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풍수지리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초암 정만순 2021. 1. 28. 06:15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王侯將相난다는 一字文星이 사방에

 

※사명대사 생가지=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 있으며, 근래에 복원되었다.

사명대사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호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이다.

속성은 임(任)씨, 속명은 응규(應奎)이며, 법명은 유정(惟政)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의 휘하에서 싸웠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천500명을 인솔하여 귀국했다.

인근 무안면 웅동리에 전쟁이 끝난 후 거처했던 대법사가 있고, 무안리에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표충비가 있다.

단장면 구천리엔 또 하나의 유적지인 표충사가 있다.

부북면 제대리엔 조선 초기 사림파의 거두 점필재 김종직(점畢齋 金宗直)의 생가지와 묘소가 있다.

 

 

 

 표충비각.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행적을 적은 비석이 있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석에서 땀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명대사 생가지.

백호자락에 기대고 있어 겸혈(鉗穴)로 보기도 한다.

백호 너머 골짜기에 최근에 조성된 기념관이 있다. 

 

 

벼락 치는 듯한 소리에 단잠에 빠졌던 스님이 놀라 밖으로 나간다. 아무도 없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예의 그 소리가 또 들린다.

‘왜 너그 마음대로 나를 옮기려 하나, 나는 절대로 안 간다.’

소리난 곳을 보니 법당 앞에 몇 백년 된 모과나무만 덩그렇다.

문득 깨달은 스님은 이전키로 했던 계획을 포기한다.

풍수가에 내려오는 대법사 모과나무에 얽힌 얘기다.

그리 먼 얘기도 아니다. 겨우 십수년 전의 얘기다.

대법사 모과나무, 그냥 나무가 아니다.

그 옛날 사명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 싹이 돋아 거목이 된 유서 깊은 나무다.

대법사와 사명대사 생가지는 지척지간에 있다.

 

◆내룡맥엔 둥근 富峰 줄지어 솟아

 

풍수에서 일자문성(一字文星)은 산봉우리가 한 일자(一)처럼 평탄하게 생긴 산형을 말한다.

잘라놓은 두부 모양이다.

이런 산형을 토형산(土形山)이라 한다.

토(土, 흙)는 중앙이다. 중앙은 모든 것을 아우른다.

오행으로 토의 색상은 황색이다.

옛날 황제의 의복은 황색이었다.

흙과 황제를 연계시키면 결국 일자문성은 황제와 동급이 된다.

풍수에서 일자문성을 귀히 여기는 이유다.

주산이 이런 산형이거나 주위에 이런 산형이 있다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난다고 보는 까닭이 되기도 한다.

 

◆큰일 있을 때 땀 흘리는 비석도

 

사명대사 생가지엔 이런 산형이 많다.

그것도 전후좌우에 짝지어 섰다.

앞산과 뒷산, 왼쪽과 오른쪽 산에서 마주보고 있다.

그 중앙에 생가 터가 있는 셈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이름, 사명대사다.

일자문성의 정기가 호국의 웅지를 펴게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주산서 내려오는 내룡맥엔 봉긋봉긋한 금형산(金形山)이 줄지어 솟았다. 기복(起伏)이다.

모름지기 산줄기는 기복을 해야 살아있는 것이 된다.

변화다. 변화가 없는 산은 죽은 산이다. 그

만큼 기운이 넘친다.

복원된 터가 원래의 자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지금의 자리로 보면 생가는 백호자락에 기대고 있다.

백호 너머엔 긴 골짜기다. 바람길이 된다.

백호가 골짜기 바람을 막아 주는 아늑한 자리다.

긴 토형체를 이룬 안산도 생가를 향해 다소곳하다.

수구도 꽉 막혔다.

이래저래 인걸이 날 자리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바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마냥 펑퍼짐한 입수처는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겠다. 생가를 내려다보는 청룡, 백호도 위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길지라도 완벽한 땅은 없는 법이다.

 

한비(汗碑), 땀 흘리는 비석, 사명대사의 공적을 새겨놓은 표충비를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즈음엔 땀을 흘린다는 호국의 비다.

어지러운 역사 속에서 이 비석에도 사연이 많다.

일제강점기엔 일본인들이 비석의 정기를 끊기 위해 뒤쪽에다 철근을 묻고 그 위에 공장을 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일본인들은 까닭 모를 죽음을 당하고 비석은 지금껏 멀쩡하다.

 

금세기 최고의 큰일은 통일일 게다.

광복의 그날에 땀을 흘렸던 것처럼 비석이 땀 흘릴 통일의 그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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