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淸道 老巨樹

오진리 굴참나무

초암 정만순 2019. 2. 13. 14:50





오진리 굴참나무


 

소재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 산126-2
위치 N35°41′847″ E128°58′568″



수종 굴참나무
나이 300년
높이 16.5m
뿌리목 둘레 545cm
가슴높이 둘레 475cm
나무갓 폭(수관폭) 동서16.4m, 남북11.6m



 마을 입구 언덕에 자리 잡은 굴참나무의 위용(여름).

마을 입구 언덕에 자리 잡은 굴참나무의 위용(여름).



신라 철제무기와 명품 ‘운문솥’ 만들어낸 명목

 

마을 역사 상징하는 신목이자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는 문복산(文福山)의 산줄기들과 운문산(雲門山)의 연봉들이 겹겹이 감아 돌면서 만들어낸 수많은 계곡들 가운데 한 가닥 시내의 물가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 마을 어귀 언덕에 자라는 굴참나무는 마치 마을의 수호신인양 우뚝 솟아 그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오진리(梧津里) 일대는 솥을 만들어내던 마을이라 하여 ‘제부리(製釜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솥을 만든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는 신라군이 철제 무기를 만들던 곳으로 이런 곳은 경주로 가는 길목 여기저기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진리를 비롯해 신원리, 방음리 등에서 생산된 ‘운문솥’은 일제 강점기까지도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신라 때부터 철을 다루던 기능공 후예들이 인근에서 생산되는 철과 풍부한 목탄을 이용해 생활필수품인 솥을 만들며 전통을 이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철을 녹이기 위해서는 1,000℃ 이상의 가열온도가 필요한데 그 당시에는 참나무 숯이 유일한 재료였다. 굴참나무는 참나무종의 대표나무로서 마을이 가까운 산지에서 많이 자라고 있어 널리 이용되었을 것이다.

마을 입구 언덕에서 자라고 있는 이 굴참나무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참나무 중에 인물 좋은 한 그루를 기념으로 남겨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굴참나무는 줄기에 두꺼운 코르크가 발달한다. 손으로 눌러보면 푹신푹신한 감이 느껴질 정도로 탄력성이 좋다.

코르크가 발달한 줄기는 껍질이 세로로 골이 깊게 파여 있어 다른 참나무종과 구분할 수 있다.
경기지방에서는 골을 ‘굴’이라 하는데, 나무 이름은 ‘껍질에 굴이 지는 참나무’에서 ‘굴참나무’가 된 것으로 보인다.

 

가을 

 가을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 황벽나무와 개살구나무에서도 질 좋은 코르크가 형성되지만 흔한 나무가 아니라서 굴참나무에서 대량으로 채취해 사용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패색이 짙은 일본은 군수물자로 굴참나무 껍질 벗기기에 혈안이 되어 소나무와 함께 수난을 당했다.
광복이 되면서 굴참나무의 굴욕도 끝나고 아픈 상처의 흔적도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굴참나무 껍질을 산골 마을의 지붕을 이는 재료로 사용해 왔으며, 지금도 옛 정취를 살리기 위해 실내장식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경북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제96호),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제271호), 경북 안동 대곡리 굴참나무(제288호),
강원도 강릉 신계리 굴참나무 군(제461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