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詩
◎
시절과 인간은 시들어짊 있건만
하늘의 꽃 소식은 매화에 먼저 오네.
돌집에서 늙은 중이 향 사르며 앉았자니
서창으로 든 달빛이 한동안 배회한다.
時節人間有謝來 上天花詔下先梅
시절인간유사래 상천화조하선매
老僧石屋焚香坐 月入西窓久徘佪
노승석옥분향좌 월입서창구배회
-계오(戒悟, 1773∼1849),
「회포를 읊다(咏懷)」
◎
동해 바다 곁으로 금강산 높이 솟아
고요한 산 시끄런 시내 저마다 참되도다.
웃노라 저 늙은 중 이 이치를 알지 못해
굶주림을 도(道)로 여겨 정신만 힘 드누나.
金剛山聳海東濵 峯默溪喧各自眞
금강산용해동빈 봉묵계훤각자진
堪笑老僧斯不識 飢虛爲道謾勞神
감소노승사불식 기허위도만로신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벽곡하는 노승에게 주다(寄辟穀老僧)」
◎
해오라기 가을 포구 달빛에 자고
닭은 새벽 산 구름을 깨뜨리누나.
집집마다 이끗을 다투는 일들
고기 소금 바다 어귀 잔뜩 쌓였네.
鷺眠秋浦月 鷄破曉山雲
노면추포월 계파효산운
爭利家家事 魚鹽積海門
쟁리가가사 어염적해문
-해담 치익(海曇 致益, 1862-1942),
「마산포에서 묵으며(宿馬山浦)」
◎
십년간 임하에서 앉아 공(空)을 보더니
마음 텅 빎 깨닫자 법도 또한 텅 비었네.
마음과 법 다 비어도 오히려 끝 아니니
다 빈 것마저 비워야만 비로소 진공(眞空)이리.
十年林下坐觀空 了得心空法亦空
십년임하좌관공 료득심공법역공
心法俱空猶未極 俱空空後始眞空
심법구공유미극 구공공후시진공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추월대사의 삼공자 시에 차운하다(次秋月大師三空字)」
◎
환해(幻海)에 부침하며 몇 번 봄을 보내고서
시렁 위서 또 다시 꼭두각시 놀음 했지.
이제서야 껍질 벗고 티끌세상 벗어나면
정계(淨界)에선 연꽃이 곱게 새로 피어나리.
幻海浮沉度幾春 棚頭又作弄傀人
환해부침도기춘 붕두우작롱괴인
如今脫殼超塵累 淨界蓮花發艶新
여금탈각초진루 정계연화쟁염신
-명찰(明詧, 1640~1708),
「임종게(臨終偈)」
◎
나무 인형 피리 불며 구름 속으로 달아나고
돌 여자가 금(琴)을 타며 바다 위로 오는구나.
그 가운데 한 늙은이 이목구비 하나 없이
깔깔깔 박수치며 파안대소(破顔大笑) 하누나.
木人吹笛雲中走 石女彈琴海上來
목인취적운중주 석녀탄금해상래
箇裡有翁無面目 呵呵拊掌笑顔開
개리유옹무면목 가가부장소안개
-무주(無住, 1623-?),
「무적당의 원수좌에게 부침(寄無迹堂元首座)」
◎
산 구경 물 구경에 나날을 허송하고
음풍영월 하느라 정신이 피로하다.
서쪽에서 온 그 뜻을 활연히 깨달아야
바야흐로 출가했다 말할 수 있으리라.
翫水看山虛送日 吟風詠月謾勞神
완수간산허송일 음풍영월만로신
豁然悟得西來意 方是名爲出世人
활연오득서래의 방시명위출세인
-정관(靜觀, 1533-1608),
「시승에게 주다(贈詩僧)」
◎ 애증
남 아끼면 남이 나를 사랑하지만
미워하면 남도 나를 미워한다네.
아끼고 미워함은 내게 달린 것
어이 굳이 산승에게 물으시는가?
愛人人我愛 憎人人我憎
愛憎惟在我 何必問山僧
-계오(戒悟, 1773∼1849),
「석산 한상사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謹次石山韓上舍)」
◎
칠십 여년 세월을 환해(幻海)에서 노닐다가
오늘 아침 허물 벗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툭 터진 진성(眞性)은 원래 걸림 없나니
깨달음에 생사 뿌리 어이해 있으리오.
