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邱.慶北 市道記念物 나무.숲
대구 내곡동 모감주나무 군락
이곳 모감주나무는 개울가 거의 절벽이랄 수 있는 급경사지에 다른 나무들과 섞여 자란다. 풍화가 잘 되어 푸석푸석하기는 하지만 마치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수성암이 그대로 내 보이는 곳이다. 상수리나무와 참느릅나무, 쉬나무등과 함께 굵은 모감주나무가 7그루 정도이고, 그중에 4그루가 특히 굵다. 그 외 약 1백여 그루의 어린 모감주나무가 더 있다고 하였으나 꽃피는 시기에도 잘 찾을 수 없다. 숲이 우거지면서 다른 나무에 피압되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슴높이 줄기 둘레 97~140cm, 높이 8~10m로서 경북 기념물 제50호인 안동 송천동의 모감주나무 단목과 굵기나 높이가 비슷하다. 1650년경에 심은 것으로 짐작되나, 나무의 기원에 관련되는 기록이나 전설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찾아가기 대구-영천을 잇는 4호선 도로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면 대구선 청천역이 있는 숙천이란 곳이다. 조금 못미쳐 숙천교란 작은 다리가 있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200m쯤 들어가면 성불사란 절 입구 표시 간판이 있다. 좌회전하여 다리 건너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개울을 따라 잠시 올라가면 왼쪽 급경사지에 나무가 자란다. 대구 기념물 제8호, 대구 동구 내곡동 221, 산91, GPS 좌표 : N35°52′47.0″ E128°45′21.4″
대구 국우동 탱자나무
마을 맨 뒤편, 민가와 야산 자락 사이의 경계에 자란다. 지정 당시에는 32그루나 있었다고 하며 굵은 나무도 3그루이었으나 관리 소홀로 2그루는 죽어 버리고 서쪽의 한 그루만 살아 있다. 나무와 붙어서 시멘트 담장이 쳐져 있고 주위는 대나무 밭이라 생장 장애를 받고 있다. 이 나무는 밑에서 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졌으며 줄기 밑 부분 둘레는 170cm나 된다. 굵은 가지 셋이 모여 전체적인 수관을 만들고 바로 옆에는 300여년 정도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보호수 한 그루가 자란다. 높이는 5.5m이고 처음 울타리로 심었다고 짐작되며 느티나무 보호수와 거의 같은 나이로 짐작된다.
찾아가기 중앙고속도로 칠곡IC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3km쯤 달리면 대구 시내로 넘어가는 외곽도로와 마주친다. 국우 터널을 조금 못 미쳐 좌회전한 후 곧 국우동으로 들어가는 길로 우회전한다. 나무는 마을 뒤편 산자락의 주택 담장에 자란다. 대구 기념물 제10호, 대구 북구 국우동 685, GPS 좌표 : N35°57′00.8″ E128°34′57.5″
상주 두곡리 뽕나무
마을의 끝자락, 허름한 농가의 뒤편 감나무 밭 가장자리에 자란다. 나무는 약 2m 높이에서 둘로 크게 갈라지고 남쪽 줄기는 다시 둘로 갈라져 전체적으로 보면 3개의 큰 가지로 이루어진다. 키는 12m, 가슴높이 둘레는 2.7m 정도이다. 가지 펼침은 동서 7m, 남북 8m에 이른다. 생장상태는 왕성하여 오디가 지천으로 달리며 누에고치 30㎏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양의 뽕잎도 달린다고 한다. 일설에는 조선 인조(1623∼1649) 때 뽕나무의 재배를 권장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심었다고도 한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는 약 350년 정도이다.
찾아가기 상주시 함창읍에서 문경 농암면으로 들어가는 32번 도로를 10여km 쯤 달리면 두곡리 마을이고 나무는 마을 뒤에 자란다. 입구에는 경북 기념물 제75호 상주 두곡리 은행나무가 들판 가운데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1호,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324, GPS 좌표 : N36°33′58.5″ E128°04′36.9″
의성 도서리 회화나무
이 회화나무는 1919년에 간행된 ‘조선노거수명목지(朝鮮老巨樹名木誌)’에 따르면 208건의 회화나무 중 남북한을 통틀어 지름이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1972년 내무부에서 발행한 ‘보호수지(保護樹誌)’에도 역시 전국에 지정된 보호수 360건의 회화나무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는 1400년 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추정되며 세월의 무게를 말해 주듯 밑동부분은 거의 썩어서 예의 충전처리가 되어 있다. 마을 안 이면도로 가에 정4각형 시멘트 담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자료에는 차지하고 있는 땅이 1,419㎡라고 하였으나 실제 면적은 700㎡남짓하다. 나무의 높이는 10.5m, 줄기 밑 부분 둘레 15.3m, 가슴높이 둘레 10m정도이다. 땅위 3m에서 3갈래로 갈라져 가운데 줄기는 고사한 상태이고 동서쪽 줄기만이 살아있다. 가지 펼침은 동서 및 남북방향 모두 10m정도이다. 나무는 굵은 가지에서 잔가지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굵은 줄기에서 갑자기 잔가지만 나와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지름에 비해 높이가 굉장히 낮다.
