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고(何仙姑) / 중국 팔선(八仙).
하선고(何仙姑)
하선고는 원명이 하경(何瓊)이고 영주영릉(永州零陵) 사람이나, 일설에 광주증성 사람(廣州增城人)이라고도 한다
도교의 팔선중 한사람이며 뛰어난 미모를 가졌다. 항상 손에 연꽃을 지니고 있다.
그 신분에 대해서 세상에 전설이 많으나 그 중 비교적 많이 내려오는 것은 하선고가 하씨집안의 여자이며 십삼세에 산에 찻잎을 따러 갔다가 우연히 여동빈을 만나 제자가 되었는데 신선들의 복숭아(仙桃)인지 대추(仙棗)인지를 하사받아 먹고 신선이 되었고, 여러 전설에는 하선고가 선녀,여도사, 무당의 세가지 신분을 가지고 있다한다.
선불기종(仙佛奇?)에 의하면 하선고는 광주 증성에 있는 하태(何泰)의 딸이며, 16살때 꿈에 신선이 나타나 운모가루를 먹으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녀가 신선의 지시대로 운모가루를 먹고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맹서를 했다.
항상 산속을 왕래하며 걷는 것이 나는 것 같았으며 후에 점차로 곡식을 먹지 않았다.
측천무가 만나보려고 궁으로 오라고 사신을 보내 초청했는데 가는 도중에 홀연히 사라져 버려 , 그 일을 두고 백일비승((白日飛昇))'백주에 신선이 날아갔다'고 한다.
당 천보 9년에 마고단에 나타났는데 오색구름 가운데에 서 있었다고하며 그후 광주의 소석루에 나타났다고 한다.
여도사(道姑) 설로는 도가의 책 여조지(呂祖志)에 원래 조선고(趙仙姑)인데 손에 연꽃을 들고 있어서 음이 맞아 하(何)가 되었다 한다. 또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내가 도를 이룬 이후에 가름할 수있는자는 하선고, 곽상조다" 라고 있다.
무당설은 적청(狄?)을 만나 점을 쳐주는 이야기 인데 아래 기재된 내용과 비슷하다. 吉凶을 예지하는 능력이 있다한다.
何仙姑
仙女說
在《仙佛奇?》中,何仙姑是廣州增城中何泰的女兒,十六歲時夢見仙人?自己吃雲母粉,可以長生不死。?照仙人的指示,吃雲母粉,發誓不嫁,經常來往山谷之中,健步如飛,後逐漸不吃五穀。武則天曾遣使召?進宮面聖,入京途中??忽然失?,據稱白日升仙。唐朝天寶九年,出現在麻姑壇內,站立在五?雲中;其後,又在廣州的小石樓裏出現。
在道家典籍《呂祖志》中 呂洞賓所度乃趙仙姑,因?手持荷花,諧音?「何」。《古今圖書集成》中亦有「吾道成以來,所度者何仙姑、郭上?」。
宋朝曾敏行的《獨醒雜誌》記載,狄?早年在征討南?時路過永州,聽說何仙姑能預知吉凶,便特地去詢問戰爭的結果。何仙姑說:『公不必見賊,賊敗且走。』開始狄?不信。後來宋軍先鋒與?智高的兵交戰,不幾回合,智高戰敗?逃入大理國。
何仙姑祠廟的碑記中記載,明代萬曆年間兩廣總督劉繼文平亂時向何仙姑問卦,得詩「用兵勇往是良圖,懼敵全身豈令謀,將相協心同贊事,何愁山寇不消除」,劉繼文照此而行果然大勝。
여덟 신선 중 유일한 여성
팔선(八仙)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팔선도에서 연꽃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궁장여인이 하선고이다.
고대로부터 선고(仙姑)는 선녀 또는 여도사라고 하는 의미가 있고 선도(仙道)에서는 도고(道姑)라고 하고 민간에서는 선랑(仙娘)이라고 한다.
하선고는, 당나라 사람으로 광주 남해군 증성현 출신이다.
원래 이름이 하수고(何秀姑)였다고 하며 하태(何泰)의 딸로서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에 출생하였다는 설이 있다.
태어날 때 자주색 구름이 집을 감싸고 흩어지지 않아, 상서러움을 더했다고 한다.
신선의 계시로 운모(雲母)를 먹고
하선고의 고향 인근의 산에는 운모가 많이 산출되었다고 한다.
흐르는 개울물에는 운모조각이 뒹굴면서 물을 따라 흘러 내려왔다.
