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꽃다리
만능 약초 수수꽃다리 이야기
옛날, 한 가난한 양치기가 있었다. 그런데 늑대가 양을 다 잡아먹어 버리는 바람에 양치기는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 양치기가 어떤 집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한 남자가 도끼를 들고 작은 나무 앞에 서서 말했다.
“완전히 잘라 버려야겠어!”
남자는 나무를 자르려고 도끼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양치기의 귀에 작으면서도 분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람이나 동물의 소리가 아니라 바람에 나뭇가지가 떨리는 듯한 소리였다.
“도와 주십시오. 나를 도와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남자가 도끼로 나무를 내리치려는 순간 양치기가 말했다.
“잠깐 멈추시오. 이 나무를 내가 가져가야겠소.”
남자가 물었다.
“이것을 갖고 가서 무엇을 하려고요?”
양치기가 말했다.
“갖고 가서 심을 것입니다. 삽을 좀 빌려 주십시오.”
양치기는 나무를 들고 길을 떠났다. 나무한테는 한 시간마다 물을 주었다. 어느 마을에 오니 한 남자가 북을 치면서 외쳤다.
“백성들은 들으시오. 임금님께서 곧 임종하실 것 같으니 모두 검은 상복(喪服)을 입을 준비를 하시오.”
양치기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왕의 폭포가 멈추었다네.”
“어디요? 폭포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이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 말은 왕이 소변을 영 못 보고 있다는 말이라오.”
“저런! 참으로 딱하게 됐군요.”
양치기가 길을 가려 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 때 바람 소리인양 작은 소리가 들려 왔다.
“내 뿌리를 잘라서 달여 마시라고 해요.”
양치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임금님의 병을 고쳐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양치기는 나무뿌리를 물에 담가 끓여서 만든 갈색이 나는 물약을 왕한테 갖고 갔다. 왕은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생각하여 목동이 주는 약을 받아서 마셨다.
“폐하께서 잘못되면 너는 목이 달아날 것이다.”
사람들이 양치기를 협박했다. 그러나 이틀 뒤에 사람들은 ‘양치기 만세!’를 외쳤다. 왕의 샘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소원을 말해 보아라. 보석을 원하는가, 금을 원하는가, 말을 원하는가, 배를 원하는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겠다.”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다 필요 없습니다. 이 나무를 심을 만한 땅 한 평만 주십시오.”
사람들은 양치기를 비웃었다. 그러나 양치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왕이 준 땅에 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양치기는 나무에 핀 하얀 꽃을 지붕삼아 그 밑에서 낮잠을 잤다. 그러다가 멀리서 들리는 북소리에 놀라 깨었다. 북소리가 가까이 오더니 왕의 신하가 와서 외쳤다.
“백성들은 들으시오. 폐하께서 기르시는 사자가 오늘 특별한 먹이를 먹게 생겼소. 폐하께서 요리사를 사자밥으로 던진다고 하오. 폐하께서는 요즘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입맛이 써서 아무것도 들지 못하고 계시오. 요리사들은 모두 와서 폐하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드려 폐하를 기쁘게 하시오.”
“저런! 딱하기도 해라.”
나무 그늘에 누운 목동이 생각했다. 그 때 바람소리인 듯 가늘고 여리면서도 분명한 소리가 들려 왔다.
“내 꽃을 따서 밀가루와 섞어 반죽을 해서 빵을 구워 임금님께 드려.”
목동은 북 치는 남자를 불러 말했다.
“이것 보시오. 내가 페하께 요리를 만들어 드리겠소.”
사람들이 양치기를 비웃었다.
왕은 양치기가 만들어서 갖고 온 빵을 머뭇거리다가 한 입 베어 먹더니 맛있다고 하면서 쩝쩝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다 먹었다.
“맛이 아주 좋구나! 빵을 더 가져오너라! 어서!”
양치기는 달려가서 꽃을 따서 빵을 만들어 갖고 왔다. 왕은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말했다.
