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草房/운림의 식품과 의학

배롱나무

초암 정만순 2018. 5. 6. 09:57


배롱나무


옥황상제의 뜨락에 피는 꽃나무, 부인병 명약 배롱나무

   

배롱나무가 있는 풍경  

, 어느 바닷가 마을에 머리가 세 개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서 백성들을 괴롭혔다.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 회의를 해서 해마다 처녀 하나씩을 제물로 바쳤더니 이무기가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 마을에 한 아리따운 처녀가 있었는데 이무기한테 잡아먹혀야 할 차례가 되었다. 처녀는 이무기 밥이 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런데 그 때 한 장사가 나타나서 이무기를 죽여 없애겠다고 하였다. 장사는 처녀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제단에 앉아 있다가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을 휘둘러 이무기의 목 두 개를 베어 떨어뜨렸다. 이무기는 머리 두 개가 잘린 채로 바다로 도망을 쳤다.

처녀는 기뻐하며 말했다.

저는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사오니 죽을 때까지 당신을 낭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장사가 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이무기의 남은 목 하나를 마저 베어야 합니다. 나는 바다로 나가서 이무기와 싸울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이무기를 죽이면 배에 흰 깃발을 달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고 올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기다려 주십시오.”

장사는 배를 타고 이무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처녀는 백일 동안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기도를 드리고 날마다 언덕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백일 째 되는 날 멀리서 배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붉은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장사가 이무기한테 잡혀 죽었을 것이라고 여기고 언덕에서 뛰어내려 죽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장사가 이무기를 죽이고 돌아오면서 흰 깃발을 달았는데, 이무기가 몸부림을 치면서 죽어가면서 흘린 피가 깃발에 튀어서 붉은 물이 들었던 것이다.

장사는 슬퍼하면서 죽은 처녀를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주었다. 그 이듬 해에 처녀의 무덤에서 낯선 나무 한 그루가 돋아나더니 시집 갈 때 머리에 쓰는 족두리를 닮은 붉은 꽃이 피어나서 백 일 동안을 시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에 처녀의 넋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그 나무가 귀신을 쫓고 질병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하여 뜨락이나 사당, 무덤가에 심기 시작했는데 그 나무가 바로 배롱나무이다.


식영정 배롱나무  

 

사람의 넋을 빼앗을 듯 아름다운 꽃

배롱나무는 붉은 꽃이 백 일 동안 핀다. 꽃이 열흘 붉기도 힘든데 그 열 배가 넘는 기간동안 붉은 물감을 쏟아 부은 것처럼 피어난다. 그 이름도 백 일 동안 붉다 하여 백일홍나무라고 하던 것이 소리나는 대로 배기롱나무로 되었다가 배롱나무로 된 것이다.

배롱나무는 백 일이 넘도록 무궁무진하게 피어나는 꽃과 희고 매끈한 껍질, 단정한 수형이 사람의 눈을 끈다. 우리 옛 선비들은 배롱나무의 화려한 자태와 고아한 운치를 사랑하여 배롱나무를 노래한 시를 많이 남겼다.

조선 시대의 선비화가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은 세계 최초의 꽃 기르기 전문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배롱나무를 두고 비단같은 꽃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사람의 넋을 빼앗을 정도로 환하고 아름답게 피어 그 풍격(風格)이 으뜸이라고 하였다.

배롱나무를 두고 후자탈(猴刺脫)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숭이들이 건드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배롱나무는 껍질이 아주 얇고 미끄럽다. 그래서 원숭이들이 올라가지 못한다고 쳐다보기만 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배롱나무는 껍질이 희고 매끄럽기가 마치 결벽증이 있는 사람과 같다. 언제 보아도 껍질이 잘 씻어 놓은 것처럼 깨끗하고 윤기가 난다. 중국 원나라 때의 이름난 화가 예찬(倪瓚)은 성질이 지나치게 깔끔하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날마다 물로 씻었다고 하는데 배롱나무를 심었더라면 씻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배롱나무는 묵은 껍질을 수시로 떨어뜨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 껍질을 늘 매끈하게 유지하는 성질이 있다. 옛사람들은 껍질을 스스로 벗는 배롱나무를 보고 청렴결백한 선비나 욕심 없는 수행자, 또는 벌거벗은 여인의 몸을 연상하였다.

