樹皮 圖鑑 - 리기다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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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 리기다소나무는 그다지 유연하지 못하고, 딱딱하며, 강건한 목재를 뜻하는 종소명 리기다(rigida)에서 비롯한다.
한자명(刚松, 강송)도 마찬가지다.
일본명은 잎 3개가 모여 나는 것에서 비롯한다.
리기다소나무는 소나무류 가운데 잎이 3개씩 모여 나고, 줄기 마디에 잎이 돌려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리기다소나무의 원산지는 미국 애팔래치안 산맥의 변성암 암각노출지로 산성토양지역이다.
우리나라에는 1914년경 종자를 들여와 서울 아현리에 양묘(養苗)한 것이 최초이며, 1970년대 대규모 조림사업으로 식재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농촌과 도시 주변의 산지 경관을 대표하고, 솔밭, 도토리밭, 죽밭이라고 하는 전통 숲정이문화를 변질시켜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땅은 우리 땅인데, 외국 녹색 옷을 입혀놓은 형국이다.
리기다소나무는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후로 처음 심겨진 장소를 벗어나 야생으로 퍼져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아까시나무처럼 퍼져나가지 않고, 조림한 장소에만 산다는 뜻이다.
리기다소나무 조림지는 아주 단순한 이층(교목층, 초본층)의 삼림 구조이고, 숲 바닥(林床)의 종 조성이 매우 빈약하다.
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리기다소나무 숲이 야생동물의 서식처로도 좋지 못한 까닭이다.
고유 식생자원인 소나무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농촌 주변의 리기다소나무 숲은 환경부에서 지정한 유해 조수(鳥獸) 까치의 주된 서식처일 뿐이다.
까치 집단이 크게 증가해서 유해 조수가 된 것도 농촌 주변 생태계를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변질시킨 우리 탓일 게다.
전통 묵화(墨畵) 속에서는 착했던 까치가 나쁜 녀석이 되고, 참새도 희귀해진 이유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지속가능성을 담보로 하는 우리의 전통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리기다소나무는 소나무 종류 가운데 송진이 아주 많은 종으로, 식물체 줄기에 상처라도 입게 되면 엄청난 송진을 방출한다.
떨어진 잎도 분해되는데 그 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때문에 숲바닥 토양은 영양분이 빈약하고 척박하게 된다.
딱따구리 종류와 같이 솔숲에 살아야 할 새들은 리기다소나무 숲을 싫어한다.
송진 그 자체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먹이가 되는 곤충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 송진 덕택에 솔잎혹파리나 소나무재선충에는 잘 견디는 편이다.
리기다소나무 조림지가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의 기능과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태학적 정보는 빈약하다.
분명한 것은 외국종으로 획일적이고 아주 넓게 조성하는 방식의 조림지는 지역의 고유생태계를 변질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민둥산을 급하게 녹화하기 위해 그리 했다면, 생태학적 상식조차 없는, 흐르는 물을 멈추게 하는 4대강보 사업과 같은 욕교반졸(欲巧反拙)의 반생태적(反生態的) 국토관리라고 지적받아 마땅하다.
줄기
높이 25m, 지름 1m에 달하며 가지가 넓게 퍼지고 줄기와 가지에서 싹눈이 잘 나온다.
나무껍질은 적갈색이며 깊게 갈라지고 일년생가지는 연한 갈색이며 동아는 짙은 갈색이다.
나무껍질
나무껍질은 적갈색이며 깊게 갈라진다.
가지
가지가 넓게 퍼지고 줄기와 가지에서 싹눈이 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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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잎은 침엽이며, 3개 또는 4개씩 모여 나고, 딱딱하며 비틀리고 길이 7~14cm이며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고 횡선열매의 수지구가 중위(中位)이다.