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떠내려 오는 운모조각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선고가 십사오세 쯤 되었을 때, 어느 하룻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신선이 나타나 "너는 운모가루를 항상 먹도록 하라,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도 연장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선고는 꿈속의 계시를 깊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매일 운모가루를 장복하였다.
그러자 과연 그녀의 신체는 가볍기가 제비와 같았으며,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부락민들은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운모가루를 찾아 먹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만이 다소 효력을 보았을 뿐, 대부분은 효력이 없었다고 한다.
운모가루를 먹겠다는 사람이 많아져 운모를 찾느라 시냇가는 전부 뒤집혀졌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시냇가에서는 운모조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운모(雲母) : 운모과 광석의 총칭으로서 결정체, 색깔에 따라 성분이 다르며, 옛날 사람은 운모를 구름의 뿌리라고 하여 운모(雲母)라 이름하였다.
얇은 조각으로 잘 쪼개지며 빛을 투과하거나 거울로도 사용가능하며 약으로도 쓴다.
<도경연의본초>에는 "그 맛이 달고 평이하며 독이 없다.
몸에 사기를 제거하고, 오장을 편하게 하고 오로칠상과 허로를 다스리고 설사를 멎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볍고 수명을 연장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시집갈 생각은 아예 없고
하선고가 어느덧 성장하여 시집갈 나이가 되자, 부모는 자연히 혼처를 구하면서 하선고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하선고는 결혼 따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처음 집밖으로 멀리 외출을 하였을 때, 팔선 중의 철괴리(鐵拐李)와 남채화(藍采和) 두 신선을 만났다고 한다.
이때에 벽곡의 비결을 전수받았다. 하선고는 아침 일찍 외출하여 밤늦게 돌아왔다고 한다.
매번 돌아올 때마다 두 손에는 산에서 나는 큼직한 과일 한 아름을 가져왔다.
이 큼직한 산 과일은, 그 고장에서 나지 않는 과일로서 색깔이 곱고 신선하며 맛이 좋아 보통 과일과는 달랐다.
부모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묻자, 그녀는 "이곳으로부터 천리밖, 오령(五嶺)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였다.
부모는, 이때서야 비로소 하선고가 근기가 높은 여자 수행자임을 알았다.
하선고는 날이 갈수록 수련의 깊이를 더하여 갔고, 부모들도 더는 하선고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도 복숭아를 먹고 음식을 끊고
한편, 세월이 한동안 흐른 후 팔선 중에서 순양진인 여동빈을 만나 선도(仙桃)복숭아 하나를 얻어먹은 후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벽곡을 하게 되었고 인사(人事)와 길흉화복을 훤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자못 그 영험함이 대단하여 고향사람들이 신령하다고 받들어 모셨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차 하선고의 도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오래지 않아 측천무후도 하선고의 신통함과 기이한 행적을 듣고서 관리를 파견하여 하선고를 장안으로 불렀다.
관리 일행과 함께 장안으로 오던 중에 하선고가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파견 관리들이 백방으로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하여 궁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나라 중종 경룡(景龍)년간에 신선 철괴리가 하선고를 인도하여 백일비승(白日飛昇)하여 신선의 반열(仙班)에 들었다.
후에 당나라, 송나라 때 하선고는 장안 승선관(昇仙觀), 강서 마고단(痲姑壇)에서 현신하였다고 한다.
여성 전도에 특히 관심을
하선고는 호남과 광저우 일대에서 대부분 활동하였다.
여자로서 성선(成仙)한 신선이 드문 가운데 하선고는 자연히 부녀(婦女)에게 전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 당시 당광정이라는 여자가 몸에 혈질(血疾)이라는 병이 있어 연달아 8~9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요절했다.
당광정은 스스로 전세의 죄업이 무거움을 알고는 자기 남편에게 수도하겠다는 뜻을 이야기하고 집을 떠났다.
천리길이 멀다하지 않고 하선고를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또 송나라 때 이정신이라는 사람의 처가 임신을 했는데 출산일이 되었으나 아이는 나오지 못하고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선고를 청해 도움을 받게 되었다 .
하선고가 출산 현장에 와서 임산부에게 "당신은 일찍이 임신한 여종 한 사람을 학대하여 죽게 한 사실이 있다.
이제 그 업보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하선고가 법술을 써서 아이를 낳게 하였으나 세상에 나온 아이는 죽어 있었다. 아이 몸 위에는 채찍 흔적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하선고의 내력에 대한 다양한 견해
사실 하선고의 도술이나 신선으로서 자취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많지 않다.