七十餘年遊幻海 今朝脫殼返初源
칠십여년유환해 금조탈각반초원
廓然眞性元無碍 那有菩提生死根
확연진성원무애 나유보리생사근
-부휴(浮休, 1543∼1615),
「임종게(臨終偈)」
◎
헛세월 보내는 것 참으로 가석하니
세간의 사람들이 시비 속에 늙어가네.
부들방석 위에서 단정히 가만 앉아
부지런히 공부해서 조풍(祖風) 이음만 못하리.
虛負光陰眞可惜 世間人老是非中
허부광음진가석 세간인로시비중
不如端坐蒲團上 勤做功夫繼祖風
불여단좌포단상 근주공부계조풍
-부휴(浮休, 1543∼1615), 「경세(警世)」
◎
백년의 세월이 틈 사이로 지나는 듯
어이 인간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 건가.
마땅히 강건할 때 부지런히 애써야지
생사가 갈릴 때는 한가하지 못 하리.
百歲光陰如過隙 何能久住在人間
백년광음여과극 하능구주재인간
冝隨强健須勤做 生死臨時不自閑
의수강건수근주 생사임시부자한
-부휴(浮休, 1543∼1615),
「경세(警世)」
한바탕 웃음
◎
꽃 떨구는 바람에 강호에 봄 다가고
저물녘 한가한 구름 푸른 허공 지나간다.
그걸 보다 인간 세상 헛 것임을 깨달으니
한바탕 웃음 속에 만사 모두 잊으리.
江湖春盡落花風 日暮閑雲過碧空
강호춘진낙화풍 일모한운과벽공
憑渠料得人間幻 萬事都忘一笑中
빙거료득인간환 만사도망일소중
-부휴(浮休, 1543∼1615),
「한조각 한가론 구름 푸른 허공 지나가네(一片閑雲過碧空)」
◎
참문(參問)함엔 아만(我慢)을 제거해야 마땅하고
수행에는 탐진치(貪嗔痴)를 없앰이 합당하다.
헐뜯음과 기림이 바람처럼 들려와도
만사에 무심해야 도가 절로 새로우리.
參問須宜除我慢 修行只合去貪嗔
참문수의제아만 수행지합거탐진
雖聞毁譽如風過 萬事無心道自新
수문훼예여풍과 만사무심도자신
-부휴(浮休, 1543∼1615),
「준(峻) 상인에게 주다(贈峻上人)」
◎ 용천검
용천검 한 자루를 구름 끝에 보내시니
번쩍이는 찬 빛이 폐부를 비추누나.
전륜왕의 세 치 쇠보다 훨씬 더 나으리니
바위 골짝 지녀 가면 늙은 몸이 편안하리.
龍泉一柄送雲端 焰焰寒光照肺肝
용천일병송운단 염염한광조폐간
猶勝輪王三寸鐵 持歸岩壑老身安
유승륜왕삼촌철 지귀암학로신안
-정관 일선(靜觀 一禪, 1533-1608),
「검을 준 데 대해 사례하다(謝惠劒)」
◎ 빈 절에서
섬돌 옆 뜨락에는 이끼가 온통 돋고
깊게 닫힌 대문은 오래도록 닫혀있네.
틀림없이 주인은 신선 되어 올라가
이따금 학을 타고 달 속에서 내려오리.
階邊庭畔遍生苔 深鎻松門久不開
계변정반편생태 심쇄송문구불개
應是主人爲羽客 有時騎鶴月中來
응시주인옹우객 유시기학월중래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빈 절에서 자다가(宿空寺吟)」
◎
공업(功業)을 멀리하고 지나친 술 말아야지
석 잔도 마다커늘 하물며 많이 하랴.
수보(手報) 없단 불경 말씀 기억하여 둘지니
승려로써 경계 않고 말년에 어이 할까.
破除功業酒無過 三爵猶辭矧敢多
파제공업주무과 삼사유사신감다
記得經中無手語 僧而不誡末如何
기득경중무수어 승이불계말여하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술 즐기는 승려를 경계하다(誡嗜酒禪者)
◎
비워야만 한웅큼도 모두 담나니
바다 또한 물병에 전부 채우리.
