밀양강을 발아래 둔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남루에서 강을 끼고 내려다보는 도심 경치뿐 아니라 강 남쪽에서 바라보는 영남루의 모습 또한 매우 시원하다.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층 누각 팔작지붕집이다.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규모가 매우 커보이는데, 게다가 양쪽 옆으로 날개처럼 두 건물을 거느리고 있어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위치 또한 밀양강을 발아래 둔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강 남쪽에서 바라보는 영남루의 모습이나 영남루에서 강을 끼고 내려다보는 도심 경치가 매우 시원하다.
영남루에 올라 강을 내다보고 섰을 때 왼쪽에 있는 건물이 능파당(陵波堂), 오른쪽에 있는 것이 침류각(枕流閣)이다.
객사의 부속건물로 쓰였던 영남루 왼쪽이 능파당,
사진에 나오지는 않지만 오른쪽 계단 아래가 침류각이다.
세 개의 건물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훌륭한 전체를 이루고 있다.
현재 영남루를 관람하려는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능파당으로 해서 본루로 올라가 경치를 즐기도록 되어 있다.
침류각 쪽에서의 출입은 본루와 연결된 월랑(月廊)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으나 계단의 파손이 심해서 통제되고 있다.
능파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익공식 팔작지붕집으로 본루와 마찬가지로 중층을 이루고 있으며 2층 두 칸은 온돌방이고 오른쪽 한 칸은 마루로 비워 마루를 통해 본루로 통하도록 돼 있다.
본루는 누마루 주위로 계자난간을 둘러 사방으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누각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자연경관도 아름답지만, 넓은 마루에 편히 앉아 내부 구조를 요모조모 살피는 재미도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영남루 배치평면도
본루 정면에는 구한말의 명필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洲)가 쓴 ‘嶺南樓’라는 편액이 ‘江左雄府’(강좌웅부)와 ‘嶠南名樓’(교남명루)라는 편액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내부에도 여러 명필가들이 남긴 편액이 많은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7세의 이현석(李玄石)’이 썼다는 ‘嶺南樓’와 ‘10세의 이증석(李憎石)’이 썼다는 ‘嶺南第一樓’(영남제일루)가 눈에 띈다.
이밖에도 고려시대 이후 각각 당대를 대표하는 유명 문인들이 남긴 기문(記文)과 시 등이 많이 있다.
조선 초기 문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도 영남루에 올라 ‘영남루십경’을 노래한 바 있으며, 영남루의 가을 달빛은 밀양팔경의 하나로 손꼽혔다.
영남루의 내부 모습
기둥과 기둥 사이가 개방되어 있어 사방을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嶺南第一樓’ 편액은 10세의 이증석이 썼다고 한다.
본루와 월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침류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집이다.
본루와 침류각의 높낮이를 층층계단으로 연결하고 그 위에 지붕을 연속으로 얹은 것이 매우 율동적이며, 이로써 본루가 한층 더 웅장해 보이는 아주 극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연속적으로 얹은 층단지붕의 추녀마루 마감장치로 놓은 망와의 도깨비 장식도 재미있다.
침류각의 월랑
본루인 영남루와 이어진 월랑을 층층계단으로 연결하고 지붕을 얹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율동적이다. 추녀 끝 망와의 도깨비 장식 또한 재미있다.
밀양시립도서관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매표소를 지나 영남루에 오르게 되는데, 영남루 외에도 영남루 일원에는 천진궁, 옛 영남사의 암자였다는 무봉사, 밀양시립박물관, 아랑각 등이 있다.
■ 천진궁(天眞宮)
영남루와 마주보고 있는 천진궁(天眞宮)은 옛 객사 건물의 하나였다고 하는데, 1957년 대종교 산하단체인 단군봉안회에서 이 건물의 이름을 ‘천진궁’이라 하고, 그 안에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의 영정과 역대 8왕조, 즉 부여·신라·고구려·백제·가야·발해의 시조왕과 고려 태조·조선 태조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공진관(拱振館)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3대 누각 중 하나인 밀양 영남루(密陽嶺南樓:보물 147) 경내의 북쪽에 있는 건물이다.
1652년(효종 3) 창건되었는데, 이 자리에는 원래 1665년(현종 6)에 부사 홍성구가 창건한 격선관이 있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출목 주심포(柱心包)식으로 단층 팔작지붕의 겹처마집이다.
5량가구에 연등천장을 하였고, 단군제단 상부와 박공마루의 하부 양쪽에 단순한 우물천장을 만들었다.
내부에는 단군 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있다.
중앙 맨 윗자리에는 단군의 영정,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 서쪽 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 시조 들의 위패가 있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는 어천대제(御天大祭),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대제(開天大祭)를 봉행한다.
천진궁 앞에는 어떤 것은 둥글기만 하지만 어떤 것은 기묘하게도 장미나 모란같이 탐스러운 꽃무늬가 박힌 돌들이 있다.
그 앞쪽에 ‘석화’(石花)라는 안내문이 적힌 표지판이 있다.
이런 기묘한 돌은 영남루와 아랑각 아래 강변으로 난 산책로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조각된 것 같기도 하고 자연적인 듯도 한 것이 아주 독특하다.
돌의 무늬가 꽃을 닮았다고 하여 석화라 부르는데, 화창한 날보다 비가 온 후에 꽃 무늬가 확연히 드러난다.
■ 아랑각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밀양시 소유로 시에서 관리하며 아랑사(阿娘祠)라고도 부른다.
아낭은 조선 명종 때 밀양부사의 딸 윤동옥(尹東玉)을 가리키며 재기있고, 자색이 뛰어난 규수로 전해진다.
18세 때 유모의 꾀임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을 갔다가 통인(通人) 주기(朱旗)에게 정조를 강요당하자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
이후 밀양 사람들은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정절을 기리기 위해 영남루 아래 아랑의 시신이 떨어졌던 대밭에 열녀사(烈女祠)라는 사당을 짓고 해마다 음력 4월 16일에 제사를 지내왔다.
1965년 종래의 건물이 낡고 퇴락하여 지역민들과 출향 인사들의 성금과 당국의 보조로 현재의 아낭각을 중건하였다.
누각은 맞배지붕의 3칸 건물이며, 삼문으로 이루어진 정문(正門)은 정순문(貞純門)이라 편액하였다.
사당 안에는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아랑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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