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산파 23대 장문인이자 수진선도원 스승 곽종인 - 2
곽종인
신비로운 꿈 이야기
누구나 살다보면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저절로 남에게 꿈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특히 꿈이 신기하고 특이할 때 더더욱 꿈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물론 나도 꿈을 꾸지만, 남이 나에 대해 꾸는 꿈 이야기는 나로서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도대체 나는 남의 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한때 우리 집에 세들어 살던 아주머니는 걸핏하면 내 꿈을 꾸었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선생님 책상을 바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너무도 놀랐다. 사실 바로 그날 책상 위치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나는 매년 생방生方을 향해 책상을 옮겨왔다. 이렇게 생방을 향해 앉으면 기운이 생동하고 만사가 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에 아주머니가 이것을 지적한 것이다.
“글쎄요... 꿈에서 선생님이 책상에 앉아 계신데 자세히 보니 머리는 백발이고 수염을 기른 노인이시더라구요. 그러나 얼굴은 선생님 얼굴이고 피부도 팽팽했어요.”
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시어머니가 낮잠을 주무시는데, 신장神將님이 나타나 “빨리 일어나라” 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러고는 “지금 며느리가 오고 있는데 어떤 며느리라고 잠을 자고 있느냐, 당장 나가서 마중을 나가거라” 하고 혼을 내는 통에 시어머니께서 퇴근하는 나를 마중하러 나오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사실 그때 이미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화두를 들고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었다. 벌써 학교에서도 나의 예지력과 신통력은 소문이 나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체험을 하면서 점점 내가 보통 사람과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하늘 단상에서 떨어지는 선생님을 구하다
한때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수행을 한 적이 있었다. 여러 도반들과 더불어 도장을 마련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천신만고 끝에 장소를 찾아냈고 공부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한없이 기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복과재생 福過災生이라더니, 생각지도 않은 일로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리를 지도해주기로 한 도인께서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가버리신 것이었다. 아니 도인도 이런 경우가 있나 하는 마음에 나는 속이 몹시 상했다.
그런데 그날 꿈을 꾸었다. 넓은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단상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나와 그 도인 선생님이 함께 단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갑자기 단상이 흔들리면서 하늘로 붕 떠올랐다.
우리 둘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실랑이를 했고 단상은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에 단상이 요동치듯 흔들렸고, 그때 선생님이 미끄러지셨다. 단상에서 떨어지려다가 겨우 단상의 끝을 손으로 잡고 대롱대롱 매달린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비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천둥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생님이 떨어질세라 단단히 손을 틀어쥐고 낑낑대며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러자 홀연히 하늘에서 “장하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서 웅장하고 신비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날씨가 개고 단상도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무슨 일이 생기든 스승과 제자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하늘의 증좌였던 것이다. 그 이후 조금 섭섭한 마음도 없진 않았으나 그 선생님을 이해하고 더 친근하게 지냈다.
선인지로仙人之路를 체험하다
나는 축기 단룡(斷龍:수련으로 월경을 그치게 함)이 있은 후 선정에 들었다가 ‘선인지로’를 체험했다. 이때 화타선인이 내려와 나에게 침을 주었다. 나는 수행에 지장이 있다면서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는 막힌 곳이 있을 때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 이후 내게는 경락의 침구멍이 보였고 더 이상 침이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날은 자양진인께서 잉태한 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호흡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큰 바늘로 그 여자의 배꼽을 중심으로 십자모양으로 시침을 뜨시기에 나는 놀라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 진인께서 눈을 떠 보라는 소리에 눈을 뜬 순간 나는 깜짝 놀라게 되었다. 내 배가 큰 바늘로 엉성엉성 꿰매져 있었던 것이다.
진인은 인자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호흡을 해보아라. 지금 상태에선 무식武息은 안 된다. 문식文息으로 배에 힘주지 말고 자연에 맡겨라.”