찾아가기 의성읍내의 남쪽 끝자락, 의성중앙교회 뒤쪽 이면도로 교차로 한편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2호, 경북 의성군 의성읍 도서리 210-3, GPS 좌표 : N36°20′43.1″ E128°41′53.5″
경주 양동 향나무
양동 마을의 안쪽 깊숙이 들어간 서북쪽 경사지에는 중요민속자료 23호인 양동 서백당이 있다. 월성 손씨 종택으로 15세기 후반 양민공 손소가 지었다고 한다. 아들 손중돈과 외손인 이언적이 태어난 집이기도 하다. 나무는 종택의 경내에 있는 사당 앞에 자란다. 나무 높이 9m, 가슴높이 둘레 292cm, 가지 펼침은 동서와 남북 각각 12m정도이다. 땅위 90cm에서 첫 가지가 뻗어 나왔고 위로 올라가면서 옆으로 뻗은 가지들이 모여 둥그런 수관을 만들어 놓아 나무는 마치 잘 가꾸어진 정원수처럼 외관이 깔끔하다. 줄기는 울퉁불퉁하고 썩은 부분은 예의 충전처리를 해두었으며 가지가 꾸불꾸불 꼬이며 사방으로 널리 퍼져있으나 자람은 매우 왕성하다. 조선 세조 2년(1456)이 집을 새로 짓고 그 기념으로 이 향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따라서 나무의 현재 나이는 약 550년에 이른다.
찾아가기 포항에서 영천 쪽으로 28번 4차선 도로를 잠시 달리면 형산강에 걸린 제2강동교이다. 다리를 건너기 직전 좌회전하여 2km쯤에 양동민속마을이다. 나무는 민속마을 안쪽으로 한참 들어와 월성손씨 종택의 사당 앞에 있다. 경북 기념물 제8호,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223 GPS 좌표 : N36°00′01.1″ E129°15′20.6″
포항 보경사 탱자나무
보경사 해탈문을 들어서면 5층탑이 서 있고 그 동편에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가 있는데 이 건물 남쪽 공지에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그러나 최근 태풍의 피해를 받아 한 그루는 아예 없어져 버리고 나머지 한 그루도 모양이 거의 망가져 문화재로서의 값어치는 완전히 잃어 버렸다. 나무는 1600년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되며, 망가지기 전 크기는 높이 6m, 가슴높이 둘레 60cm이었다.
찾아가기 청하 보경사 경내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11호,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1리 667
포항 흥해 옥성리 이팝나무 군락
의창읍 이팝나무군락은 흥해향교 동쪽 언덕바지에 34그루가 상수리나무등과 섞여 자란다. 나무는 가슴높이 둘레 1.2~2.8m정도이며 나무 높이는 12~18m이다. 최근에 심은 어린 나무들도 섞여 있다. 나무는 굵기에 따라 나이 차이가 있을 것이나 대체로 1850~1900년 경부터 자라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한다. 이곳은 고려 충숙왕(재위 1313∼1330) 때 흥해향교가 들어선 곳이다. 당시부터 이팝나무가 있었을 것이나 고목이 되어 죽어 버리고 그 후계목이 자라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짐작한다. 임허사라는 사찰이 향교와 이팝나무 군락 사이에 들어서 있으며 넓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5월 10일경 만개하는 이팝나무 꽃은 구름이 피어나듯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찾아가기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흥해읍에 들어서면 도로와 붙어 오른 편으로 제법 급경사의 자그마한 동산이 하나 있다. 동산에는 흥해향교가 있고 주변 쉼터의 가장자리에 나무가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21호, 경북 포항시 흥해읍 옥성리 129, GPS 좌표 : N36°06′23.6″ E129°20′46.8″ 82m
안동 송리동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고려 말 일직 손씨의 시조인 정평공 손홍량(1287∼1379)선생이 20여 세 때 심은 나무라고 전해오며, 전설대로 라면 현재 나이는 700여년이 넘는다. 줄기 밑 부분 둘레 4.5m, 가슴높이 둘레 440cm, 높이 10여m남짓하다. 땅위 1.5m에서 5가지로 갈라져 자라고 있으며 원래는 이보다 훨씬 컸을 것이나 가지가 분질러지고 수세가 약화되어 지금은 생장상태가 매우 나쁘다. 죽은 가지가 많은데, 한 때는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근처에는 우물이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손홍량 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찾아가기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를 빠져나와 안동 쪽 1km쯤에 송리리로 들어가는 마을도로가 있다. 나무는 안쪽 깊숙이 솔마골 마을 가운데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44호,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 650-2외 2필, GPS 좌표 : N36°29′07.6″ E128°38′23.9″
성주 해평동 측백나무
이 측백나무는 조선 현종 9년(1668) 여효증(呂孝曾)공이 낙향 할 때 선물로 가지고 온 것을 이곳 만연당(漫然堂) 뜰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최근 이 일대는 건물을 보수 및 신축하고 잔디를 심어 깨끗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나무의 상태는 굉장히 나쁘다. 널찍한 터에 홀로 서 있으면서 4개의 큰 가지 중 다른 가지들은 모두 죽어 버리고 가운데 가지만 하나 살아있다. 맨 꼭대기에 잔가지 몇 개를 뻗어 잎을 달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키는 12.5m, 가슴높이 둘레는 235cm이며 가지 펼침은 사방 2~3m정도로서 거의 죽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나무의 나이는 심은 연대가 비교적 명확하여 340년쯤 된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 강제병탄을 당하던 치욕의 경술년(1910)에는 사흘 동안 이 나무가 울었다고 한다.
