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草房/운림의 식품과 의학

묵은 간장

초암 정만순 2018. 5. 3. 19:20

묵은 간장

 

 

 

 

묵은 간장으로 간암을 고친 이야기

 

 

 

   

 어느 날 오후에 한 부부가 찾아왔다.

53살 된 남편과 두 살 아래의 아내는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두 시간을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가 그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3년 전에 간암 선고를 받고 유명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낫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에 저는 제법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세계에서 제일 가는 의료원에서 세계 제일의 의사한테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으로 가서 세계 최고의 암 전문 치료병원에서 세계 최고의 간암 전문의한테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좀 차도가 있는 것 같았으나 다시 악화되더군요.

저는 수소문을 해서 독일에 갔습니다. 독일에서 3개월을 머물면서 간암 치료를 받았으나 역시 아무 차도가 없더군요. 마침 텔레비전에 중국 의사들이 암을 잘 고친다는 프로그램을 보고 중국 베이징에 가서 텔레비전에 나왔던 병원을 찾아가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프로그램은 중국 정부에서 중국 의술을 선전하기 위해서 가짜로 꾸민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진짜로 믿고 그대로 방송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온 세상을 치료여행을 다니면서 많던 재산을 다 날렸고 이제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돈이 다 떨어지자 이제는 친구도 다 도망가고, 병은 더 깊어져 복수가 차서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제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약을 먹을 수도 없습니다. 두 달 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었는데 제 목숨이 2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하더군요.

이제서야 암은 서양의학으로는 결코 고칠 수가 없다, 자연의학으로 고쳐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만 이제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후회가 됩니다. 선생님,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살려 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제일 불편한 증상은 무엇입니까?”

 

“복수가 심하게 차는 것입니다. 배가 불러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가 없고 숨을 쉬기도 힘이 듭니다. 간혹 혼수상태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옥수수 수염을 달여 먹으면 복수가 빠진다고 해서 달여 먹고 있는데 처음에는 잘 듣다가 이제는 그마저 듣지 않습니다.”

 

“내가 선생님의 병을 고쳐 드릴 수는 없지만 도움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제가 권하는 치료법을 따르려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알고 있는 모든 건강에 대한 상식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권하는 대로 한 번 따르겠습니까?”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해 봤습니다. 이제 이래도 저래도 다 죽을 판인데 무엇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혹시 돈이 많이 들어야 한다면 살아난 뒤에 몇 십 년을 두고 갚을 것입니다.”

 

“돈은 한 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말을 의심하지 말고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내 방법으로 치료를 해서 죽을지 살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혹 잘못되더라도 나를 원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약속하고말고요. 어차피 죽을 목숨입니다. 서약서라도 쓰라고 하시면 쓰겠습니다.”

 

“좋습니다. 서약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의 의지와 자세입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고향이 어디입니까?”

 

“전라북도 전주입니다.”

 

“그렇다면 오래 묵은 조선 간장을 구할 수 있겠군요. 적어도 10년 넘게 묵은 것이라야 합니다. 간장을 오래 두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달이기도 하는데 달이지 않은 것이라야 합니다. 달이지 않고 10년 넘게 묵은 간장을 구할 수 있으면 선생님의 병을 고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혹 30년쯤 묵은 것을 구하면 선생님은 살아날 수 있는 가망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간장을 오래 보관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간장이 무슨 약이 되겠습니까?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절대로 짠 것을 먹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저는 모든 음식에 간을 하지 않고 먹고 있습니다.”

   

“병원의 의사 선생님 말을 따르겠다면 그대로 하십시오. 지금까지 온 세상의 유명한 의사들의 말을 들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아까 내가 권하는 대로 반드시 따르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집에 돌아가셔서 오래 묵은 간장을 구했다면 그 다음에 저한테 전화를 주십시오.

내 말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신중하게 생각하여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병은 스스로 고치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명의와 같이 살고 있다고 할지언정 의사가 다른 사람의 병을 절대로 고쳐 주지 못합니다.”