그리고 시후時候에 맞게 호흡이 다름을 지적해 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토납공吐納功을 장악하게 되었다. 토납공을 손아귀에 넣지 않고서는 성도할 수 없다. 내면의식과 우주의식의 소통은 호흡을 통해 기운으로 변화하여 이루어진다. 사통팔달의 통은 열가지의 토납공을 장악하여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진아를 찾게 되면 은혜의 폭포수가 쏟아진다. 또한 자기희생으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면 벼랑 끝에서 생명치유의 기적도 저절로 알게 된다.
중국에 있을 때 나는 스승의 숨겨진 덕망 속에서 참다운 사랑을 느꼈다. 또한 금바가지를 들고 구걸하는 도인을 만나기도 했다. 이 도인은 항상 나를 지켜보고 도와주면서 때를 기다렸다고 했다.
복전을 심었기에 모든 진선眞仙께서 나를 도와주고 일깨워 주셨던 것이다.
하늘의 계시로 천부인天符印을 받다
어느 날 수행 중에 하늘에서 나를 보고 천부인을 받으라고 하였다. 천부인은 하늘에 계신 옥청진왕의 진형도眞形圖다. 하느님이신 원시천존에게는 아홉 자식이 있었다. 이중에서 “구구팔십일의 진양眞陽을 모두 갖추신 옥청진왕의 천부를 받으라”는 계시였다.
이른바 천부인의 각을 파서 도장을 만들어 중생제도에 쓰라는 말씀이었다. 이때 옆에 계신 도인 문 선생님도 이것을 만드는데 힘쓰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늘에서 천부인을 보여주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럴 땐 그저 기도발원이 최고다. 아무리 종교를 믿고 선행에 힘쓰고 해도 기도발원을 하지 않으면 응답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중에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자서대법 紫書大法에 있느니라.”
이에 나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자서대법>이란 책을 구하려고 여기 저기 다리품을 팔았다. 하지만 청계천 고서점을 비롯해서 중국대사관 앞의 책방에 가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책이 어디에 있다는거야’ 하면서도 나는 <자서대법>을 구하기 위해 각 방면으로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누가 중국에 있는 출판사를 가르쳐주며 일단 이곳에 <자서대법>을 구한다는 편지를 써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영어로도 번역하는 등 온갖 애를 써서 편지를 보내보았다. 그랬더니 한참 후에 <자서대법>이 들어 있는 전집이 있다며 돈을 보내라는 답신이 왔다. 결국 돈을 부친 후 무려 5개월이 지나서야 25권이나 되는 도장집요 전집이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왠지 25권 중 8권에 <자서대법>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펴자마자 <자서대법> 속에 진형도가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그림은 하늘이 보여주신 그림과 거짓말처럼 똑같지 않은가.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천부인의 크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더니 누군가가 그림의 두배로 하면 맞춤할 것 같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더불어 진형도가 원시천존의 얼굴이니 상처를 내선 안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상처를 내지 않고 인장을 파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지 않은가. 나는 다시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 천관이 나타나 “도장을 파지말고 상처 없이 금형을 떠서 만들라” 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고민하던 문제가 눈 녹듯 풀려버렸다. 그런데 막상 천부인 금형 작업을 하려고 드니 무려 120돈의 금이 필요했다. 하늘에선 절대로 한 돈도 줄여선 안 된다고 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고 했던가. 내가 애써 노력해 모은 것은 오직 90돈뿐이었다. 이때 마침 두 분의 선생님이 교사생활을 10년간 근속해서 받은 금반지를 내게 보시하지 않는가.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천부인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천부인을 만든 날부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도 나가질 못했다. 하늘에서 시킨 대로 금도장 위에 옥돌을 붙였는데 목 아래와 가슴, 그리고 등까지 아파서 자리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 동티가 나거나 큰 탈이 났음에 틀림없었다.
이때 어디선가 우렁찬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제를 올려라.”
그래서 천제를 어떻게 올리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제단을 설치하고 오색 과일과 삼정삼피로 된 견과류를 준비해 올리라는 응답이 왔다. 제를 올리고 난 후 천부인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보라는 말씀이 내려왔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다시 봐도 잘못된 곳이 보이질 않았다.