찾아가기 성주에서 무주, 대덕으로 들어가는 30번 도로를 타고 약 6km거리에 벽진면 소재지가 있고 나무는 마을 안 만연당 뜰에 있다. 경북 기념물 제49호,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993-3, GPS 좌표 : N35°56′51.8″ E128°13′19.6″
안동 송천동의 모감주나무
이 나무는 안동 팔경의 하나인 선어대 부근 안동-영덕간 도로 바로 옆에 자란다.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이 한번 휘몰이를 하면서 깊은 소(沼)가 생겼는데, 인어가 사람으로 나타난 곳이라 선어대(仙魚臺)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옛날 이 못에 살던 용이 하늘로 오를 때 도와준 총각을 위하여 비를 내려 지금의 용상동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모감주나무는 동래정씨 석문공파 종중(宗中)과 관련이 있다. 석문공(石門公) 정영방(鄭榮邦, 1577∼1650) 선생이 생시 좋아하던 나무로 사후 그의 아들이 조선 효종 2년(1651) 봄 영양군 입암면 연당동 자양산에서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도 전한다. 원래 3그루를 옮겨 심었다고 하며 한 그루는 오래 전에 죽어버리고 두 그루는 최근까지 살아 있었다. 불행히도 1974년 도로를 확장하면서 한 그루를 베어 버려 지금의 이 나무만 남았다고 한다. 따라서 전설대로라면 나무의 나이는 약 350년쯤 된다. 이 나무는 선어대 부근 안동-영덕간 도로변에 있는데 높이 17m, 가슴높이둘레 114cm, 나이는 350년 정도 된다. 동래정씨 석문 정영방 선생은 평소 모감주나무를 좋아했는데, 선생이 돌아가시자 선생의 아들 삼형제가 1651년 선생이 전에 살았던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자양산에서 세 그루를 이곳에 옮겨 심었다. 나무는 높이 10.5m, 가슴높이 둘레 150cm, 가지 펼침은 동서 방향 9.7m, 남북 8.1m에 이른다. 알려진 모감주나무 중에는 가장 굵은 나무로 짐작된다. 뿌리는 바위를 감싸 안듯이 뻗어 있어서 밑동이 혹처럼 생겨 있다.
찾아가기 안동과 청송영양을 잇는 34번 도로를 탄다. 낙동강에 걸린 육교 다리를 지나 곧은길이 휘어지는 부분의 왼편 바로 도로가에 나무가 자란다. 교통량이 많아 매우 위험하니 나무를 지나쳐 U턴한 다음 안동으로 들어오면서 나무 옆에 마련된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무를 감상한다. 경북 기념물 제50호, 경북 안동시 송천동 산30-2 GPS 좌표 : N36°32′54.8″ E128°46′45.9″
영일 우각동 향나무
이 향나무는 우각리에 있는 오선정(五宣亭)이라는 건물 앞에 자란다. 높이는 21m이고, 가슴높이 둘레 293c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0m, 남북 11m정도이다. 16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추정된다. 땅위 2m를 넘어서 첫 가지가 달리며 줄기는 미끈하고 곧 바르다. 전체 모양이 단정하고 건강하게 잘 자란다. 한편 오선정 뒤에는 줄기 밑 부분 둘레 340cm, 가슴높이 둘레 250cm, 높이 17m정도의 또 다른 향나무가 자란다. 영일 우각동향나무는 현재 여주 이씨 문중 소유로 되어 있다.
찾아가기 대구 포항간 고속도로 서포항IC를 빠져나온 후 포항 쪽으로 잠시 31번 도로를 탄다. 곧 68번 도로로 좌회전하여 약 10km쯤에 우각리로 들어가는 마을 도로로 들어간다. 마을 위쪽 오선정이란 사당 안에 나무가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57호, 경북 포항시 신광면 우각리 113, GPS 좌표 : N36°06′02.3″ E129°16′01.4″
영천 양향리 임고서원 은행나무
임고서원은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명종8년(1553) 부래산이란 곳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선조 36년(1603)에 이곳에 옮겨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 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605cm에 이르고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22m, 남북방향 21m에 이른다. 가지가 사방으로 고루 퍼져 나무 모양이 아름답고 생육상태도 굉장히 좋아 건강해 보인다. 특히 11월 중순쯤 물드는 단풍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본래 이 나무는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을 당시 그곳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이후 1600년경 이곳에 다시 지으면서 은행나무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지금의 나무 나이는 명종 8년에 심은 것으로 본다면 약 550년 정도 된다.