우리 조상들이 배롱나무를 절간에 심는 것은 출가자들이 배롱나무가 껍질을 벗듯 세속의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고, 글방 앞이나 서원에 심은 것은 배롱나무처럼 고결하고 청렴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또 대갓집 안채에 이 나무를 심지 않은 것은 매끈한 껍질이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육유(陸游)가 지은 <노학암필기(老學奄筆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명주(明州)의 어느 절에 학식이 많고 가난한 중이 있었다. 어느 해 봄이었다. 사람들이 장에 가서 여러 가지 물건을 사 왔다. 중은 사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중은 뜰에 있는 배롱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스스로를 조롱하는 시를 지었다.

 

큰 나무는 두꺼운 껍질로 몸을 싸고 있고

작은 나무는 얇은 껍질로 몸을 싸고 있네

뜨락의 늙은 배롱나무여

너는 어이하여 홀로 벌거벗고 있는가

 

배롱나무를 충청도에서는 간지럼나무라고 하고 한자로는 파양목(爬痒木)이라고 쓴다. 가려움을 타는 나무라는 뜻이다. 배롱나무는 줄기가 연약하고 종잇장처럼 얇아서 신경이 몹시 예민하다. 줄기나 가지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무 전체가 파르르 떨린다. 손톱으로 줄기를 긁으면 나무 전체가 간지럼을 태우는 것처럼 마구 흔들린다.

배롱나무 꽃을 한자로 자미화(紫薇花)라고 한다. 배롱나무는 꽃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100일이 넘도록 오랫동안 피어 있으며 수명이 몹시 길어서 수백 살이 넘은 것들이 많다. 수천 년 전부터 궁궐이나 절간, 사대부들의 집 뜰에 널리 심고 매우 귀하게 여겼다.


 

옥황상제의 뜨락에 심는 꽃나무

우리나라와 중국의 오래 된 절간이나 궁궐, 서원, 무덤가에는 나이가 삼백 년이나 오백 년이 넘은 배롱나무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동래 정씨 시조의 무덤, 전라남도 담양의 명옥헌, 강원도 강릉의 오죽헌, 전북 고창의 선운사, 충북 영동의 반야사 등에 수백 년 묵은 배롱나무가 있다.

배롱나무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상징하는 꽃이다.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이 자미성(紫薇星)이다. 자미성은 우주를 다스리는 임금 별이다. 하늘 임금이 사는 궁이 자미궁(紫微宮)이고 하늘 임금을 보좌하는 신하가 자미랑(紫薇郞)이다. 그리고 자미궁의 뜰에는 자미수(紫薇樹)를 심었다. 자미수가 바로 배롱나무이다.

중국 당나라의 10대 임금 현종은 절세 미인 양귀비보다 자미화를 더 좋아했다. <당서(唐書)-백관지(百官志)>에는 현종(玄宗) 개원 원년에 중서성을 자미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중서령(中書令)을 자미령(紫薇令)으로 바꾸었다고 적혀 있다.

중서성(中書省)은 중앙 삼성(三省)의 하나다. 이 때부터 자미는 중서령(丞相)과 중서시랑(中書侍郞)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었다.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있을 때 황혼에 홀로 앉았으니 누가 내 벗이 될 것인가, 자미화만이 자미랑과 서로 마주하였네(獨坐黃昏誰是伴 紫薇花對紫薇郞)’라는 시를 지었다. 이를 보면 당나라 때 자미화를 중서성에 많이 심었고 중서성을 자미성(紫薇省)으로 부르고 중서사인을 자미랑으로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동래 정씨 시조 정문도(鄭文道) 공의 무덤 앞에는 나이가 8백 살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키가 8미터가 넘고 지름이 1미터쯤 되는 배롱나무가 두 그루가 있는데 천연기념물 168호로 지정하였다.

