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가시나무
가시나무가 있어 대구의 겨울이 더 푸르다
대구 범어네거리 남쪽 동대구로의 중앙분리대에 있는 가시나무.
"중앙로에 있는 나무에 도토리 같은 게 열리는데 겨울에도 잎이 무성하다"며 "이게 도대체 무슨 나뭅니까?"하고 열매를 내밀며 지인이 물었다.
가시나무 종류의 열매 '가시'라고 대답하자 "가시도 없는데 가시나무라 캅니까?"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시나무 이름은 가서목(哥舒木) 혹은 '가사목(加斜木)에서 나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이 참석하는 조회나 연회, 왕의 행차 때 기를 매던 긴 막대기인 가서봉(哥舒棒)을 주로 가시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서목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남해안이나 제주도에 자라는 난대성 참나뭇과의 교목으로 상록활엽수라서 겨울철 푸른 생기를 더해준다.
높이 10~15m까지 자라며, 나뭇잎은 반들반들하고 길쭉한 타원형이다.
줄기에 날카롭고 삐쭉한 가시는 없지만 잎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는 종도 있다.
도토리를 닮은 열매를 가시라고 부르며 9~11월에 진한 갈색으로 익으면 도토리처럼 묵을 쒀 먹을 수 있다.
난대성 나무라서 당연히 추위에 약하여 제주도 또는 남해안의 따뜻한 계곡에서 자란다.
가시나무 무리에는 참가시나무, 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졸가시나무 등 다양하다.
대구 동대구로 가시나무
대구에서도 가시나무나 종가시나무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시립중앙도서관 서편, 범어네거리 남쪽 동대구로 중앙분리대, 공평로의 교동네거리, 대구시립미술관 주차장 주변, 황금고가교 주위, 현대백화점 뒤편이나 엘디스리젠트호텔 앞 가로수 등 곳곳에서 겨울에도 대구 도심을 푸르게 감싸고 있다.
대구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가시나무 무리가 언제부터 가로수로 등장했을까?
1980년대 이상희 대구시장이 대대적인 나무심기를 계획했다.
이후 1990년대 민선 문희갑 시장이 적극적인 숲을 조성하면서 가시나무, 후박나무, 녹나무 등 남해안이나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상록수를 시험재배 했다.
그러나 겨울철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대구 추위를 견디지 못했으나 그중에서 가시나무, 목서, 종가시나무는 꿋꿋이 적응해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이정웅 전 대구시녹지과장은 "제주도에서 종가시나무를 들여와 동대구로 등에 심었다"며 "종가시나무는 장차 대구를 더 푸르게 할 나무다"고 강조했다.
현풍초 종가시나무
대구에 가시나무 종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구로 편입된 달성군 현풍초등학교에는 높이가 10m, 나무둘레가 2.5m나 되는 오래된 종가시나무가 있다.
정확한 나무 나이가 궁금해서 학교에 문의하니 "예전 사람들 말로는 70년 전에도 아주 큰 나무였다고 회상 한다"며 "심겨진 시기는 정확히 모르지만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시나무 열매를 스페인에서는 돼지 먹이로 쓴다.
유명한 햄 '하몬 이베리코'는 호랑잎가시나무의 열매를 먹여 키운 돼지의 고기로 만든다.
이 돼지는 하루에 가시를 5~6kg이나 먹어치운다고 한다.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라는 시를 쓴 최승호 시인은 정치적 폭압과 폭력적 현실을 꿋꿋하게 견디며 순수한 영혼이 담긴 시를 쓰고자하는 의지를 북가시나무(붉가시나무)에 비춰 잘 드러냈다.
'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를/
무슨 무슨 주의(主義)의 엿장수들이 가위질한 지도/
오래 되었다/
이제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엔/ 가지도 없고 잎도 없다/
있는 것은 흠집투성이 몸통뿐//(중략)//
깨어나면 다시 국도변에 서 있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귀 있는 바람은 들었으리라/
원치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들이/
내 앙상한 몸통에 매달려 나부끼는 소리,/
그 뒤에 내 영혼이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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