찾아가기 영천 포항을 잇는 28번 도로 영천을 벗어날 즈음 영천호로 들어가는 69번 도로와 마주치는 사거리가 있다. 좌회전하여 약 2km쯤에 임고서원이 있고 나무는 서원 앞 도로 가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63호,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161 GPS 좌표 : N36°00′47.9″ E128°58′35.7″
경주 동부동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경주 문화원 뒷마당 화장실 바로 옆에 자라고 있다. 이곳은 옛 경주부의 동헌이 있던 자리다. 3m 거리를 두고 비슷한 크기의 두 나무가 자라며 모두 암나무이다. 앞 쪽 큰 나무는 높이 19m, 가슴높이 둘레 606cm이다. 가지 펼침은 동서 및 남북이 각각 20m정도 된다. 나무가 건강하여 열매도 많이 달린다. 이 나무의 유래는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으나, 1500년경 조선시대 경주부 동헌을 지을 당시에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찾아가기 경주시내 가운데에 있는 ‘경주문화원’ 뒷마당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66호, 경북 경주시 동부동 193외 3필
상주 두곡리 은행나무
마을 앞 들판의 가운데 자라는 나무이다. 암나무로서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8.3m, 줄기 밑 부분 둘레 13m이며, 지름으로 환산하면 4m가 넘은 엄청난 굵기이다.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약 22m, 남북으로 약 25m에 이른다. 가지가 고루 고루 잘 뻗었고 나무의 굵기에 비하여 키가 작으므로 전체적인 나무 모습은 옆으로 퍼져 있는 형국이다. 생장상태도 좋아 건강하고 우람하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의 생태를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하는데, 가을날 은행잎이 하루 이틀 사이에 다 떨어지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몇 날을 두고 잎이 떨어지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무에 얽힌 전설로는 고려 말 문이공(文李公)이란 분이 고승 보제(普濟)와 함께 천하를 주유할 때 이 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문인들이 은행나무 아래서 시회(詩會)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한국동란 때는 집 한 채도 파괴되지 않았으며 단오날 그네를 뛰다가 떨어져도 다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영목(靈木)으로 여긴다. 나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나 전설과 나무의 굵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1300년경에 심겨진 나무가 아닌가 짐작된다. 또 이곳에서 서쪽으로 100m 되는 지점에는 경북기념물 제1호 은척면의 뽕나무가 있다.
찾아가기 상주시 함창읍에서 문경 농암면으로 들어가는 32번 도로를 10여km 쯤 달리면 두곡리 마을이고 나무는 마을 앞 넓은 들판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75호,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640외 4필 GPS 좌표 : N36°34′00.0″ E128°04′41.3″
김천 대덕 추량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추량리 마을 가운데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무 높이는 37m, 가슴 높이의 지름은 6.6m에 이르며 멀리서도 우뚝 솟아올라 보일 만큼 큰 나무이다. 특히 11월 중순경에 절정을 이루는 단풍은 나무가 건강하고 잎이 많으며 색깔이 고와 가히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무는 서산 정씨의 소유로 11대손 처우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단을 쌓고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서산정씨의 재실과 행촌(杏村) 비석이 있다. 나이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1600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찾아가기 김천에서 3번 도로를 타고 거창 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면 대덕면 소재지인 관기리이다. 여기서 성주, 대구 쪽으로 가는 30번 도로 3km쯤에 추량리로 들어가는 마을 도로가 보인다. 나무는 마을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다. 경북 기념물 제91호, 경북 김천시 대덕면 추량리 298 GPS 좌표 : N36°39′37.2″ E127°58′52.7″
의성 안사 월소리 소나무
나무는 월소3리, 깔끔하게 지어진 경노당 앞 넓은 들의 가장자리에 자란다. 나무 높이 11m, 가슴높이 둘레 약 3m정도이며 가지 펼침은 동서 15.5m, 남북 16.5m이다. 땅위 약 2m높이에서 줄기가 넷으로 갈라지면서 옆으로 퍼져 자란다. 마치 반송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이 아름답고 자람이 매우 좋고 안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어 멀리서도 금방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원래 알려지기로는 광해군(1608∼1623) 때 평산 신씨가 처음 마을에 정착한 후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의 상태로 보아 현재의 소나무는 18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은 정자목으로서 마을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이 나무가 기념물로 지정되는 데 공로가 있다하여 세워둔 신현수(申鉉守, 전 감사원장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돈)씨의 공적비가 이채롭다.
