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인흥마을
인흥마을의 주산인 천수봉.
그 아래의 집들이 인흥마을을 이루는 남평문씨가의 고택들로, 왼쪽의 숲이 비보로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주산으로 내려오는 맥이 아주 유연하다.
마을 내부의 담장. 흙과 돌이 조화를 이뤄 정겹다.
가운데 보이는 나무는 학자수(學者樹)라 불리는 수령 300년의 회화나무다.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
1840년 전후 입향조(入鄕祖) 문경호(文敬鎬)가 터를 잡은 이래로 남평문씨(南平文氏)들만이 대를 이어 살아온 집성촌이다.
행정구역상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1리나 인흥마을로 많이 불린다.
보각국사 일연(一然)이 이곳에 있던 인흥사(仁興寺)에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뼈대를 완성했다 한다.
국내에 드문 문중문고로 수만권의 전적을 수장한 인수문고(仁壽文庫)로 유명하다.
대구시 민속자료 제3호.
맞은편에 명심보감 판본(明心寶鑑 板本)으로 널리 알려진 인흥서원(仁興書院)이 있다.
주택이나 마을의 입지조건으로 가장 우선시 되는 게 배산임수다.
뒤로는 산을 의지하고 앞으로는 물을 보는 지세다.
여기에 남향까지 보태어지면 최상이다.
배산임수 지형은 뒤가 높다.
이 때문에 그 땅은 자연히 안정감이 있게 되고, 햇볕과 바람의 순환도 용이하게 된다.
풍수에서 물은 무조건 그 터를 안고 돌아야 한다.
반대가 되면 물이 치는 형상이다.
물은 재물을 뜻하기 때문에 이런 땅에서 부(富)는 공염불이다.
물의 바깥쪽은 곧 화살을 맞는 지형이 되기도 한다.
이를 풍수에선 반궁수(反弓水)라 한다.
반궁수 지역은 밤낮으로 화살을 맞는 격이 돼 건강도 장담치 못한다.
배산임수와 함께 중시되는 것이 전착후관(前窄後寬)이다.
앞은 좁고 뒤는 넓어야 한다.
좁은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전체 보국(保局)으로 따지면 수구는 좁아야 하며 명당은 넓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만약 수구가 트여져 있으면 좁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땅이 된다.
비보풍수의 도입이다.
풍수에선 또한 오행(五行)의 상생(相生)을 중시한다.
그 터까지 내려오는 용맥(龍脈)이나 주위의 산세가
나무와 같이 우뚝 선 산형(山形)에서
정상이 뾰족하거나 바위가 많은 형태로,
다시 일자(一字)처럼 펑퍼짐해졌다가
초가지붕처럼 둥근 형태의 산으로 이어진다면
그 땅은 지기를 제대로 받는 땅이 된다.
인흥마을의 주산은 마을 뒤의 천수봉(天壽峰)이다.
천수봉은 둥근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금형의 산이다.
여기서 산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펑퍼짐해졌다가 다시 바위가 많은 산으로, 그 위엔 미끈하게 빠진 목성형의 산이 우뚝 서 있다.
주맥(主脈)의 오행상생이다.
따라서 인흥은 오행의 기운이 모두 뭉친 자리가 된다.
산과 물, 즉 음양의 조화도 좋다. 천수봉이 굽어보는 인흥마을을 앞의 천내천(川乃川)이 부채처럼 휘감아나간다.
마을의 안산(案山)은 토성형의 일자문성이다.
주위 산세에 이런 산형이 있으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난다고 했다.
그 너머 조산(朝山)은 말안장처럼 생겼다.
예전에 말은 벼슬아치들의 전유물이었다.
더욱이 안산 너머 조산 사이엔 예쁘장하게 생긴 금형의 산봉우리가 봉긋하다.
주산에 이은 또 하나의 부봉(富峰)이다. 부봉이 뜻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부자다.
인흥의 청룡은 주산에서 뻗어 내린 본신청룡(本身靑龍)이 되나, 그 끝이 마을을 치는 형상이 되어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겠다.
백호는 북서방향이다. 북서쪽은 인흥마을의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방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백호가 되는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 앉지 못하고 무정하다.
수구가 넓어 들판에 마을이 들어날 판이다.
또한 북서쪽은 찬바람이 매서운 곳이다.
허전한 곳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감하라고 했다.
풍수의 기본원칙이다.
그러기에 문씨 문중에선 그 쪽에다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
이 송림은 들판과 마을을 구별시켜 주는 울타리 역할에 북서풍을 막아주는 방풍림, 터진 수구를 막아주는 수구막이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참으로 귀한 숲이다.
인흥의 주변 산세는 부드럽다.
부드러움은 무(武)보다 문(文)의 기운을 가진다. 그
러기에 일찍이 일연선사에게 삼국유사를 집필토록 터전을 마련해줬을 터이고, 오늘날엔 '인수문고'를 통해 수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이는 힘을 갖게 해준 것일 터이다.
사람마다 적성이 다르듯이 땅도 그마다의 쓰임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