그때 퍼뜩 잘못된 점을 알게 되었다. 부리나케 천부인을 다시 만들러 금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금형 장인도 그동안 몸이 아파서 꼼짝 못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부인을 받아들더니 그냥 무료로 해주겠다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마자 몸이 날아갈 듯 시원하고 아픈 것이 씻은 듯 사라져버렸다.
천부인을 만든 후 천부를 태워 먹으면 장생한다기에 겁도 없이 온갖 정성을 들여 태워 먹었다. 먹은지 7일이 지났을까. 꿈속에서 하늘을 날아가는데 내가 왼쪽 오른쪽으로 굽이치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 한 동자가 나타나더니 나를 어떤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문과 너른 뜨락이 보이는데 어디선가 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인간세상의 사람이 이곳에 들어오느냐!”
그런데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아니하고 커다란 발만 보였다. 너무도 놀라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는 어디 어디에 사는 아무개인데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이쿠 죄송합니다. 몰라 뵈었습니다” 하면서 “여긴 칠성궁인데 매일 저녁 탄부呑符를 드시는 것을 보고 일곱 분의 칠성님께서 당신 집에 가셨는데 당신은 여기로 올라오셨네요”하는게 아닌가.
꿈을 깨고 보니 아침이었다. 이때 우리 집에 세들어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꿈을 꾸었다며 나한테 꿈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혹시 칠성님 꿈을 꾸셨습니까?” 했더니 너무 놀라워했다.
아주머니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갑자기 마당이 훤히 밝아지더니 커다른 둥근 불덩이들이 장독대 위를 세 번이나 돌다가 홱하면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무려 일곱 개의 불덩어리였다. 하도 기이해서 살금살금 내 방 창문을 들여다보니 관을 쓴 일곱 노인이 잠자고 있는 나를 빙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더라는 이야기였다.
아주머니는 너무도 놀라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잠에서 깨어났다고 했다.
원효스님 수행터에서
어느 해던가. 우연히 수행하기 위해 삼성산 삼막사에 가게 되었다. 원래 삼막사 뒷산에는 원효대사께서 공부하셨던 자리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 올라가면 사고가 난다는 소문들이 알음알음 퍼져있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이 터에서 기도를 해볼까 하고 초를 켰다가 불이 크게 일어 혼뜨검이 났다는 것이다. 또 어떤 스님은 이곳에 갔다가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한마디로 기운이 아주 센 터라 섣부르게 수행할 수 없는 곳이다.
본디 삼성산 삼막사는 677년 원효, 의상, 윤필 세 스님이 암자를 짓고 수도를 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말에 도선이 중건하고 관음사라 불렀다. 이후 고려 태조가 중수하고 다시 삼막사로 고쳤다고 한다. 현재는 화성 용주사의 말사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곳은 당대 불교의 최고수이신 세 분의 성인께서 수행터로 정하신 곳이니 어찌 기운이 만만하랴. 하지만 나는 어느날 자시공을 한다며 이 산에 올랐다.
수행을 하러 산에 가면 마음은 환희심으로 가득 차고 발걸음도 가볍다. 산에 들어섰다 하면 절로 기운이 생동하는 것이다. 자신이 산과 인연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비결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몸에 선천기운이 있어야 땅의 음기를 이길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산에 발을 디디기만 해도 넘어지거나 급체곽란이 생기거나 뜬금없는 탈이 생긴다. 산과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후 수행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수행삼매에 들어가니 천지우주가 다 적막하고 고요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홀연 듯 “다다다다다....”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발소린지 천군만마가 달리는 소린지, 도통 헤아릴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돌이 마구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온 몸에서 소름이 끼치고 두려웠다. 그러나 산속에서 자시공은 아무나 하는가. ‘내가 이 정도를 가지고 무서워하다니.’ 나는 심지를 굳히고 산왕대신을 찾았다.
“삼성산 산왕대신, 삼성산 산왕대신.....”