찾아가기 하회 마을이 있는 풍천면 소재지에서 낙동강을 건너 1번, 17번 지방도로 우회전한다. 낙동강을 타고 이어지는 한가한 시골도로를 15km쯤 달리면 월소리 마을이고 나무는 마을 회관 앞 넓은 들 가장자라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97호, 경북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693 GPS 좌표 : N36°29′24.1″ E128°25′33.9″
청도 각북 명대리 뚝향나무
이 나무는 조선 초기 효자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김극일(金克一, 1381-1456)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운계사(雲溪祠) 앞의 실개천에 자라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자랐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나지막한 키의 향나무가 작은 숲을 이룬다. 가운데는 우물이 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나무의 높이는 약 5m, 줄기 밑 부분 둘레 97.4㎝, 동서방향 가지 뻗침은 28m, 남북은 10여m쯤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으나 김극일 선생이 직접 심었다면 지금 나이는 약 550년이다. 그러나 나무의 상태로 본 생물학적인 나이는 1700년경 심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개울 바닥에서 약간 올라온 언덕배기에서 자라며, 밑에 들어가 보면 가지가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린 탓으로 마치 여러 그루처럼 보인다. 줄기가 바로 서지 못하고 옆으로 뻗거나 누워 있으며 가지는 수평으로 퍼져 있다. 우물가에 흔히 심은 뚝향나무가 자라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찾아가기 대구와 김해 공항을 잇는 중앙고속도로 청도IC를 빠져나와 20번 도로를 타고 창녕 쪽으로 달린다. 약 10여km지점에 풍각면 소재지가 있고 여기서 명대리 쪽 마을 도로로 2km쯤 들어간다. 나무는 마을 뒤쪽 김극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계사 앞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100호, 경북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30 GPS 좌표 : N35°39′38.4″ E128°37′21.0″
안동 안기동 석수암 향나무
석수암(石水庵)은 이름 그대로 한때 맑은 물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한 절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이 절을 세우면서 향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의 규모로 보아서는 대체로 16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된다. 나무의 모습이 독특하여 땅위 50cm쯤에서 셋으로 갈라진 줄기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란다. 줄기 밑 부분 둘레는 4m에 이르며 높이 7.4m, 가지 펼침은 남북방향 9.2m 동서11.9m 정도이다. 처음 심을 때는 경사지에 심은 것으로 보이나 주변을 정비하면서 땅을 수평으로 만드느라 복토가 깊게 되어 있다.
찾아가기 안동에서 영주로 올라가는 5번 도로를 탄다. 시가지를 거의 빠져 나올 즈음, 오른 쪽 도로가 언덕배기에 절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경북 기념물 제106호, 경북 안동시 안기동 276GPS 좌표 : N36°34′53.1″ E128°43′03.0″
의성 점곡 사촌리 향나무
나무는 최근 새롭게 단장한 사촌 한옥마을에 있다. 퇴계 문인 김사원(金士元)선생이 선조 15년(1582)부터 3년간에 걸쳐 완성하여 자신의 호를 딴 만취당(晩翠堂, 경상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69호)이라는 건물과 초등학교 사이에 서 있다. 나무는 높이 8m, 가슴높이 둘레 약 200c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8m, 남북 15여m정도이다. 생육상태가 매우 좋고 가지가 고루 뻗어 좌우대칭을 이루고 나무모양이 단정하다. 나무줄기는 용트림 하듯이 꼬여 있어서 독특하다. 이 나무는 송은 김광수(金光粹, 1468~1563)선생이 심었다고 하며 스스로 이를 만년송이라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시를 읊으며 청빈하게 지냈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전설나이는 500년에 이르지만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평지에 자란 나무로서는 나이에 비하여 그렇게 굵지 않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나이는 2~300년 남짓하지 않나 싶다. 현재는 안동 김씨 사촌파 문중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
찾아가기 의성과 청송을 잇는 지914번 도로를 타고 15km즘 거리에 점곡면 소재지 점곡이 있다. 나무는 점곡 한옥마을 가운데에 있다. 경북 기념물 제107호,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205 GPS 좌표 : N36°25′16.7″ E128°45′51.2″
청송 현서 침류정 향나무
청송 침류정(枕流亭)은 조선중기의 향토학자인 김성진(金聲振, 1558~1634)의 정자로서 17세기 건물이라 한다. 그는 의성김씨 입향조인 김한경의 증손으로서 학식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동생들을 모두 의병에 내보내고 자신은 노모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정자를 지어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침류정 및 오월헌(梧月軒) 등 3채의 건물이 있으나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아 풀밭 속에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 같다. 나무는 오월헌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인 1600년 경 정자를 지어면서 같이 심은 것이므로 약 400여년이 되는 셈이다. 높이는 12.5m, 가슴 높이 둘레 390㎝, 가지 펼침은 동서 및 남북 8m정도이다. 수관이 북쪽으로 완전히 치우쳐 있으며 남쪽은 거의 가지가 없다.
찾아가기 대구 포항 고속도로 북영천IC를 빠져나와 35번 도로를 타고 청송 쪽으로 한참을 달리면 노귀재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에서 청송 쪽으로 약 4km쯤 오른 쪽 개울 건너 산자락에 정자 건물이 보인다. 입구가 애매하며 자동차가 들어가기도 만만치 않다.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농로를 알아내어 찾아들어가야 한다.