이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고려 초에 고익공은 정문도가 동래 지역 호장으로 있을 때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로 풍수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화지산(和池山)을 볼 때마다 좋기는 하나하고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 후 고익공은 경상도 안찰사를 거쳐 개경으로 떠났고 정문도가 세상을 뜨자 아들 정목은 고익공의 말이 생각나서 아버지 묘소를 화지산에 쓰도록 하였다. 상여가 화지산에 이르니 범이 쭈그리고 앉아 눈이 녹은 자리가 있으므로 거기에 장사를 지냈다.

그런데 다음 날 묘소에 가 보니 누군가 묘소를 파헤쳐서 목관이 드러나 있었다. 다시 목관을 묻고 숨어서 무덤을 지키고 있었는데, 삼경이 되자 도깨비들이 나타나 말하기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따위 목관을 묻었는가. 적어도 금관(金棺)을 묻어야지라고 하면서 묘를 파헤쳐 놓고 사라졌다. 정목이 그것을 보고 근심하고 있는데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도깨비 눈에는 보릿짚이 금빛으로 보일 것이니 보릿짚으로 목관을 싸면 다시는 묘를 파헤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날이 밝은 뒤에 보릿짚으로 목관을 싸서 묻었더니 도깨비들이 밤중에 다시 묘를 파헤치더니 금관이구만. 이제 됐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그 후로는 다시는 도깨비가 묘를 파헤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 해 여름 어느 날,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더니 황령산에 있는 괴시암이라는 바위가 산산조각으로 부셔졌다. 그 뒤에 후 정목은 개경에 있는 고익공을 찾아가 아버지의 시신을 화지산에 모셨다고 하였다. 고익공이 깜짝 놀라면서 집에서 내쫓으려고 하였다. 이에 정목이 아버지의 묘를 쓰고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고익공은 그제야 안도하면서 황령산의 괴시암이 깨졌으니 이제 그 묘소와 동래 정씨 가문의 화근이 사라졌다면서 정목을 거두어 관직에 나가게 하고 자기 딸과 혼인시켰다고 한다.


 

자미화는 하늘나라의 임금인 옥황상제가 사는 궁궐인 자미궁(紫微宮)의 뜰에 심는 꽃이라는 뜻이다. 자미궁은 천제(天帝)의 궁성으로 전해 오는 자미원(紫微垣) 별자리에서 따온 이름으로 황제의 거처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 사람들은 하늘 임금이 사는 궁궐을 자미궁이라고 하였다. 자미궁은 하늘 한가운데 있는데 그 주변을 여러 개의 별들이 무엇인가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다. 옛날 사람들은 북극성을 옥황상제라고 보았고 그 주변의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이 사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자미궁이라고 불렀다. 이 자미궁을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별들을 자미원(紫薇垣)이라고 불렀는데, 자미원에 있는 별들은 자미궁을 지키는 장군이나 신하들과 같은 별이라고 볼 수 있다.

배롱나무는 꽃이 백 일 넘게 피어 있다. 그러나 꽃 하나가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고 무궁화와 같이 여러 꽃이 이어서 피기 때문에 오래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옛사람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신선의 꽃 백일홍을 보고 또 보네, 새것과 옛것이 서로 이어 한 색깔을 이루었구나라고 했고,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어제 저녁에 꽃 한 송이 지고 오늘 아침에 꽃 한 송이 피어 서로 일백 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좋게 한 잔 하리라라고 읊었다.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양만리(揚萬里)는 배롱나무를 두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似痴如醉弱還佳 露壓風欺分外斜

誰道花無百日紅 紫薇常放半年花

 

바보인 듯 취한 듯 흔들리다 제 모습으로 돌아오고

센 바람에는 한 쪽으로 기우네

누가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했는가

배롱나무는 반 년 동안 꽃을 피우네

양만리는 자미화가 꽃이 오랫동안 피는 것과 강한 적응력, 그리고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잘 묘사했다.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시도 있다.

