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몽골, 중국, 대만이 원산지이다.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수령이 천 년 넘는 나무 60여 그루 중 25그루가 느티나무이다.
목재는 잘 썩지 않으며 물에 잘 견디어 농기구의 자루나 가구를 만들거나 건축재로 쓰인다.
요즘에는 분재용 식물로도 널리 가꾸고 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라는데 흔히 부락 어귀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자나무이기도 하다.
가지가 사방으로 비스듬히 뻗어 나무 모양이 거꾸로 된 3각형처럼 보이며, 흔히 굵은 가지가 줄기의 밑부분에서부터 갈라지고 키가 약 30m까지 자란다.
오래된 나무의 수피는 진한 회색으로 비늘처럼 떨어지며 피목이 옆으로 길게 만들어진다.
어린 가지에는 털이 나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고 잎끝은 뾰족하지만 잎밑은 둥글거나 심장처럼 약간 들어가 있으며 잎맥을 경계로 양쪽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잎은 가을에 황금색 또는 윤기 있는 구리색으로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꽃은 5월에 피는데, 그 해에 나온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핀다.
수꽃은 새 가지의 아래쪽에 피며 암꽃은 위쪽에 핀다.
수꽃에는 4~6장의 꽃덮이조각과 4~6개의 수술이 있으며, 암꽃은 가지마다 1송이만 달리는데 암술대가 2개로 나누어진 1개의 암술로 이루어져 있다.
열매는 10월에 편평하고 둥글게 익으며 지름은 5mm 정도이다.
해가 잘 드는 곳이나 땅속에 물기가 다소 많은 곳에서 잘 자라며, 생장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가뭄이나 바닷바람에는 약하다.
나무를 잘라도 새 가지가 곧 나오나 자동차나 공장에서 나오는 배기 가스 등의 공해에는 쉽게 피해를 입는다.
뿌리가 깊게 자라지 않으며 가뭄에 약하므로 옮겨 심을 경우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
공원이나 길가에 흔히 심고 있으며, 기념수로도 쓰이고 넓은 정원에도 심는다.
줄기
높이 26m, 지름 3m이고 나무껍질은 평활하나 비늘처럼 떨어지고 껍질눈은 옆으로 길어지며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끝으로 갈수록 가는 가지로 갈라진다.
일년생가지는 가늘고 어린 것은 잔털이 있다.
뿌리
원뿌리와 곁뿌리가 잘 발달되어 있다. 천근성이고 발근력이 발달되어 있다.
나무껍질
나무껍질은 오랫동안 평활하나, 비늘처럼 떨어지고 껍질눈은 옆으로 길어진다.
가지
일년생가지는 가늘고 어린 것은 잔털이 있다.
잎
잎은 어긋나기로 긴 타원형,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고 점첨두 예저이며 길이 2~7(13)cm, 나비 1~2.5(5)cm로 변이가 심하고 가장자리에 단거치가 있고 양면의 털근 점차 없어지며 측맥은 8~14쌍이다.
붉은 빛, 노란 빛으로 단풍이 든다. 잎자루는 길이 15mm이다.
꽃
꽃은 담황록색이며 암수한그루로 4~5월초에 피고 취산꽃차례로 달린다.
수꽃은 새가지 밑에 모여 달리며 4~6개로 갈라진 화피와 4~6개의 수술이 있고 암꽃은 새가지 윗부분에 1송이씩 달리며 퇴화된 수술과 암술대가 2개로 갈라진 암술이 있다.
열매
열매는 핵과로 대가 거의 없이 일그러진 편구형이고 딱딱하며 지름 4mm이고 뒷면에 능선이 있으며 5월에 익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2000. 3)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사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1,000년 이상의 나이를 먹은 60여 그루의 나무 중 25그루가 느티나무라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아래와 같다.
번호 | 위치 | 수령(년) | 높이(m) | 나무둘레(m) 각주1) |
95 각주2) | 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리 278-2 | 1,000 | 16 | 7 |
108 | 전남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산948-2 | 350 | - | - |
161 | 제주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882-1 | 1028 | 26 | 3 |
192 | 경북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659 외 15필 | 350 | 10 | 8.35 |
273 | 경북 영주시 안정면 단촌리 185-2 외 4필 | 500 | 16.5 | 10 |
274 | 경북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1095 외 4필 | 450 | 18 | 8.7 |
275 | 경북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256 외 3필 | 600 | 28 | 9.5 |
276 | 경남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 732 외 5필 | 400 | 17.5 | 9.3 |
278 |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 136 외 2필 | 850 | 21 | 7.3 |
279 | 강원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2230 외 2필 | 350 | 22 | 7.6 |
280 | 전북 김제시 봉남면 행촌리 230-2 외 3필 | 600 | 15 | 8 |
281 | 전북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 495 외 3필 | 600 | 19 | 8 |
283 | 전남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747- 1 외 7필 | 500 | 21 | 7 |
284 | 전남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787-1 | 600 | 25 | 7.9 |
382 | 충북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321 외 1필 | - | 25 | 9.4 |
396 | 전북 장수군 천천면 봉덕리 336 | 500 | 31 | 6.4 |
407 |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27-1 | 500 | - | - |
재목의 결은 약간 거칠지만 재질이 강하고 질겨서 뒤틀리지 않고 무거우며 무늬와 광택이 아름답다.