또 하선고의 출신에 대한 기록도 분분하여 사실을 쉽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하선고의 본관이 광주(廣州)가 아니고 순주(循州), 영주(永州)라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성이 조(趙), 이름은 하(荷)라고 적혀있다.
이름 하(荷)자(팔선도 그림 속에는 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므로)가 잘못 와전되어 하(何)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이름이 이랑(二娘)이고 신발을 짜서 생업으로 삼고 스스로 수련하여 도를 얻었다고 한다.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에 사자를 파견하여 장안으로 다시 초청했다.
이 초청이 그녀를 희롱한다는 생각이 들자 장안으로 오는 도중에 사라졌다고 한다.
결국 팔선으로 선정되다
당나라, 송나라 연간에 여덟 신선이 모두 다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는 하선고는 그 팔선의 행렬에 들지 못했다.
누가 팔선에 속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으나 명나라 이후가 되어서야 팔선이 정해졌다.
이때부터 여자 신선 하선고와 7명의 남성 신선들 즉 팔선에 대한 고사 전설이 부단히 더해지게 되었으며 제각기 자기 재간을 나타내게 되어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되었다.
한편, 현재 중국 광주 증성현(增城縣)에는 하선고의 사당이 있고, 매년 음력 3월 7일 하선고의 탄신일이 돌아오면 4만여 읍민들이 모여 기념 창극을 하고 경축행사를 올리는 것이 풍속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하선고가 속세에 있을 때, 주부(主簿) 한 명이 홀연히 하늘의 책을 얻게 되었으나,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었다.
하선고에게 묻자 하선고가 말했다. 『하늘의 책은 방정하니, 주부가 금 10냥을 받으면 5년의 녹이 깍이리라.』이는 하선고가 좋은 일을 한 사례로, 하늘의 명을 내세워 관리의 수뢰를 경고한 것이다.
《독성잡지》에 또한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적무양은 바로 북송의 명장이자 추밀사(樞密使)인 적청(狄靑)이다.
적무양이 광원주(廣源州)의 만족(蠻族)인 농족의 지고를 정벌하여 크게 사로잡고 전승을 거둔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히 그러한 일이 있지만, 사전에 하선고에게 점을 청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각 안에 있는 초상을 직접 본 것은, 하선고가 누각 안에 매우 존귀하게 모셔지고 있음을 뜻한다. 역사에 서는 적무양이 병법을 잘 알아, 그 용병술이 신과 같았다고 말한다.
적원사(狄元師)가 친히 하선고를 만나 점을 친 일이 비록 반드시 사실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하선고를 믿었다는 것에는 의문이 없으니, 하선고가 당시에도 큰 영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八仙傳說:能預知人間禍福的何仙姑
何仙姑,名瓊。又名秀姑。何仙姑「生時紫云云繞室,頂有六毫」。
傳說何仙姑十三歲時入山採藥,巧遇呂洞賓,呂洞賓賜之一桃,曰:「食此盡,他日當飛升。」從此,何仙姑不饑不渴,洞察人事仙咎,能預知人間禍福。?里人以?是神仙再世,許多士大夫出於好奇,紛紛前來請何仙姑?自己占卜算卦。
有一日,一位官吏忽然收到一紙天書,上面的字不可識,於是來請?何仙姑,何仙姑說:「天書上面寫道:『主簿受金十兩,折祿五年』。」這位官吏正是在朝任主薄之職,曾經接受別人的賄賂。聽何仙姑這?一說,回家?快原封不動的將金子退了回去。
唐中宗李顯景龍年間(公元707~710年),有人親眼目睹?白日昇天。公元750年時,有人看見何仙姑站立在仙女麻姑身邊,立於五彩雲中。
何仙姑成仙後,?的故?增城的人們?了紀念?,紛紛建廟奉祀?。小樓區的一座何仙姑家廟,至今?存,大門兩側寫著一副楹聯:
千里履跡遺丹井
百代衣冠拜古祠
這副對聯裡還暗藏有一個傳說。傳說何泰夫婦看女兒一天天長大,於是給??了個婆家,?擇定良辰吉日,可是何仙姑不肯嫁人,便??的從家門口的水井裡「問仙」去了。去時只穿一隻鞋,?一隻繡花鞋遺留在井台上,所以說「履跡遺丹井」。
(道家傳說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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