 

花無十日紅 爾獨百日紅

莫誇百日紅 岩上千年松

 

열흘 붉은 꽃이 없거늘

어이하여 배롱나무는 백 일을 붉게 피는가

그렇다고 자랑하지 말라

바위 위의 소나무는 천 년을 푸르거늘

 

소나무는 겨울에 홀로 푸르고 배롱나무는 여름에 홀로 붉다. 솔은 독야청청(獨也靑靑)이고 백일홍은 독야홍홍(獨也紅紅)이다. 배롱나무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정절(貞節)과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상징이다.

 

갖가지 부인병에 명약

배롱나무는 온갖 부인병에 명약이다. 뿌리껍질, 잔가지, 껍질, , 꽃을 모두 약으로 쓰는데 여성들의 냉증, 생리통, 생리불순, 불임증, 빈혈, 골다공증, 유선염, 산후통 같은 부인병에 다 잘 듣는다. 살결을 곱게 하고 주름살을 없애는 효과도 있으므로 여성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약이다. 나무 전체에 타닌, 알칼로이드, 사포닌 등의 성분이 들어 있다.

배롱나무 꽃인 자미화는 맛이 시고 약간 쓰며 성질은 차다. 수렴(收斂), 활혈(活血), 지혈(止血), 해독(解毒), 소종(消腫) 작용이 있다. 배롱나무 꽃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나서 피가 잘 멎지 않는 것, 피를 토하는 것, 변을 볼 때 피가 나는 것 등의 갖가지 출혈을 멎게 하는 데 효과가 좋다. 습진이나 옴 같은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고, 유선염이나 간염에도 좋은 치료효과가 있으며, 부종이나 간경화로 인한 복수를 빼내는 데에도 효험이 있다.

현대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배롱나무 꽃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유행성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억제하고 갖가지 병원균을 죽이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미화(紫薇花)는 피가 나는 것을 멎게 하는데 아주 좋은 약이다. 30g을 물 400밀리리터에 넣고 물이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달여서 하루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시면 어떤 출혈이든지 다 잘 멎는다. 객혈(喀血), 토혈(吐血), 변혈(便血)이 다 잘 낫는다.

배롱나무 뿌리는 염증을 삭이는 효과가 좋다. 옹저(癰疽), 창독(瘡毒), 장염(腸炎), 치질로 인한 통증, 이질 등을 치료하는데 좋은 효과가 있다. 배롱나무 뿌리 30g과 비파나무뿌리껍질 30g, 신선한 백급(白芨) 5g, 속단(續斷) 5g, 그리고 가열하여 법제한 자연동(自然銅) 9g을 가루 내어 골고루 섞어서 하루에 두 번씩 한 번에 3g씩 따뜻한 물로 먹으면 갖가지 종기와 치질 같은 것들이 잘 낫는다.

또 뼈를 튼튼하게 하고 통증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골절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좋다. 뼈가 부러졌을 때에는 배롱나무뿌리껍질과 쇠무릎지기를 짓찧어 골절된 부위에 붙이고 부목을 대어 고정시키면 부러진 뼈가 빨리 아물어 붙는다.

설사나 이질에도 배롱나무뿌리껍질을 물로 달여 먹으면 잘 낫는다. 치통에는 배롱나무뿌리껍질과 달걀을 같이 삶아서 달걀과 국물을 같이 먹으면 통증이 멎는다. 편두통에는 배롱나무뿌리껍질 30g과 돼지고기 60g을 함께 삶아서 먹으면 효과가 있다. 급성황달형 간염에는 배롱나무 뿌리 15g과 배롱나무 잎 15g을 물로 달여서 마신다. 배롱나무 잎에 들어있는 사포닌과 알칼로이드 성분들이 갖가지 균을 죽이고 습진과 이질을 치료하며 출혈을 멎게 한다.

배롱나무 씨에는 천연 마취제 성분이 들어 있고 배롱나무껍질에는 흥분작용이 있으며 열을 내리는 작용이 있다.

오래 전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20여 명을 데리고 약초를 관찰하러 산에 갔다. 그런데 여학생 몇 명이 생리통이 심해서 머리가 아프고 배도 아파서 걷지 못했다. 나는 곧 길옆에 있는 배롱나무 가지를 몇 개 꺾어서 물로 달여 그 물을 한 대접씩 마시게 했다. 여학생들은 배롱나무 달인 물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두통과 복통이 사라졌다.