이렇게 수도 없이 염송을 하자 서서히 두려움이 안개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행을 하는데 묵상으로 힘들 때는 바로 염송으로 들어가 소리쳐 기도하면 효험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나니 온 몸에서 땀이 쏟아지고 후끈후끈 열이 오른다. 가슴속에선 충만과 희열과 감사의 마음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무사히 수행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하산하려는데 저 멀리서 불빛 두 개가 헤드라이트처럼 앞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우두망찰해서 서 있었다. 삼성산 산왕대신이 아닌가. 내 입에선 계속해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이 이어졌다.
삼성산에서 별의 영이 내려오다
어느 해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칠성기도를 하러 삼성산에 간 적이 있었다. 출발하기 전 제자들이 하나둘씩 내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실 내 제자들은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다채로운 종교를 가졌다. 허나 호계삼소虎溪三笑니 삼소회통三笑會通이라 하지 않던가. 수행과 기도에서 종교의 다름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삼성산은 서울 근교의 유명한 수행터다. 신라 때 원효, 의상, 윤필 세 스님이 수도하셨던 곳으로 이른바 산 수행의 명당길지다. 생각해보면 서울은 참으로 축복받은 곳이다. 이렇게 기가 막힌 명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니 말이다.
대개 수행자들은 아무 터나 가지 않는다. 이렇게 선성들의 내력이 있는 곳에 가야 효험을 본다. 그날 나는 버스를 타고 20여 명이나 되는 일행을 끌고 삼성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칠원성군을 뵈러 가는 날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울 일원에선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일진을 살폈기에 기도터엔 비가 오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해보니 거짓말처럼 그곳엔 비가 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분위기가 화락해졌다.
모두들 자리를 틀어잡고 수행삼매에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향내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웅성거렸다. “이게 무슨 향기지.” “알수가 없네.” 그러더니 내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몸에서 향내가 나요....”
하지만 나는 수행삼매에 들어갔기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때 갑자기 하늘의 구멍이 뻥 뚫리는 것을 보았다. 하늘문이 열린 것이다.
“하늘을 봐라!” 하고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모두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구멍 난 하늘에서 집채만한 새파란 큰 별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제자들은 이 정경을 보고 소리를 질러댔다.
“칠원성군, 칠원성군.....”
목이 터져라 삼성산이 떠나갈 듯 환희성을 질렀다. 절로 손뼉이 터져 나오고 몸은 덩실거렸다. 바로 눈 앞에 내려온 새파란 별은 물경 한시간 이상이나 우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런 큰 별의 영을 보기 시작한 것은 축기공을 하고 난 때부터였다. 이후에도 때때로 별이 나에게 다가왔다. 대학원 다닐 때도 캄캄한 새벽하늘의 별을 보면서 “저 별도 내게 올 수 있을까” 하면 순식간에 길 건너 버드나무에 턱하니 걸터얺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도 놀라 정신없이 바라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별에서 영이 내려올 때는 보내는 법도 알아야 한다. 밤에 산에 들어서면 마루금에서 빛살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러면서 그 빛이 크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천천히 둥근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것이 산의 기령氣靈이다.
별과 나도 줄탁동시처럼 인연이 있어야 한다. 줄탁동시란 달걀 안의 병아리와 어미닭이 서로 동시에 쪼아야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별과 내가 서로 감응할 때라야 서로 동기상응하는 것이다.
계룡산 자락에서 본 호랑이
어느 때던가. 호서의 명산이요, 신산으로 유명한 계룡산에 가게 되었다. 잘 알다시피 계룡산은 조선 개국 초기에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려 할 만큼 풍수상 대단히 중요한 형국의 땅이다. 높이만도 845미터나 되고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 30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연꽃처럼 자리를 튼 곳이다.
이미 비기로 이름난 <정감록>에서 이곳을 십승지지로 손꼽고 있을 만큼 예사로운 산이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내로라하는 굴지의 사찰들도 이 산자락에 깃들어 있다.
어느 날 국학자이신 이 선생님의 수행도량을 찾아갔다. 그 도량은 계룡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문득 산에 들어서는데 호랑이가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도량에 들어서자 스님 두 분과 제자 두 사람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두 제자는 내가 보기에 아주 똑똑한 인재 같았다.
