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풍수지리

한산이씨 시조묘

초암 정만순 2021. 1. 28. 09:20

한산이씨 시조묘

 

 

관아 대청마루 아래 暗葬하고 발복

 

 

 

※한산 이씨 시조묘=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 시조 이윤경(李允卿)의 묘.

이윤경은 고려 중기 권지호장(權知戶長)직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과 사육신(死六臣)의 이개(李塏), 토정비결의 저자인 이지함(李芝*函*) 등이 후손들이다.

인근 기산면 영모리에 명당으로 알려진 이색의 묘가 있으며, 한산면 종지리에 역시 후손이 되는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의 생가지가 있다.

 

 

 

 

  

 묘 앞에서 본 한산 이씨 시조묘.

왼쪽 운무(雲霧)사이로 주산이 신비롭다.

금계포란형에서 주산은 닭의 머리가 된다.

 

  

 묘 뒤에서 본 전경.

혈장이 양택지처럼 널찍하다.

왼쪽에 봉분처럼 보이는 세 개의 봉우리가 달걀을 상징하는 알봉이다.

 

 

각 문중의 시조묘엔 전해지는 얘기가 많다.

한두 개의 설화는 반드시 전해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암장(暗葬)은 불법적인 방법, 곧 몰래 묘를 조성한 것을 말한다.

남의 선산이나 마을의 금기시되는 땅에 묘를 쓴 것 등이다.

금장(禁葬)지역, 그것도 관청의 대청마루 아래에 묘를 조성한 후 후손들이 발복한 곳이 있어, 요즘도 풍수사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있다.

충남 서천에 있는 한산 이씨 시조 이윤경의 묘가 그곳이다.

 

옛날 서천 관아에 괴이한 일이 매년 벌어졌다.

관아 대청마루에 깔아둔 널빤지가 해마다 썩어 못쓰게 된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관리가 노인이나 유식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이유를 물었다.

결론은 그 땅이 명당대지이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즉 왕성한 지기(地氣)가 원인이었다는 게다.

그는 그 땅에다 조상의 뼈를 묻으면 가문이 부귀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몰래 조상의 뼈를 널빤지 아래에다

평장으로 암장을 했다.

그 뒤로 가문이 중흥하였다.

후에 한산 이씨의 후손이 그 고을의 고위 관리가 되어 관아의 대청마루 밑을 파본 즉 전해오는 말 그대로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기뻐한 그 후손은 사비를 들여 관아를 옆으로 이전하고 그 곳에 봉분을 만들어 시조묘를 조성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한산 이씨 시조묘에 얽힌 얘기의 대강이다.

 

이 묘엔 달걀로 명당을 실험한 얘기도 전한다.

고려 때 이곳은 절터였는데 풍수지리에 밝은 고을의 수령이 법당 마루 밑이 명당임을 알았다.

그는 실험을 하기 위해 호장에게 그곳에다 달걀을 묻도록 하였다.

그 의도를 눈치챈 호장이 곪은 달걀을 묻고선 이후 캐내어 수령에게 보였다.

그것을 본 고을의 수령은 실망했고, 뒤에 다른 곳으로 전임을 갔다.

또한 절에서도 괴변이 생겨 절이 결국 황폐해지고, 그 자리에 이 호장이 묻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뒷받침하듯 묘 앞 오른쪽엔 고려시대에 조성된 아담한 탑이 서 있다.

 

산의 형세로 따져 이 묘를 천상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한다.

그러나 이 형국이 성립하려면 알에 해당하는 봉우리나 바위가 주변에 있어야 한다.

없으면 인위적으로 구비시킨다.

 

 

천연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기운이 강하지만 묘 앞엔 왕릉에 버금갈 만한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알봉이다. 이로써 닭과 알이 모두 갖춰진 셈이다.

 

주산인 건지산은 낮다.

그러나 한산면 근처에 들어서면 확연히 눈에 띈다.

명당을 품는 주인산의 위용 그 자체다. 모

습도 단정한 귀봉(貴峰)이다.

귀봉은 벼슬을 상징한다. 겹겹이 둘러싼 백호도 당당하다.

안산으로까지 이어진 봉우리들에선 벼슬아치와 부자를 내는 사격(砂格)들이 곳곳에 솟았다.

대신 청룡은 깎인 형태에 국세(局勢)에 비해 다소 약한 모습이다.

관아가 있던 장소라 혈장은 형태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널찍하고 판판한 것이 양택지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정상서 내려오는 산세의 용틀임과 직접 묘로 지기를 불어넣는 입수처의 기세로 그 힘은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국세에서 내뿜는 힘과 위세는 한 성씨의 시조묘답게 위풍이 당당하단 얘기다.

 

암장은 금기시됐던 사안이다.

더욱이 관청, 그것도 핵심 자리에 몰래 이장을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만약 잘못됐었다면 가문 자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관아마저 밀어냈던 그 힘은 땅이 이씨 가문에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풍수서적에 큰 자리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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