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大邱 老巨樹

계산셩당 이인성나무

초암 정만순 2020. 9. 7. 20:46

계산셩당 이인성나무

 

 

@ 탐방일 : 2020.0 9. 07

 

계산 주교좌 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 대구계산동성당 *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대성당, 통칭 계산성당(桂山聖堂)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오거리에 위치한 천주교 대구대교구교구장 대주교의 주교좌 성당이다.

본당의 주보 성인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이다.

1911년대구대목구가 설정되었을 때 주교좌 성당으로 결정되었다

대구(大邱) 계산동(桂山洞) 성당(聖堂)은 1886년 대구 지역 선교 활동을 책임 맡고 부임한 로베르(1853~1922) 신부가 지금의 계산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1899년 한국식의 목조 십자형 건물으로 지어졌으나 1년 만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재건축에 착수하여 로베르 신부가 설계하고,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함석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등의 재료들은 프랑스 및 홍콩에서 들여와 사용하였다.

건물은 공사가 시작되고 3년이 지난 1902년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대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1900년대 초기의 건축물이다.

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형 (Latin cross)으로 중심의 본랑(nave)과 양쪽의 측랑 (transept)으로 구성된다.

이런 평면 구조는 성당의 평면, 건물의 외부와 내부 공간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또한 건물 전체적으로는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지만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고딕적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대구계산동성당의 천주교적 의의 *

대구계산동성당은 영남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9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다.

성당 부지에는 설계자를 기념하는 동상과 주교관이 있다.

 

이 성당 건물에서 동남쪽 600여m 지점에 있는 관덕정(觀德亭) 순교 기념관에는 을해 ·정해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인성나무(감나무)

 

 

계산성당 옆 등나무 벤치 근처에 떡 하니 서 있는 감나무가 바로 '이인성 나무'다.

대구 출신 천재화가 이인성(1912~50)의 작품 '계산동 성당'에 그려진 나무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작품 '계산동 성당'(34.5㎝×44㎝)은 전통 기와지붕이 약간 보이면서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중앙부 왼쪽에 두고, 성당 사제 숙소 벽면을 붉은 색조로 그린 수채화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대구 계산성당에 있는 천재화가인 이인성 나무인 '감나무'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화가 이인성에게 계산성당은 특별한 존재였다.

계성학교를 오가는 길에 늘 마주치던 계산성당은 소년이 그림에 담고 싶은 대상이었다.

1929년 17살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일찌감치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이인성은 계산성당을 화폭에 담아 작품 '계산동 성당'을 남겼다.

 

 

이 작품에서 고딕양식의 성당과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대상은 '감나무'다.

계산성당을 10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이 나무에는 이인성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비록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림과 함께 남아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 사진첩

 

성당 입구로 들어섭니다

두개의 첨탑이 아름답고 웅장하네요

 

멋진 소나무 들

 

초대 주임신부 흉상

 

모녀상(마리아와 예수님)

휴게소와 오른쪽 감나무(이인성 나무)

 

매일신문본관을 지나는 길섶의 석마상

 

약령시 관문 - 서문약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