평범하든 거룩하든 모든 물건은
이름 짓기 어렵고 형상도 없네.
空應皆納掬 海亦盡盛瓶
공응개납국 해역진성병
有物通凡聖 難名又沒形
유물통범성 난명우몰형
-월봉 무주(月峯 無住, 1623-?),
「해(海) 선사에게 보이다(示海禪)」
◎
기울고 굽은 길에 갈림길도 많은데
굽은 곳엔 가시 많고 갈림길엔 의심 많네.
길 갈 때 갈림길과 굽은 길 가지 마소
가운데 길로 가야 바야흐로 평탄하리.
路多邪曲又多岐 曲處多荊岐處疑
노다사곡우다기 곡처다형기처의
行路莫行岐與曲 正當中路路方夷
행로막행기여곡 정당중로노방이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갈림길을 꺼림(忌多路)」
◎
한 치의 시간이 한 치의 금쪽이란
옛 사람이 내린 훈계 뜻이 어찌 깊은지.
승려라도 혹시나 푸른 눈이 안 열리면
늙어서도 헛 애쓰며 붉은 마음 토로하리.
一寸光陰一寸金 古人垂誡意何深
일촌광음일촌금 고인수계의하심
闍梨倘不開靑眼 老漢徒勞吐赤心
도리당불개청안 노한도로토적심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장(壯) 상인에게 주다(贈壯上人)」
◎
무쇠 관문 굳게 닫혀 나아갈 길 없길래
이리저리 두드리며 열어보려 하였지.
느닷없이 펑 터져 의심덩이 깨지더니
아울러 하늘땅이 놀라 들썩 하더라.
鐵關牢鎻無行路 西擊東敲要打開
철관뇌쇄무행로 서격동고요타개
倏然爆地疑團破 管取驚天動地來
숙연폭지의단파 관취경천동지래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연장로에게 주다(贈蓮長老)」
◎
천마(千魔)와 만난(萬難)이야 허깨비와 같은 법
여울가에 버려진 뒤집힌 배 다름없다.
금강(金剛)과 밤 가시를 통째로 삼켜야만
부모님께 몸 받기 전 그때를 알게 되리.
千魔萬難看如幻 直似灘頭掇轉船
천마만난간여환 직사탄두철전선
呑透金剛并栗莿 方知父母未生前
탄투금강병율자 방지부모미미생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영운장로에게 주다(贈靈雲長老)」
◎갈림길
사람마다 문 밖에는 길이 평탄하지만
평탄한 그 가운데 갈림길이 다시 있지.
바른 길 문득 잃고 갈림길로 들어서면
하늘 덮은 가시밭길 홀로 헤매게 되리.
人人門外路平坦 平坦坦中更有歧
인인문외로평탄 평탄탄중갱유기
正路忽迷歧路入 漫天荊棘獨蹰躇
정로홀미기로입 만천형극독주저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길을 잃다(失路)」
◎ 부싯돌
부싯돌 치는 사이 50년 세월 지나
인간의 영욕이 온통 모두 헛것일세.
오늘 아침 껄껄 웃고 표연히 떠나가니
장삼 입은 중의 행장 만리의 바람 뿐.
五十年光石火中 人間榮辱揔虛空
오십년광석화중 인간영욕총허공
今朝大笑飄然去 一衲行裝萬里風
금조대소표연거 일납행장만리풍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대중과 떠나며(捨衆)」
◎ 생각
생각으로 생각을 생각한다면
생각하고 생각해도 참 생각은 아니리.
망녕된 생각을 진짜 다스려야만
괴롭잖게 한 생각이 없어지리라.
如以念念念 念念非眞念
여이념염염 념염비진염
將眞治妄念 未苦無一念
장진치망념 미고무일념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무제(無題)」
◎ 앎
지식으로 아는 것을 안다고 하면
손으로 허공 웅킴 다름없으리.
앎은 단지 스스로 자길 아는 것
앎 없어야 다시금 알 것을 아네.
若以知知知 如以手掬空
知但自知已 無知更知知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지지편을 보고서(看到知知篇)」
◎가석타
가석타 세상사람
제 몸 귀함 모르고서,
부귀만을 선망하여
불법 구함 이와 같네.