꽃
암수한그루이며, 5월에 개화하고 암꽃차례는 뭉쳐나며, 대가 발달하지 않거나 매우 짧고, 연한 갈색이다. 황자색의 수꽃이삭은 긴 원주형이며 암꽃이삭은 달걀모양이다
열매
구과는 난상 원뿔모양이며 길이 3~7cm로서 다음해 9월에 갈색으로 익고 오랫동안 가지에 달려 있으며 비후부는 광채가 나고 씨앗바늘 끝은 침상이고, 종자는 난상 삼각형이며 길이 4~7mm, 폭 2.5~3mm로서 양끝이 좁고 흑갈색이며 거칠다. 날개는 길이 15mm, 폭 5~8mm이고 자엽은 4~6개이다
한때 우리는 미제(美製)라고 하면 깜빡 숨이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광복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남아난 산업이 없으니 국산품은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때의 미제는 튼튼하고 품질 좋은 우량품의 상징이었다.
이런 시절 헐벗은 우리 산에는 ‘리기다소나무’라는 미제 소나무가 이곳저곳에 심기기 시작했다.
미국 동남부지방이 고향인 리기다소나무는 대체로 일제강점기인 1907년경 우리나라에 처음 시집왔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창 복구가 시작된 1960~1970년대에는 산마다 리기다소나무 천지였다.
정부에서 공짜로 묘목을 나누어주었고, 인부까지 동원해 심어주었으니 산 주인이야 마다할 리 없었다.
자그마치 48만 헥타르의 리기다소나무 숲이 생긴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나무까지 미제를 좋아하여 우리 나무를 놔두고 이렇게 리기다소나무를 많이 심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때의 우리 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었다.
여름에도 산이 푸른 것이 아니라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비만 오면 흙이 흘러내려 강바닥이 농경지보다 더 높았다.
천정천(天井川)이란 이름의 이런 강은 홍수가 나면 금세 농경지를 덮어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에 나무를 심는 일이 시급했다.
게다가 나무의 종류를 가려 심을 처지가 아니었다. 우선 뿌리를 박고 살 수 있는 나무가 최우선이었다.
비료 성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곳에서도 자랄 수 있는 나무가 바로 리기다소나무였다.
리기다소나무라고 메마른 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잘 버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한계조건에서는 겨우 생명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리기다소나무는 줄기 여기저기에 ‘맹아(萌芽)’라는 부정기적인 작은 새싹을 내밀어, 부분 부분을 털북숭이처럼 만들어둔다.
설령 윗부분이 말라죽어도 줄기의 어디에서라도 다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 생명을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토종 우리 소나무나 곰솔 등 다른 소나무 종류는 줄기에서 맹아가 돋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서도 리기다소나무 숲은 금세 찾아낼 수 있다.
또 리기다소나무는 솔방울이 잔뜩 열리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그러하듯 리기다소나무 역시 삶이 편편치 않으면 우선 자손부터 퍼뜨릴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리기다소나무의 환경이 이렇다 보니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다.
리기다소나무의 정착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나무를 심었다고 이제 와서 비판한다.
그러나 리기다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푸른 우리 산을 보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리기다소나무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모두 끝내고 우리나라 숲에서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쓸 만한 다른 나무로 교체하기 위하여 잘려나갈 영순위 나무다.
관심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어렵게 생명을 유지하다 보니 그의 속살이라고 온전할 리 없다.
우선 나이에 비해 나무 지름이 작고 온통 옹이투성이다. 또 원래부터 그에게는 송진이 많아 영어 이름도 ‘송진소나무’인데, 힘들게 살다 보니 더 많아졌다.
종이 만드는 회사에서도, 나무 켜는 공장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알려진 바로는 1헥타르에 자라는 30년생 리기다소나무의 값어치가 모두 합쳐 1백만 원 남짓이라 한다.
심을 때야 공짜로 심었지만 산 주인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웰빙 바람으로 사람들은 건강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무엇이든 건강에 좋다면 남아나지 않은 세상이다 보니 솔잎도 훑어가기 바쁘다.
리기다소나무보다는 진짜 소나무가 나을 터이니, 바늘잎이 세 개씩 붙어 있는 리기다소나무와 두 개인 토종 소나무는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