경북 기념물 제108호, 경북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264, GPS 좌표 : N36°13′06.1″ E128°54′20.2″
청도 매전 하평리 은행나무
이 나무는 김세중(金世中, 1484-1553)선생이 중종4년(1509)에 심은 암나무로서 지금의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많은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모양이 웅장하고 품위가 있다. 암나무라서 가지가 넓게 펴져 있으며 산의 위쪽으로 난 가지는 땅에 닿아있는 모양이 신기하다. 북쪽 경사면의 경사가 급한 곳에 자라므로 토양유실에 의하여 뿌리가 여기저기에 들어 나 있으나 자람은 매우 왕성하다. 근래에는 여기 저기 유주를 볼 수 있다. 나무의 높이는 27m, 줄기 밑 부분 둘레가 8m에나 이르는 거목이다. 매년 대보름날에는 마을에서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으며, 이 나무가 낙엽 질 때는 보통 10일 정도가 걸리는데, 짧은 기간에 걸쳐 일시에 떨어지면 풍년이 들고, 10일 이상 걸리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비슷한 이야기가 가까이 있는 이서면 은행나무에도 있다. 또 이 나무에 달리는 은행 알은 길쭉하지 않고 둥글며 맛이 좋아 다른 은행 알 보다 값을 더 받는 다고 한다.
찾아가기 대구와 김해 공항을 잇는 중앙고속도로 청도IC를 빠져나와 운문사 쪽으로 좌회전하여 20번 도로를 탄다. 약 15여km쯤에서 왼편 산 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마을이 있고 나무는 마을 뒤 산자락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109호, 경북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1323 GPS 좌표 : N35°40′45.2″ E128°50′13.6″
예천 용문 죽림리 향나무
이 향나무는 대수마을 예천 권씨 종택(宗宅) 입구의 작은 연못 옆에 자란다. 종택은 선조 22년(1589)에 세운 건물이나 나무는 그 보다 훨씬 뒤인 1700년경에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별칭은 울향(鬱香)나무인데, 권오상이라는 사람이 울릉도로 유배당했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 온 향나무로 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무는 동쪽으로 45도 정도 기울어져 자라며 가슴높이 둘레 약 200cm, 높이 10여m정도이다. 줄기의 밑 부분이 썩어버려 예의 충전처리가 되어 있다. 사방 10여m, 깊이 3m쯤 석축을 쌓은 작은 연못이 있고 나무는 바로 옆에다 심었다.
찾아가기 중부고속도로 예천IC를 빠져나와 예천읍으로 들어온 다음 용문면과 용문사로 가는 지방도 928호를 탄다. 10km쯤의 거리에 용문면 소재지다. 구계교란 다리를 건너 14번 도로를 타고 1km쯤의 왼편 넓은 들 가장자리에 예천 권씨 종택이 있고 나무는 종택 앞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110호,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2, GPS 좌표 : N36°41′21.7″ E128°24′02.0″
예천 용문 사부리 소나무
이 소나무는 땅위 50cm정도부터 가지가 갈라져 옆으로 퍼지므로 반송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가지의 뻗은 각도가 반송은 대부분 비스듬한 데 비해 이 나무는 거의 수평으로 뻗은 가지가 많아 소나무와 반송의 중간계통의 변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나무는 높이 8m정도이며 줄기 밑 부분 굵기는 한 아름 남짓하다. 나무의 실제 나이는 1800년경부터 자라는 나무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1592) 때 중국 명나라 장군인 이여송이 벼루 속에 소나무 씨를 넣어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도 한다. 지금 나무의 모습은 통행에 지장이 있던 뒤쪽 몇 가지가 잘려 균형을 잃었을 뿐 겉모양은 공중에 낙하산을 펼쳐 놓은 듯하다. 이 나무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평화를 빌던 당산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찾아가기 중부고속도로 예천IC를 빠져나와 예천읍으로 들어온 다음 용문면과 용문사로 가는 지방도 928호를 탄다. 8km쯤의 거리에 용문면 소재지이고 조금 더 달리면 용문사 입구이고 지나쳐서 잠시면 둘이 같이 붙어 있는 작은 저수지를 만난다. 두 저수지 사이로 난 길로 좌회전하여 차하나가 겨우 지나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5km쯤 올라가면 농가 몇 채가 있는 마을 앞에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경북 기념물 제111호, 경북 예천군 용문면 사부리 817, GPS 좌표 : N36°42′59.3″ E128°21′37.1″
영천 금호 약남리 회화나무
나무는 마을 입구의 개울가 낮은 지대에 자란다. 지름 1m가 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회화나무 줄기와 붙어 자란다. 마치 한 나무처럼 보이나 둘 사이의 생존경쟁은 치열해 보인다. 5m쯤 떨어져서는 또 다른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옆에는 허름한 당집이 있어서 전형적인 당산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는 높이 16m, 가슴높이 둘레 560cm이며 아랫부분에는 예의 충전처리가 되어 있다. 나무는 대체로 16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한다. 마을의 당산나무로서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 왔으며 나무에 얽힌 여러 가지 전설을 갖고 있다. 회화나무가 갑자기 낙엽이 지면 폭우가 쏟아지고 잎 중간 중간에 무늬가 생기면 가축에 질병이 온다고 한다. 또 예년보다 일찍 단풍이 들면 유행병이 돌고 낙엽이 너무 빨리 찾아오면 한발이 온다는 것이다. 단풍이 위에서부터 들면 중노년층에 병이 많고 반대로 아래쪽에 단풍이 들면 젊은 사람들의 질병이 많다고 믿고 있다.
