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 香氣/한시 한마당

山居秋暝(산거추명)

초암 정만순 2018. 1. 10. 11:42



山居秋暝(산거추명)



            
            

            空山新雨後 (공산신우후) : 빈 산에 새 비 내린 뒤, 天氣晩來秋 (천기만래추) : 저녁 되니 가을 기운 찾아오네. 明月松間照 (명월송간조) : 밝은 달빛은 소나무 사이 비추고, 淸泉石上流 (청천석상류) : 맑은 샘물 바위 위로 흐르네. 竹喧歸浣女 (죽훤귀완녀) : 댓잎이 사각대니 빨래하던 여인 돌아가고, 蓮動下漁舟 (연동하어주) : 연꽃이 흔들리니 고깃배 내려가네. 隨意春芳歇 (수의춘방헐) : 마음대로 세자의 시강원을 비운, 王孫自可留 (왕손자가유) : 왕손을 따라서 머무름이 그런대로 좋다네.

                                                                                              -摩詰 王維(마힐 왕유)-  
            
      이 시를 지은 왕유(王維,701-761)의 눈에는 온갖 꽃이 향기를 내뿜으며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밝은 달이 있고 맑은 물이 있고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있기에 이처럼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도 산골은 봄 못지 않게 운치있는 곳으로 보였다. 
       그런 까닭에 그는 회남소산의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산골은 사시사철 어느 때고 다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 직접경험을 통해 얻게 된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던 것이다.

* 王孫 : 
귀족의 후예. 귀공자. 여기서는 隱士(은사), 곧 悠悠自適(유유자적)하는 자기의 생활을 말한 것임. 
감상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가을날 초저녁, 비 온 후의 산촌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담박(淡泊)하고 청신(淸新)한 시어로 산수전원의 묘사를 통해 진세(塵世)를 벗어난 선열(禪悅)의 경지, 
이상적인 경지에 대한 시인이 추구하는 바를 기탁했다.
산수자연은 詩와 禪이 만나는 장소이다.
사람은 자연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터득하고,자연을 통해 사상과 심미적 가치를 창조한다. 
또 사람은 자연을 매개로 하여 감정과 사상을 표현한다. 
자연은 미적 관조의 대상이 되며 은유와 상징의 매개물이 되기도 한다.
텅 빈 산에 비 개고 초가을 어둠이 얇게 깔릴 무렵,위로는 소나무 사이로 밝은 달이 비치고,
굽어보면 산의 바위틈에 개울 소리 들리니,맑고도 그윽하며 소박하고도 우아하며 미묘하고도 자연스럽다.
"대숲 소란하니 아녀자들 빨래하고 돌아가며, 연잎 흔들리니 고깃배 내려가리라"라고 말한 데에는 신운(神韻)이 감돈다. 
순박하고 고요한 생활의 정취를 그리면서 《초사(楚辭)》의 구를 반의적으로 
원용했는데,산중에 은거하여 자연에 도취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흰 달·푸른 솔·맑은 개울은 사물의 고결함에 자신을 기탁한 것이며, 연잎의 흔들림·소란한 웃음은 
관직을 멀리 떠나고자 하는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의 깊은 뜻은 '空(공)'의 예술적 형상화에 있다.
이 시의 '空山(공산)'은 단순한 빈 산이 아니라 심령상의 '空', 즉 內心(내심)의 空寂淸靜(공적청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세히 음미해보면 淸幽(청유)한 意境(의경)을 만들어낸 솜씨가 가히 天衣無縫(천의무봉)의 경지이다.
천지자연의 운행은 한시도 멈춤이 없나니...이 시는 함축성이 강하여 강(江)을 읊은 
《한강임범(漢江臨泛)》과 더불어 산(山)을 읊은 왕유의 명작으로 꼽힌다. 

왕유(王維)
왕유(王維): 699~759는
중국 당(唐)나라 때 산서성(山西省) 시현(祁縣)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인(詩人)이면서 화가(畵家)였으며 음악가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모친 최씨(崔氏)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왕유(王維)도 어머니의 영향으로 입신(入信)하여,
"유마힐(維摩詰)" 즉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경전(經典) 중 하나인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을 닮고자 자를 마힐(摩詰)이라고 했다. 
그가 태어날 당시 당(唐)나라 수도 장안(長安)은 이미
부(富)와 번영(繁榮)을 누리는 국제적(國際的) 대도시(大都市)로 성장한 때 였다.
왕유(王維)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21세 때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했다.
아홉살 때부터 이미 문학적(文學的) 재능(才能)을 보였다곤 하지만, 진사(進士) 
급제(及第)는 특히 거문고(琴)을 잘 타 음악적 재능(才能)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어려서부터 수재(秀才) 소리를 들어가며 주변에서 칭찬이 높았었고 재능이 뛰어나서, 
황제(皇帝)인 현종(玄宗)을 비롯한 귀족들의 모임에서 예술가(藝術家)로서의 명성(名聲)을 널리  떨쳤었다. 
젊은 시절 고급(高級) 관리(官理) 채용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타의 부러움을 샀으나, 
겸손치 못하고 우쭐한 기분으로 그 재능(才能)을 과시하며 자랑하고 다니다,
조정(朝廷)의 눈총을 받아 젊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고위관직(高位官職)에서 쫏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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