可惜世間人 不知自身貴
가석세간인 불지자신귀
羡他豪富人 求佛法如是
선타호부인 구불법여시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남의 요구에 응해서 짓다(求他作)」
◎ 나무하고 물 긷기
정밀함 속에서 늘 정밀해도
거친 가운데 더욱 거칠다.
예순에 몸소 나무하고 물 길어오니
몸은 되도 마음은 고되지 않네.
精底每每精 麁底轉轉麁
정저매매정 추저전전추
六十躬柴水 體劬心不劬
육심궁시수 체구심불구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뜻을 말하다(叙意)」
◎붉은 잎
나고 멸함이 실상 아니요
실상이 바로 생멸인 것을.
봄 가고 나서 가을 아니라
푸른 잎 붉게 물든 것일세.
生滅非實相 實相是生滅
생멸비실상 실상시생멸
非春去又秋 靑葉染紅色
비춘거우추 청엽염홍색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가을 빛(秋色)」
◎분별심
한 바다에 뭇 고기 노니니
저마다 한 큰 바다 지녔네.
바다는 분별심 없으니
여러 부처의 법도 이렇다.
一海衆魚游 各有一大海
일해중어유 각유일대해
海無分別心 諸佛法如是
해무분별심 제불법여시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다(示求法人)
◎ 장부의 뜻
솔과 대의 절조로 서리 눈을 견디니
물과 달의 정신이 어이 티끌 물들까?
장하다 장부의 뜻 깊이깊이 간직해
명산을 찾아가서 주인이 되시게나.
松筠節操凌霜雪 水月精神豈染塵
송균절조능상설 수월정신기염진
壯哉深包丈夫志 須訪名山作主人
장재심포장부지 수방명산작주인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준(俊) 선덕이 말을 구하므로 주다(賽俊禪德求語)」
◎ 그저
눈 가득한 천지에 바람 빛깔 싸늘한데
지는 해에 고개 돌려 바다 구름 사이 본다.
한번 떠난 고향은 천산의 밖에 있어
꿈 속 넋만 유유히 그저 갔다 돌아오네.
雪滿乾坤風色寒 回頭日落海雲間
설만건곤풍색한 회두일락해운간
故鄕一別千山外 魂夢悠悠空去還
고향일별천산외 혼몽유유공거환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나그네로 지어 읊다(客作吟)」
◎ 솔바람
비 갠 뒤 정원은 빗질한 듯 고요하고
들창에 바람 들자 가을인양 서늘하다.
산 빛과 냇물소리 솔가지 퉁소 소리
진세의 일 어이해 마음에 이를쏘냐.
雨餘庭院靜如掃 風過軒窓凉似秋
우여정원정여소 풍과헌창량사추
山色溪聲又松籟 有何塵事到心頭
산색계성우송뢰 유하진사도심두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쓰다(偶書一絕)」
◎ 도강
정종(正宗)의 소식이 재미가 없다 해도
쓰지 않고 어이하고 또 어찌 한단 말가.
은산과 철벽을 깨부수고 가야지만
그제야 바야흐로 사생 강물 건너가리.
正宗消息沒滋味 不用如何又若何
정종소식몰자미 불용여하우약하
打破銀山鐵壁去 此時方渡死生河
타파은산철벽거 차시방도사생하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순장로에게 주다(贈淳長老)」
◎한 방
일만 의심 온통 모두 의심 덩이 향해가니
의심 가고 오는 중에 의심을 절로 보네.
모름지기 용을 잡고 봉을 치는 솜씨라야
한 주먹 주먹질로 무쇠 성문 넘기리라.
萬疑都就一疑團 疑去疑來疑自看
만의도취일의단 의거의래의자간
須是拏龍打鳳手 一拳拳倒鐵城關
수시나룡타봉수 일권권도철성관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
「난법사에게 주다(贈蘭法師)」
◎흥
가볍던 장삼 무거워 몹시 쇠함 알겠고
익숙턴 경전 생소하니 병 깊음을 깨닫네.
다만 이 마음만은 끝내 늙지 않아서
흥이 일면 이따금 다시 길게 읊조리네.