배롱나무 잎은 아황산가스나 공기 중에 있는 갖가지 해로운 가스를 흡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배롱나무 잎 1킬로그램이 10그램의 유독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고 하였다. 배롱나무를 가로수를 심으면 대기 오염이 줄어들어 공기가 맑아진다. 그래서 일본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대기 오염을 막기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 배롱나무를 많이 심도록 장려하고 있다. 배롱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오랫동안 피며 공기를 맑게 할 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훌륭한 가치가 있으므로 일거삼득의 효과가 있다.


 

배롱나무는 꽃이 여름철 내내 핀다. 지루한 장마와 뜨거운 불볕 더위를 거뜬히 이겨 내면서 피어나는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여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하지만 배롱나무는 백일 넘게 화려한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에서는 2-3개월 밖에 피지 않지만 중국의 남방 지방이나 열대지방에서는 4개월에서 6개월 동안 꽃이 피어난다.

배롱나무는 잎이 지는 큰키나무다. 그러나 느리게 자라는 것을 신조로 여기고 있는 듯한 나무다. 느리게 자라서 오래오래 산다. 아주 크게 자라지는 않고 대개 34미터쯤 자라고 더러 10미터쯤 되는 것도 있다. 추위에 약해서 중부지방에서는 겨울철에 짚으로 줄기를 싸 주어야 얼어죽지 않는다.

수백 년 묵은 배롱나무들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만 남아 있는 것도 중부지방에서는 겨울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나무가 추위를 많이 타는 것은 껍질이 얇기 때문이다. 어찌 종잇장 같이 얇은 홑옷 하나로 겨울을 날 수 있겠는가.

배롱나무는 여름내 빨갛게 피는 꽃도 보기에 좋지만 뼈만 남은 듯한 매끄럽고 흰 줄기가 인상적이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를 파양수(爬痒樹)라고 부른다. 중국 명나라 때 왕상진(王象晉)이 지은 식물 백과사전인 <군방보(群芳譜)>에는 매끄러운 줄기를 긁어 주면 모든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간지럼을 타기 때문에 파양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충청도에서는 간지럼나무라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저금 타는 낭이라고 부른다. 저금은 간지럼의 제주도 사투리다. 이 나무가 간지럼을 타듯 잘 흔들리는 것도 줄기가 약하고 껍질이 얇기 때문이다.

 

방광염에 특효약

배롱나무는 여성들한테 흔한 병인 방광염, 곧 오줌소태에 특효가 있다. 오줌소태는 소변을 볼 때마다 짜릿짜릿하게 아프고, 소변을 금방 보고 와도 다시 마려우며, 소변을 볼 때 피가 나오기도 하고, 소변을 보느라고 잠까지 설치게 만드는 몹시 괴롭고 귀찮은 병이다.

방광염을 여자들의 감기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감기보다 더 고통스럽다. 여간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항생제를 쓰는데 항생제를 써도 완전히 낫지 않고 밥 먹듯이 수시로 재발한다. 게다가 지나치게 항생제를 많이 쓰면 유익한 균은 다 죽어 버리고 병원균들은 내성이 생겨서 다음에는 아무리 센 항생제를 써도 죽지 않는다.

방광염은 몸이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생긴다. 요로와 방광에 생기는 감염성 질병 가운데서 가장 흔한 병이다. 원인에 따라 세균성 방광염, 결핵방광염, 호산구증가 방광염, 기생충으로 인한 방광염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이 세균방광염이다. 갑자기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급성방광염이고 오랫동안 천천히 나타나는 것은 만성방광염이다.

방광염은 요로나 방광의 구조나 기능에는 탈이 없지만 세균이 대변에서 샅, 요도, 방광으로 올라가면서 감염되어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남자한테는 드물고 여자한테 많이 생긴다. 흔히 오줌소태라고 부르며 20대에서 40대 여성들한테 제일 많다. 80퍼센트가 대장균에 감염되어 생기고, 포도상구균, 장구균, 클렙시엘라, 녹농균 등으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

급성방광염이나 만성 방광염이나 가릴 것 없이 동쪽으로 뻗은 배롱나무 가지 1(대략 3540그램)에 물 1.8리터를 붓고 물이 절반이 되게 달여서 한 번에 마시면 즉시 낫는다. 한 번에 듣지 않으면 몇 번 반복해서 달여 마신다. 대개 3-4일 안에 낫는다.