또한 잘 썩지 않으며 물에 잘 견디어 농기구의 자루나 가구를 만들거나 건축재로 쓰인다.
요즘에는 분재용 식물로 널리 가꾸고 있다.
이른봄에 어린잎을 채취하여 떡에 섞어 쪄서 먹기도 한다.
억센 줄기는 강인한 의지를, 고루 퍼진 가지는 조화된 질서를, 단정한 잎들은 예의를 나타내며 옛날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마을나무로 널리 심어온 나무 중 하나이다.
나지막한 동산을 뒤에 두르고 널찍한 들판을 내려다보는 곳, 시골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드리 고목나무 한 그루는 서정적인 우리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당산나무나 정자나무로 불리는 이런 나무의 대부분은 느티나무가 차지한다.
아늑한 품 안은 뙤약볕 여름농사에 지친 농민들의 안식처이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 여론광장이 되기도 한다.
산림청의 지도 감독을 받아 각 지자체가 지정 및 관리를 하고 있는 고목나무는 현재 약 1만 3천 그루쯤 되고, 그중에서 느티나무가 7천 1백 그루로 가장 많다.
따라서 고목나무 하면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위로는 임금의 궁궐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의 생활터전까지 심고 가꾸는데 낯가림이 없다.
모두를 다 함께 편안하게 보듬어주는 넉넉하고 편안한 나무다. 이처럼 아름드리 굵기에 이야깃거리가 얽혀 있는 느티나무라면 짧게는 조선왕조, 길게는 고려나 신라인과 삶을 함께 해온 역사 속의 나무다.
우리나라 나무 중 은행나무와 함께 수명이 가장 긴 나무다. 몇백 년은 보통이고 웬만하면 천 년이 훌쩍 넘어간다.
긴긴 세월을 이어오면서 맞닥뜨린 민족의 비극도, 애달픈 백성들의 사연도 모두 듣고 보아오면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전설을 간직한 느티나무는 수없이 많다.
전북 임실 오수읍의 의견(義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오수에서 멀지 않은 영천리에 살던 김개인이란 선비는 어느 날, 개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갔다가 낮술에 취하여 잔디밭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 들불이 번져 주인이 위험에 처하자 개는 가까운 연못에 들락거리면서 몸에 물을 적셔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 주인을 구하다 지쳐서 죽어버렸다.
그는 개를 정성껏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아두었더니 그 자리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 지금의 큰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개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여 이 느티나무를 개나무란 뜻으로 ‘오수(獒樹)’라고 부르고 마을 이름도 바꾸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전설이 아니라 고려 말의 문신 최자의 《보한집》에 실린 내용이다.
경남 의령의 세간리에는 ‘현고수(懸鼓樹)’란 느티나무가 있다.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이 북을 매달아 놓고 군사훈련을 시켰던 나무다.
612년(진평왕 34년), 찬덕이란 신라 장수는 지금의 충북 괴산 근처에 있던 가잠성의 성주였다.
어느 날, 백제군이 쳐들어와 성을 잃게 되자 그대로 달려 나가 느티나무에 부딪쳐 죽었다.
이후 가잠성을 ‘느티나무 괴(槐)’ 자를 써 괴산이라 부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괴산군 일대에는 지금도 느티나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더 많았다고 하며, 오늘날 괴산군의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만 90여 주에 이른다.
쓰임새가 너무 많은 느티나무는 당산 지킴이로서 만족할 수 없었다.
목재는 나뭇결이 곱고 황갈색의 색깔에 약간 윤이 나며, 썩거나 벌레가 먹는 일이 적은 데다 무늬도 아름답다.
또한 건조를 할 때 갈라지거나 비틀림이 적고 마찰이나 충격에 강하며 단단하다.
한마디로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무의 황제’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둥그스름한 당산나무만이 느티나무의 참모습은 아니다.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하여 자랄 때는 곧바르고 우람한 덩치로 자란다.
그것도 적당히 자라다 마는 것이 아니라 키 20~30미터, 지름이 두세 아름까지 자란다.
목재의 쓰임도 화려하다.
천마총을 비롯한 관재로서 임금의 시신을 감싸고 영생의 길을 함께한 영광의 나무였다.
건축재로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전, 조선시대 사찰건물인 강진 무위사, 부여 무량사, 구례 화엄사의 기둥은 전부, 혹은 일부가 느티나무다.
또 흔히 스님들이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 구시(절의 행사 때 쓰는 큰 나무 밥통), 절의 기둥, 나무 불상도 대부분 느티나무다.
기타 사방탁자, 뒤주, 장롱, 궤짝 등의 가구까지 느티나무의 사용범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