“그대의 소원을 말해 보아라. 보석을 원하는가, 아니면 내 왕국의 절반을 줄까?”
“다 싫습니다. 제 나무 옆에 작은 집 한 채만 지어 주십시오.”
양치기는 왕이 나무 옆에 지어 준 작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듯 겨울이 오자 나뭇가지마다 까만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북소리가 들리더니 북을 치는 남자가 외쳤다.
“백성들은 들으시오. 공주님께서 벌써 열사흘 동안 조용한 장소에 계신다고 하오. 음식도 거기로 날라다 주고 목욕물도 책도 거기로 가져다 주고 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공주님의 병을 고쳐 주는 사람한테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하셨소.”
“조용한 장소가 무엇입니까?”
양치기가 물었다.
“그건 공주님이 설사가 났다는 뜻이라네. 음식을 너무 많이 드셔서 배탈이 난 것이지.”
그 때 다시 바람소리인 듯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 열매를 따서 공주님께 갖다 드려요.”
양치기는 궁궐로 달려가서 말했다.
“제가 공주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유명한 의사, 돌팔이 의사, 무당, 점장이들이 모두 갖고 온 약재들을 들고 물러나고 양치기가 공주 곁으로 다가갔다.
“얼굴빛이 창백하지만 정말로 아름답구나.”
양치기는 공주를 보고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나무 열매를 공주한테 주었다. 공주는 그것을 먹고 곧 설사가 멈추었다. 공주는 기뻐서 양치기를 껴안았다.
“그대는 정말 모르는 것이 없구나. 이번에는 무엇을 갖고 싶은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주겠노라.”
왕이 말했다.
“원하는 것은 모두 다 들어 주시겠다구요?”
양치기가 물었다.
“물론이지. 다 주고말고.”
왕이 말했다.
“저한테는 나무가 있고 땅이 있고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없습니다. 공주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 왕의 목에 무엇인가가 딱 걸리고 말았다.
“내 딸을 달라고? 아니 이 음흉한 놈!”
왕은 화를 내다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의사들이 달려오고 마법사가 마법을 걸고 점장이들이 점을 쳤으나 왕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 때 양치기의 귀에 바람소리인 듯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내 껍질을 벗겨. 어서!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양치기는 나무껍질을 벗겨서 죽은 듯 누워 있는 왕의 입에 넣어주었다. 왕은 목이 졸리기라도 하는 듯 기침을 하다가 그 바람에 목에 걸려 있던 것이 튀어나왔다. 백성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왕이 물었다.
“누가 나를 구했느냐.”
양치기가 대답했다.
“제가 구했습니다.”
“그대는 참으로 기특한 사람이구나. 좋다. 내 딸과 결혼하도록 허락하겠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내 딸한테 무엇을 주겠느냐?”
“기적을 일으키는 나무를 주겠습니다.”
“내가 죽고 나서 그대가 왕이 되면 백성들한테 무엇을 해 주겠느냐?”
“기적을 일으키는 나무를 주겠습니다.”
나중에 왕이 된 양치기는 약속을 지켰다. 백성들한테 집집마다 기적을 일으키는 나무를 한 그루씩을 주었다. 그 뒤로 집집마다 수수꽃다리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게 되었다.
옛사람들은 수수꽃다리를 살아있는 자연의 약국이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집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수수꽃다리나무에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집 안이나 외양간, 창고 근처에 심었다.
수수꽃다리는 봄부터 겨울까지 아낌없이 주는 약나무다. 뿌리껍질, 잎, 꽃, 열매 등을 모두 약으로 쓴다. 뿌리를 우린 물은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잎으로 끓인 차는 땀을 잘 나게 하므로 감기 치료에 효과가 있다. 말린 꽃은 피부병과 여름철 햇볕에 그을린 살결을 깨끗하게 하거나 땀띠를 낫게 한다. 열매에는 비타민 씨가 많고 열매를 달인 차는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 열매를 씹어 먹으면 설사를 멎게 하고 진하게 달여서 마시면 기침을 멎게 하고 목이 쉰 것을 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