 

“고향에 수소문을 해서 오래 묵은 간장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흘 뒤 아침에 전화가 왔다. 30년 묵은 간장을 큰 항아리로 하나 가득 구했다고 하였다. 고향 친척한테 전화를 했더니 마침 시골 빈 집에 30년 전에 담아 두었던 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이제 선생님은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늘이 선생님을 버리지 않는 것 같군요.”

 

한 시간쯤 뒤에 환자 내외가 간장을 한 초롱 들고 집으로 왔다. 오래 묵은 간장은 짠맛이 적고 빛깔이 검으며 끈적거리고 약간 시큼하고 단맛이 난다. 그리고 항아리 바닥에는 장석이 많이 가라앉아 있기 마련이다. 빛깔과 맛을 보니 수십 년 묵은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말했다.

 

“간이 나쁜 데에는 묵은 간장이 최고의 명약이오. 곧 간장이 나쁜 데에 간장이 최고의 약이 되는 겁니다. 이 간장을 다 먹고 나면 병도 다 나을 것입니다.”

 

“간장을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오래 묵은 간장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어도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원액을 조금씩 그냥 마셔도 되지만 너무 짜므로 생수를 알맞게 타서 수시로 마시면 됩니다. 오래 묵은 조선 간장은 가장 훌륭한 해독제이며 간 치료제이며 암 치료약입니다. 옛 말에 ‘성인은 장이 없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하였고 ‘장은 백 가지 약과 음식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전통 밥상에서 늘 밥상 한가운데 소금 그릇과 간장 종지를 놓는 까닭을 아십니까? 소금과 간장이 가장 좋은 약이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묵은 조선 간장에는 천년 묵은 산삼을 훨씬 능가하는 약효가 있습니다.”

 

그 뒤로 환자한테서 가끔 전화 연락이 왔다. 두 달에 한 번씩 조그마한 선물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환자는 차츰 기운을 되찾고 복수도 빠졌으며 음식도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환자의 부인이 누구보다 기뻐하였다. 6개월 뒤에 환자는 병원에 가서 씨티 사진을 찍고 검사를 받아보았다. 결과는 간에 아무런 탈이 없다는 것이었다. 환자와 부인은 우리 집에 와서 나한테 큰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몇 해 동안 더러 전화연락도 오고 한두 번 찾아오기도 했다. 제법 건강해져서 다시 조그마한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나는 그 환자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른다. 나는 어떤 환자의 이름도 연락처에 대한 기록도 남겨 두지 않는다. 환자를 치료할 때에는 기록해 두었다가 치료가 거의 끝날 때쯤이면 폐기해 버린다. 예전에 환자 6천 6백 명의 치료 기록과 연락처를 컴퓨터에 남겨 둔 것 때문에 나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꼼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가 되어 곤욕을 치루었다. 그 뒤로 환자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겨 두지 않는다.

아마 다시 상태가 나빠졌다면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건널목을 건너다가 우연히 어깨를 부딪힐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

 

 

60년 묵은 간장 이야기​

오래 전의 일이다. 해월(海月) 선생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오래 묵은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이 몸에 좋다는 얘기를 했다. 30년 묵은 간장으로 간암을 고친 이야기, 오래 묵은 고추장으로 위장병을 고친 이야기를 들려 주었더니 매우 재미있어 했다.

 

해월 선생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기인이다. 그는 사람을 사귀는데 천재다. 그한테는 수 천인지 수 만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친구가 있다. 장관, 국회의원, 재벌 총수, 중, 목사, 교수, 교주, 도사, 의사, 군인, 시골 농부, 건달, 거지, 학자, 장사꾼, 점장이, 학생... 지위고하(地位高下) 빈부귀천(貧富貴賤) 남녀구별(男女區別)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나기만 하면 5분 안에 그에게 홀딱 반해 버린다. 특히 도사, 교주, 대사(大師)라고 하는 나부랭이들이 그한테는 제일 좋은 밥이다. 혹세무민에 도통한 시이비 교주과에 속한 인간들이 진짜 도사님의 한 마디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한 번 만나기만 하면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상대방의 외모, 직업, 관심사, 고향, 족보, 습관, 가족사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싹 알아내어 머릿속에 외워 두고는 평생 잊지 않는다. 놀라운 기억력이다. 언젠가 33년 전에 한 번 잠깐 만났을 뿐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33년 전 몇 월, 몇 일, 몇 시에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며 고향은 어디이고 아버지 이름은 무엇이며 본향은 어디이고 어떤 말을 어디까지 했는지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해월 선생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면 책을 몇 권 써야 될 판이니 그 애기는 나중에 하는 것이 좋겠다.