이 선생님은 여선이 왔다고 춤을 추며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또한 매일 밥상에서 밥뚜껑에 서린 이슬같은 김을 나에게 먹으라고 주셨다.
이 선생님은 몇 시간이고 책을 보지 않고도 경을 줄줄 외워 내렸다. 이른바 유불선도 문사철을 두루 꿰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또한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필요한 것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나보다 열두살 위인 여자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수마로 인해 수행을 하는데 힘이 든다고 하셨다. 스님은 나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청했다. 이에 스님은 우선 조촐하지만 정성껏 준비를 했고 자시가 되어 우리는 눈이 하얗게 내린 바위 아래서 함께 기도를 했다.
계룡산은 명색이 해동제일의 기도산천이 아니던가. 먼저 팔대신주를 염송하고 산신령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으스스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무언가 내 앞자리에 앉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스라쳐 놀라 쳐다보니 어마지두 집채만 한 호랑이가 아닌가. 줄무늬가 치렁치렁한 게 분명히 호랑이였다. 그것도 지긋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서 기도중인 스님은 아무 생각 없이 꾸벅꾸벅 졸고만 있었다. 나는 손을 뻗쳐 깨우려고 하는데 호랑이가 앞발을 들어 깨우지 말라고 제지했다. 그리곤 아래로 내려와선 내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한 바퀴 돌고 이어 암자를 돌고선 비호같이 날기 시작했다.
“스님, 스님, 빨리 일어나 보세요. 호랑이에요!”
나는 소리를 쳤다. 그러자 호랑이가 홱 몸을 돌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찰나지간에 스님도 이런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은 자라처럼 넙죽 나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불각시에 벌어진 소동 탓에 모두들 밖으로 나왔으나 이미 호랑이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눈 위에 찍힌 발자국만 보게 되었다. 모두가 우두망찰해서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이날 이후 아침에 일어나면 이 선생님은 산을 쳐다보고 “어우야”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함께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 선생님도 호랑이를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선이 왔으니 산주인인 호랑이가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억이 생생하다.
해와 달과 북두칠성이 입으로 들어오다
그동안 함께 수행을 해오시던 도인 이 선생님이 하동 악양으로 내려가셨다. 원래 하동 악양은 양택으로 보면 조선땅 어디에서도 이만한 길지가 없다. 남으로는 백운산과 섬진강을 바라보고 신선봉, 시루봉, 칠성봉, 형제봉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니 바로 자루형 명당터다.
물산 넉넉한 식산들이 둘러쳐 있고 문전옥답에 섬진강 물것이 들어오니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는 땅인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도인들이 이 땅으로 들어와 둥지를 차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유명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고 바로 악양이 무대가 된다. 지금도 많은 문인, 예인, 학인들이 삶터를 이곳으로 옮겨 살고 있다. 벌써 이 선생님이 이곳에 터를 정하신게 해방 전이라 하니 역시 도인은 감식지안이 있는 것 같다.
어느 해인가. 나는 제자 정주를 데리고 악양 이 선생님 댁을 심방하게 되었다. 특히 이 선생님이 계시는 곳은 지리산의 서른 세혈이 모이는 곳으로 예사로운 땅이 아니었다.
이른바 인걸지령이라고 했다. 땅이 좋아야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말이 어찌 허랑지설이란 말인가. 이런 곳에서 공부와 수행을 해야 빨리 도를 통할 수 있다.
게다가 다시 인연을 만나는 곳이란 뜻에서 그 골을 재봉골이라고 불렀다. 그곳은 온통 대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하는 대숲소리가 기가 막혔다.
천천히 집을 바라보니 여러 방들 중에서도 이 선생님의 제자가 거하는 방에 천기가 서려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이적을 만나겠구나.’ 나는 속으로 헤아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일부러 제자방에서 자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잠시 후 자시공에 들어가 수행삼매에 빠져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홀연히 하늘에서 둥실한 달이 내려오더니 내 입 속으로 쑥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란 말인가. 황당하고 너무 놀라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러자 이어서 집 뒤쪽으로부터 북두칠성이 쏜살같이 내려오더니 다시 내 입속으로 훌떡 기어들어온다. 비몽사몽 속에서 이런 이적을 만나고 보니 환희심과 보리심이 뭉클 솟아올랐다.