그렇다면 왜 반드시 동쪽으로 뻗은 가지를 써야 하는가? 이는 해가 뜨는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 햇빛을 제일 많이 받으므로 약효 성분이 가장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나 효과가 있으나 붉은 꽃이 피는 나무보다는 흰 꽃이 피는 나무가 약효가 더 높다고 한다.

이 나무는 절개가 있어서 붉은 꽃이 피는 품종이라고 해도 심은 사람이 죽으면 이를 슬퍼하여 3년 동안 꽃빛깔이 하얗게 바뀐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붉은 꽃이 피는 것과 흰 꽃이 피는 것은 품종이 서로 다르다. 붉은 꽃이 피는 것보다 흰 꽃이 피는 것이 키가 더 높이 자란다.

배롱나무 꽃은 먹을 수도 있다. 그늘에서 말려 차로 달여 먹거나 기름에 튀겨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향기나 맛보다는 풍류나 약으로 먹는다. 두통이나 설사, 생리통에 배롱나무 꽃차 한 잔이면 거뜬하게 낫는다.

배롱나무의 잎은 자미엽(紫薇葉), 뿌리는 자미근(紫薇根)이라고 한다. 배롱나무 뿌리는 어린이들의 백일해와 기침에도 상당한 치료 효과가 있다. 기침에는 배롱나무 뿌리를 캐서 그늘에서 말려 두었다가 하루 40그램쯤을 물로 달여서 하루 세 번에 나누어 먹는다.

여성들의 대하증, 냉증, 생리통, 생리불순, 불임증에도 배롱나무 뿌리나 가지를 물로 달여 먹으면 좋다. 몸이 차서 임신이 잘 안 되는 여성이 배롱나무 뿌리를 진하게 달여서 꾸준히 복용하면 몸이 차츰 따뜻해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임신을 할 수 있게 된다. 여성들이여, 배롱나무를 가까이 하면 그대들의 얼굴이 배롱나무꽃처럼 고귀하고 화려한 자태로 피어날 것이다.

배롱나무 뿌리는 지혈작용도 있으므로 자궁출혈이나 치질로 인한 출혈, 코피가 나는 것 등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배롱나무는 꽃도 좋거니와 약으로도 쓰임새가 많고 목재로도 쓰임새가 많다. 매끄럽고 윤이 나는 껍질이 아름답고 나뭇결이 곱고 재질이 단단하여 여러 가지 세공품을 만들기에 좋다. 배롱나무 목재는 고급 가구나 조각품, 장식품을 만드는 데 귀하게 쓴다.

이 나무의 꽃말은 떠난 벗을 그리워 함이다. 백일홍 꽃이 지면 이미 가을의 문턱에 와 있으므로 지나간 여름날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인가? 도종환 시인과 목은 이색이 배롱나무를 두고 읊은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 가는 걸 알면서

온 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목백일홍/도종환

靑靑松葉四時同

又見仙葩百日紅

新故相承成一色

天公巧思儘難窮

經霜與雪心逾苦

自夏徂秋態自濃

物自不齊齊者少

對花三歎白頭翁

 

사계절 같은 것은 푸르고 푸른 소나무잎이요

백일 내내 붉게 피는 것은 선경의 꽃이구나

새 꽃과 늙은 꽃이 서로 이어 한 색깔이 되니

조물의 묘한 그 생각은 끝까지 알기 어렵구나

서리와 눈 겪으면서 내 마음 더욱 고달픈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 모습 여전히 농염해라

만물은 원래 다른 법 같게 될 수가 있겠는가

흰머리 늙은이 너를 대하며 거듭 탄식하노라

백일홍을 노래하다/목은(牧隱) 이색(李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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