 

 

해월선생이 말했다.

 

“오래 된 간장이 간에 좋다고 했지요? 나한테 60년 묵은 간장이 많이 있어요. 6.25 전쟁 때 담근 것이라고 하니까 60년도 넘었을 거요. 내가 지난 해 충청도 공주 부근에 있는 어느 마을에 살았는데, 그 마을이 참 묘한 곳이오. 무언가 성인이 날 만한 자리가 틀림 없어요. 옛 비결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어요. 내가 살던 집에, 지금도 내 짐들의 일부가 거기 있어요. 그 집 뒤에 장독대가 있는데 큰 항아리에 간장이 하나 가득 들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60년이 넘은 것이오. 6.25 전쟁 때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간장을 담가 놓고 이사를 가 버린 거지. 그리고 그 집이 한 십 년 비어 있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살고, 또 그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그 뒤로는 몇 십년 동안 비어 있던 집인데 내가 방 하나를 약간 수리를 해서 살았던 것이오. 그런데 다른 것들은 다 없어져도 간장 항아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오.”

 

“그래요? 놀랍군요. 그 간장을 갖고 옵시다.”

 

며칠 뒤에 날을 잡아 간장을 가지러 갔다. 공주 유구 부근의 어느 산 속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에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골짜기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더니 막다른 곳 안 쪽에 마을이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몇 채 있었다. 과연 산도 아니고 평야도 아니며 햇볕이 잘 들고 비슷한 높이의 야트막한 산들에 둘러사여 있어서 숨어살기에 좋은 복지라고 할 만했다. 우리 조상들이 이른바 흔히 말하는 십승지의 하나로 손꼽았던 곳이다.

 

간장독은 허물어져 가는 외딴 집 뒤 해묵은 신갈나무 그늘에 있었다. 열 개쯤 되는 항아리의 뚜껑을 차례대로 하나씩 열어 보았다. 오래 전에 말라붙은 된장, 썩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곡식, 소금.... 그리고 간장이 들어 있는 독이 두 개 있었다. 두 개가 모두 열 말쯤 들어가는 큰 항아리였는데 간장이 사분지 일쯤 들어 있었다. 바가지로 휘저어 보니 바닥에 있는 장석이 버걱거렸다. 한 모금 떠서 맛을 보았다. 빛깔은 검고 맛은 짜고 꿀처럼 진득거렸다. 뒷맛은 달고 특유의 쉰 듯한 향기가 났다. 찾았다. 이것이 진짜 오래 된 간장이다.

 

“60년 묵은 간장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 간장으로 죽어가는 사람 여러 명을 살릴 수 있겠는데요.”

 

“그럼 이것을 갖고 가서 한 홉에 한 천만원씩 받고 팔까요?”

 

“파는 건 나중에 하고 해월 선생님이 요즘 간이 나빠진 것 같으니 가져가서 좀 드시지요.”

 

“그래야겠소. 요즈음 술을 많이 마셨더니 몸이 좀 피로하고 가끔 설사를 해요. 간이 퉁퉁 부었다고 하는데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할까 봐서 병원에는 안 가봤소. 멀쩡한 사람이 병원에 가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 나오니 병원이 병 고치는 데가 아니라 병을 만드는 곳이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암에 걸려서 병원에 갈 때는 멀쩡하게 걸어서 들어가더니 나올 때는 전부 죽어서 나옵디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먹지요?”

 

“조금씩 물에 타서 수시로 마시면 됩니다. 반 종지씩 그냥 마셔도 되구요.”