이런 정황을 그 당시만 해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꿀먹은 벙어리 마냥 그저 빙긋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소이부답심자락이라고나 할까.
다음날 우리는 여장을 이곳에 푼 채 남해 금산의 보리암으로 갔다. 알다시피 보리암은 우리나라 기도터 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명당길지이다. 그러니 근처까지 와서 이곳을 지나칠 수가 없다. 헌데 이곳에서도 이적은 나를 따라다녔다.
자욱한 안개의 터널을 뚫고 용굴로 들어갔다. 잠시 후 가부좌를 틀고 참선삼매에 들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굴 전체가 진동하는 것이다. 우르릉 우르릉....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용굴을 나와 안개를 헤치고 올라가니 일월봉이었다. 여기에서 팔대신주를 염송하고 삼청의 천존을 불렀다. 그러자 또 한번 놀라운 정경이 벌어졌다. 태양이 쏜살같이 내 입속으로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다시 악양으로 돌아오니 혜정스님의 정갈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고마웠다. 수행자의 소박하고 정성어린 밥상은 그 자체가 감로가 아니던가. 나는 그날 밤 내내 달과 별과 해를 생각하며 혼곤히 잠이 들었다.
운악산에서 본 현현진경
가평 운악산은 경기 오악의 하나로 수행하기에 좋은 산이다. 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등 오악의 산들은 산세가 험준하고 바위가 많다. 그래서 기도와 수행처로 많은 도인들이 산에 오른다. 게다가 숲도 좋고 골도 깊어 가히 명산이라 이를 만하다.
그 운악산에서 평상에 앉아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오색구름이 일렁일렁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오색구름이 빛을 토해냈다. 이어 사방팔방이 밝아지면서 현현진경이 환하게 나타났다.
이때 백발을 휘날리며 옷을 나부끼며 날아가는 진인이 보였다. 또 신선의 깃발을 휘날리며 어가를 탄 옥황상제님이 보였다. 뒤를 따르는 옥동옥녀와 선녀도 보였다.
모두 빛과 광채를 뿌리며 천천히 움직이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훨훨 날 듯 허공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꿈도 아닌 현실 속에서 그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채색 구름들이 꽃을 만들어 둥글게 퍼지는 그 속에 빛으로 된 신선들이 보였다. 게다가 용도, 학도, 봉황도, 기린도 있었다. 모두들 목을 뒤로 젖히고 놀랍고 충만된 기쁨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새떼들이 수천마리가 나타나 꽃봉오리 구름의 가장자리를 에워싸면서 함께 움직였다. 나는 말없이 꽃구름과 함께 사라져가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꼭 제트기가 지나가면 흰 선이 생기는 것처럼 흰 구름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리고 구름길이 열리듯이 모두 꽃으로 변하면서 원을 그렸다. 그러면서 서서히 산봉우리 쪽으로 움직였다. 또한 모두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하늘나라의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주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도를 얻었지만 전생의 나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를 때였다. 나는 제자인 정주와 함께 이 광경을 두시간 이상 맥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이러한 이적을 어느 누가 믿기나 하겠는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운악산 신선바위에 오르다
경기 오악은 가평 화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파주 감악산, 가평 운악산을 이르는 것으로 예로부터 산기운이 좋고 영검한 산으로 알려져 왔다. 그중에서도 운악산은 백미로 손꼽히며 수많은 도인과 선승들이 이 산을 찾아 들어왔다.
나도 운악산과 삼생의 깊은 숙연이 있어 이곳에서 구도와 수행을 한 적이 있었다. 예로부터 운악산 신선바위 머리꼭대기에 세 번 올라가 않으면 신선이 된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세 번 올라 앉아 경을 읊고 내려온 적이 있다.