찾아가기 영천시내에서 경북고속도로 영천IC로 들어가다 도남논공단지의 가운데로 난 4차선 도로로 우회전한다. 곧 925번 도로와 T자로 마주치며 곧은길을 3km쯤 달려가면 왼편에 고속도로가 보이고 굴다리가 나 있다. 굴다리를 지나 1km쯤 약남2리 마을 입구에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언덕에 가려지고 나무가 낮은 곳에 자라므로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경북 기념물 제118호, 경북 영천시 금호읍 약남리 82 GPS 좌표 : N35°53′54.3″ E128°56′03.4″
청도 상리 돌배나무
청도 김씨 시조 영헌공 김지대(1190∼1266)의 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염수제란 사당 앞뜰에 자라고 있다. 돌배나무로서는 보기 드물게 크다. 굵기는 가슴높이 둘레 2.76cm, 뿌리목 둘레 3.50cm에 높이 16.7m이며,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16m, 남북 17m에 이른다. 지하고(地下高) 2.7m정도이며 곧 바르게 자라고 있다. 180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한다. 이 돌배나무는 다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돌배나무에 비해 열매가 크며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다만 걱정이라면 높은 곳에 바람맞이에 자라는 탓에 넘어질 위험이 크다. 현재도 약 20도 정도 기울어져 있으며 언재 넘어질지 모를 지경이다.
찾아가기 중앙고속도로 청도IC에서 내려 밀양으로 가는 25번 도로 약 12km쯤에 902번 도로로 좌회전한다. 여기서 6km쯤에 유명한 한재미나리 재배단지 마을이 있다. 나무는 한재천 건너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 청도김씨 시조 사당이 있는 염수제 앞에 자란다. ‘김씨 제실’로 물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경북 기념물 제119호, 경북 청도군 청도읍 상리 574-4, GPS 좌표 : N35°35′49.2″ E128°43′44.0″
경산 자인 계정 숲
자인의 계정(桂亭)숲은 신라 말이나 고려 초 사람인 한 장군의 묘가 있는 주변의 숲을 일컫는다. 읍의 뒷산인 도천산(252m)일대에 왜구가 출몰하여 주민을 괴롭히자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 관을 쓰고 도천산 아래 버들못으로 왜구를 유인한 후 칡 그물로 모두 섬멸시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숲 면적은 43,237㎡로서 낮은 구릉지에 남아있는 보기 드문 자연숲이다. 현재 숲은 이팝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계정 숲 안에는 한 장군의 묘와 사당, 한 장군 놀이 전수회관이 있고, 조선시대의 전통 관아인 자인현청의 본관이 보존되어 있다. 경산 자인의 계정 숲은 옛날 이 일대에 어떤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숲 안에는 아까시나무가 자라는 등 새로운 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
찾아가기 경산시와 자인읍을 이은 919번 4차선 도를 타고 가다 자인읍 입구에 숲이 보인다. 경북 기념물 제123호, 경북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 GPS 좌표 : N35°48′47.0″ E128°49′14.9″
영덕 영해 경수당 향나무
영해 경수당은 임진왜란 때 왜군퇴치에 공을 세운 활약한 박세순(朴世淳, 1539∼1612)장군이 지은 집이다. 그의 호를 따서 경수당 종택(慶壽堂 宗宅)이라고 한다. 선조 3년(1570)에 99칸의 큰 규모로 지었으나, 증손자인 박문약의 실수로 불에 탔다. 자신의 잘못으로 집이 불에 타자 3일 동안 소복을 입고 통곡을 한 문약은 숙종 39년(1713)에 지금의 규모로 집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향나무는 종택 정원 연못가에서 거의 옆으로 누워있는 한 아름쯤 된 소나무 고목과 함께 자란다. 높이 6m, 가슴높이 둘레 3.0m, 줄기 밑 부분 둘레 4.7m정도이며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9.6m, 남북 6m쯤 된다. 줄기는 높이 2m쯤에서 S자로 심하게 구부러져 있고 일부가 말라죽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건강한 편이다. 이 향나무는 울릉도에 자라고 있는 약 300년생 향나무를 박세순 장군이 옮겨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300년 짜리 향나무를 울릉도에서 산채로 가져 나온다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니 당시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무의 굵기로 보아 경수당이 화재를 만나 완전히 타버리고 다시 지을 때인 1700년경에 심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찾아가기 7호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영해읍에서 우회전한다. 영양으로 들어가는 918번 도로를 타고 약 2km쯤에 왼편으로 작은 마을이 있고 경수당 기와집 건물이 보인다. 경북 기념물 제124호,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112-1, GPS 좌표 : N36°32′13.2″ E129°22′43.7″
문경 산북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
문경 장수황씨 종택의 앞뜰에 자란다. 종택은 조선 세종 때의 청빈한 관리로 유명한 황희 정승의 고손자 황시간(黃時幹, 1558~1642)선생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나무는 2그루가 거의 붙어서 나란히 자라고 있다. 동쪽 편 탱자나무에서는 둘레 52㎝, 52㎝, 77㎝인 가지 3개가 나와 자라고 있으며, 서쪽 편 탱자나무는 둘레 62㎝, 61㎝, 34㎝, 48㎝인 4개의 가지가 나와 전체적으로 한 그루인 것처럼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동쪽 편 탱자나무는 줄기 부분에 충전처리를 잘못하여 버섯이 자라고 있어서 속이 계속 썩고 있음을 나타낸다. 서쪽 편 탱자나무는 큰 상처 없다. 나무는 황시간 선생이 심은 것으로 보면 1600년경부터 자라는 셈이다.