 

나는 간장을 한 말 짜리 물통에 모두 퍼담았다. 모두 두 말쯤 되었다. 본래 항아리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르고 졸아들어서 사분지 일쯤으로 줄어든 것이리라.

 

이렇게 해서 나는 60년 묵은 간장 두 말을 갖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한 달쯤 뒤에 해월 선생을 만났다. 그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아흔아홉칸 짜리 큰 한옥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 간장 말이오. 무언가 묘하고 기이한 효력이 있는 것이 틀림 없어요. 집안 정리를 좀 열심히 했더니, 무거운 돌도 좀 나르고 장작도 좀 패고... 그랬더니 몹시 피곤해요. 그래서 방에 들어가 누워서 좀 잤어요. 한 두어 시간 달게 자고 나니까 배가 고팠어요. 나가서 밥을 차려 먹을까 하다가 마침 그 간장 생각이 나서 그래 이것을 마시면 좀 기운이 나겠지 하고는 맥주잔으로 한 잔을 따라서 마셔버렸어요.”

 

“네에? 소줏잔이 아니고 맥주잔이요?”

 

“내 말을 마저 들어봐요. 한 잔을 마시고 나니까 열이 약간 오르면서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와 일을 했어요. 그 때가 저녁 열 시쯤 되었을 거요. 하늘에 달이 훤하더라구. 그런데 배도 고프지 않고 뭔가 술에 약간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틀림없이 그 간장을 마신 덕분인 것 같아서 이게 좋은 것이면 확실하게 체험을 해 보자 하고서는 방에 들어가서 맥주잔으로 한 잔을 더 마셔버렸어요.”

 

 

“그럴 수가! 그 짠 것을. 그래도 괜찮았나요?”

 

“괜찮다니! 죽을 뻔 했소. 열이 확 오르면서 독한 술을 한 항아리 퍼 마신 것처럼 취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가슴이 답답해서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마루 밑에 쓰러졌어요. 그리곤 의식을 잃었는데 참 묘한 꿈을 꾸었어요. 오색 구름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주변에 금빛 찬란한 옷을 입은 여러 사람이 보이는데 그 중에는 운림선생도 있었어요. 아무튼 상서로운 꿈이었소. 기이한 꿈에서 깨어나니 마당에 있는 소나무 밑이었는데 지금이 아침인가 하고 시간을 보니 오후 여섯 시였소. 거의 스무 시간을 간장에 취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잠을 잤던 것이오. 그런데 말이오. 사타구니 밑이 묵직해서 보니 세상에 똥이 바지 안에 가득해요. 내가 시커먼 똥을 한 양동이나 쌌던 거요. 장 속에 있던 몇 십년 묵은 숙변이 한 번에 싹 빠져 나온 것이라. 마침 그 집에 온 종일 나 혼자 있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오기라도 했더라면 큰 망신을 당할 뻔 했어요.”

 

“굉장하군요. 과연 묵은 간장이 효과가 좋지요?”

 

“그런데 그 명현반응이랄까 어질어질한 취기가 한 사흘은 가더라구요. 몸은 가벼워지고 개운해진 것 같은데 약간 열이 올랐다가 오슬오슬 춥고 그러다가 다시 어지럽고... 숙변이 확 빠지니까 보다시피 배가 홀쩍해졌고 몸무게가 8킬로그램이 줄어버렸어요. 사흘이 지나니까 정신이 말똥말똥해졌어요. 그 뒤로는 밥맛이 꿀맛이고 그 전보다 일을 서너 배를 더 많이 해도 전혀 피곤하지를 않아요. 전에 내가 산삼을 여러 뿌리 먹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산삼보다 열 배는 나은 것 같소.”

 

그런데 몇 년 뒤에 그 60년 묵은 간장이 5년 전에 약재를 보관하던 창고에 불이 나서 모두 타서 없어져 버렸다. 다른 50억 원어치가 넘는 희귀 약재들과 함께. 아내는 다른 약재들이 타서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 간장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만 한 시간을 목 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