舊輕衲重知衰甚 曾熟經生覺病深
구경납중지쇠심 증숙경생각병심
唯有此心終不老 興來時復一長吟
유유차심종불로 흥래시부일장음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읊다(偶吟)」
◎한바탕 꿈
한단의 베개 위 일 황당하긴 하지만
총욕(寵辱)이란 참으로 한바탕 꿈 진배없다.
내 능히 이 이치를 궁구했다 할진댄
이 같은 순경(順境) 만나 두서없음 물리치리.
邯鄲枕上事荒唐 寵辱眞同夢一塲
한단침상사황당 총욕진동몽일장
盡道吾能窮此理 逢些順境却顚忙
진도오능궁차리 봉사순경각전망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쓰다(偶書)」
◎빈주
마음은 몸 가운데 주인이지만
몸은 마음 밖의 손님 아닐세.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고요해
주인 손님 힘써 서로 가까웁다네.
心是身中主 身非心外賓
심시신중주 신비심외빈
心安身亦靜 賓主力相親
심안신역정 빈주력상친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안심 비구가 게송을 구하기에(安心比丘求偈)」
◎ 때때로
능히 넓고 깊기가 한바다 다름없고
더하거나 줄지 않음 허공과 한 가지라.
이따금 비밀스레 돌아드는 빛 비추니
마음 절로 빌 적에 경계도 절로 비네.
能廣能㴱如大海 無增無減若虛空
능광능심여대해 무증무감약허공
時時密密回光照 心自空時境自空
시시밀밀회광조 심자공시경자공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일원상(一圓相)」
◎ 새벽 달
성(性)이 거울 본체라면 마음은 빛과 같아
성품 만약 해맑으면 마음 절로 드러나리.
묵은 구름 바람이 쓸자 천리 하늘 말끔한데
푸른 하늘 외론 달이 새벽까지 푸르구나.
性如鏡體心如光 性若澄淸心自彰
성여경체심여광 성약징청심자창
風掃宿雲千里盡 碧天孤月曉蒼蒼
풍소숙운천리진 벽천고월효창창
-괄허 취여(括虛 取如, 1720~1789),
「성심(性心) 노숙에게 답하다(答性心老宿)」
◎득실
부귀해도 오정(五鼎) 음식 외려 가볍고
빈궁하나 소쿠리 밥 충분하도다.
백년 간 떠돌기야 한 가질러니
피차간 어이 잃고 얻음이 되리.
富貴猶輕五鼎飡 貧窮自足一簞食
부귀유경오정손 빈궁자족일단사
等是浮休百歲間 此何爲失彼何得
등시부휴백세간 차하위실피하득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우연히 쓰다(偶書)」
◎차 석잔
새벽 미음 한 국자 든든히 먹고
낮엔 밥 한 그릇에 배가 부르다.
목마르면 차를 석잔 달여 마시니
깨달음 있고 없곤 상관 않으리.
寅漿飫一杓 午飯飽一盂
인장어일표 오반포일우
渴來茶三椀 不管會有無
갈래차삼완 불관회유무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한 스님에게 대답하다(有一禪者答云)」
◎나는야
약초밭에 샘물 끌어 국로(國老)에 물을 주고
대밭에는 가시울로 조동(朝童)을 보호하네.
흥망의 시끄러움 문을 닫고 안 받으니
나는야 세상 속의 일없는 늙은일세.
藥圃引泉澆國老 筠庭插棘護朝童
약포인천요국로 균정삽극호조동
杜門不受興亡擾 我是世間無事翁
두문불수흥망요 아시세간무사옹
-원감 충지(圓鑑 冲止, 1226-1292),
「한중잡영(閑中雜詠)」
◎심우(尋牛)
도란 본래 마음에서 얻는 법인데
어이 굳이 밖에서 구하려드나.
평평한 밭 풀 우거진 언덕에서도
곳마다 소 찾기가 좋을 터인데.
道本從心得 何勞向外求
도본종심득 하로향외구
平田芳草岸 隨處好尋牛
평전방초안 수처호심우
-한계 현일(寒溪 玄一, 1630∼1716),
「산놀이 하는 승려에게 주다(贈遊山僧)」
◎소원
일 없는 게 산승이라 말하지 마시게나
불볕더위 날 가물어 푹푹 찜이 안타깝네.