찾아가기 경북 안동과 상주를 잇는 4차선 34호 국도를 달려 예천-용궁을 지나치면 ‘산양‘이란 곳이 있다. 경북선 산양 기차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빠져나와 충북 단양으로 가는 59번 도로로 접어든다. 10여km를 단양 쪽으로 올라가면 대승사와 김룡사라는 절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조금 못 미쳐 왼편에 마을이 있고 장수황씨 종택을 만난다. 나무는 종택 안마당에 자란다. 경북 기념물 제135호,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06-6 GPS 좌표 : N36°39′37.2″ E128°15′47.3″
상주 낙화담 소나무
나무는 낙화담(落花潭)이란 자그마한 연못 가운데의 인공섬에 자란다. 이 연못은 고려 말 황간 현감을 지낸 김구정(金九鼎)선생이 이곳 판곡에 은거하면서, 마을 안산인 백화산이 화기를 머금고 있어 김씨와 상극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연못은 최근에 준설하고 새로 단장하였으며 원래의 면적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바로 옆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준신 공의 제단비가 있다. 나무는 높이 13m, 가슴높이 둘레 2m남짓하고 가지 펼침은 사방 20m정도 된다. 김정구 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생각하여 나무의 나이는 600년이라고도 말하지만, 나무의 지금 상태로 보아서는 대체로 1850~1900년경에 심겨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들은 마을의 상징나무로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나무모양이 균형 잡혀 있어 아름답고 자람 상태도 매우 좋다.
찾아가기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서상주IC에 내리면 바로 화서면 소재지다. 여기서 판곡리로 들어가는 이름 없는 지방도를 타면 약 6km쯤에 김준신 의사 제단비를 찾으면 나무는 바로 옆에 있다. 경북 기념물 제147호,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477
울진 주인리 황금소나무
이 소나무는 나뭇잎의 색이 마치 봄에 새싹이 올라올 때처럼 연한 녹황색이다. 잎 길이 전체가 노란 잎, 잎 길이의 반만 노란 잎, 보통 소나무처럼 파란 잎이 섞여 있다. 노란 잎은 엽록소가 적어서 생기는 현상으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소나무의 변이종으로서 황금소나무라고 부른다. 우에끼라는 일본인 학자에 따르면 노란 잎을 가진 소나무를 황금소나무(Pinus densiflora var. aurea)라고 부르고, 잎의 일부만 노란 소나무를 얼룩황금소나무(Pinus densiflora for. aurescens)라고 하였다. 이곳 소나무는 ‘얼룩황금소나무’에 가깝다. 노란 색이 섞이는 정도는 여름에는 파란 색이 강하고 가을이 되어야 연한 황색으로 변하는 경향이 강하다. 원래 강원도 삼척군 가곡면 동활리 뒷산 기슭에는 진짜 황금소나무라고 생각되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으나 1995년 찾아오는 사람들의 등살에 아예 죽어 버렸다. 주인리 황금소나무는 높이 6.7m, 가슴높이 둘레 52cm, 가지 펼침은 동서방향 3.6m, 남북 3.4m이다. 가지는 동.서.남 방향은 가지가 잘 뻗어 있으나 북쪽 비탈 쪽은 가지가 거의 없다. 워낙 오지에 있어서 보존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대체로 1960년경부터 자라는 것으로 짐작되어 나이는 50년 남짓하다.
찾아가기 7번 국도로 내려가다 덕구온천 쪽 917번 도로로 우회전한다. 약 4km쯤에 ‘주인3리 입구3.5km’라는 간판을 보고 우회전한다. 왼편에 대수호란 상당히 큰 호수를 끼고 계속 들어가면 지도상에 건물 몇 채가 있고 지도상에 절골로 나오는 Y자 계곡이 있다. 오른쪽 산자락에 자라는 나무가 보인다. 경북 기념물 제151호, 경북울진군 북면 주인리 산136GPS 좌표 : N37°06′09.4″ E129°17′58.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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