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술 작동원리
수백만 명의 세계인들이 침술을 이용하여 다양한 통증을 치료하지만, 이 고대(古代)의 치료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과학자들은 Nature Neuroscience 5월 30일호(온라인판)에 기고한 논문에서 "마우스를 이용한 실험에서, 침이 통증억제 수용체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발표했다.
더욱이 연구진이 특정 화합물을 이용하여 이 수용체의 반응을 증강시킨 결과 통증 억제효과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침술의 작동원리를 규명했을 뿐만 아니라, 침술의 효과를 배가(倍加)시키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침이 통증을 개선시키는 데 대하여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해 왔다.
첫 번째 가설은 "침이 통증감지 신경을 자극하면 이 신호가 뇌에 전달되고, 뇌는 이에 반응하여 아편유사 화합물(엔돌핀)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침이 플라시보 효과를 통하여 환자를 안심시키고, 환자는 이로 인하여 엔돌핀을 분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로체스터 대학 메디컬센터의 메이켄 네더고르 박사(Maiken Nedergaard, 신경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상의 두 가지 가설 모두에 대하여 회의를 품었다.
왜냐하면 침의 효과는 침을 실제로 통증부위 주변에 꽂을 때만 나타나며,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엔돌핀만 갖고서는 침술의 국지적 통증완화 효과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기존의 가설 대신 "침술사가 침을 꽂은 다음 침을 회전시킬 때 조직에 작은 손상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하여 모종의 물질이 분비되어 국지적인 통증완화제로 작용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연구진은 마우스를 가볍게 마취하여 움직이지 않게 한 다음, 아래다리(lower leg)에 침을 꽂았다.
그리고는 침을 꽂은 부위 주변에서 체액을 채취하여 구성성분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아데노신의 농도가 24배가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다음으로, 아데노신의 작용을 증강시킬 경우 통증이 완화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하였다.
연구진은 두 가지의 만성통증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했는데, 첫 번째 통증은 염증으로 인한 통증, 두 번째 통증은 신경손상으로 인한 통증이었다.
(염증으로 인한 통증은 관절염과 같은 질환에 의한 통증을 의미하며, 신경손상으로 인한 통증은 척수손상이나 당뇨의 합병증으로 인한 통증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신경수술과 염증유발물질을 이용하여 마우스의 다리에 두 가지 종류의 만성통증을 유발하였다.
그 결과 두 그룹의 마우스들은 정상 마우스들이 반응하지 않는 경미한 자극에 대해서도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연구진은 다음으로, 두 그룹의 마우스에게 두 가지 종류의 자극을 가하고 그에 대한 감수성을 측정하였다.
첫 번째 자극은 촉각으로, 연구진은 마우스의 아픈 다리를 금속 필라멘트로 건드린 다음 얼마나 빨리 발을 오그리는지를 측정하였다.
두 번째 자극은 열자극으로, 연구진은 강의실에서 쓰는 레이저 포인터를 마우스의 아픈 다리에 비추어 얼마나 빨리 발을 오그리는지를 측정하였다.
연구진이 통증 부위에 침을 꽂거나 아데노신 활성화제(CCPA: 2-chloro-N(6)-cyclopentyladenosine )를 국지적으로 주입한 결과, 통증에 대한 마우스들의 감각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하여 훨씬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데노신 수용체가 결핍된 마우스를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한 결과, 침이나 CCPA는 모두 통증완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상의 실험 결과를 종합하여, 아데노신이 침의 효과를 매개하는 생화학적 메신저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직의 세포는 기계적·전기적 자극, 또는 열에 반응하여 ATP를 분비한다.
일단 분비된 ATP는 퓨린작동성 수용체(purinergic receptor, P2X와 P2Y 수용체)에 결합하여 전달물질로 작용한다.
그런데 ATP는 세포로 다시 흡수되지 않고 신속하게 분해되어 아데노신으로 된다.
따라서 아데노신은 아데노신 A1 수용체에 결합하여 통증을 억제하는 진통제로 작용한다."고 네더고르 박사는 설명했다.
연구진은 심층분석을 통하여 두 가지 치료법(침과 아데노신 활성화제) 모두 뇌의 전대상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의 활성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었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침술의 효과를 증강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통증을 겪는 마우스에게 약물을 투여하여 아데노신의 조직 축적을 증가시켜 보았다.
그 결과 이 약물은 아데노신의 조직 체류시간을 3배나 연장시켰으며, 그 결과 통증 완화시간 역시 3배(1시간→3시간)로 증가하였다.
연구진이 이 실험에서 사용한 약물은 항암제인 데옥시콘포마이신(deoxycoformycin)으로서 독성이 너무 강하여 임상에서 사용될 수는 없지만, 침술의 효과를 증강시키는 원리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침술의 효과를 규명한 기념비적 연구이다.
연구자들은 매우 명확한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꼼꼼하게 검증하였다.
마취된 마우스를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연구의 결과가 깨어 있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가 침술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하버드 의대의 비탈리 나파도 박사(Vitaly Napadow, 신경화학)는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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