아침저녁 이를 위해 향 한 심지 사르노니
성심으로 나라 근심 농사 풍년 원하노라.
莫言無事是山僧 亦恨炎天旱氣蒸
막언무사시산승 역한염천한기증
朝夕爲焚香一炷 誠心憂國願年豊
조석위분향일주 성심우국원년풍
-한계 현일(寒溪 玄一, 1630∼1716),
「오랜 가뭄에 차운해 짓다(久旱次韵)」
◎파초
한 그루 파초를 뜨락에 심어두니
밤중에 보슬비 소리조차 들리누나.
매운 바람 툭 쳐서 꺾을까 걱정되어
아이 시켜 돌 주워와 터진 담장 고친다네.
芭蕉一樹種幽庭 中夜猶聽細雨聲
파초일수종유정 중야유청세우성
剛怕疾風輕破折 囑兒拾石補虧牆
강파질풍경파절 촉아습석보휴장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山居)」
◎ 나비
대 씻고 솔 다듬고 홀로 문을 닫고서
내가 나를 잊은 채 적막히 말이 없다.
늦은 나비 날아와 그 무슨 심사인지
밝은 창에 착 붙었다 동산 향해 가누나.
洗竹科松獨掩門 我還忘我寂無言
세죽과송독엄문 아환망아적무언
飛來晩蜨何心事 忽著明囱卻向園
비래만접하심사 홀착명창각향원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홀로 앉아(獨坐)」
◎ 거미줄
두 그루 복사 오얏 지난해에 옮겨 심어
햇볕 쬐고 안개 젖어 가지마다 꽃 가득해.
팔랑팔랑 나비 모습 아껴 보려 하여서
지팡이로 거미줄을 자주 없애 주노라.
兩株桃李去年移 烘日蒸霞也滿枝
양주도리거년이 홍일증하야만지
爲愛翩翩蝴蜨影 頻持竹杖去蛛絲
위애편편호접영 빈지죽장거주사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산거잡영(山居雜詠)」
◎ 아침 해
새벽에 동해바다 앉아서 보니
가로 걸린 구름이 산 모양 짓네.
붉고 푸른 빛깔을 산이 머금다
아침 해를 그 사이서 토해내누나.
坐見扶桑曉 橫雲作假山
좌견부상효 횡운작가산
山含紅翠色 朝日吐其間
산함홍취색 조일토기간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구름이 만든 가짜산을 노래하다(詠雲假山)」
◎달 구슬
푸른 바다 용이 손아귀에 구슬 쥐고
밤에 천문(天門) 올라가 천도(天都)에 바치누나.
항아 아씨 어여쁜 무지개 옷 비춰보다
그림자 있나 없나 단총(丹叢) 기대 웃는다네.
碧海龍兒掌頷珠 夜昇閶閤獻天都
벽해용아장함주 야승창합헌천도
姮娥照取霓裳美 笑倚丹叢影有無
항아조취예상미 소의단총영유무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달을 읊다(詠月)」
◎아침 내내
아침 내내 밥 먹어도 무슨 밥을 먹으며
밤새도록 잠 잤어도 잠잔 것이 아니로다.
고개 숙여 못 아래 그림자만 보느라
밝은 달이 하늘 위에 있는 줄을 모른다네.
終朝喫飯何曾飯 竟夜沉眠未是眠
종조끽반하증반 경야침면미시면
低首只看潭底影 不知明月在靑天
저수지간담저영 불지명월재청천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우연히 읊다(偶吟)」 1
◎마음대로
자던 새 떠나려니 이별 한이 많은 듯
짹짹짹 우는 듯이 또 노래하는 듯해.
어여뻐라 취향 따라 남북으로 날아가서
만수(萬水)와 천산(千山) 속을 제멋대로 쏘다니리.
宿鳥辭群別恨多 啾啾如泣又如歌
숙조사군별한다 추추여읍우여가
可憐異趣飛南北 萬水千山自在過
가련이취비남북 만수천산자재과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새가 한 가지서 함께 자고 날 밝으면 각자 날아간다(鳥宿共一枝, 天明各自飛)」
◎흰 구름
일흔 살 늙은 중이 흰 구름에 앉아서
흰 구름 집을 삼고 또 문을 삼는다네.