신선바위는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절벽이 있어 여간 힘든 곳이 아니다. 설사 오른다 해도 신선바위 어깨까지가 고작일 뿐이었다. 여기를 지나 머리 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기이한 여자였다. 보통 여자들이 가려 하는 길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파트니, 땅이니, 재산증식이니 하는 말들은 귓전에 맴돌 뿐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반면에 신선이니, 도통이니, 구도니, 수행이니 하는 말만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이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래서 사람의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부터 운악산 신선바위를 올라야지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던 차에 그곳에 갈 시절인연이 생겼다. 그래서 도학자인 문선생과 도반 몇몇이 함께 출발했는데 아무도 끝가지 올라가지 못했다. 결국 여자인 나만 홀로 올라갔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두 번째는 제자인 정주를 데리고 무사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런데 세 번째로 신선바위에 올라갈 때 기이한 일이 생겼다. 나는 점심을 먹고 올라갔는데 일부러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도장에서 바로 산을 타고 절벽으로 올라서 홀로 폭포를 건너 신선바위에 올랐다.
허위단심 바위꼭대기에 앉을 찰나....갑자기 바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해는 서산마루로 뉘엿뉘엿 붉게 지고 있었다. 해질 무렵의 산은 무섭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이어 엄청난 새떼가 나를 향해 모여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팔대신주를 염송하고 있었다. 그러자 서서히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겼다.
이어 하늘에서 풍악이 울렸다. 이젠 바위가 흔들린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명불허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운악산 신선바위가 예사로운 바위가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신들의 시험까지 당하고 보니 더더욱 구도수행에 대한 신심이 깊어졌다. 절로 환희심이 생겼다. 아....이래서 도를 궁구하면 일생 그 도를 놓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산을 내려올 때는 죽는 줄 알았다. 이미 해는 저물어 어둑어둑하고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막막했다. 이럴 땐 배를 바위에 바싹 붙이고 지네처럼 기듯이 내려와야 한다. 어설프게 몸을 잘못 일으키면 천길 벼랑으로 떨어진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왜 이리 나는 시련을 피해 갈 수 없단 말인가. 온몸은 땀과 긴장으로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다.
이미 산은 어둠으로 포위돼버렸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바위벼랑 끝에 와서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득한 곳에선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이곳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는 소문이 새록새록 기억에서 되살아나는지....
이때 갑자기 정신이 퍼뜩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산왕대신, 산왕대신, 산왕대신.....”
그러자 놀랍게도 헤드라이트 같은 불빛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니 어마지두 호랑이였다. 운악산 산신령이 나를 살리기 위해 호랑이를 보냈던 것이다.
나는 호랑이의 불빛을 따라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전혀 두렵지 않았다. 산신령이 나를 가호한다고 생각하니 다리에선 오히려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하산하니 제자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손에 땀을 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 속에서 이승의 하직을 알리다
도인 이 선생님은 도를 궁구하고 수행하던 분이다. 나를 비롯해서 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 있었는데 이 선생님은 한때 그 모임을 지도해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오시공을 끝마칠 무렵이었다. 눈을 뜨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눈앞 구름속에서 이 선생님이 나타나셨다. 그러더니 “곽선생, 나 간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하도 기이한 꿈이라 나는 곧바로 악양으로 전화를 했다. 악양은 이 선생님이 거하시던 곳이다. 그런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여 다시 이 선생님이 자주 가시던 청량사에 전화를 넣었다. 그랬더니 백운 스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 선생님이 구름 속에서 가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자 스님께서는 “곽 선생님이 최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다그쳐 묻자 이 선생님을 병원에 모셔다 놓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알고 이렇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느냐는 뜻이었다.
그 후 이 선생님은 문하의 많은 제자들이 간호를 했지만 결국 타계하셨다. 이 선생님은 내가 도의 길을 가는데 도움을 주신 분이다. 비록 계속 함께하진 못했지만 내게는 각별한 인연이었다.
식사 때마다 밥뚜껑에 모인 수증기를 나에게 주시고는 먹으라고 권하시기도 했다. 아주 깨끗한 이슬이니 선도수행을 하는 사람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젠 이승을 떠나셨지만 종종 옛날 생각이 날 때면 꼭 떠오르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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