만약 누가 마음 속 일 물어볼 것 같으면
건곤에 아침 가고 저녁 옴과는 다르다고.
七十老僧坐白雲 白雲爲室又爲門
칠십노승좌백운 백운위실우위문
有人若問心中事 不似乾坤朝又昏
유인약문심중사 불사건곤조우혼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우연히 읊조리다(偶吟)」
◎
염불 소리
염불 소리 드높아 맑고도 화창하니
신상(神象)마저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하누나.
어여뻐라 그대의 소리 가락 웅장하여
가슴 속에 몇 이랑 물결 간직했나 모르겠네.
頌佛聲高淸且和 却敎神象舞婆娑
송불성고창차화 각교신상무파사
多君玉齒潮音壯 不識胷藏幾頃波
다군옥치조음장 불식흉장기경파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어산의 인스님이 말을 구하므로 주다(賽仁魚山求語)」
◎거울 속
한 조각 가을 소리에 오동잎이 떨어지니
늙은 중이 놀라 일어나 가을바람 묻는구나.
아침나절 홀로 걸어 냇가에 서있자니
칠십년 세월이 거울 속에 담겼구나.
一片秋聲落井桐 老僧驚起問西風
일편추성낙정동 노승경기문서풍
朝來獨步臨溪上 七十年光在鏡中
조래독보임계상 칠십년광재경중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초가을에 느낌이 있어(初秋有感)」
◎단풍
외론 뿌리 굳세잖아 가을바람 겁나서
푸른 잎 서리 전에 붉게 변해 버렸구나.
설령 산빛 비단처럼 밝다고 한다해도
어이 홀로 푸르른 세한송(歲寒松)만 할까부냐.
孤根不勁怯秋風 綠葉霜前變作紅
고근불경겁추풍 녹엽상전변작홍
縱使山光明似綿 爭如獨翠歲寒松
종사산광명사금 쟁여독취세한송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단풍을 노래하다(咏楓)」
◎
궁괴백(宮槐陌) -왕유(王維)
홰나무 길
비스듬한 길에 홰나무 그늘져 있는데
그윽하고 어둑한 길에 푸른 이끼 많구나.
문지기야, 손님 맞을 길 쓸어두어라
행여나 산에 계신 스님 올 것 같구나.
仄徑蔭宮槐(측경음궁괴)
幽陰多綠苔(유음다녹태)
應門但迎掃(응문단영소)
畏有山僧來(외유산승내)
◎
춘일상방즉사(春日上方卽事)-왕유(王維)
어느 봄날 상방에서
<고승전> 읽기를 좋아하시어
때때로 벽곡술 적은 방문을 보신다.
비둘기 모양을 지팡이에 새기고
거북껍질을 써서 침상을 괴시었다.
버드나무 빛은 봄산에 비치고
배꽃 사이로 저녁 새가 숨어든다.
북쪽 창가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 아래
한가히 앉아 다만 향불만 피우고 있다.
好讀高僧傳(호독고승전)
時看辟穀方(시간벽곡방)
鳩形將刻杖(구형장각장)
龜殼用支牀(구각용지상)
柳色春山映(유색춘산영)
梨花夕鳥藏(리화석조장)
北牕桃李下(배창도리하)
閒坐但焚香(한좌단분향)
◎뜰 앞의 잣나무
올해는 지난해보다 가난이 더 심해서
길 떠나는 그대에게 줄 물건이 하나 없네.
서쪽서 온 뜰아래 잣나무를 주노니
때때로 마음 쏟아 명심하여 잊지 말게.
今年貧甚去年貧 無物臨行可贈君
금년빈심거년빈 무물임행가증군
惟付西來庭下栢 時時着意又書紳
유부서래정하백 시시착의우서신
-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 「급 스님이 말을 구하므로 시를 지어 주다(伋師求語作句贈之)」
◎ 활안
만법귀일이라 하니 어디로 돌아갈꼬
온갖 사물 돌아가도 돌아가지 못하네.
정문(頂門)의 활안(活眼)이 활짝 열릴 것 같으면
산하대지 온전한 기틀을 드러내리.
萬法歸一一何歸 八物咸歸不見歸
만법귀일일하처 팔물함귀불견귀
若得頂門開活眼 山河大地露全機
약득정문개활안 산하대지로전기
-동계 경일(東溪 敬一, 1636∼1695),
「온갖 법은 한곳으로 돌아간다(萬法歸一)」
◎
도사에 의탁하여 절에 묵다 -왕유(王維)
투도일사란약숙(投道一師蘭若宿)
도사 한 분이 태백산에 거하니
높은 산봉우리 구름 밖에 솟았다.
진리는 여러 골짜기에 두루 퍼지고
꽃비는 산봉우리에 두루 떨어진다.
스님의 종적은 무심적멸에 숨었고
이름은 교화로 인해 알려졌도다.
돌아와 불법 설하니 새도 날아오고
사람들 떠나고 나면 다시 선정에 든다.
낮에 소나무 길을 끝까지 걸어
저물어 산사에 투숙한다.
동방은 대나무 숲 깊숙이 가려 있고
맑은 밤에 아득한 샘물 소리 들린다.
좀금 전에는 구름과 놀 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잠자리 앞에 앉있다.
어찌 다만 잠시 머물러 묵어가랴
평생토록 불법을 섬기며 살리라.
一公棲太白(일공서태백)
高頂出雲烟(고정출운연)
梵流諸壑遍(범류제학편)
花雨一峰偏(화우일봉편)
迹爲無心隱(적위무심은)
名因立敎傳(명인립교전)
鳥來還語法(조래환어법)
客去更安禪(객거경안선)
晝涉松路盡(주섭송로진)
暮投蘭若邊(모투난약변)
洞房隱深竹(동방은심죽)
淸夜聞遙泉(청야문요천)
向是雲霞裏(향시운하리)
今成枕席前(금성침석전)
豈惟留暫宿(기유류잠숙)
服事將窮年(복사장궁년)
◎ 竹里館(죽리관) - 왕유(王維)
나 홀로 그윽한 대숲에 앉아
거문고 타다가 다시 긴 휘파람 불어본다
숲이 깊어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밝은 달이 찾아와 서로를 비춘다.
彈琴復長嘯(탄금부장소)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明月來相照(명월래상조)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10. 19 선시
◎
獨坐悲雙鬢(독좌비쌍빈)
空堂欲二更(공당욕이경)
雨中山果落(우중산과락)
燈下草蟲鳴(등하초충명)
白髮終難變(백발종난변)
黃金不可成(황금불가성)
欲知除老病(욕지제로병)
惟有學無生(유유학무생)
홀로 앉아 희끗희끗한 양 귀밑털을 슬퍼하노라니
텅 빈 마루에 어느덧 야밤 이경이 되어 오네.
산중엔 비 내리는 가운데 산과실 떨어지고
등잔 밑에선 가을 풀벌레 구슬피우네.
백발은 끝내 다시 검게 변하기 어렵고
단사(丹砂)로 황금을 만들어 낼 수 없네.
생로병사 고통을 제거하는 이치를 터득코자 한다면
오직 불생불멸의 불도를 배우는 길뿐이네.
◎
백발을 한탄하다(歎白髮 탄백발)
宿昔朱顔成暮齒(숙석주안성모치)
須臾白髮變垂髫(수유백발변수초)
一生幾許傷心事(일생기허상심사)
不向空門何處銷(불향공문하처소)
홍안의 미소년이 늙은이 되어
어릴 적 다박머리가 순식간에 백발이 되었구나.
일생 동안 가슴 아팠던 일 그 얼마였던가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위안을 받았을꼬.
하일과청룡사알조선사(夏日過靑龍寺謁操禪師)-왕유(王維)
10. 20 선시
◎과향적사(過香積寺)-왕유(王維)
過香積寺(과향적사)
향적사를 지나며
향적사는 어디 있나 구름 덮인 산을 헤메는데
고목 우거져 인적 끊긴 깊은 산 속에 먼 종소리
바위틈에 샘물 목이 메고 햇빛 차가운 푸른 솔숲
저물녘 빈 골짜기에서 망령 걷어내는 고요한 좌선
不知香積寺 數里入雲山(부지향적사 수리입운산)
古木無人徑 深山何處鐘(고목무인경 심산하처종)
泉聲咽危石 日色冷靑松(천성열위석 일색냉청송)
薄暮空潭曲 安禪制毒龍(박모공담곡 안선제독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